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법관 탄핵과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 등으로 법원이 또 한 차례 격랑을 겪고 있다. 사태의 두 주인공인 임성근 부장판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적을 곱씹다 보니, 위기의 원인이 실은 ‘가족주의’가 아닐까 생각했다. 법원장들이 취임·퇴임사 때 후렴구처럼 “법원 가족 여러분”이라고 부를 때의 바로 그 가족 말이다.

동료를 가족이라 부를 때 느껴지는 정겨움과 따뜻함이 어떤 상황에선 괴물이 되는 걸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실수를 덮어주거나, 잘못을 숨겨주거나, 무언가 부당한 부탁을 하거나, 남몰래 밀어주고 끌어줄 때 가족주의는 괴력을 발휘한다.

김 대법원장이 재판개입이라는 위헌적 행위를 한 임 부장판사를 봐주려고 했던 게 문제의 시작이다. 그에게 내려진 견책이라는 징계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가벼운 징계를 받은 임 부장판사는 ‘분가’해 개업하겠다는 걸 막는 대법원장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장은 그를 설득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직후였다. 설득 취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탄핵은 안 될 거야. 나도 바라지 않고. 근데 지금 나가면 ‘사법개혁’ ‘판사탄핵’ 어깨띠 두르고 갓 국회의원 배지 단 이탄희 등이 방방 뜰 건데, 그러면 너나 나나 다 욕먹잖아. 1심 무죄도 받았으니 내년 2월 임기 끝나면 자연스럽게 나가는 거로 하자. 오케이?’

임 부장판사도 당시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몰래 한 녹음도 그땐 공개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치권의 공격을 피하려는 대법원장 처지를 이해했을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그 역시 대법원장과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2019년 12월20일, 재판개입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선 그는 1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항변했다.

“형사수석부장으로서 저의 주된 임무는 검찰이나 언론, 시민단체, 정치권으로부터 법원이나 판사가 비난·비판을 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그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권 등 외부의 공격을 사전에 막으려고 한 것이지 재판개입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로부터 5개월 뒤 자신이 녹음했던 대법원장의 설득 논리와 똑 닮았다.

사달은 민주당의 뒤늦은 탄핵 추진이 현실화하면서 시작됐다. 임 부장판사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더 심한 사법농단을 한 판사도 개업해 잘사는데 왜 하필 자신인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법하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갈등이 생기면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라고 하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을 보고 있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자신의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삐뚤어진 가족애로 얽히고설킨 법원과 법조계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김 교수는 이 신성가족의 틀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로 ‘원만함’을 지목했다. 이쪽저쪽에서 욕먹지 않으려는 처신, 적당한 타협, 우리끼리의 온정주의 등이 바로 그 원만함의 실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이 드러나 사법기득권을 깨부술 절호의 시기에 파격적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지난 3년6개월의 시간은 사실 그도 알고 보면 ‘원만한’ 대법원장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날들이었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여론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을 때 솜방망이 징계로 가족들을 용서했다.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사법행정 개혁은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다. 어느 쪽에서도 욕먹기 싫어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조처를 반복한 탓이다. 최근 단행된 법관 인사를 두고도 “현 정부 주요 사건을 맡은 재판부를 이례적으로 유임시킨 코드 인사”라는 비판과 “양승태 시절 잘나가던 법관이 요직에 복귀했다”는 상반된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이것저것 너무 고려한, 장고 끝 악수”라는 한 판사의 촌평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김 교수는 위 책에서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라고 짚었다. 요즘 법원 안팎의 상황을 보면 법원 내 기득권과 퇴직 전관, 보수언론의 삼각동맹이 완전히 복원된 듯하다. 중심을 굳게 잡아야 할 대법원장의 원만함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신성가족은 불멸하겠지만, 사법부의 미래를 위해서는 서글픈 일이다. 사법개혁, 참 멀고도 어렵다.

석진환 | 이슈 부국장·사회부장

 

사과에도…출구 안보이는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 파문 돌파 해법 못 찾아

 

김명수 대법원장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대화 녹취록 공개 파문으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린 김명수 대법원장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법원 안팎의 비판과 시민단체의 고발, 야당의 공세 등이 거세지만, 이런 상황을 일거에 돌파할 별다른 ‘묘수’가 없다는 점이 김 대법원장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형국이다.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내놓을 선택지로 대국민 사과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때까지 침묵, 자진 사퇴 등을 거론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미 임 부장판사가 대화 녹취록을 전격 공개한 직후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뜻을 밝힌다”며 한차례 사과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이 거듭 사과를 하더라도 현 국면을 뒤집거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에 당장은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징계와 사표 반려 등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법관 탄핵소추안 통과에 대한 대법원장의 입장, 향후 사법개혁 등 전반에 관한 내용을 소상히 밝히는 형식의 입장문 등을 발표할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

헌재가 임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놓을 때까지 지켜보는 경우의 수도 있다. 헌재가 임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행위’를 ‘위헌적 행위’로 인정해 탄핵 결정을 내릴 경우 결과적으로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김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반면 헌재 탄핵 결정이 나올지 여부도 불투명한데다 헌재가 기각 또는 각하할 경우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데에 따른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야당의 주장처럼 김 대법원장이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부적절한 언행과 사실과 다른 해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는 그 자체로 사법부 독립을 더 흔들고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불신을 자초했지만 냉정함을 되찾고 헌재 심리에 따른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법개혁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초심이 퇴색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법원개혁 등 사법농단 후속 조처가 위축되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3년 뭉갠 김명수 사법개혁…‘사법추락’ 불렀다

임성근 녹취록서 거짓말 파문도, 김명수 대법원장 리더십 최대위기
사법농단 솜방망이 징계로 일관  “법원 내 개혁 동력 꺼질라” 우려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나눈 대화 녹취록 공개 파장이 사법개혁의 적임자를 자처했던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정치권 눈치를 보는 듯한 대화 내용의 부적절함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3년이 넘도록 사법농단 사태 청산이 지지부진하고, 취임 때 약속했던 사법개혁에 관한 핵심 의제들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점에 대한 실망이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 책임 미루기만 거듭”

지난 4일 공개된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의 대화 내용을 접한 판사들은 김 대법원장의 무책임함을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사법농단 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 없이 상황을 모면하는 데 치중한 것 같다는 평가다. 김 대법원장이 사표 수리 요청을 위해 방문한 임 부장판사에게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사법행정권 남용의 부작용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던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눈치보기를 한 셈”이라고 짚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책임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적 영향력을 이유로 ‘탄핵’을 언급하며 사표 수리를 무마한 대처가 외려 사법부 독립 훼손 비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뒤 두차례의 사법농단 진상조사를 진행했고, 2018년 11월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들 스스로 “탄핵소추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고 의결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주도한 소장 판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훗날 김 대법원장이 끌어낸 결과는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다. 조사 결과에 대한 책임 가려내기와 법관들의 공식 의견에 대한 후속 조처가 사실상 전무했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 징계 역시 징계시효가 만료되기까지 시간을 끌며 10명의 법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최고 1년 정직은 없었고, 견책에서 정직 6개월의 ‘솜방망이’ 징계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대표회의에서 격론을 벌여 판사들이 (탄핵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대법원장은 그와 별도로 법원의 자정 노력을 통해 (사법농단을) 해결하려고 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후속 조처를 취하진 않았고, 리더로서 책임을 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대법원장이 적극적으로 징계를 했다면 형사처벌은 못 해도 헌법이 정한 재판의 독립성 침해는 엄단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법원 전체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또 다른 변호사도 “(임 부장판사 사표 수리 반려도) 상황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사표 수리로 인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의 대화가 비판받는 건 (그동안) 전체적인 사법농단 처리를 미온적으로 해왔다는 측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법원장이 법원 차원에서의 책임 묻기를 최소한으로 한 뒤 사법농단 후속 조처를 국회로 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사법농단 후속 조처뿐 아니라 지난 3년간 대법원장이 보여준 행보 역시 사법개혁 의지와 철학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이나 법원행정처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대법원장이) 좋은 재판을 강조했는데, 재판 투명성이나 법원 신뢰도가 별로 커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관 탄핵과는 별도로 법원의 자체적 개혁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 않고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 인사도 제도개혁도 모두 적당한 선에서 타협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니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사법개혁 대의 흐려선 안 돼”

다만 이번 사태가 사법농단을 계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던 사법개혁의 정당성까지 훼손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대법원장 탄핵론, 사퇴론 등을 거론하는 외부의 공세가 정작 필요한 제도적 사법개혁과 법원 내부개혁 논의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탄핵 논의의 중요성과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별개의 문제다. 탄핵이 법관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미흡하더라도 현재 대법원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흐름이 있다. (이번 논란으로) 법원 내 사법개혁 추진 동력이 꺼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고 했다.

정욱도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법과 상식에 따라 당위를 추구하는 일에 정치적 시각을 투영시켜 입맛대로 덧칠하고 비난하는 행태가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오늘의 상황을 우려한다”며 공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정치를 하는 것은 (김명수, 임성근) 두 분이 아니라, 내 편이 아니라고 보이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원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외부의 정치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며 “탄핵도 비판도 정상적 정치 과정의 하나이고 헌법상 보장되는 일이지만, 사법부 구성원들까지 외부의 부당한 정치화에 휘말려 자중지란을 벌이는 일은 부디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예지 신민정 기자


여야, 김명수 진퇴 충돌…민주 "정쟁 중단" 국힘 "즉각 사퇴"

 

여야는 6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논란을 둘러싸고 설전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대법원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고,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을 '정권 지킴이'라 지칭하며 사퇴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한 것과 김 대법원장의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빌미로 탄핵소추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허 대변인은 "김 대법원장의 처신 문제와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문제는 별개"라며 "녹취라는 비인격적 꼼수가 반헌법적 행위에 대한 탄핵 명분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더는 사법개혁을 정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에게도 자체적인 사법개혁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논평에서 "집권 여당의 사법부 장악 시도를 묵인하고 사법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내던진 김 대법원장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을 거론하며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충견으로 나팔수로 빙의했다"고 강력 비판했다.

이어 "사법부 명예를 더 실추시키지 않고 구차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현명한 답은 사퇴"라고 덧붙였다.

 

'거짓 해명'으로 코너에 몰린 김명수… 고발 · 성명 잇따라

국민 힘  대법원장 사퇴' 촉구현직 법관 "사임은 기본권"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막다른 코너에 몰렸다.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논란이 잇따른 고발과 정치공세 난타전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제원·김도읍·김기현 의원 등 `탄핵거래 진상조사단'5일 오전 대법원에서 김 대법원장을 만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면담 자리에서 "대법원장의 결단이 사법부의 신뢰를 살리는 길이며 대법원장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면담은 김 대법원장의 거부 의사 표시에도 장 의원 등이 거듭 요구한 끝에 성사됐다. 이들은 면담에 앞서 대법원 진입을 막는 보안요원들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같은 시간 대검찰청에는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이 잇따라 제출됐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를 비롯한 단체들은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탄핵' 관련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허위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현 변호사 등 임 부장판사와 동기인 사법연수원 17기 일부도 김 대법원장의 탄핵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해야 함에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해 법관이 부당한 정치적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고 주장했다.

성명서는 `사법연수원 17기생 일동' 명의로 발표됐지만, 성명에 참여한 변호사들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정치권의 탄핵 논의를 의식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탄핵과 관련해 언급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전날 녹취록이 공개되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른 답변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쓴 글에서 "법관의 직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다.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헌법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라며 김 대법원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국민힘, 김명수 면전에서 사퇴 촉구탄핵 발의에는 신중

김명수, '물러날 뜻 없다' 표명 김종인 "사법수장 권위 상실"

 

청사 출입을 제지하는 대법원 직원들과 언쟁을 벌이고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국민의힘이 5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하며 총공세를 펼쳤다.

거짓 해명 논란으로 국면이 바뀐 가운데 여권의 법관 탄핵소추에 맞불을 놓은 형국이지만 현실상 탄핵 추진으로까지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짓말쟁이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권위와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여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는 의석수 때문에 부결될 게 뻔하다며 탄핵안 발의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는 "부결되면 대법원장한테 자리 유지의 명분만 주는 것이라서 탄핵안 발의는 현시점에서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오전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탄핵을 적극적으로 막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김 대법원장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하고 있다"면서 "탄핵에 필요한 서류나 이런 것은 다 준비해 놨다"고 말했다.

'탄핵 거래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은 대법원을 찾아가 김 대법원장을 면담하고 면전에서 사퇴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청사 출입을 제지하는 대법원 직원들과 언쟁을 벌이고 복도에서 연좌하는 등 대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도읍 의원은 면담 후 기자들에게 "'거짓말하는 대법원장은 자격이 없다, 용단을 내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김 대법원장은 물러날 의사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단장을 맡은 김기현 의원은 "김 대법원장의 마음이 그쪽(사퇴)으로 가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사퇴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진상조사를 계속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 들어갔다. 8일에는 주 원내대표가 나설 예정이다.

당 내부적으로는 탄핵 추진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작지 않다.

조해진 의원은 라디오에서 "정권 측과 보조를 맞춰서 부당한 탄핵을 추구한 한 축으로 역할을 한 것"이라며 "물러나지 않으면 탄핵감"이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소추와 관련해선 "헌법적 범죄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같은 방식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다뤘다면 "노 대통령은 이미 탄핵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헌 판사’  탄핵소추안 헌정사상 처음 국회 통과

‘임성근 탄핵안’  의원 179명 찬성 가결, 헌재로 보내

 

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고 선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현직 판사의 탄핵안이 가결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임 판사의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최종 결정된다.

4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은 재석 288명, 찬성 179표,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 4표로 가결됐다. 찬성 179명은 이번 탄핵소추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 규모(161명)뿐 아니라, 탄핵안 가결 정족수(재적의원 151명 이상)를 넘어선 숫자다. 표결 전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탄핵안 제안설명에서 “판사는 헌법을 위반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고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임료의 전관특혜를 누리다 공직사회로 복귀하는, 그런 잘못된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며 “압도적인 표로 가결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지난 1일 민주당 이탄희, 정의당 류호정, 열린민주당 강민정,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 4개 정당 소속 의원 161명은 임 판사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자유투표에 맡기기로 했지만,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 지도부 전원이 이름을 올려 사실상 당론으로 간주됐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헌법을 명시적으로 위반한 법관에 대해 탄핵소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국회가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법관(임성근)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이던 2015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관련해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을 앞두고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선고 전 판결 내용을 보고해달라”고 말하고 판결문 작성에 개입했다.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재판부는 ‘임 판사의 행위는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임 부장판사는 오는 28일로 임기가 끝나 퇴임한다. 퇴임 전에 헌재 결정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김원철 기자


사법농단 탄핵 본질 흐린 ‘김명수의 거짓말’

임성근쪽 녹취 파일 공개로 탄핵 언급 드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국회에서 법관 탄핵이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임 부장판사 쪽이 4일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전날 임 부장판사의 사표 반려 주장에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던 김 대법원장은 이날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하루 만에 사과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과 임 부장판사의 처신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라는 본질이 ‘처신 공방’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지난해 5월22일 당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담긴 26~38초짜리 녹취 파일 3개를 공개했다. 녹취 파일을 종합하면, 김 대법원장은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 임 부장판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톡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탄핵하자고 (국회가)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말했다. 이어 “탄핵이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일단은 정치적인 것은 또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 (국회가)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며 “(정치권으로부터)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왼쪽),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전날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주장은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듯했다.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이 “김 대법원장은 면담 당시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 논의를 할 수 없게 돼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수리 여부는 대법원장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하자, 대법원은 곧바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녹취록 공개로 사실관계는 대체로 임 부장판사 쪽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정리됐다. 녹취록 공개 뒤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이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녹음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뜻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임성근 부장판사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들에게 깊은 사과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만난 지 9개월 가까이 지나 기억이 희미했고 두 사람 사이에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눠 제대로 기억을 못 했다”고 거듭 해명했다.

김 대법원장이 진실 공방에서 체면을 구겼지만, 당시 사표 수리의 적법성이나 형평성 등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에는 징계위원회에 징계청구된 경우나 검찰·경찰 및 그 밖의 수사기관에서 비위와 관련해 수사 중임을 통보받은 경우 의원면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공소가 제기되는 등의 사정으로 법관직을 유지하는 것이 사법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해친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원면직을 허용할 수도 있다.

임 부장판사의 경우 건강상 이유 등으로 사의를 표했지만 법관징계위원회에서 견책 징계처분을 받고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임 부장판사를 포함해 ‘사법농단’ 핵심 인물들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처분으로 대법원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상황에서, 탄핵 논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대법원장의 사표 수리는 그 자체로 부적절한 대응일 수 있었던 셈이다.

다만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맞서 임 부장판사가 공개 반박에 나섰을 때 보여준 김 대법원장의 안이하고 솔직하지 못한 대처가 화를 키우고 문제의 본질을 희석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 임 부장판사의 상고심을 심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임 부장판사와 만난 것 자체도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판사는 “형사적 책임을 넘어 헌법적 차원에서 임 부장판사 잘못이 사라진 것이 아닌 만큼 사법농단 사건 본질이 희석돼선 안 된다. 이 사건이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면 누구도 법원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윤영 기자


판사 탄핵안 가결되자 “김명수 탄핵” 외친 국민의힘

 

국민의힘 의원들이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성근 법관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반대하는 문구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정족수(151표)를 훌쩍 넘긴 179명의 찬성으로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원들 손에는 ‘졸속탄핵 사법붕괴’ ‘엉터리 탄핵 사법장악’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몇몇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본회의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국민의힘에선 김기현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선 김용민 의원이 연단에 서서 의사진행발언을 했다. 김기현 의원은 “임 부장판사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본다”면서도 임 판사의 1심 판결이 무죄였음을 강조하며 탄핵 반대 뜻을 밝혔다. 반면 김용민 의원은 “1심 판결문 이외에도 수천페이지 수사와 재판 기록이 존재한다”며 “헌법을 부정한 법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타당하냐”고 반문했다.

초유의 법관 탄핵은 두 단계로 이뤄졌다. 본투표에 앞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의 요청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겨 좀 더 논의할 것인지를 묻는 투표가 이뤄졌다. 전주혜 의원은 탄핵소추안의 법사위 회부를 요구하며 “임 판사가 28일 퇴직을 앞둔 상태에서 탄핵소추안을 처리하는 것은 어떤 실익이 있느냐”며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 탄핵을 추진했어야 한다. 탄핵소추 목적이 그야말로 정치적 행위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국회법 130조에 따르면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국회는 본회의 의결로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법사위 회부안은 재석 의원 278명 가운데 찬성 99명, 반대 178명, 기권 1명으로 부결됐다.

이어 탄핵소추안을 대표발의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제안설명에 나서 임 부장판사가 ‘세월호 7시간 재판’에 위법하게 관여했음을 설명하자,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성과 함께 야유를 보냈다.

탄핵소추에 대한 무기명 투표가 시작되자, 본회의장에 마련된 기표소 앞으로 투표를 하려는 의원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안 의결에 반대하면서도 표결에는 참여했다. 본회의 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는 부실 탄핵이고, 법원 겁박이다. 180석으로 우리를 겁주기 위한 탄핵”이라며 “한분도 빠짐없이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노지원 기자


헌재, '임성근 탄핵 소추안' 접수…전원재판부서 심리

 

헌재 도착한 탄핵소추 의결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별관에서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4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접수하고 본격 심리절차를 시작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이날 오후 5시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이탄희 의원 등으로부터 국회가 의결한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받아 사건 접수를 마쳤다. 이에 따라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사건 심리 절차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 헌법소원 사건은 본안 심리에 앞서 적법성 요건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사전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탄핵소추 사건은 바로 전원재판부로 회부된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사건을 검토한 뒤 조만간 변론기일을 잡아 임 부장판사 측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임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탄핵이 될 만한 중대한 헌법, 법률위반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법관 탄핵, 무죄판결 받았으니 못한다?.. "위헌적 주장"

사법농단판사 첫 탄핵 시도에 야권 무죄판결·사법부 독립 훼손반대
헌재는 박근혜 재판 회부도 전 파면유무죄 판단과 탄핵재판 관련 없어

 

임성근 부장판사. 연합뉴스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탄핵이라는 것은 부당하지 않습니까?” ‘사법농단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 부장판사는 지난 19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이렇게 반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을 1일 발의하기로 한 것을 겨냥한 반응이었다. 임 부장판사 탄핵 소추는 헌정사상 세 번째 법관 탄핵소추이면서 국정농단 의혹 판사에 대한 첫 탄핵 소추다. 신광렬 부장판사뿐 아니라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 “판사 길들이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무죄면 탄핵소추는 불가능한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탄핵소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은 탄핵 제도 취지를 왜곡하는 주장이다. 탄핵은 일반적인 사법절차로는 징계하기가 어려운 대통령, 법관 등 고위공무원에 대해 이들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 헌법재판소가 파면이라는 징계절차를 확정하는 제도다. 형사재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만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고, 헌법 제65조 제1항에 명시된 것처럼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에 해당하면 된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을 때에도 유죄판결 유무는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았다. 2016129일 국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20173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박 전 대통령의 유죄판결은커녕,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이뤄졌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쪽은 국회의 탄핵소추가 검찰 공소장, 신문기사를 증거로 이뤄졌다며 반박했으나, 헌재는 탄핵소추 사유는 그 대상 사실을 다른 사실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 사정이 기재되면 충분하다며 이러한 주장을 기각했다. 지금은 법관들의 무죄판결을 들어 탄핵에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주도하면서 법원의 판결이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판단을 주요 근거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바 있다.

법관 탄핵은 사법부 독립성 훼손인가

야당에서는 법관 탄핵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물론 국회가 법관 탄핵을 남용할 경우 사법부 독립이 침해될 수 있다. 하지만 판결문과 대법원 자체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이번 사안은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임 부장판사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행위를 반헌법적이라고 명시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재판장 송인권)는 지난해 2월 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재판개입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직무권한 내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성립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판결을 내리면서도, “재판 관여 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직권남용죄는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성립되는 범죄여서, 애초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는임 부장판사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이지, 재판개입 행위 자체는 헌법상 탄핵의 사유인 헌법 위배 행위라고 본 것이다.

임 부장판사는 2018년 대법원 자체조사에서도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견책이라는 제일 낮은 수준의 처분이 내려져 논란이 됐지만, 사법부 안에서도 임 부장판사의 직무상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인정한 셈이다. 전국 법원 대표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도 201811국회가 사법농단 판사들의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임기만료 전 탄핵 가능할까

다만 임 부장판사가 곧 퇴직하는 만큼 탄핵소추가 되더라도 실제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임 부장판사는 법관 연임을 신청하지 않아 오는 228일 임기만료로 법원을 떠난다. 국회에서 속전속결로 탄핵소추안 발의·가결하더라도 헌재가 임 부장판사 퇴직 전까지 판단을 내놓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임 부장판사가 퇴직해버리면 판사의 파면 여부를 판단하는 게 의미가 없어 헌재가 각하(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탄핵소추안을 받은 헌재가 사안의 중대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집중 심리를 벌여 결론을 내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정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과거 대통령 탄핵소추안처럼 사안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데다,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거치며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도 대부분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신민정 기자

            

 민주당,'사법농단' 임성근 탄핵키로…법관탄핵 신호탄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의혹당 지도부 "자유투표 방침"

 

더불어민주당 이탄희(오른쪽 두번째부터), 열린민주당 강민정, 기본소득당 용혜인,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8'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이 이르면 29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자유표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대표는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은 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임성근 판사에 대한 의원들의 탄핵소추 추진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관 탄핵소추안 발의는 헌정 사상 세 번째다. 대법관이 아닌 일선 법관에 대해서는 최초다.

이탄희 의원은 이미 국회의원 111명으로부터 탄핵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전달받았고, 이 가운데 100명이 민주당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소추안 발의 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1 이상)를 넘긴 수치다.

탄핵안이 발의되면 본회의에 보고된 뒤 법사위에 회부하거나 법사위 회부 없이 2472시간 이내에 표결 처리를 해야 한다.

탄핵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가 174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헌정 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있다.

탄핵안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를 심판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5년간 변호사 등록과 공직 취임이 불가능해지고, 퇴직급여도 일부 제한된다.

이탄희 의원은 그간 2월 임시국회에서 임 부장판사와 이동근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표결하자고 주장해 왔다.

임 부장판사와 이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기자의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다. 다만 당지도부가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이탄희 의원은 당 지도부 제안을 받아들여 임 부장판사에 대해서만 탄핵을 추진하는데 동의했다.

임 부장판사의 경우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으나 재판부가 판결에서 여러 차례 '헌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한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의원들의 의견이나 법적 정의, 정무적 판단을 종합한 결과"라며 "당론은 아니다. 의원들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설명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개별 발의를 허용하고 국회법 절차에 따라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헌법어긴 판사, 탄핵 않는 건 국회임무 방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8일 소속 의원들의 사법농단 판사 탄핵 발의를 허용한 것은 민주당 내부의 강경한 기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이탄희 의원이 민주당·정의당·열린민주당 등 국회의원 107명의 의견을 모아 사법농단에 관여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당 지도부는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도부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헌법을 어긴 판사는 헌법으로 단죄해야 한다며 설득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분기점은 27일 열린 의원총회였다. 이날은 2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어 법관 탄핵 토론엔 많은 시간이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의원 10명이 나서 찬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에 지도부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의총을 한차례 더 열기로 했다.

두번째 의총이 마련된 28일 아침 지도부는 이탄희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어 법관 탄핵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지도부는 이동근 부장판사는 상대적으로 잘못이 경미해 탄핵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는 당내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달했고, 이탄희 의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2015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관련해 세월호 7시간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을 앞두고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선고 전 판결 내용을 보고해달라고 말하고 판결문 작성에 개입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임 부장판사의 재판 기록을 보면, ‘헌법을 위배했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와 협의를 거친 뒤 이탄희 의원은 이날 오후 4시 열린 의총에서 임 판사만 탄핵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의총 분위기는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이 다수였다고 한다. 의총에 참석한 한 의원은 “8 2 정도로 탄핵 찬성 여론이 많았다고 전했다. 홍영표·정청래·송영길 등 당내 중진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탄핵을 주장했다. 또다른 의원은 탄핵에 반대한다고 말한 의원도 사유는 인정되지만 상황상 무리라는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반대라고 해도 적극적이진 않았던 셈이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들과 만나 법원은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헌법을 위반한 판사를 징계하지 않았다헌법 위반 탄핵권은 국회가 갖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가 탄핵을 하지 않는 것은 임무 방기라고 많은 의원들이 의견을 냈다. 당은 그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당론은 아니다라며 자유투표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신중한 자세였던 지도부가 발의를 허용한 것 자체가 사실상 당론 채택의 의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의원은 “22일 탄핵안 발의 제안문만 해도 107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당 지도부가 동의했으니 그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이다. 탄핵안 발의 명단 자체가 의결정족수를 넘길 수도 있다고 했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4석이며, 정의당(6열린민주당(3기본소득당(1)은 이미 탄핵 찬성 뜻을 밝힌 상태다.

국회법은 탄핵소추가 발의되면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보고하고,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도록 되어 있다. 이탄희 의원이 29일 탄핵안을 발의할 경우 새달 2일 열리는 본회의에 보고되고 3일이나 4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발의에는 100, 가결에는 151명이 필요하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김원철 기자

 

첫 법관 탄핵소추 가시권과거 대법관 탄핵안 두차례 무산

 

더불어민주당이 28'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이는 첫 사례가 된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발의할 수 있고 재적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된다.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가 174석이어서 표결에 부치면 부결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앞서 대법관을 대상으로 탄핵소추안이 두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무산된 바 있다.

첫 사례는 고() 유태흥 전 대법원장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불법시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등 불공정 인사를 했다는 의혹이다.

198510월 국회에 올라온 유 전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재석의원 247명 중 찬성 95, 반대 146, 기권 5, 무효 1표로 부결됐다.

두 번째 사례는 신형철 전 대법관이다.

12년 전인 2009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관련 재판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민주당 의원 105명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표결 반대로 72시간 이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탄핵결정은 헌법재판소의 몫이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임 부장판사는 공무원연금법 제65조에 따라 5년간 변호사 등록과 공직 취임이 불가능하다.

연금 수령도 일반 퇴임 퇴직 수당의 절반으로 제한된다.

 

‘사법농단 탄핵’ 대상 판사들, 징계안받고 복귀 혹은 변호사 개업

정의당 꼽은 탄핵 대상 10명 중 5명은 징계 없이 재판 현업 복귀

 

사법농단 피해자단체 연대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6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임성근·이동근 등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소추에 나서기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재판 거래와 판사 사찰 사법농단의 전모가 3년 전 드러났지만,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 법관들은 재판 현장으로 돌아왔거나 변호사로 개업했다.

20192월 정의당이 추린 법관 탄핵소추 대상자 10명을 기준으로 보면 이 중 4(이민걸·이규진·방창현·임성근)은 사법농단 관련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6명은 형사처벌을 피했다. 그중 권순일 전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에 공모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 지연에 관여한 내용 등이 적시됐지만, 징계 없이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등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연루로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2019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해 법관 자격을 잃었다. 그와 함께 기소된 이민걸 부장판사는 연임 신청을 하지 않아 다음달 퇴임한다. 세월호 관련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도 연임 신청을 하지 않아 다음달 퇴임이 예정돼 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 시절 상고법원 BH(청와대) 대응전략문건 등을 작성한 시진국 전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현업으로 돌아와 재판을 하고 있는 판사들도 다수다.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 피고인 상태인 방창현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대전지법으로 발령났다. 김민수 부장판사(창원지법 마산지원) 박상언 부장판사(창원지법) 정다주 부장판사(의정부지법)20191월 사법연구 발령이 해제돼 다시 재판 업무를 보고 있다. 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 시절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기사를 대필해 <법률신문>에 제공한 문성호 판사도 현재 대구지법에 있다.

지난 22일 국회의원 107명은 재판 개입으로 위헌적 행위가 인정된 임성근 부장판사와 그의 지시대로 판결문 등을 수정한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탄핵하자고 뜻을 모았다. 사의를 밝힌 이 부장판사의 사직 시점은 28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7일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법관 탄핵 추진 여부를 다뤘으나 당 지도부는 “2월 민생국회에 대한 고민이 많은 만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민주당은 28일 의총에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장예지 이지혜 기자

   

 의원 107명 “사법농단 판사, 퇴직 전 탄핵하자”   

     ‘세월호 7시간관련 재판 개입 임성근 · 이동근 판사 사직 앞둬

      아무 책임 안지고 전관될 상황탄핵소추 발의 필요인원 넘어

                 

이탄희(더불어민주당류호정(정의당강민정(열린민주당용혜인(기본소득당) 107명의 국회의원이 사법농단 판사 탄핵을 제안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 필요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을 넘는 숫자여서 사법농단 판사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이들은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도 인정한 헌법위반자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의 의무라며 국회의 직무유기 상황을 중단하고, 헌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자기 직무를 다하는 국회의 모습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107명의 의원이 탄핵을 촉구한 법관은 곧 사직이 예정돼 있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임 부장판사는 2014~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재판장이었던 이 부장판사에게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 행적 관련 기사가 허위라는 점이 입증된 것을 밝히라고 하는 등 재판 진행에 간섭하고, 본인이 판결 선고문을 미리 받아 직접 수정본을 만들기도 했다. 선고 당일 가토 전 지국장을 선처해달라는 외교부 뜻도 알리라고 했다. 이런 지시대로 이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수정하고, 선고 과정에서 외교부가 선처를 탄원한다는 내용을 실제로 공개한 사실이 직권남용 재판에서 인정됐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형사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피고인의 요청은 그 자체로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을 유도하는 재판 관여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판시했다.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탄핵 요건이 갖춰진 것이다. 그러나 임 부장판사는 판사 연임심사를 포기하면서 2월 말 임기 만료로 사직하고, 이 부장판사가 낸 사직서도 오는 28일 수리될 예정이다. 사법농단이 드러나 법정에 섰지만 무죄라는 면죄부를 받으면 법복을 벗은 뒤에도 아무런 제한 없이 변호사 개업이 가능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위헌적 행위를 확인한 임성근 부장판사 등을 탄핵해 반헌법적 재판 개입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게 107명 의원들의 뜻이다.

2018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재판 개입은 탄핵소추 절차까지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 뜻을 모았고 20대 국회에서도 이를 논의했지만 당시 민주당과 정의당 등 의석만으로 탄핵소추안 의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탄핵소추안 단독 의결도 가능한 과반 의석을 얻었지만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판사 탄핵을 주도하고 있는 이탄희 의원은 시간이 촉박하지만 국회가 헌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자기 직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예지 정환봉 기자

 

이탄희 제안처럼 민주당은 사법농단 법관 탄핵에 나설까?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민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107명 의원의 의견을 모아 사법농단연루 판사 2명의 탄핵을 공개 제안하면서 실제로 법관 탄핵소추안 발의와 탄핵 의결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이번 제안자들이 탄핵안 발의 정족수(재적의원 100명 이상)를 넘는 수치인데다, 174석을 가진 여당 의석만으로도 탄핵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찬성)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 지도부 중심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해결에 집중할 시기에 전례 없는 법관 탄핵 시도가 사법부 독립성 저해라는 논란을 낳을 우려 등이 있어 탄핵에 신중한 분위기다. 민주당은 일단 다음주 의원총회에서 법관 탄핵과 관련해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이날 탄핵 제안에 이름을 올린 107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은 96명이다. 민주당 전체 의원 174명 중 절반이 넘는 규모가 탄핵의 당위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이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제안하자 의원들이 취지에 동의하며 동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도 법관 탄핵 시도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해 탄핵안 발의 대신 탄핵 제안의 형태를 취했다. 민주당 전체의 탄핵 추진 의지가 모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안부터 발의하면 안 된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 내부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국면이 잦아든 상황에서 또다시 여권과 사법부 대립이 부각되는 데 대한 우려 등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자칫하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동안 추미애-윤석열 갈등등 법조 이슈로 논란이 일었는데, 또다시 법조 논란을 이어가기 부담스러운 면도 존재한다“2월 임시국회 때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지도부 소속 다른 의원은 법관 탄핵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다. 하려면 (정권 임기 중반부인) 작년에 해야 했다당위성은 있지만 지금 사법농단 문제를 꺼내 법관 탄핵을 요구할 시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탄핵 대상 법관 2명이 각각 1월 말과 2월 말에 퇴직하는 상황에서 탄핵을 무리 없이 추진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씨의 실형 판결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2개월 정직처분 집행정지 결정 등을 두고 법원과 몇 차례 대립각을 세운 이후 추진되는 법관탄핵이 정치적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힘 등이 법관 탄핵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민주당이 법원과 대립한 사건이 있었는데 법관 탄핵을 꺼내면 감정적 대응으로 비칠 수도 있다. 당에 부담만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의총에서 의원들 다수가 법관 탄핵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면 상황이 달라질 여지는 있다.

국회에서 법관 탄핵안이 의결되면 해당 판사에 대한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한다. 정환봉 서영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