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지난달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원로 사학자들을 대거 교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바뀐 인사들 중에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 등도 포함돼 있다. 독립운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인정받는 학자들이다. 이들을 한꺼번에 배제하고 제대로 된 공적심사가 가능할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사 대상 시기는 1895년 을미의병부터 1945년 8.15 광복 때까지다. 오랜 연구를 통해 이 시기 독립운동의 여건과 흐름, 심사 대상자의 구체적인 활동 등을 세세하게 알지 못하면 정확한 공적 평가가 불가능하다. 정부의 어느 자리보다 전문성이 우선시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만열 명예교수 등을 교체한 것은 몰상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명예교수는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을 지냈고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도 맡았다. <105인 사건과 신민회 연구> 등을 저술한 윤경로 전 총장과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인 서중석 교수 등도 이 분야의 전문성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보훈처가 이들을 갑작스레 교체한 것은 박승춘 보훈처장의 이념성향 및 행태와 따로 떼놓고 판단하기 어렵다. 맹목적 보수우익 색채의 박 처장이 이념을 잣대로 양식 있는 학자들을 솎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만열 명예교수 등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하고, 만주국 장교로 항일세력을 탄압한 고 박정희 대통령을 사전에 올렸다. 또 2010년에는 국방부가 추진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명예원수 서훈에 반대해 없던 일로 되돌렸다. 만주국 중위였던 백 대장의 친일행적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운동을 이끄는 등 보수 성향이 뚜렷한 박 처장에겐 이 명예교수 등이 ‘눈엣가시’였을 소지가 크다. 지난해 보훈처가 위암 장지연, 윤치영 초대 내무장관 등 19명의 서훈을 취소한 뒤 보수언론의 비난을 받은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는 새 심사위원에 정치·사회학 등 비역사학 전공자들을 많이 채웠으며, 이들 가운데는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포함됐다는 얘기도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이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왜곡하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보훈처는 심사위원 교체를 철회해 전문성과 양식을 심사의 토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