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지사 26명 "아시아계 향한 폭력·증오 규탄"

아시아계 전직 고위 당국자 60명도 규탄 성명

 

무릎 꿇고 연쇄 총격 희생자 추모하는 미 애틀랜타 시민: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마사지숍 '골드스파' 앞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 앞에서 18일 타라 윈스턴이란 이름의 여성이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애틀랜타 일대에서는 지난 16일 연쇄 총격 사건이 발생해 아시아계 여성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애틀랜타 UPI=연합뉴스)

 

미국 주지사 26명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주 주지사와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 등 26명의 주지사는 26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그야말로 비미국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는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대한 인종주의와 폭력, 증오를 규탄하며 (그들을) 보호하고 일으키며 지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계 아내를 둔 호건 주지사와 베이커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이고 나머지는 민주당 소속 주지사다.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전직 아시아계 당국자들 60여명도 공동 성명을 통해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 중단을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교통장관을 지낸 일레인 차오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을 지낸 개리 로크,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에서 교통장관을 지낸 노먼 미네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수백년 동안 아시아계는 이 나라의 활력과 성공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우리는 아직도 외국인이나 덜 미국적으로 여겨지고 타자로 대우받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한인 여성 4명 등 아시아계 6명을 포함해 8명이 숨진 애틀랜타 총격을 계기로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말 맞아 미 전역서 항의 시위 …샌드라 오도 참여

 

20일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주 의회 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이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를 중단하라며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증오는 바이러스다.”

백인 청년이 한인 4명 등 아시아계 여성 6명을 사망케 한 총격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주말인 20일 미국 곳곳에서 열렸다. 미 경찰이 ‘증오범죄’ 가능성을 낮게 보는 가운데, 시위 참가자들은 이번 사건이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명백하다며, 증오를 멈추라고 항의했다.

<시엔엔>(CNN)과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총격 사건이 발생한 애틀랜타를 비롯해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시애틀 등 미국 곳곳에서 각각 수백 명이 모여 이번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계와 태평양계 등 증오범죄에 노출된 이들과 증오범죄에 반대하는 백인, 흑인 등이 두루 모였다.

이날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내의 주 의회 의사당 옆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는 한인을 포함한 시민과 활동가 등 수백 명이 모였다. 이들은 우드러프 공원에서 주 의사당으로 행진하면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아시아인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한성희씨는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세상과 사람들이 분명히 알기를 원한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20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증오범죄 반대 집회에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CBS 유튜브 갈무리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고 <시비에스>(CBS) 방송이 전했다. 샌드라 오는 2분여 동안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나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두려움과 분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도 중국계 등 수백여 명이 모여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이곳은 아시아계에 대한 폭행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일본과 캄보디아 출신 등 여러 아시아계 시민들이 모여 증오범죄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애틀랜타를 방문해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을 규탄했다. 그는 에모리 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걱정하면서 거리를 걷는다. 그들은 공격당하고 비난당하고 희생양이 되고 괴롭힘을 당했다. 언어적·물리적 공격을 당하고 살해당했다”며 “이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아시아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도 연설에서 “대통령과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폭력에, 증오 범죄에, 차별에 맞서 언제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아시아·태평양계(AAPI) 단체 180여 곳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폭력 문제 대처를 위해 3억달러(3390억원) 규모의 예산을 요청했다. 백악관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릴 것도 촉구했다. 최현준 기자

 

“할머니는 전사” “헌신하는 싱글맘”…한인 여성 4명 애끓는 사연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햄브라에서 열린 애틀랜타 총격 사건 항의 촛불시위에서 한 여성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앨햄브라/AP 연합뉴스

 

미국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한인 여성 4명의 사연이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현지 매체와 소셜 기부 누리집 ‘고펀드미’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에 온 개척자였고,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한국의 엄마였다.

1980년대 미국에 건너간 김순자(69)씨는 슬하에 남매를 두고, 손주 3명을 뒀다. 김씨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 2~3개의 궂은일을 동시에 하며 가족을 돌봤다. 그의 첫 직업은 텍사스 군부대에서 접시를 닦는 일이었고, 이후 편의점과 부동산 사무소 등에서 일했다. 밤에는 가욋일로 사무실 청소를 하며 돈을 벌곤 했다.

그의 손녀는 ‘고펀드미’에 올린 소개 글에서 “할머니는 우리 가족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며 “나의 할머니는 전사였다”고 썼다. 김씨의 또 다른 가족은 “그녀는 항상 가족이 최우선이었다”며 “가족들에게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고 늘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씨는 요리와 후원 등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1998년 한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꾸려진 ‘글로벌어린이재단’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워싱턴 디시(DC)에서 노숙자를 돕는 활동에 참여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 가족은 말했다.

현정 그랜트씨는 4명의 한인 중 유일한 한국 국적자였다. 아들 랜디 박(23)은 최근 현지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한 싱글맘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엄마가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가 걱정돼 다툰 적도 있다”며 “엄마는 (두 아들을 위해) 이곳 미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머니에게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말을 들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의 문제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와 매우 가까웠다”며 “어머니는 춤과 파티를 사랑하고,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EDM 뮤지션) 티에스토를 사랑했다. 그녀는 10대 같았다”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회상했다.

박순정(74)씨는 이번 사건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 생활을 뉴욕에서 보냈고, 친구와 가까이 살기 위해 최근 애틀랜타로 이사 왔다. 스파 관리를 도우면서 직원들을 위해 점심과 저녁을 만들었다. 그의 사위인 스콧 리는 “어머니는 일을 즐겼다. 돈 때문이 아니라 약간의 소일거리를 원했다”며 “어머니는 매우 건강했고, 모든 사람이 100살 넘게 살 거라고 했다”고 말했다.

유영애(63)씨는 1980년대 미군 남편을 만나 한국에서 조지아로 이민 왔다. 코로나19 사태 때 실직한 뒤 한국 음식을 만들거나 영화를 보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들인 로버트 피터슨은 “엄마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그는 한 인간이었고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다른 희생자들처럼 엄마도 그런 일(총격)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지난해 백인경찰 과잉 진압으로 플로이드 숨진 뒤 전개된

‘#BlackLives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비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아시아인 혐오를 멈추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StopAsianHate’(해시태그 아시아인 혐오를 멈추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아시아인종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는 목소리를 내는 해시태그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지난 16일 연쇄 총격으로 한국인 4명 등 8명이 숨진 지 3일 만인 19일 인스타그램에는 #StopAsianHate가 달린 게시물이 10만건을 훌쩍 넘었다.

 

이번 해시태그 운동은 지난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뒤 온라인상에서 시작된 ‘#BlackLives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해시태그 운동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강조했던 해시태그 운동이 미전역 흑인 인권운동으로 발전한 전례를 따를지 주목된다.

 

미국에서 사는 아시아계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고 “차별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면서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증오는 바이러스다(Hate is a virus)”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을 공유한 응우옌은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일로 정말 마음이 아프고, 부모님의 안전이 걱정된다. 공장, 미장원, 네일아트가게, 식당 노동자로 일하는 우리 역시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미국인이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StopAsianHate)”고 썼다. 베트남계 미국인인 끄엉은 “모든 친척을 베트남에 두고 오직 자녀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아는 사람 한명 없는 미국으로 왔던 어머니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역시 해시태그를 달았다.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배우 샌드라 오가 아시아계 미국인을 돕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번 해시태그 운동에는 영화배우 등 미국 주류사회의 유명인사들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배우인 샌드라 오는 “많은 사람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범죄를 끝내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어온다”며 아시아계 미국인의 안전과 인권 향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후원방법을 소개했다. 미나리의 주연배우인 스티브 연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을 위한 정신건강지원센터’의 누리집 주소를 공유했다. 아시아·태평양계 이민자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인 AAPI와 함께 연대하고 있는 이 센터는 인종차별의 경험이나 혐오범죄로 인한 트라우마를 앓는 이민자들에게 상담서비스와 여러 가지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는 2천1백만명(2018년 인구조사 기준)에 이르지만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에 불과하다. 이처럼 미국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급증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 및 혐오범죄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아시아계 주민을 겨냥한 증오 관련 사건은 4천여건에 달했다. 이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혐오범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숫자다. 미국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19년 한 해 동안 7천3백건가량의 혐오범죄가 일어났다. 이재호 기자

 

애틀랜타 한인 피해자 아들 “어머니는 두 아들에 헌신한 싱글맘”

범행동기 ‘성 중독’이라는 경찰 발표엔 “헛소리(Bullshit)”

현정 그랜트씨 큰 아들, ‘데일리 비스트’와 인터뷰서 언급

 

18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아시아 여성을 보호하라”는 손팻말을 든 채 연대 행진을 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FP 연합뉴스

 

“어머니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한 싱글맘이었다.”

 

지난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8명의 사망자를 낸 연쇄 총격 사건의 한인 피해자 현정 그랜트씨의 아들 랜디 박(23)은 18일 현지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인 사망자 4명 중 현정 그랜트씨를 포함해 2명의 이름이 확인된 가운데, 유족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랜디 박은 “어머니가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가 걱정돼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는 (두 아들을 위해) 이곳 미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의 범행 동기를 “성 중독”으로 설명한 전날 경찰 발표에 대해서는 잠시 말을 고른 뒤 “헛소리(That’s bullshit)”라고 선을 그었다. 애틀랜타 경찰도 걷잡을 수 없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하루 만인 이날 롱을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태도를 바꿨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범죄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월19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사건이 3795건 접수됐다. 박씨도 이런 분위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나에게 닥칠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이제서야 “매우 다른 렌즈를 통해 그(인종 증오범죄) 문제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머니로부터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말을 들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의 문제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와 매우 가까웠다”며 “어머니는 춤과 파티를 사랑하고,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EDM 뮤지션) 티에스토를 사랑했다. 그녀는 10대 같았다”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회상했다.

 

16일 저녁, 박씨는 조지아주 덜루스 집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골드 스파’ 생존자의 딸이 전화를 해줘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았다. 경찰이 사건 현장 접근을 막고 있어서 아직 현장에도 가보지 못했다. 20대 초반인 그에게 이 상황은 너무도 “초현실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돌봐야 할 남동생이 있다”며 “극도로 슬프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슬퍼하고 싶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엔 자신과 동생 둘만 남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미국에 들어올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그는 온라인 모금사이트 ‘고펀드미'에 도움을 청했다. 박씨가 요청을 올린지 약 8시간만에 8300여명이 응답했고, 약 34만9천여달러(약 3억9500만원)가 모금됐다. 전정윤 기자

 

바이든 “애틀랜타 희생자 추모 조기, 모든 공공건물에 걸어라”

22일까지 국내외 관공서·군 게양…19일엔 애틀랜타 방문, 대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사망자 8명을 추모하는 조기가 18일 백악관에 게양돼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한 8명이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에서 총격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18일 연방 관공서와 군에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포고문을 발표해 “애틀랜타 대도시권 지역에서 저질러진 무분별한 폭력 행위의 희생자들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조기 게양을 명령한다”고 밝혔다. 미 본토의 백악관과 모든 공공건물 및 부지, 군 초소와 기지, 군사 시설을 비롯해 해외의 미 대사관과 공사관, 영사관 및 해군 함정, 기타 시설 등이 대상이다. 조기 게양 기간은 오는 22일 일몰까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에는 트위터에 자신과 부인이 애틀랜타 총격으로 충격받은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아직 범행 동기를 모르지만,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가 오늘 밤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커뮤니티를 향한 최근의 공격은 미국답지 않다. 멈춰야 한다”고 적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19일 애틀랜타를 방문해 아시아계 미국인 지도자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백악관의 한 관리가 언론에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 그 성과를 알리고 의지를 다지기 위해 애틀랜타 방문을 기존에 잡아뒀다. 그러다 지난 16일 애틀랜타 일대의 마사지 업소 3곳에서 총격이 발생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자 간담회 일정을 추가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애틀랜타에서 주정부 의원, 아시아계 커뮤니티 지도자들과 만나 아시아계 증오범죄에 관해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애틀랜타 총격범 ‘섹스 중독’ 무게 경찰에 “증오범죄 가리려는 핑계” 반발

   경찰  “용의자, 인종적 동기 아니라고 주장”
   아시아계·정치권 “성 중독으로 변명 말아야”

 

17일 미국 워싱턴 DC 차이나타운에서 전날 벌어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아시아 마사지 업소 연쇄 총격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아시안 혐오를 멈추라”는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지난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아시아 마시지 업소 연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용의자의 주요 범행 동기로 ‘성 중독’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 정치권과 아시아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사건을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로 보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조지아주와 애틀랜타 당국은 17일 브리핑에서 용의자인 로버트 애런 롱(21·체포)의 범행을 증오범죄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체로키 카운티의 보안관 제이 베이커는 “롱은 인종적 동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며 “그는 스스로 성 중독이라고 여기는 문제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롱은 이들 장소(마사지 업소)가 자신이 그곳에 가도록 만들고, 그래서 없애버리고 싶은 유혹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경찰은 증오범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그러나 초동 발표에서 범행이 성 충동에서 비롯됐다는 용의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공개해 비판을 불렀다. 이번 사건 사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안 여성이고, 범행 대상이 된 마사지 업소들은 주로 아시안 여성들을 고용하고 있다.

경찰의 발표 이후 로스앤젤레스(LA) 한인회가 “명백한 증오범죄”라는 성명을 내는 등 아시아 커뮤니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애틀랜타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연경씨는 ‘골드 스파’에서 총격이 벌어진 직후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다. 김씨는 <한겨레>에 “현장에서 직원들로부터 ‘범인이 아시안을 다 죽이겠다며 총을 쏘고 있으니 빨리 가게 문을 닫으라’는 말을 들었고 증오범죄가 분명한데, 경찰이 사건을 다른 쪽으로 가져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스턴에서 교사로 일하는 이금주씨는 “당국이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회피하려 하면 아시아계 미국인과 대중의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직시하고 소수자 중 소수자인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게 하기 위한 법 제정과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미 정치권에서도 아시아계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법 제정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국계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의회 발언에서 “우리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태미 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의원도 트위터에 “용의자는 아시아 여성들에게 집착해 그들을 쐈다”며 “증오범죄로 취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타이완계 테드 루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가능성 있는 하나의 동기가 다른 동기들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며 “음식 중독(집착)을 가진 살인자가 한국 음식점 종업원들만 쏜다고 가정해보라. 그건 거의 틀림없이 인종적 동기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계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은 증오범죄에 대응하는 법 제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에서 롱의 “섹스 중독”을 언급한 보안관 베이커 또한 인종주의 논란에 휘말렸다. 베이커가 지난해 3월 페이스북에 코로나 맥주 로고 모양으로 “COVID19”(코로나19)라고 쓰고, “차이-나에서 수입된 바이러스”라고 적은 티셔츠들의 사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백인인 롱에 대한 수사에 이같은 편향성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베이커는 특히 브리핑에서 “어제는 롱에게 아주 나쁜 날이었고 이게 그가 한 일”이라고 말해 이번 참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비판도 불렀다.

<시카고 트리뷴> 칼럼니스트 렉스 훕케는 ‘애틀랜타 총격 용의자의 나쁜 날과 백인 범죄 가리기’라는 칼럼에서 “백인인 베이커가 롱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고 일갈했다. 이 칼럼은 “성중독이라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와 여성혐오가 얼마나 깊게 뒤얽혀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날려버리는 쓸데없는 표현”이라며 “특히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의 폭력이 있을 때마다 여성혐오나 백인 우월주의, 극우 과격주의라는 본질을 흐리기 위해 계속 반복돼온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나는 지금으로서 살해범의 동기에 관해 어떤 것도 연결짓지 않겠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롱은 이날 8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로스앤젤레스/ 이철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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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 대변인 제이 베이커[AP/Atlanta Journal-Constitution=연합뉴스]

 

한인 여성 4명 등 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미국 애틀랜타 총격사건 용의자에 대해 현지 경찰이 성중독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에게는 정말 나쁜 날"이었다고 말해 미국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경찰은 자신의 SNS에 과거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편견이 담긴 티셔츠 사진을 올리는 등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는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의 제이 베이커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에 관해 "그는 완전히 지쳤고 일종의 막다른 지경에 있다"며 "(총격을 저지른) 어제는 그에게 정말 나쁜 날(a really bad day)이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여성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한 용의자 롱이 겪은 하루가 "나쁜 날"이었다고 경찰이 덤덤하게 말하는 동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확산했고, 아시아계 이민자사회의 집중적인 분노를 사고 있다.

그가 말한 '나쁜 날'은 장난꾸러기 아이가 말썽을 피웠을 때 내뱉는 질책과 같은 어감이 있어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범인에게 온정적이거나 범행을 두둔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베이커 대변인이 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티셔츠 이미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 제이 베이커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티셔츠 사진[트위터 캡처]

AP통신과 버즈피드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베이커 대변인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최근까지 명백한 인종차별 표현이 쓰인 티셔츠를 판촉하는 내용의 사진을 공유했다.

이 셔츠에는 '챠이나'(CHY-NA)로부터 수입된 바이러스'라는 글이 새겨졌고, 맥주 브랜드 '코로나'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코비드19' 문구가 인쇄됐다. 베이커는 지난해 4월 소셜미디어에 인종차별 티셔츠 사진을 올리고 '내 셔츠를 사랑한다'는 글을 함께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페이스북 계정은 그러나 17일 밤 갑자기 삭제됐다. AP통신은 베이커로부터 해명을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아시아계 미국인들로부터 수사당국이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다루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 와중에 이런 내용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 반대운동 단체인 CAA의 빈센트 판 공동대표는 이에 대해 "이 포스트는 충격적이고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그는 AP통신 인터뷰에서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들과 더해져 지역인들에게 우리가 겪은 고통과 아픔, 감정들이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 역시 증오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다름 아닌 "인종차별주의자"라며 베이커의 사퇴를 촉구했다.

누리꾼들은 경찰이 증오범죄 용의자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그저 "그에겐 나쁜 날"이라고 말했고, 성중독으로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백인 용의자에 대한 특혜", "희생자에 대한 또 다른 가해"라는 비난이 줄을 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확산한 경찰 브리핑 영상[트위터 캡처]

캘리포니아주 지역방송 KESQ의 앵커 앤절라 첸은 트위터를 통해 "경찰이 총격범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한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무의미한 총격으로 잃었다고 상상해보라"고 질타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시카고트리뷴은 '나쁜 날과 백인 범죄의 눈가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경찰의 초동수사 결과 발표를 비판했다.

칼럼은 제이 베이커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전날 발생한 총격사건을 설명하며 "용의자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네티즌은 "용의자는 아시아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며 "용의자가 성중독을 앓고 있고, 나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심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한 누리꾼은 "누군가에게 '정말 안 좋은 날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갓난아기가 버릇없이 굴 때나 하는 말"이라고 비난했고,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8명이 사망했는데 경찰은 총격범이 어떻게 나쁜 하루를 보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총기 반대 단체인 '맘즈 디맨드 액션' 설립자 섀넌 와츠는 "경찰이 총기 난사 사건을 이상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TV 드라마 스타트렉 시리즈에 출연한 일본계 미국 원로배우 조지 타케이는 "증오범죄라고 불러야 한다"며 "용의자를 정신병을 앓는 살인자라고 생각하게끔 한다면 상황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위터 사용자 '토머스 그림'은 "경찰은 총격이 인종적 동기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증오범죄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지적했고, 아이디 '지-맨'은 "애틀랜타 총격은 분명히 증오범죄다. 말장난하지 말자"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애틀랜타 총격범 행적 보니, 종교·성중독·인종차별 ‘뒤범벅’

 

17일 미 애틀랜타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쇄총격범 로버트 애런 롱의 사진과 보도자료가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연쇄살인범 로버트 에런 롱(21)의 행적에서 눈에 띄는 것은 종교 활동과 성 중독, 인종 차별적 언행이 한 데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미 <워싱턴 포스트> 등은 롱이 조지아주 밀턴의 크랩애플 퍼스트 침례교회를 다녔다고 전했다. 롱은 주일 오전과 저녁, 수요일 저녁, 선교 여행 등에 참여하는 등 독실한 신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회 청소년부를 담당한 브렛 코트럴 목사는 “롱이 애틀랜타 교외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10대였다”며 “충격적이고 망연자실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를 보면, 교회 페이스북에 올라온 2018년 동영상에서 롱은 “여덟 살 때 기독교인이 된다고 생각했고 그때 세례를 받았다”며 “주일학교 친구들이 많이들 그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 행위에 대한 충동과 강박을 과도하게 느끼는 성 중독 치료를 받았다. 한 재활원에서 롱과 함께 방을 썼다는 익명의 한 남성은 롱이 자신의 중독 질환에 대해 말을 아꼈고 시설을 떠날 때는 상태가 좋아진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롱과 2019~2020년 재활시설에서 함께 생활한 남성 타일러 베일리스는 롱이 시설에 있을 때 “병이 다시 도졌다. 성행위를 하러 마사지 가게에 갔다”고 자신에게 털어놨다고 <시엔엔>(CNN)에 전했다.

롱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동양인에 대한 혐오의 시선도 드러냈다. 그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보면 “중국이 코로나19 은폐에 관여했다. 그들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창조됐는지 알고 있고 50만 미국인을 죽인 것은 21세기 세계 지배를 위한 계획 중 일부일 뿐”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모든 미국인은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우리 시대 최대 악”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애틀랜타 지역신문인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JC)은 롱의 부모가 그의 행적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롱의 부모는 사건 현장 뉴스 속 인물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린 뒤, 롱이 운전하는 현대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투싼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추적기가 설치돼 있다는 점을 제보했다. 최현준 기자

 

"증오 멈춰라"…애틀랜타 총격에 미 각계각층 애도·분노

    바이든· 해리스…오바마 "반 아시안 폭력 우려"

    흑인인권단체, 연예 · 스포츠계서도 잇단 성명

 

미 애틀랜타 총격사건 현장에 놓인 조화 [AP=연합뉴스]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의 희생자를 낸 17일 미국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각계각층에서 애도와 함께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동기가 무엇이든지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를 향해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서 있고, 이 사건이 모든 사람을 얼마나 놀라게 하고 충격에 빠뜨렸는지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아시아계와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고 밝혔다.

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번 총격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일 직면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더욱 키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잔인한 행위"라고 규탄하고 "온 나라가 함께 '아시아인 증오를 멈추라'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트위터 캡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를 규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총격범의 범행 동기가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희생자들의 신원은 반드시 멈춰야 하는 반(反)아시안 폭력의 우려스러운 증가를 부각해준다"고 밝혔다.

그는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과 맞서 싸우는 동안 우리는 미국에서 더 오래 유행병처럼 번졌던 총기 폭력을 계속 무시해왔다"며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애틀랜타의 끔찍한 총격으로 사망하고 다친 분들의 가족에게 위로를 보낸다"며 "지난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겨냥한 폭력의 증가는 더욱 커지는 위험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딸인 버니스 킹 목사는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라며 "전 세계 가족의 일원인 아시아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연대의 뜻을 표했다.

미국의 50개 흑인 커뮤니티 연합 단체인 '흑인 삶을 위한 운동'(M4BL)도 "우리는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시아 이민자들의 삶, 그들의 기여를 약화하려는 해롭고 부정확한 이야기들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배우, 스포츠 선수들의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계 배우 겸 코미디언인 마거릿 조는 "화가 난다. 이건 테러리즘이다. 증오범죄다. 우리를 살해하는 것을 멈춰라"라고 호소했다.

역시 한국계 배우인 대니얼 대 김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인종이 '당신이 마음에 증오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당신 역시 문제의 일부'라는 단순한 사실보다 중요하지 않다"며 "도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가하게 앉아있는 이들이여, 당신들의 침묵 역시 공모다"라고 말했다. 

 한국계 미 배우 대니얼 대 김

미국프로농구(NBA) 하부리그인 G리그에서 뛰고 있는 대만계 농구 선수 제러미 린은 트위터에 "나의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에게, 당신은 사랑받고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우리는 함께 일어서 변화를 위해 싸우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희망을 잃을 수 없다!"고 적었다.

린은 지난달 27일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경기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합뉴스

 

바이든, 애틀랜타 총격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걱정 알아”

범행 동기에는 신중한 태도  “법무부 · FBI 수사 결과 기다리는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백악관에서 미홀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화상으로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인 여성 4명 등 8명의 사망자를 낸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사건과 관련해 17일(현지시각)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홀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화상 회담을 하기 전 기자들에게,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과 크리스터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부터 이 사건에 대해 보고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발생한 사건에 대해 밤사이에 보고를 받았다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잔혹행위에 관해 말해왔다”며 “이것은 매우, 매우 힘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해소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지난 11일 코로나19 관련 연설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나는 지금으로서 살해범의 동기에 관해 어떤 것도 연결짓지 않겠다”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연방수사국과 법무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사가 끝나면 할 말이 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여사도 이날 뉴햄프셔주에서 한 연설에서 이번 총격 희생자 가족들에 위로를 표하고 모든 미국인들이 함께 기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아직 범행 동기에 대해 분명하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우리의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에게 우리가 당신들 편에 서있고 이 사건이 얼마나 모든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충격받고 분노하게 하는지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아시아계 미국인 형제, 자매들에 대한 증오 범죄가 늘고 있다”는 점을 함께 언급하고, “우리는 그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 누구도 어떤 형태의 증오에 직면할 때 침묵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수사 당국은 이날 전날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 로버트 애런 롱(21)이 성중독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번 사건이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전날 롱은 조지아주 일대 3곳의 마사지 업소에 총격을 가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한 8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롱은 17일 8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총격 용의자 성중독 가능성…증오범죄 판단 아직 일러”

 애틀랜타 수사당국 “사망자들 계획되지 않은 표적일 수도”

 

 1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민이 전날 총격사건이 벌어졌던 한인 마사지 업소 골드스파 계단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을 바치고 있다. 애틀랜타/AFP 연합뉴스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한 8명의 사망자를 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 연쇄 총격 사건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에 불안감이 커져 가는 가운데,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아시안 증오 범죄로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조지아주와 애틀랜타 관리들은 체포된 용의자 로버트 애런 롱(21)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은 인종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17일(현지시각) 밝혔다. 당국 관리는 “지금까지 보여지는 것은 (인종주의적 동기가) 아닐 수 있다. (숨진 아시안 여성들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롱은 이런 장소들(마사지 업소)을 과거에 자주 드나들었다”며 용의자가 “성중독”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 관리들은 그러나 롱이 이번 범행을 저지른 ‘골드 스파’, ‘아로라테라피 스파’,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 과거에 간 적이 있었는지, 이들 업소에서 성매매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관리들은 롱이 조지아주 인근인 플로리다주로 가서 “일부 형태의 포르노 산업”을 공격하려 계획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오후 5시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애틀랜타 일대의 마사지 업소 세 군데에서 총격이 발생해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한 아시안 여성 6명과 백인 남성 1명, 백인 여성 1명이 숨졌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애틀랜타 총격 한인 4명 등 8명 희생…아시안 혐오범죄 가능성

한인 밀집 지역 마사지 업소서…사망자 중 6명 아시아계
21살 백인 용의자, SNS에  ‘우한 바이러스’  중국 혐오글
공포, 불안 확산 속에 애틀랜타 관리 “범행동기 단정 일러”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16일 벌어진 마사지 업소 연쇄총격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하고 그중 4명이 한인 여성인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피해 업소 중 한 곳인 ‘골드 스파’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애틀랜타/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 세 군데의 마사지 업소에서 16일 연쇄 총격이 벌어져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아시안 증오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벌어져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에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1차 총격은 이날 오후 5시께 애틀랜타 북서쪽의 체로키 카운티 액워스에 있는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서 5명이 총에 맞아 2명은 현장에서 숨졌고 3명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이 업소의 주인은 중국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2차와 3차 총격은 이곳에서 약 48㎞ 떨어진 애틀랜타의 한인 마사지 업소 두 곳에서 벌어졌다. 애틀랜타는 미국의 대표적 한인 밀집 지역 중 하나다. 경찰은 5시47분께 ‘골드 스파’에서 강도 사건 접수를 받고 출동해 여성 3명이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현장에 있는 동안 길 건너편 ‘아로마테라피 스파’에서 총격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애틀랜타 한인 매체인 <애틀랜타 케이(K)>는 “생존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골드 스파와 아로마테라피 스파) 사망자(4명)와 부상자는 모두 한인 여성”이라고 보도했다. 신원이 확인된 한인 사망자는 ‘골드 스파’ 직원인 70대 박아무개씨와 50대 또 다른 박아무개씨이며, 이들 모두 업소에서 숙식을 해왔다고 이 매체의 이상연 대표기자가 <한겨레>에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망자 4명이 한국계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저녁 8시30분께 유력한 용의자인 백인 남성 로버트 에런 롱(21)을 체포했다. 롱은 최근 에스엔에스에 “그들(중국)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창조됐는지 알고 있으며, 50만 미국인을 죽인 것은 21세기 세계 지배를 위한 그들의 계획 중 일부일 뿐”이라며 “우리 시대 최대 악”으로 규정한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돼,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사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고, 1명은 백인 여성, 1명은 백인 남성이다. 사건 발생 직후 골드 스파의 한 직원은 인근 한인 업소들에 “백인 남성이 ‘아시안을 다 죽이겠다’고 말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알렸다고 <애틀랜타 한국일보>는 전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등 팬데믹 이후 아시안 혐오 분위기가 커졌다.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는 지난해 3월19일부터 지난달까지 아시안 혐오사건 신고 건수가 3795건에 이른다고 이날 발표했다.

수사 당국은 그러나 이번 사건을 아시안 증오 범죄로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밝혔다. 애틀랜타 당국 관리는 17일 “지금까지 보여지는 것은 (인종주의적 동기가) 아닐 수 있다. (숨진 아시안 여성들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롱은 이런 장소들(마사지 업소)을 과거에 자주 드나들었다”며 용의자가 “성중독”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관리들은 또한 롱이 플로리다주로 가서 “일부 형태의 포르노 산업”을 공격하려 계획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김지은 기자


애틀랜타 연쇄 총격 용의자 SNS에  “중국은 최대 악”

“50만 미국인을 죽였다” 아시아인 혐오 범죄 가능성

 

                      미국 애틀랜타 마사지 업소 연쇄 총격 용의자로 검거된 로버트 애런 롱(21). EPA 연합뉴스

 

16일 미국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으로 한국계 여성 4명 등 8명이 숨진 가운데, 경찰에 체포된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21)이 에스엔에스(SNS)에 중국 혐오글과 음모론을 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이 최근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

롱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국이 코로나19 은폐에 관여했다. 그들(중국)은 우리 조사자들이 우한 연구소에 가는 것과 그들이 거기(우한 연구소)에서 한 실험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시도한 조사를 막았다”고 적었다. 롱은 “그들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창조됐는지 알고 있으며 50만 미국인을 죽인 것은 21세기 세계 지배를 위한 그들의 계획 중 일부일 뿐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모든 미국인은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우리 시대 최대 악”이라고 덧붙였다.

              로버트 애런 롱의 페이스북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 ‘우한 실험실 기원설’을 언급했고, 중국 쪽에선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며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조기원 기자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혐오범죄’  급증 … 1년간 약 4천건

트럼프 등 선동발언에 촉발…뉴욕 경찰, 아시아계 거주지 경찰력 증강

 

아시아 마사지 업소 세 곳을 대상으로 한 연쇄 총격 사건이 발생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검시관들이 피해 업소인 ‘골드 스파’에서 주검을 옮기고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16일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으로 한인 4명 등 8명이 숨진 가운데, 현지에서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급증한 아시아계 겨냥 혐오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 및 혐오범죄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아시아계 주민을 겨냥한 증오 관련 사건은 4천여건에 달한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폭력 등 혐오범죄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이 단체에는 지난해 3월19일부터 지난 2월28일까지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3795건의 혐오사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68.1%는 언어폭력이고, 20.5%가 따돌림, 11.1%가 물리적 폭력이었다. 접수된 사건의 45%인 1691건이 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했고, 뉴욕에서도 14%인 517건이 보고됐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사업장'이 35.4%로 가장 많았고, 길거리(25.3%), 온라인(10.8%), 공원(9.8%), 대중교통(9.2%) 순이었다. 보고서는 “우리 센터에 접수된 혐오사건의 수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의 일부”라며 “이것만으로도 아시아계 주민이 얼마나 차별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 전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공격이 수차례 보도됐다. 지난 9일에는 뉴욕주에서 83살 한국계 여성이 이유 없이 폭행 당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1일 연설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고 호소했지만, 일주일이 못돼 애틀랜타 연쇄 총격 참사가 발생했다.

뉴욕 경찰은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직후 성명을 내어, 아시아계 주민 거주지에 뉴욕경찰국 중대대응팀의 경찰력이 파견됐다고 밝혔다. 워싱턴주 시애틀 경찰도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에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는 특히, 지난 10월 보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차별적 언사를 하는 정치인 중에서 가장 큰 전파자”라고 규정한 바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및 이에 동조하는 공화당 인사들의 인종주의적 선동 발언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의 아시아·태평양계 당원 모임의 회장인 주디 추 하원의원은 지난 2월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공격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며 중국을 발원지로 공격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정치인들의 선동적 발언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백인우월주의가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공격 증가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정의길 기자

 

83살 한인 할머니, 뉴욕서 아시안 혐오범죄자에 맞아 기절

   피해 할머니 "공병 줍다 공격당해…치료비에 병원 못 가"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겨냥한 혐오범죄 149%나 증가
   바이든 "미국답지 못한 일… 악랄한 증오범죄 멈춰라"

 

13일 미국 시애틀 차이나타운 지역에서 최근 증가하고 있는 아시아인 혐오 범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할머니를 겨냥한 '묻지마 폭행'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가운데 현지언론은 이 사건을 중대한 혐오범죄로 지목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뉴욕 화이트플레인스 경찰은 83세 한국계 미국인 여성에게 침을 뱉고 주먹질을 한 혐의로 글렌모어 넴버드(40)를 지난 11일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넴버드는 지난 9일 쇼핑가를 방문한 피해자를 뚜렷한 이유가 관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폭행했다. 공격을 받은 피해자는 머리를 땅에 찧고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넴버드가 도망친 뒤였다.

경찰은 넴버드가 노숙인이며, 적어도 네 차례 경찰에 붙잡혔던 전력이 있다고 밝혔다. 넴버드는 2급 폭행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유죄가 확정되면 최대 징역 7년까지선고받을 수 있다.

피해자는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사건 당시 노드스트롬 백화점 근처에서 공병과 캔을 수거하고 있었으며, 피가 났음에도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뉴욕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지방 검사인 미리암 로카는 인종차별 혐오범죄 혐의점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로카는 "혐오 범죄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면서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혐오 범죄를 보게 되면 신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WP는 이번 사건을 두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표적으로 삼은 폭력이 미국 전역에서 빈발하는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중요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 소속 연구소인 증오·극단주의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 주요 도시에서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 범죄는 작년에 전년 대비 149%나 증가했다.

뉴욕시에서 보고된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 혐오 범죄는 작년 28건으로 2019년(3건)보다 크게 늘었다. 미국 전체적으로는 인종 혐오 범죄가 약 7% 감소했다 점을 고려하면, 아시아계를 향한 공격의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상황이 이처럼 흉흉해지자 다양성 강화를 정책 목표로 내걸고 있는 미국 정부도 아시아계 차별을 규탄하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동양계 미국인을 노린 악랄한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미국답지 않은 일이다. 즉각 중단돼야 한다"라고 지난 11일 촉구했다.

 


호건 주지사 "한국계 내 딸들도 차별 느껴"…증오범죄 맹비난

한국계 부인 둬  '한국 사위' 별칭 … "터무니없고 용납 안돼"

 

래리 호건 주지사의 가족 사진: 뒷줄 왼쪽 두번째가 호건 주지사. 세번째는 유미 여사 [출처 : 호건 주지사 트위터]

 

'한국 사위'라는 별칭이 붙은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는 1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이후 미국 내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증가한 것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호건 주지사는 이날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라면서 가족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호건 주지사의 부인은 한국계인 유미 호건 여사로, 그는 2004년 '싱글맘' 유미 여사와 결혼했다. 유미 여사의 딸 셋은 모두 가정을 꾸렸다.

호건 주지사는 "내 아내, 세 딸, 손자 모두 아시아계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일종의 차별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인의 교회 친구, 딸들의 친구 일부도 "정말 끔찍한 대우를 받았다"라고도 전했다.

또한 아시아계들이 식료품점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욕설을 듣는 일, 한국에서 오거나 미국에서 태어났음에도 '중국 바이러스'라고 고함 지르는 소리를 듣는 일들도 언급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증오범죄는 지난해 7% 감소했지만 아시아계에서는 150% 증가했다"며 "터무니없고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아시아인 겨냥 증오범죄 규탄하는 LA시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일본타운 '리틀도쿄'에 있는 일본계 미국인 박물관 주변에 13일 시위대가 모여 아시아인을 향한 증오 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호건 주지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1일 연설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노린 악랄한 증오범죄가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한 데 대해 감사하다는 뜻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이들 증오범죄에 대해 "우리가 통제해야 할 어떤 것"이라며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1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도 자신의 가족 사진을 게재한 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감사를 전했다.

지난해 전미주지사협회장을 지낸 호건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분열적 언사에 종종 쓴소리하며 각을 세웠고, 2024년 대선의 공화당 주자군으로 분류된다.

미국 증오·극단주의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의 증오범죄는 7% 줄었지만 미국 16개 주요 도시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범죄는 149% 늘어났다. 연합뉴스

 

미 아시아계 겨냥 혐오범죄 빈발 …의원들 "청문회 열겠다"

아태코커스 의원들 회견…펠로시 의장·한국계 의원 2명도 참여

클린턴 전 대통령도 "아시아계 겨냥 혐오범죄 증가 심히 걱정"

 

미 연방 의회 아시아태평양 코커스(CAPAC) 화상 회견 [CAPAC 페이스북 캡처]

 

미국에서 최근 증가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연방 의원들이 청문회 개최 등 대응책 추진에 나섰다.

미 연방의회의 '아시아태평양 코커스'(CAPAC) 소속 의원들은 19일) 반(反)아시안 혐오범죄 급증에 관한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주디 추(민주) CAPAC 의장은 "우리는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혐오범죄 청문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공격은 우연이 아니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의회 난입 사태를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혐오범죄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범죄가 3천 건 넘게 보고됐다면서 외모 비하와 언어폭력으로 시작된 공격이 물리적 폭력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회견에 참여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국내 테러와 관련해서는 "백인 우월주의가 가장 큰 우려"라고 지적하고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라며 아시아계 혐오범죄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원 민주당 코커스 의장인 하킴 제프리스 의원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 증오, 음모론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견에는 한국계 의원들도 참여해 목소리를 높였다.

앤디 김(민주·뉴저지) 하원의원은 "의회가 증오 행위를 금지하고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혐오범죄를 부추겼다는 지적과 관련, "분명히 이런 상황을 악화시켰고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면서도 "이것은 더 깊은 시스템적인 문제"라며 구조적 문제라는 점도 지적했다.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민주·워싱턴) 하원의원도 "조치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공동체가 존중과 품위로 대우받도록 해야 한다면서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더카운티 지방검사실이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아시아계 미국인을 노린 증오 범죄를 신고하는 핫라인 전화번호를 안내했다. [출처=앨러미더카운티 지방검사실 페이스북 페이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겨냥한 혐오범죄 증가에 대해 깊이 걱정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우리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목소리를 높이고 폭력을 조장하는 무지한 레토릭을 거부하며 이웃 지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진원지로 지목된 중국 등 아시아계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혐오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중국 무술 쿵후에 빗댄 '쿵 플루' 등으로 부르면서 증오범죄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말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84세 태국계 남성이 산책길에 공격을 당해 넘어져 머리를 부딪혀 숨진 데 이어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선 91세 아시아계 남성이 밀쳐져 다쳤다. 뉴욕시에서도 16일 하루에만 아시아계 여성을 겨냥한 폭행이 3건이나 벌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