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칼럼] 사람 값과 코로나

● 칼럼 2020. 6. 20. 08:40 Posted by SisaHan

[한마당 칼럼]  사람 값과 코로나

       

사고로 사망한 사람에게는 피해 보상금이 주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 측 사이의 합의에 의해 거액이 보상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형편없는 금액에 유족들이 반발해 격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 값이 그 정도 밖에 안되느냐?, 인간을 무시하느냐!”는 격앙된 항의에 죽은 사람 가지고 장사 하려느냐!”는 반박이 나온다. 그러다 결렬되면 법원에 맡기는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간다. 하지만 법적 기준선과 산정은 항상 흡족할 리가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제도화 된 나라에서는 하찮은 잘못에도 천문학적인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40년간 담배를 피운 폐암 환자에게 1억 달러를 물어준 담배회사, 추돌사고로 불이 나 죽은 4살 아이에게 미국법원은 SUV의 기름탱크 위치 잘못으로 사망했다며 15천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크라이슬러에 명하기도 했다. ‘사람 값을 따지면 수백에서 수천 배의 차이가 난다.

이처럼 금액으로 따지는 사람 값은 돈이 우상이 된 황금만능 세상에서 사람들의 속물적이고 육적인 욕망의 척도를 드러낸다. 그런, 사람 값 비싸다고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525일 미국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 무릎에 846초간 목이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46)사람 값을 다른 각도로 상기시켰다. 세계 1등국 미국에서 사람을 개 돼지처럼 압살한 경찰의 만행에 흑인들은 물론 세계인이 규탄하며 인종차별 반대시위로 번진 이유다. 살인 경찰관 앞에서 플로이드의 사람 값은 얼마로 여겨졌던 것일까.

영화 뿌리(ROOTS)’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사냥당해 미국 땅에 끌려온 쿤타킨테는 한 마리의 가축이나 사고파는 물건에 불과했다. 그렇게 삶이 나락에 떨어진 흑인들은 1863년 링컨의 노예 해방선언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 운동, 1964년 연방 민권법 제정, 그리고 2009년 대통령에 흑인 오바마가 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별의 대상이고, ‘사람 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의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

어디 흑인 뿐인가. 이민자들의 나라, 다민족 국가의 나라라고 자랑하는 미국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때로는 눈에 선명한 유색 차별의 실상이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단속 경찰이 백인은 부드럽게 대하면서 유색인들은 함부로 대한다는 암묵적 인식부터, “꺼져라, 너희 나라로 가라!”고 대놓고 박대를 하는 거리의 사례까지. 얼마 전 어느 하원의원이란 자가 아시안계 연방 보건책임자에게 비슷한 막말을 했다는 보도가 바로 그런 증거다.

너희들도 원주민 쫓아낸 이민자 주제에 주인행세냐!”는 말이 치밀어도 통할 리가 없으니 대부분 삼키는 현실. 돈이나 물질로 따질 수 없는, 또한 따져서도 안될 진정한 사람 값은 인간적 예우와 가치에 대한 존중 여부, 삶의 질에 연결된다.


흑백이나 유색에 대한 차별을 떠나 사람 값의 귀천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8백만 명을 넘어선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에서 중증 확진자로 62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던 70세 노인이 무려 11225백 달러(135천만원)의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건강보험 부담 치료비가 평균 489만원이라니 무려 270배가 넘는다.

이 엄청난 치료비는 사람 값이 높다는 것과는 상반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비싼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을 견디며 병을 껴안고 사는수많은 서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사람 값이 너무 하찮은 곳이 세계 1등국 미국이라는 역설을 입증한다. 코로나 사태의 와중에 '선진'을 자랑하던 나라들의 민낯과 허상이 드러났다.

코로나19 최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서 가장 피해가 큰 브롱크스 지역에는 백인이 9%에 불과하고, 영어를 쓰지않는 가구가 60% 정도라고 한다. 유색인종의 사람 값 저평가문제 만이 아니다. 온통 대선에 정신이 팔린 트럼프 대통령은 국민들이 코로나에 걸리든 말든, 빨리 경제활동을 재개하라고 핏대를 올린다.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보소우나루 대통령 역시 케 세라 세라(Que Sera)‘ 식 대응으로 확진자 10만명에 가까운 2위 국가가 됐다.

감염자 18천여명인 일본의 아베는 어떤가. 올림픽이 무산될 세라 감염을 쉬쉬하며 추적도 검사도 피하더니, 크게 늘렸다는 지금도 하루 4천건 정도의 진단검사만 한다. 인구 13천만 명인 나라의 총 검사수가 34만여 건으로, 1억 필리핀의 51만건, 16천인 방글라데시 53만 건에도 미치지 못하며 한국 120만 건에는 3할이 채 안된다.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의 수준이 높아서 감염이 적다고 자랑하는 정치인이 설치는 그들의 사람 값, 단 한명이라도 찾아내 책임지고 고치겠다며 보건책임자들이 밤을 새우는 한국인들의 사람 값보다 과연 비싼 것일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됐다고 창세기는 기록했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고 값싼 짐승처럼 취급하는 곳 이야말로 신의 형상을 차별하고 비하한 죄인들의 지옥에 다름 아니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