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인 신년논설 ]

이 팬데믹 역사의 고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새해 아침의 화두 역시 어김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다.

이제 백신접종이 시작됐고 치료제도 곧 나온다니, 머잖아 수그러들겠지요. 막바지 확산세가 무섭지만,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이 짙다고 했잖아요. 건강 잘 지키며 이겨내시고 맘껏 돌아다닐 날이 오면 우리 맛깔스런 식당에 들러 청국장이라도 같이 맛보자구요”.

자유를 기다리며 그럴 듯한 플랜을 나눠보지만, 마음만 앞설 뿐 답답과 불안은 여전하다.

새로운 포부로 맞이하며 해피 뉴 이어를 주고받아야 할 새해 아침이 이렇게 암울하게 다가올 줄이야.

사방이 캄캄한 장벽이다. 전화나 SNS로 주고받는 소식도 반복이다 보니 한계에 다다랐고, 재택에 안주한 일상은 늘어지고 지루해져 몸이 뒤틀린다. 이가 아파도, 병이 도져도 병원은 멀기만 하다. 감기에 기침이라도 할 양이면 코로나 아닌가 겁부터 난다. 사라진 일감의 불안을 정부가 돕는다지만, 조여드는 살림살이 압박에 밤잠을 설친다. 생활고에 목숨을 버린 이들의 소식은 가슴에 아리다. 이 환란도 지나가겠지, 이제 곧 달라지려니

 

그런데, 이게 정말 간단치가 않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 놀랍고도 숨가쁜 역사의 한 고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인류사에 언제 지금과 같은 전 지구적 팬데믹과 격리의 시대가 있었던가. 중세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이 거론되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다지만, 어디 지금처럼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 모두가 한꺼번에 같은 시기 같은 대환란에 빠져 전전긍긍한 적이 있었던가. 전세계인이 한 마음으로 백신과 치료제에 승부를 건 일부 과학자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어서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다리는, 참 가련한 처지들로 일심동체가 되어 동병상련에 빠지다니!

그러면 과연 이 코로나 블루가 걷히면 말끔히 회복될 것인가. 모든 일상이 예전처럼 되돌아 갈 수 있을까?.

아니다, 같아질 수가 없다. 벌써 모든 게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 비즈니스와 경제 사회 정치, 모두가 이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독감처럼 이젠 일상을 맴도는 질병으로 남아 코로나 뉴 노멀의 삶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례없이 초고속으로 백신을 개발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었다. 벌써 몇 차례 변이가 확인됐는데, 최근 급속히 번지는 영국발 변종‘, 그리고 남아공 변종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독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영국 변이종은 전파력이 50~70%나 강하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대유행의 전조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염병은 인류의 기원과 사실상 함께 해왔다. 고대 천연두와 나병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나라가 망했거나 문명이 바뀐 기록들도 전해온다. 수천만 명씩 죽어갔던 유행병의 계보는 근래들어 사스와 메르스,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발전했다. 갈수록 주기는 짧게 잦아지면서 위력은 강하고 교활해지는 슈퍼 종들로 변해 간다. 급조 백신과 치료제로 당장은 사태가 누그러질지 모른다. 그러면 앞으로는 없다. 더 강하고 센 놈은 오지 않을거야라고 큰소리 칠 수 있나. 아무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능히 극복한다고 큰소리 치지만, 뛰는 사람 머리 위를 날으는 슈퍼 독종들이 쉬이 굴복하리라는 장담이야말로 인간의 자만과 오만에, 오판이 아닐까.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무섭게 신종으로 공격해오는 저들에게 인간은 한 수 아래인 듯 하다. 미증유의 전 지구적 팬데믹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인간은 이미 패배한 것일 수 있다. 앞으로는 껴안고 같이 살아야 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견은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다.

알고보면 어디 코로나 뿐인가. 암이 그렇고, 루게릭·파킨슨·에이즈불치의 질환은 너무 많다. 당뇨, 백혈병, 고혈압, 감기, 아토피 등등 그냥 품고 살지 않는가.

사실 인간이 아는 범위보다 모르는 원인불명의 질병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런 미지의 질병과 병원균들은, 인간이 규명해 들어 갈수록 더 많아지고 교묘하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가 사실은 인간이라는 것이 속속 밝혀지면서, 과학자들은 원죄와 업보의 창조주 섭리와 자연질서에 숙연해짐을 고백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번 전염병 창궐의 연원도 우리네 인간으로 귀결됨을 경고했다. 고도화한 인류문명은 창조질서 교란과 자연파괴, 생명 경시와 인간성 훼손의 모래터 위에 세운 탐욕의 바벨탑이라는 사실이 이번 팬데믹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뻔뻔하고 사악한 정치인들은 방역을 희롱하며 감염을 경시하는 언행으로 확산을 부추겼다. 코로나에 초토화된 문명 선진국들의 민낯이었다, 그런 인간의 오만방자를 견디다 못한 자연의 섭리와 더럽고 추악함을 싫어하는 생명의 기운이 글로벌 반격에 나선 셈이니, 설령 이번은 넘길지라도 다시 또 다시 파도처럼 엄습해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떻든 이제 COVID-19 팬데믹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등장했다. 우리는 그 페이지의 무대인물로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죄도 없이 당하기만 한 피해자들로, 불안 속에 멍 때리며 백신순서에 안달하고, 어서 먹구름 걷히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엑스트라들로 남을 것인가. 발원지 중국인들을 원망하고, 확산을 방조하며 대처하지 못한 나쁜 지도자들을 규탄하는 조연그룹에 끼어있기만 하면 안심인가. 대면이 금지된 봉쇄 속에서 집안을 맴돌며 온라인에 빠져 낙을 찾아내는 적응력에 만족하면서 세월 덧없음을 탄식하는 방콕족으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모든 인생들의 이같은 기이한 공동체험은 전례없는 일이다. 불행의 공통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경이로운 체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번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면 어떨까.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무슨 기록을 남길 것인가. 우리의 발자취가 어떻게 기억될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 아닌가.

우리 민초들에게 코로나를 초래한 직접적 책임은 없을지 모르나, 문명과 자연을 향유하며 푸른 지구를 병들게 한 인류 공통의 책임마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갈수록 심각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교란의 현실에서 어느 누가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엄청난 팬데믹을 불편과 불안만으로 어서 떠나 보내려 한다면 정말 역사에 무책임한 사람들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재앙 중에 다시 시작하는 새해 새날에 우리는 무엇을 깨달았으며, 되새기며, 기억하고 남길 것인가.

설령 나 한사람 별 볼일 없는 방구석의 소인배 일지라도, 지금 이 시대를 함께하는 지구촌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통의 명제와 삶의 지표 하나쯤은 동참하고 공유를 해볼 일이다. 가령 이 팬데믹이 수월하게 마무리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단단한 각오아래 우리들의 오만과 방자를 깊이 성찰하며, ‘기본을 하나씩 챙겨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겸허하게 준비하고 절제있게 살아 갈 슬기로운 결단과 실천의 출발일 수 있다.

18살 가냘픈 소녀 툰베리의 지구 살리기 호소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후손들을 위해 작은 일부터 챙겨보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쓰레기 한 조각 조심스레 버리고, 플라스틱 봉지 하나라도 아끼는 자세, 냉난방과 에너지 절약, 경제적인 자동차 운행도 신경 쓸 일이다. 이웃을 살피고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일, 나아가 자원낭비와 무차별 개발, 환경파괴에 무감각한 정치세력, 석탄과 원자력을 고집하는 지도자와 정부를 퇴출하는 데 앞장서는 일은 의롭고 장한 실천들이다.

한 사람의 지구인으로, 작지만 소중한 지혜를 모으고 행동에 나선다면 정말 의미있고 값진 COVID-19 팬데믹의 교훈이고 퇴치법이 되지 않을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