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습니다

● COREA 2021. 3. 1. 12:29 Posted by SisaHan

6,228명 후손 확인 안돼 훈장도 전하지 못해

 

3·1독립운동 102주년인 1일 시민들이 독립운동 선열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돌아보고 있다.

 

광복 후 75년이 지났지만 후손을 찾지 못해 잊히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안정된 가정사와 재산상의 이유 등으로 후손이 명확한 친일파와 달리, 독립운동가들은 국외거주와 불우한 생활, 자손들의 무관심, 월북 등으로 후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채찬·장재욱·백광필·김경도·이갑문 등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6228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으로 건국훈·포장 등을 받았지만, 전해줄 후손이 없어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다.

 

충북 충주 출신 채찬.

 

                                            충북 충주 출신 채찬

충북 충주 출신 채찬은 1905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무장투쟁을 하다, 1910년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 뒤 국내로 들어와 친일기관인 일민단, 보민회 등을 습격하는 등 무장투쟁을 하다가 1922년 상해임시정부에 파견돼 주만참의부를 설립해 참의장 겸 제1중대장으로 항일투쟁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충북 청주 출신 백광필.

 

                                           충북 청주 출신 백광필

충북 청주 출신 백광필은 1919년 최석인, 류연화와 함께 <자유민보>를 창간해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은 독립해야만 한다”는 논설기사를 싣고 1000매씩 5호까지 제작 배포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3년 옥고를 치른 뒤 1921년 2월17일 출소했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

 

충남 논산 출신 장재욱.

 

                                            충남 논산 출신 장재욱

충남 논산 출신 장재욱은 1927년 5월 한족노동당에 가입해 1928년 칭위엔현 남산성 지방대표로 중앙대표대회에 참가해 재만농민동맹을 결성하는데 기여했다. 1929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한 뒤, 자위대에 참여해 무기 탈취를 위해 칭위엔현 중국인 보갑대를 습격하기도 했다. 1932년 하이롱 영사 경찰에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 및 살인’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6년 7월8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

 

경기 수원 출신 김경도.

 

                                            경기 수원 출신 김경도

경기 수원 출신 김경도는 1919년 수원 오산시장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감옥살이를 했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

 

제주 출신 이갑문.

 

                                             제주 출신 이갑문.

제주 출신 이갑문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1년 7월 서울 시내 중등학교 동맹휴업에 참여해 격문 2300여매를 제작 배포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7월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용산적색노동조합’ 사건에 연루돼 10여명의 동료들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송치됐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8년 건국포장.

국가보훈처는 누리집(https://e-gonghun.mpva.go.kr/user/RewardDisList.do)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으로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 명단과 정보를 제공하고 후손을 찾고 있다. 공훈관리과(044-202-5781)를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박종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