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미얀마군, 로힝야족 공격해 6천여명 학살, 75만명 피난

병사 2ICC 영상 증언성폭행하고, 30명 죽이고 매장했다

 

로힝야 족이 2017111(현지시각) 미얀마에서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팔롱할리로 가고 있다. 최소 2000여명 이상의 지치고 굶주린 로힝야 난민들이 박해를 피해 나프강을 건너 입국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팔롱할리/AP 연합뉴스

    

보이는 것과 들리는 모든 것을 쏘라.”

미얀마군 사병 묘 윈툰(33)20178월 로힝야족 소탕 작전에서 상관으로부터 이렇게 지시 받았다. 그는 로힝야족 여성을 성폭행했고 무고한로힝야족 30명을 죽이는 데 참여했다. 묘 윈툰은 나중에 큰 구덩이를 파 부대원들이 살해한 아이 7명과 여성 8, 남성 15명 등 30명을 매장했다. 그는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쐈다. 무슬림 남성들의 이마에 총을 쏘고 시체를 구덩이 안으로 걷어찼다고 말했다.

승려 출신 이병 군 서열 낮아 성범죄 못하고 보초 섰다

두 명의 미얀마 군인이 2017년 미얀마 당국의 로힝야족 대학살에 대해 증언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70여만명을 피난길에 오르게 만든 2017년 대학살에 대해 로힝야족이 피해자 입장에서 진술한 적은 많았다. 가해자 입장에서 미얀마군이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군인은 지난달 말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돼, 지난해 말부터 미얀마의 대량학살 범죄를 조사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를 받고 있다.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 사실을 증언한 묘 윈툰(왼쪽) 이병과 조 나잉툰 이병. 포티파이 라이츠 누리집 갈무리

전직 승려로 다른 작전에 참여한 사병 조 나잉툰(30)우리는 약 20개 마을을 싹 쓸어버렸다고 증언했다. 그 역시 상관으로부터 어린이든 어른이든, 보이는 모든 것을 죽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의 부대는 며칠 동안 여러 마을을 돌며 로힝야족 80여명을 죽였다. 묘 윈툰과 달리 조 나잉툰은 성범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부대 내 서열이 낮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성범죄 현장 근처에서 보초를 서야 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포함해 학살에 직접 참여한 미얀마군 19명의 이름과 직위를 진술했으며, 고위 지휘관 6명에 대한 정보도 털어놓았다.

두 군인의 진술은 아직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수집된 로힝야족의 피해 진술 등과 상당 부분 부합한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두 군인이 진술한 장소와 발생한 사건 등이 엇비슷하고, 일부 로힝야족은 묘 윈툰 사병을 알아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두 군인은 미얀마군을 탈영해, 방글라데시로 건너가 신병 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힝야 족이 거주하던 마을인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 고두 자라 마을에서 20179월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민가가 불타고 있다. 라카인/AP 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 ICC서 조사중피해 증언과 상당부분 일치

이들의 증언은 미얀마 군 일부가 수십 개 마을에서 벌인 로힝야족 100여명 학살 사건에 국한되지만, 미얀마군에 소속됐던 군인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미얀마 정부는 대량 학살과 매장 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주요 증언이기 때문이다.

두 군인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 머물며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구속 상태로, 향후 법정에서 전쟁 범죄에 대한 증언에 나설 수 있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도 제공받을 것이다. 두 사람 역시 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제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의 매튜 스미스는 이들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는 첫 미얀마 군인이 될 것이고, 법원이 구류한 첫 번째 내부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0624일 인도네시아 북 아체 롯수콘 앞바다에서 고장 난 배를 타고 표류하던 로힝야 족 난민들이 인도네시아 어부와 관리들에 의해 구조돼 랑콕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랑콕/AP 연합뉴스

2017년 로힝야족 6700명 사망아웅산 수치도 옹호

로힝야족의 비극은 1900년대 시작됐다. 불교국 미얀마에는 12세기부터 국경 부근 라카인주를 중심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이 거주해 왔다. 1824~1948년 미얀마와 인도를 식민지배했던 영국은 인도인과 방글라데시인 일부를 미얀마로 이주시켰고, 로힝야족을 다른 종족보다 법적으로 우월하게 대우했다.

1948년 독립 이후, 미얀마는 이주민인 인도인과 방글라데시인은 물론 국경 부근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로힝야족까지 불법 이민자로 간주했다. 불교도와 무슬림의 뿌리 깊은 갈등과 독립 전 대일본 항전 과정에서 로힝야족들이 미얀마인을 집중 공격했던 전력이 반영됐다.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엔 로힝야족에게 외국인 신분증만 발급해 취업과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 1982년 새 시민법이 통과돼 서류 증명을 통해 미얀마 신분증을 발급해 줬으나, 로힝야족은 여기서도 배제됐다.

로힝야족 일부는 무장세력이 됐고, 20178월 이들로부터 미얀마 경찰 초소 등이 습격받은 것을 계기로 미얀마군의 대규모 토벌이 시작됐다. 20178~9월 두 달에 걸친 토벌 작전으로 어린이 730여명을 포함해 최소 6700여명의 로힝야 족이 사망한 것으로 국경없는 의사회는 추정한다. 2017~2019년 미얀마에 있는 로힝야족 정착지 200여곳이 파괴되고 75만명의 로힝야 난민이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으로 쫓겨나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고문이 20191211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시작한 '로힝야 집단학살' 재판에 참석해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헤이그/EPA 연합뉴스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는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도 정부를 옹호하고 있다. 미얀마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인 수치는 지난해 12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에 출석해 범죄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진 결단이라고 미얀마 정부의 주장을 변호했다. 그는 일부 사례에서는 미얀마군이 국제인도주의법을 무시한 채 부적절한 힘을 사용하고, 전투요원과 민간인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내무 무장 갈등에 대처하고 있는 것일 뿐, 집단 학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아웅산 수치의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제엠네스티와 한국의 5·18 기념재단은 그에게 수여했던 양심대사상광주인권상2018년 박탈했다. < 최현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