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이 여전히 일제하 친일·매판 세력에서 독재체제 비호 세력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 치명적인 약점을 호도하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반공·냉전 이데올로기와 억압체제를 강화해야 했고, 역사와 사실을 조작하고 학문을 왜곡해야 했다. 어제 개관한 박정희기념관은 바로 이들의 숙원사업이었다. 기억을 왜곡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그렇게 집요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대통령을 따르는 이들이 기념관을 짓고, 각종 전시를 통해 그의 업적과 유지를 알리려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경계하고 치적은 승계하는 뜻깊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취지로 김대중도서관은 이미 문을 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관도 추진중이다. 독재자라고 해서 박정희기념관 자체를 매도할 순 없다.
 
문제는 그곳에 전시될 기념의 내용이다. 오로지 진실의 원칙에 따라야 하지만, 최소한 일방적 미화와 찬양을 위한 왜곡은 없어야 한다. 왜곡의 전당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박정희기념관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치적만을 발췌·과장해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 등을 결과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념사업회의 말대로 1960~70년대를 모르는 젊은 세대가 이 전시만 본다면, 박정희는 민족중흥과 근대화의 선구자로만 각인되기 십상이다. 올여름 개관한다는 도서관 역시 개인의 소장품이나 국무회의 안건, 친필 지시 등을 수집·정리한다고 하니, 박정희 미화에 온전히 바쳐진다. 이런 왜곡의 전당을 짓는 데 국민의 혈세와 시민의 재산이 투입됐다는 게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유산이나 추종자들의 성금으로 지은 기념관이라면 미화 혹은 칭송을 한다 해도 그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기념관엔 정부 예산이 178억원이나 투입되고, 금싸라기 터 5260㎡는 서울시가 무상 임대한 땅이다. 500억원은 전경련이 회원사로부터 기부받았다지만, 이 돈 역시 엄격히 말하면 각 기업의 수많은 주주들의 재산이다. 공공의 재산인 것이다. 기념사업회가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게다. 그렇다면 전시 내용은 바로 그런 공공성에 걸맞아야 한다.
시민은 혈세가 독재자의 망령을 되살리는 데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친일매판·독재 추종 세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이용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정부나 서울시는 기념관이 왜곡의 전당이 되지 않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