'길들이기' 논란 검찰청법 개정 이례적 보류"정권체력 저하"

"스가 마지막까지 강행 주장"아베, 측근과 불협화음 징후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한 비판 여론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아베 총리가 검찰 고위직 정년을 정부 입맛대로 바꿀 수 있도록 검찰청법을 개정하려다 여론의 반발에 일단 물러섰다.

연속으로 7년 넘게 이어진 아베 정권이 사실상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을 겪기 시작하는 징후로도 해석된다.

트윗으로 시작된 항의가 '무소불위' 아베 저지

아베 총리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청법 개정안 표결을 보류하겠다는 뜻을 18일 표명한 것은 정권이 휘청이는 신호로 여겨지고 있다.

7년 가까이 여당이 중의원과 참의원의 과반을 차지해 어떤 법안이든 가결할 수 있는 수적 우위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 표결을 보류하기로 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아베 총리는 201312'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누르고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했고 2015년에는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안보 관련 법률 개정을 강행했다.

2015914일 오후 일본 국회 의사당 인근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추진하는 안보관련 법률 제·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안보 법률 개정 때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연일 국회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아베 정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압승을 반복해 온 아베 정권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입법에 관해서는 무소불위였다.

중의원과 참의원 전체 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발의하고 국민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성사되는 개헌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1·2차 집권기를 합해 8년 넘게 권력을 쥔 아베 총리의 궁극적인 관심사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 아베 총리가 트위터에서 시작된 여론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패착을 뒀다.

30대 여성 회사원이 이달 8일 올린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라는 트윗을 시작으로 연예인이 가세한 가운데 비판 여론이 봇물 터지듯 했다.

연출가 미야모토 아몬(宮本亞門)이 검찰청법 개정에 항의하는 뜻을 밝힌 트윗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나흘 전인 15일 밤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정책의 내용, 팩트가 아닌 일시적인 이미지가 퍼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실은 달랐다'고 이해를 구한다"며 반대 여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록히드 사건을 수사한 주역 등 원로 법조인까지 반대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결국 백기를 들었다.

"민중의 분노가 폭거 저지"아베 레임덕인가

일본 언론은 이번 사건의 상징적 의미에 주목했다.

19일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이 민의를 잘못 파악해 타격을 입었다며 "아베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견해가 여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민중의 분노가 '탈법 정권'의 폭거를 저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논평했다.

다만 아베 정권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산케이신문은 2차 추경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여론이나 야당의 비판이 거세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판단이었다고 분석했다.

최근 아베 정권이 여론의 반대에 직면해 방침 바꾸거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일으키는 일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가계 지원금이다.

아베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소득이 감소한 가구에 30만엔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이런 구상을 자신이 후계자로 눈여겨보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이 밝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득 감소를 따지지 말고 전 가구에 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으며 결국 연립여당인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모든 주민에게 10만엔씩 지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일률 지급 구상은 애초부터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선별적 지급 방안을 추진하다 여론과 연립 여당 등의 반발에 밀려 체면을 구긴 셈이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문부과학상은 대학 입시에서 민간 영어 시험을 도입하기로 했다가 여론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것이 계기가 돼 민간 영어 시험을 보류하는 등 큰 혼란을 불렀다.

아베 총리는 모든 가구에 천 마스크 2장씩을 배포하는 계획을 강행했지만, 불량품이 속출해 배포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고 배포 자체가 매우 늦어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샀다.

최근 아베 정권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레임덕 현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집권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까지이며 당칙을 개정해 임기를 연장하지 않으면 총리직도 그때까지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된 가운데 국회 해산 등 아베 총리가 그간 위기 때마다 사용한 극약 처방을 선택하기는 당장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마스크를 쓰면서 퇴장하고 있다. 왼쪽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보인다.

"아베 시대 기울고 있다"아베·스가 관계 '삐걱'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의 구심력이 저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국민의 불만을 사는 일의 두드러지며 정권의 체력도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서 "'아베 1()'은 기울기 시작했다"는 자민당 다선 의원의 발언을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국회에서 표결을 보류한다는 방침이라서 가을 임시 국회 등에서 검찰청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관해서도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법안을 보류한 것이 "법안의 결함을 인정한 것이 된다"는 자민당 중견 의원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당내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소개했다.

한 각료 경험자는 "(검찰청법 개정을) 뒤로 미루면 (중의원) 선거가 가까워진다. 영향이 두렵다"고 반응했다.

최근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분석이 대두한 가운데 검찰청법 개정 보류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예전처럼 긴밀하지 않은 정황이 다시 부각하는 등 정권 내 분열 가능성이 엿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가 검찰청법 개정을 보류하기로 마음이 기운 다음에도 스가 관방장관이 마지막까지 개정 강행을 주장했다는 여당 간부의 발언을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한 여당 간부는 "보류 판단은 총리관저가 했지만 주도한 것은 총리인지, 관방장관인지, 총리 주변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맥이 두터워 차기 검사총장(검찰총장에 해당)에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여겨지는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의 정년 연장이 검찰청법 개정의 시발점이었는데 구로카와는 스가 관방장관과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아베 총리는 "구로카와 씨와는 둘이서 만난 적이 없다"며 친분을 부인한 바 있다.

자민당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검찰청법 개정을 보류하기로 한 것에 대해 "총리관저의 뜻을 받아 표결을 목표로 했던 자민당 측은 높은 곳에 올라갔는데 같은 편이 사다리를 치워버린 꼴이 됐다. 내각의 구심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