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실장에 서훈정의용·임종석은 외교안보특보로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박지원 전 국회의원을 국가정보원장으로 깜짝 발탁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대북 라인 투톱으로 꼽혀온 서훈 국정원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안보특보로 자리를 옮긴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외교안보특보로 함께 임명됐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공석이 된 자리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됐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강 대변인은 박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내정한 데 대해 “4선 경력 정치인으로 메시지가 간결하면서 정보력과 상황판단이 탁월할 뿐 아니라 정보위원회 활동을 하며 국정원 업무에 정통하다박 후보자가 오랜 의정활동으로 축적된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소통력을 바탕으로 국정원이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16일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일부에서는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경질론이 제기됐지만, 이번 인사 발표를 보면 사실상 전열 가다듬기에 가깝다. 대북 관계를 주도해온 서 원장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계속 업무를 해나가게 되고, 정의용 실장은 비상임외교안보특보로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조언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서영지 기자 >

안보라인 북한통 총동원남북대화 복원강력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가정보원장으로 박지원 전 민생당 국회의원을 전격 발탁했다. 기존의 대북 라인을 이끌었던 서훈 국정원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통일부 장관으로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내정됐다.

세 사람 모두 대북문제에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돌파하기 위해 청와대가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총동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심을 모았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로 임명됐다.

이날 인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사람은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박 후보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현 정부에서도 남북문제 자문역할 하는 등 북한 문제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4선 국회의원 경력의 정치인으로 메시지가 간결하면서 명쾌하고 정보력과 상황판단이 탁월할 뿐 아니라 18·19·20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국정원 업무에 정통하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박 후보자는 최근까지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남북미 세 정상 간 회담은 가능성이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추진해야 하며, 그 중재자 역할은 문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다며 북한과 대화를 강조해왔다.

신임 국가정보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박지원 전 민생당 국회의원(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출신이 아닌 정치인을 중용한 것은 박 후보자가 처음으로,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절박함과 함께 북한을 향한 강력한 대화 의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서훈 국정원장이 맡아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며 한반도 문제 및 대외관계의 중심을 잡게 됐다. 국정원 출신 외교·안보 전문가로 미국, 일본의 고위 인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현안을 성공적으로 기획·조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그는 현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하되, 때로는 담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통일부 장관으로는 민주당 남북관계발전 및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인영 의원이 지명됐다. 그는 내정 발표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시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하게 놓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 임명돼 현안에 대한 자문 역할을 맡게 된다. 문 대통령은 이르면 오는 6일 국가안보실장과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임명하고,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할 예정이다.

박지원,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 주역탕평·협치 의미도

서훈 대북 물밑지원사령탑교체, “한반도 평화, 제도적 정착이 목표

이인영 86세대 대표원내대표 지낸 4..남북문제 관심깊어 통일 걷기진행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유지하며 새 추진 동력 장착 절묘한 선택

문재인 대통령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세 사람은 5년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2015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경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문재인 후보가 박지원 후보의 축하를 받고 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박지원 후보의 관록과 경륜, 이인영 후보의 젊음과 패기, 제가 다 업고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외교·안보라인 인선을 단행해 새 진용을 갖춘 것은, 국정 후반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기조를 재확인하면서 추진 동력을 새로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최근 북한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대남 압박에 나서며 긴장을 고조시킨 위태로운 국면을 되돌릴 전기가 될지 주목된다.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은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카드.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송호경 북한 특사와 막후 비밀협상을 벌여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오랜 기간 북쪽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쌓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 등을 동원해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주길 기대하는 인선으로 해석된다.

박 후보자는 대북 햇볕론자지만 더불어민주당 출신이 아니고 문 대통령과 정치적 악연도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그를 국정운영에 핵심적인 정보 수장으로 중용한 것은 탕평 인사의 의미로 국내 정치기반을 넓히려는 뜻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인선은 전방위로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것이라며 박지원 전 의원의 지명은 탕평과 협치의 의미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국가정보원에서 오랫동안 대북문제를 전담하며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애초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온 인물이다. 이번 인사로 서훈 내정자는 그동안 국가정보원장으로서 물밑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다가 전면에 나서 직접 외교·안보 정책을 이끄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맡게 됐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변함없이 추진해나가겠다는 뜻이 반영된 인선으로 해석된다. 서 내정자는 이날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한반도 평화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목표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의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은 중진 의원다운 정치력과 추진력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돌파해달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인 이 후보자는 4선의 국회의원으로 20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를 지냈다. 평소 남북문제에 관심이 깊은 이 후보자는 2017년부터 매해 여름 비무장지대(DMZ)를 걷는 통일 걷기행사를 진행해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 후보자에 대해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풀어감으로써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국정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를 두루 살펴보면, 기존 대북라인의 핵심 축이었던 서훈 국가안보실장 내정자가 그동안 추진해온 정부의 대북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하면서 이인영·박지원 후보자가 새로운 추진 동력으로 가세하는 구도로 보인다. 여기에 기존의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에 더해 정의용 안보실장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삼각 날개로 보좌하는 모양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인선에 대해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대통령의 절묘한 선택이며 대북 메시지라며 남북관계에 정통한 이인영, 박지원 후보자가 새로 배치되면서 기존의 대북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서훈 내정자와 삼각 구도로 정립됐다. 남북 간 교착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각종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박병수 서영지 기자 >

반문재인앞장섰던 박지원, 문재인 정부에 중용

3일 청와대의 외교·안보 인선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국정원장 인사였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매일 아침 공개적으로 비난해 문모닝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야박하게 굴었던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중용된 것은 모두의 허를 찌르는 일이었다.

문 대통령과 박 후보자 간 구원의 역사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의 몰표를 받아 집권했지만 김대중 정권 시절 벌어진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했고, 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 후보자는 검찰수사에 휘말려 옥살이를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에서 최고점을 찍었다. ‘대세론을 앞세운 문 대통령과 당권-대권 분리론을 주장하는 박 후보자가 대표직을 놓고 격돌했다. 막말과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한 가운데, 박 후보자는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 ‘친문 패권주의를 내세워 문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3.5%포인트 아슬아슬한 차이로 문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이미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후였다.

이때 문 대통령에게 각인된 호남 트라우마는 좀처럼 털어내기 어려운 상처였다. 박 후보자가 불 지핀 호남 홀대론은 반문(재인)정서를 타고 일파만파 번지며 새정치민주연합을 분열시켰다. 박 후보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에 입당해 2016년 총선에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총선 직전 광주를 찾아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으나 호남은 총 28석 중 25석을 국민의당에 몰아주며 좌절감을 안겼다.

2017년 대선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였던 박 후보자는 오전 공개회의 때마다 문재인 때리기에 앞장섰으나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우호적 태도로 급선회했다. 취임 첫날인 2017510일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에게 오늘은 굿모닝입니다라며 ‘10년만의 정권교체를 축하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론을 계승한 그는 험난한 남북관계의 격랑 속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잃지 않은 문 대통령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국정원장 내정 소식이 알려진 이날 박 후보자는 문 대통령에게 충성을 약속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 하겠다앞으로 내 입에서는 정치의 ’()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오랜 악연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기용한 것은 험악해진 남북관계 돌파를 위한 강한 의지와 절박함의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후보자는 20년 전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청와대로 외교·안보 원로들을 불러 조언을 들은 자리에도 박 후보자를 초대한 바 있다. < 이지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