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정의 · 인권 승리할 것” 강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한 4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나서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3) 할머니가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각하한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4월 일본의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등 국제법 위반 책임에 면죄부를 부여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에 항소하기로 결정했다”며 “할머니께서 항소심에서는 정의와 인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고 5일 밝혔다. 추진위는 또한 “이 할머니께서 일본 정부가 소송에 불참하는 등 한국 법원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을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추진위는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고 전했다. ‘위안부’ 제도 범죄사실 인정, 진정한 사죄, 역사교육, ‘위안부’ 왜곡 또는 반박 등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사법적 판단을 받자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지난달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지난 4월21일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이는 지난 1월8일 또 다른 피해자 12명이 낸 손해배상 ‘1차 소송’ 1심 판결과 달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피고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해 피해자 12명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장필수 기자

 

 길원옥 할머니, 일 정부 상대 위안부 손배소 항소 불참

 길 할머니 가족 "정의연이 주도하는 항소심 참여 못해"

 

길원옥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에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7일 길 할머니 측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의 각하 결정에 불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진행할 항소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1일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 16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이에 피해자 16명 중 12명은 항소 제기를 할 예정이다.

 

길 할머니 가족은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있다"면서도 "어머니(길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이용당했다고 말씀하시고 있고, 학대 정황이 보이는 상황에서 정의연이 주도하는 항소심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길 할머니 가족은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크게 관심 없다"며 "무엇보다도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으로부터 어머니를 이용한 점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 문제대응 TF와 정의연이 포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는 전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번 항소심에 참여한다.

 

일 시민단체, 한국법원 위안부 2차 소송 각하에 "실망과 분노"

전국행동 "위안부 문제 해결 후퇴시키는 최악의 판결" 비판

 

일본의 시민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은 지난해 10월 13일 도쿄도(東京都)에 있는 총리관저 앞에서 집회를 갖고 일본 정부에 베를린시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 요청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의 양징자(梁澄子) 공동대표가 연설하는 모습.

 

일본 시민단체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28일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공동대표 양징자)은 이날 발표한 '전국행동 항의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전국행동은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월 8일 1차 위안부 판결에선 일본 정부에 배상을 명했다가 4월 21일 2차 판결에선 일본 정부가 주장한 '주권면제'를 인정해 각하한 것에 대해 "(1차 판결은) 국제인권법상의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한 뒤 "(2차 판결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후퇴시키는 최악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차 손배소 패소…사죄 · 배상 암운

엇갈린 법원 판결…피해자들, 1차 손배소 땐 승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나서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소송 1심 판결과 엇갈린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고 곽예남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한국이 국내외적으로 기울인 노력과 이로 인한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 회복으로는 미흡했을 것으로 보이고, 2015년 12월 한·일 합의도 이들이 지난 시간 겪어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다”라면서도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을 갖는지에 대해 한국 헌법과 법률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한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한국의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 쪽이 주장한 ‘국가면제론’(한 나라의 주권행위를 다른 나라에서 재판할 수 없다)에 대해서는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그 의사에 반해 일본 군인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한 것은 국제인권법 등에 위반되는 행위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된다”며 “종래 제한적 국가면제론에 따르면 이런 요건에 해당해도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지만, 국제관습법이 변경되면 달리 고려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재판부는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을 들어 “위안부 문제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별도의 협정에 의해 해결될 것을 전제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인 페리니는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으나 전쟁포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자 1998년 이탈리아 지방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탈리아 지방 법원과 항소심 법원은 독일의 국가면제 주장을 인정해 소송을 각하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내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 하지만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 사건에 대해 ‘독일에 대한 재판권 면제를 부인한 이탈리아 법원의 결정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엔국제사법재판소 판결 다수 의견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한 취지도 개별적인 소송이 아니라 관련 국가들 사이의 별도의 협정에 의해 해결될 것을 전제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을 적용하면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가 인정돼야 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권리 구제가 어려워지게 된다”면서도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일본 정부 차원의 권리구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합의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와 반성의 의미가 담겼고 일본 정부가 자금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피해 회복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을 하게 정한 만큼 피해자들을 위한 대체적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향후 국가면제가 인정되는 범위에 대한 상당한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외교부에 대한 사실조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국의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할 사항이다. 정책적 의사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매우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며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과 엇갈린 판단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했을 경우까지도 이에 대해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며 일본 정부가 주장한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면제는 국내 법원이 국외 국가에 대한 소송의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 쪽이 항소할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확정됐다. 조윤영 기자


30년 위안부 투쟁사 ‘최대 암초’…일본 정부 사죄·배상 가로막혀

박정희 정권 ‘65체제’ 벽에 막히고
박근혜 정부 ‘12·28 합의’ 끝내 발목
법원 “피해자 구제 대체수단 존재”

위안부 외 강제동원·오염수 악재 여전
정부 “피해자 명예회복 노력” 원론만
한일관계 개선 당분간 영향 없을 듯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떠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붙잡고 안 놔줘, 붙잡고 안 놔줘요. 이놈의 새끼가, 일본 놈의 새끼가, 군인 놈의 새끼가, 그래서 할 수 없이 울면서 당해요. 죽기 전에, 내 눈 감기 생전에 한번 분풀이, 꼭 말로라도 분풀이 하고 싶어요.”

30년 전인 1991년 8월14일,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처음 실명 고발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첫 외침이 나왔을 때 한국 사회는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수치심을 느꼈다.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명예를 회복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올바른 사죄를 받아내는 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됐다. 처음엔 여성들이 “업자들에게 속아 간 것”이라는 불성실한 답변에 머물던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4일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와 동원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내놓게 된다.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65년 체제의 벽은 굳고 높았다. 일본 정부는 1995년 7월 ‘아시아 여성기금’을 만들어 이 문제에 해결을 꾀하지만, 65년 체제 탓에 정부 예산은 투입할 수 없다고 버텼다. 위안부 문제가 국가 범죄임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대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데 그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아시아 여성기금을 거부하고 기약 없는 대일 투쟁에 나섰다.

 

상황이 바뀐 것은 위안부 문제는 “65년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2005년 8월 정부 견해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왜 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는가! 한국 사회의 절박한 물음에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화답했다. 일본 정부와 교섭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뻔뻔한 부작위’가 위헌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위안부 문제는 한국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외교 과제로’ 역사의 전면에 재부상했다.

 

2013년부터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정권 사이의 처절한 위안부 외교가 시작됐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에 한-미-일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에 밀려 2015년 말 12·28 합의를 삼키고 만다. 이 합의를 통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자신이 인정하는 것이 ‘법적 책임’인지 ‘도의적 책임’인지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책임을 통감한다’고 선언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동안 꾸준히 거부해 왔던 10억엔(약 108억원)의 정부 예산 지출을 받아들였다. 그 대신 한국 정부가 약속한 것은 이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었다. 2016년 말 촛불 집회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서도 2018년 1월 ‘재협상’을 요구하진 않겠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가 ‘해결해야 할’ 현안이 아닌 ‘관리해야 할’ 현안으로 지위가 격하됐다.

이후 2021년 1월8일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국제 관습법상의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깨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1차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에 대해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고, 법원은 지난달 말 승소한 원고들이 일본 정부 자산을 강제집행할 길을 막았다.

 

이어 법원은 21일 2차 판결에서 원고들의 소청을 각하했다. 법원은 1차 판결이 위안부와 같은 ‘반인권적 불법행위’엔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주권면제 원칙을 받아들이며, “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 구제수단’”인 12·28합의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법으로 12·28 합의를 인정한 것이다. 항고 절차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일단 크게 줄어들었다. 위안부 30년 투쟁사에 중대한 분기점이 된 것이다.

 

이 판결은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으로 이끌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는 여전히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해차’라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 해묵은 난제와 오염수 방류 새로운 악재로 시름하고 있다.

이에 한-일 양국 정부는 판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삼간 채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외교부는 “오늘 판결 관련 상세 내용을 파악중인 바 관련 구체 언급은 자제코자 한다”면서 “우리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을 향해선 “위안부 문제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유린이자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로서, 일본 정부가 1993년 고노담화 및 2015년 12·28 합의 등에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 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언급은 삼가겠다”고만 말했다. 길윤형 기자

 

“국가면제 예외”→“현시점서 유효”…법원, 석달만에 정반대 판결

위안부 1·2차 손배소 엇갈린 판단…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2차 소송에서 석달여 전과 달리 패소한 것은 국제법상 ‘국가면제’와 박근혜 정부 때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갈렸기 때문이다. 1차 소송은 일본의 무대응으로 승소 판결이 확정됐지만, 2차 소송은 피해 할머니들이 즉각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상급심 판단을 다시 받아봐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이용수·고 곽예남 할머니 등 피해자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지난 1월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에서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한 같은 법원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의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1·2차 소송의 결론을 가른 분수령은 ‘국가면제’에 관한 판단이다. 국가면제는 일본 정부 쪽이 주장해 온 내용으로 국내 법원이 국외 국가에 대한 소송의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이다. 1차 소송 재판부는 “국가면제 이론은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므로, 이런 경우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 해석에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고 여러 나라의 국내법에서 예외사유를 정하는 등 국제법 체계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2차 소송 재판부는 이날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불법으로 점령된 국가의 영토 안에서 불법행위가 이뤄졌을 때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약에 비준하거나 개별 입법을 한 나라가 전체 유엔(UN) 회원국 가운데 약 19%에 불과해 기존 국제관습법이 바뀌었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갈렸다. 1차 소송 재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피해자의 배상을 포괄하지 못했다고 봤다. 앞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일본 법원에 여러 차례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됐고, 2000년 미국 등 국외 법원에 제시한 소송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1차 소송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했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과 한·일 합의는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했고, 협상력이나 정치적 권력을 갖지 못한 피해자 개인들에게 소송 외엔 구체적인 손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차 소송 재판부는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가 인정된 결과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 제소해 권리구제를 받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외교적 보호권’ 행사로 볼 수 있는 2015년 한·일 합의에 의해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며 달리 판단했다. 2015년 한·일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일본 정부 차원의 조치인 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고 최종 합의안에 관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등 내용과 절차에 있어 일부 문제점이 있다”라면서도 “이 합의와 이에 따른 후속 조치에 의해 피해자들을 위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마련됐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2차 소송 재판부는 이와 함께 법원 판결이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재 국제관습법과 달리 일본 정부의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 선고 뒤 강제집행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외교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판결이)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이뤄진 외교적 합의의 효력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지, 일방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불의한 결과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한·일 합의에 의해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소멸했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자리 박차고 나온 이용수 할머니 “국제사법재판소 가겠다”
정의기억연대 “피해자들 절박한 호소 외면”
“지난 1월 배상판결 의미 사라지지 않아”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2차 손배소 선고 공판을 마치고 나온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한 21일, 법정에서 이를 지켜본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 결과가 어떻든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판결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들도 “법원이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책무를 저버렸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1인당 위자료 1억원씩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2016년 처음 소송을 제기한 뒤 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원고로 나선 피해자 10명 중 생존자는 현재 4명뿐이다.

 

이 할머니는 판결을 듣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한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했지만 패소 취지의 선고 내용을 듣자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법정을 나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이 할머니는 눈물을 닦은 뒤 취재진 앞에서 “너무 황당하다. 결과가 좋게 나오건, 나쁘게 나오건 국제사법재판소에 꼭 가겠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밝힌 뒤 법원을 떠났다.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용수 할머니는 부당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판결 항소 등 다음 수순을 고민 중이고, 다른 할머니분들을 위해서도 일본의 위안부 제도 범죄사실 인정, 진정한 사죄, 역사교육, 위안부 왜곡이나 부정 반박 등을 요구하는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와 대리인단도 이날 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피해자 대리인인 이상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는 “재판부는 선고 내내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인간으로서의 피해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의 이익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한 강제집행을 전제로 국익을 우려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위안부 문제 책임을 행정부와 입법부로 돌렸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국제질서 인권 최후 보루인 법원이 피해자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도 “(법원이) 지난 30년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고발하고, 국제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투쟁한 피해자들의 활동을 철저히 외면했다. 국가는 다른 나라의 법정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국가면제’를 주장한 일본 정부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자국의 국민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가 외국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인가.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책무를 저버린 오늘 판결을 역사는 부끄럽게 기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도 이날 판결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오늘 판결은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도중 그들과 같이 잔혹 행위에 시달린 뒤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큰 실망을 안겼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이 지났다. 일본 정부가 더 이상 생존자들의 권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성곤)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이같은 인권침해 사건에는 국가면제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며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이날 판결은 민사34부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지난 1월의 판결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9개국 410명 법률가가 해당 판결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국제인권법적 흐름에 역행하는 이번 판결은 유감이다”라고 했다. 장예지 기자


정의용 “일본, 위안부 협상 현실적 대안 내놔도 억지주장만 반복”

정 장관, 관훈클럽 초청 토론서 밝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1일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매우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했으나, 일본 쪽이 일관되게 자기들 주장만 반복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시절 위안부 협상 과정을 설명하면서,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여러가지 방안을 일본 측에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번 갈 때마다 일본은 못 받아주겠다, 그것보다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며 “(협의가) 조금 진전되면 진전된 안은 챙겨놓고 더 (나은 안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본 쪽이 “일관되게 자기들 주장만” 했는데 이는 “협상을 깨자는 것”이라고 정 장관은 해석했다. 또 일본 정부가 “정부 간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어불성설 같은 주장”을 하며 곳곳에서 한국 정부를 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위안부 문제에서 “과연 일본이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가”라고도 했다. 정 장관이 일본에 어떤 제안들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정 장관은 미국 정부와 코로나19 백신 협의를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반도체를 포함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과 관련해 미국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그는 지난해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이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공수해준 점을 언급하며 미국 쪽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백신과 관련한 미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미국이 원하는 ‘쿼드’(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가 참여하는 중국 견제 협의체) 참여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등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패널의 질의에 “미국과 협력할 분야는 여러 분야가 있다”며 그 예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반도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들고, “우리가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이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미 측과 협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미국과 “반도체 분야” 및 “전기차용 배터리”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미 측과 협의의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위안부’ 손배소 각하에…일본 정부 “타당하고 당연한 결과”

 

이용수(맨 왼쪽)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2019년 11월13일 서울 민변 사무실에서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1일 각하 결정이 나온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당연한 결과”라고 반응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인터뷰에서 “판결 내용은 앞으로 자세히 분석을 해야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판결은 타당하고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내용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정부 차원의 코멘트를 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월 한국 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이 인정된 것에 대해 가토 관방장관은 “국제법 및 한일 양국 간 합의에 어긋나는 판결”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이번 건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계속해서 한국 정부에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는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쪽의 해법 마련을 한-일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모테기 외무상은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를 만나지 않고 있으며 정의용 외교부장관과 전화 통화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위안부’ 소송 판결이 각하됐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이날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외국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며 주권면제(국가면제)를 인정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배 소송을 각하시켰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