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가족이란 울타리

● 칼럼 2012. 2. 26. 17:48 Posted by SisaHan
아들 내외와 한시적인 동거를 하고 있다. 매사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신세대와 홀가분함을 누리고픈 구세대와의 조합인 셈이다. 새 식구를 맞으면 무조건 2년은 함께 살겠다고 별러왔던 우리부부의 오랜 바램에 아이들도 순순히 응해 주었다. 막상 우리의 그늘 아래 녀석들을 들이고 나니 고유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시간은 물론 사유의 공간까지 침입해 들어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일 년 남짓 동거하는 동안 신혼부부는 자리를 잡아가는 듯 하고 우리내외는 새로운 트랜드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한다. 온 식구가 몸으로 부딪혀가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고 있는 지금 새삼스레 우리 가족의 향방을 되짚어 본다.
 
우리 이웃에는 늘 눈여겨보는 두 가정이 있다. 외딴섬처럼 동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한 백인 중년 여성의 가정과 삼대(三代)가 한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인디언 가정이 그것이다. 후자의 가정은 요즘 심심찮게 보이는 단출한 삼대 가족이 아니라 미성년자 다섯 남매를 둔 젊은 부부가 어머니와 두 동생을 거느린 대 가족구성이다.
나는 한 때, 가족들 부양으로 허리가 휠 이 대가족의 젊은 부부를 가엾게 생각하면서 홀로 여유를 부리며 살아가는 외딴섬 백인 여성을 동경한 적이 있다. 최소한 그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기 전에는 그랬다.
내가 일시적으로나마 동경했던 그녀는 훤칠한 키에 중년의 나이임에도 군살 한 점 없는 몸매와 특별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탄탄한 경제력, 무엇보다 부양가족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 없이 홀가분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었다. 생업과 집안 일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변변치 않았던 나는 모든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만 쏟을 수 있는 그녀가 자연히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사 여유롭게 비춰지던 그녀의 환경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늘 행복과는 거리가 먼 표정이다. 정원손질을 할 때나 집수리를 할 때도 항상 혼자다. 집 치장은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히, 산뜻하게 하면서도 함께 즐길 가족이 없다는 게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집은 낮엔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 적막하고 밤엔 전등을 켜는 일이 드물어 늘 암흑이다. 더구나 가족들이 모이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도 낯선 차량이 주차해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얼굴에 냉기를 띄고 홀로 나다니는 그녀를 보면 가족이란 울타리를 엮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반면 인디언 가족은 시시때때 북적거린다. 그들의 생활은 부유하지 못하고 주거환경 또한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열 명의 식구가 넘나드는 출입문은 언제나 열린 상태다. 또한 그들이 물어 나르는 소식으로 집안은 늘 활기가 넘친다. 잠시 내가 가엾게 여겼던 그 집 가장의 팔뚝과 가슴언저리에는 다섯 아이의 생년월일과 이름 문신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따뜻한 가정에서 동거하는 열 식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정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탐스러움이 얼굴 가득 스며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동행하고 싶은 이웃 일 순위로 이들을 꼽는다. 
언급한 인디언 가정은 우리의 과거 모습이며 백인 여성의 가정은 우리의 현재, 혹은 미래의 모습인지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잘 품고 다스려서 위 두가정의 중간 어디쯤에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