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라더니 ‘망사’가 됐다.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마다 따라붙은 상투어가 된 지 오래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자화자찬했던 첫 각료 인사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으로 조롱을 받은 것부터 시작해, 최근 첨단 정보기술 분야를 다루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70대 고령에 고려대 출신인 이계철씨를 지명한 것까지, 이 대통령의 인사는 하나같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더해졌다. 20일부터 열리는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한덕수 주미대사가 15일 이 대통령을 만난 뒤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 알고 보니 민간인이어야만 입후보 자격이 있는 무역협회 회장에 취임시키기 위한 즉흥극이었다. 후임 대사가 정해지지도 않고, 한 대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인 것을 보니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정부가 그토록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미외교를 고려한 인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실무적으로 뒷받침을 해야 할 무역협회의 수장을 찾다 보니 일이 이렇게 풀렸다고 말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무역협회에서 하는 일이 자유무역협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전부도 아닐뿐더러, 대미외교보다 무역협회장을 우선시한다는 얘기인데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것보다 민주통합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이 문제가 4.11 총선에서 쟁점으로 부각할 것에 대비해 ‘FTA 전도사’로 불리는 한 대사를 긴급 차출했다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권 때 총리 출신인 그를 내세워 같은 노 정권의 총리 출신인 한명숙 대표가 이끄는 민주통합당의 반FTA 공세를 막아보자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대사야 ‘나는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해 시종일관 노력해온 사람’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이질적인 정권을 넘나들며 부역하는 그의 화려한 변신을 보는 눈이 고울 리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대통령의 천박한 인식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내년부터 중국을 이끌어 갈 시진핑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세계 현안에 대해 한창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대사에게 특명을 내려 두 나라가 한반도 문제 등과 관련해 어떤 생각을 교환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을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소탐대실의 망국적 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