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28일 미 국회의사당에서 합동연설에 앞서 대법원장 존 로버츠와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꼼짝없이 ‘햄버거 도둑’이 되고만 어처구니없는 사연이 28일 <에이피>(AP)에 소개됐다.

보도를 보면, 발단은 바이든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인들에게 붉은 고기의 소비를 제한할지 모른다는 추정이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이런 추정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기 1년 전 발표된 학술연구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는 언론 매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햄버거를 한 달에 한 번만 먹도록 제한하려고 한다는 주장으로 발전하며, 진작에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바이든의 환경정책을 흠집 내려는 정치적 시도로 진화했다.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런 주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지난 22일 “바이든의 기후변화 정책은 어떻게 당신을 한 달에 단 한 번만 햄버거를 먹도록 제한할까. 그리고 어떻게 한 해에 한 사람당 세금 3500달러를 매기고 전기차에 5만5천 달러를 쓰도록 강요하며 미국인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까”란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데일리 메일의 에밀리 크레인은 이 기사에서 미시간대의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위한 센터’(Center for Sustainable Systems)가 2020년 1월 발표한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이 연구는 미국인들이 식생활을 채식 위주로 바꾸면 어떻게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게 되는지를 다룬 것으로, 쇠고기 소비를 90% 줄였을 때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당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미시간대의 마틴 헬러는 “그 연구 보고서와 바이든의 정책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은 급속히 퍼져나갔다. 데일리 메일의 보도 이틀 뒤 콜로라도 출신의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로런 뵈버트는 트위터에 “왜 조 바이든은 우리집 주방에서 나가지 않는 거냐?”라고 꼬집었다. 보수적인 온라인 누리집 ‘게이트웨이 펀딧’은 “바이든의 기후정책 요구: 식단에서 붉은 고기를 90% 줄여라: 미국인은 한 달에 한 번만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제목과 달리, 기사 본문의 내용은 <데일리 메일>의 기사를 인용하는 형식을 취하고 “그럴 수 있다”(could)는 수식어를 넣어 지나친 선동을 경계하는 자제를 보였다.

 

보수적인 뉴스방송 <폭스 뉴스>의 프로그램 ‘폭스 앤드 프렌즈’에선 진행자 에인슬리 이어하트가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 정책을 겨냥해 “그는 우리가 먹는 붉은 고기의 90%를 줄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폭스 뉴스의 앵커 존 로버츠는 “당신이 바이든의 기후변화 어젠다를 지지하고 싶다면 버거와는 작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스 뉴스 화면에 비친 그래픽엔 “당신의 그릴(석쇠)에. 바이든의 환경정책 요구사항: 식단에서 붉은 고기 90%를 줄이고, 한 해에 최대 4파운드(1.8㎏), 한 달에 버거 한 개.”라고 적혔다.

 

이런 내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이슈로 확대됐다. 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은 트위터에 폭스 뉴스를 인용하면서 “텍사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아이다호 주지사 브래드 리틀은 애벗의 트윗을 재전송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 정책에 대한 비판에 한 술 보탰다.

 

조지아 출신 공화당 하원의원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맥도날드 광고에 나오는 캐릭터 ‘햄버글러’를 끌어들여,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햄버글러는 Hamburger(햄버거)+Burglar(도둑)의 합성어로, 바이든 대통령을 사실상 미국인에게서 햄버거를 빼앗는 ‘햄버거 도둑’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비아냥거린 것이다.

 

미국의 매체연구 기관 ‘지그널 랩스’에 따르면, 지난 22일에서 26일 사이 불과 나흘 동안에 정치 관련 온라인 사이트에서 “고기 소비”란 말이 바이든의 기후정책, 요구조건, 지시 같은 용어와 연관되어 사용된 사례는 2만3천여건이나 된다. 이에 대해 허위 정보, 가짜 뉴스 문제를 전공하는 제니퍼 그리질 시러큐스대 교수는 “순전히 선동”이라고 잘라 말했다.

 

잘못된 가짜 뉴스가 한번 사람들 머리에 들어가면 나중에 바로잡는 건 힘든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모나쉬 기후변화 의사소통 허브’의 존 쿠크는 “많은 이들이 팩트 체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변인 마이크 그윈은 25일 트위터에 바이든이 웃으며 그릴에 스테이크를 굽는 사진과 함께 바이든이 고기 소비를 제한할 것이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 “순전히 상상”이라는 <시엔엔>(CNN)의 팩트 체크 기사의 링크 주소를 함께 올렸다.

이에 폭스 뉴스의 앵커 로버츠는 나중에 시청자들에게 “그래픽 표기가 바이든의 기후변화 정책과 관련된 것처럼 잘못되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정했다. 박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