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투잡’ 출전 선수들

‘엔지니어-사격’ ‘원예사-유도’ ‘음식배달-펜싱’ ‘수학자-사이클’

다른 본업 유지하며 운동 병행…훈련비 등 마련 목적 생계형도

 

캐나다 사격 선수 린다 케이코. 린다 케이코 트위터 갈무리.

 

엔지니어 사격 선수, 음식 배달 뛰는 펜싱 선수, 꽃 다듬는 유도 선수, 수학자 사이클 선수….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중 상당수는 ‘전업’으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본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선수들이 있다.

 

2020 도쿄올림픽 사격 종목에 출전한 린다 케이코(40·캐나다)의 직업은 엔지니어다. 캐나다의 한 전기회사에서 송전탑을 관리하는데 올림피언인 아버지 윌리엄 헤어의 권유로 사격을 시작했다. 2016 리우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 참가다. 그의 아버지는 57년 전 1964 도쿄 대회 사격 종목에 출전한 바 있다. “올림픽 출전은 가족의 일”이라고 밝힌 케이코는 오는 30일 여자 25m 권총에서 예선전을 치른다. 10m 공기권총에서는 53명 출전 선수 중 47위를 기록했다.

 

여자 사이클 개인도로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안나 키센호퍼(30·오스트리아)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 박사다.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석사 학위, 카탈루냐 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위스 로젠공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올림픽도 혼자서 준비했다. 오스트리아가 사이클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은 125년 만이다. 남자 클레이 사격에 나서는 폴 아담스(호주)의 본래 직업은 간호사다. 폴 또한 2016 리우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가 두 번째 출전이다.

 

2012 런던 대회 남자 에페 금메달리스트 루벤 리마리도. 루벤 리마디로 인스타그램 갈무리.

 

반면, 본업인 운동을 위해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도 있다. 아일랜드 유도 선수 벤 플레처(28)는 훈련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 주말에는 원예사로 일하고 있다. 2016 리우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에 출천한 벤은 29일 유도 100㎏급에 출전해 32강전에서 무함마드 카린 후라모프(우즈베키스탄)을 만나 절반을 내줘 패했다.

 

2012 런던 대회 펜싱 에페 종목에 출전해 조국에 역사상 두 번째 메달(금)을 선사한 루벤 리마르도(35·베네수엘라)는 배달 라이더로 일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훈련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한 직업을 택한 것이다. 도쿄올림픽 누리집에 실린 사전 인터뷰를 보면 리마르도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올림픽 메달을 두 번 딴 선수는 아무도 없다. 나는 그 주인공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출전 각오를 밝혔다. 그는 전의를 불태웠지만, 32강에서 로맹 캐논(24·프랑스)를 만나 12-15로 패했다. 장필수 기자

 

21세기에…“왜 메달 못 따” “배고픈 줄 몰라” 성토하는 대통령

27년 집권 벨라루스 루카셴코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21세기에 열리는 올림픽에도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하는 걸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국가 원수가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30일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중인 자국 선수단과 코치진을 비판했다고 <타스 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전날 신임 대학총장들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다른 나라보다 스포츠에 투자하는데도 결과는 이게 뭔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 하는 등 선수단에 대해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벨라루스의 통신사인 <BELTA>는 그의 발언을 좀더 자세히 전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사회개혁 관련 발언을 하다가 도쿄 올림픽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가 체육교육과 스포츠에 돈을 대왔지만 국가와 국민들이 선수들의 메달 따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걸 완전히 까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스포츠나 다른 분야에서 가끔 실패하는 이유는... 배고픈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세르비아 등을 사례로 들며 “그들은 올림픽에서 성공하면 모든 것을 얻을수 있고 지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대로 우리는 모두를 지원해준다”고도 말했다.

 

1994년부터 27년째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는 루카셴코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린다. 지난해 가을 치러진 대선에서 그가 6선에 성공하자 벨라루스에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정부의 강경탄압 이후엔 주로 해외거주 벨라루스인들을 중심으로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지난 5월 벨라루스 영공을 통과하던 외국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켜 젊은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한 사건을 계기로 벨라루스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에 들어갔다.

 

올 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루카셴코 대통령과 벨라루스 올림픽위원회 회장을 맡은 그의 아들 빅토르 루카셴코에 대해 ‘선수들에 대한 정치적 차별 혐의’를 이유로 도쿄 올림픽 참석을 금지한 바 있다. 김영희 기자

 

브라질 배구 세터 경기 내내 홀로 마스크…가족 감염 아픔 기억

 

 마크리스 카네이로가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마스크를 쓴 채 뛰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분의 고통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A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는 마스크를 쓴 채 뛰는 브라질 선수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브라질의 세터 마크리스 카네이로다.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평소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 경기 중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카네이로는 왜 경기 내내 마스크를 썼을까? 실은 그에겐 아픈 기억이 있었다. 카네이로의 삼촌이 코로나19에 걸려 투병 생활을 했다.

 

카네이로는 29일 기자에게 “우리는 지금 코로나 대유행 속에 있다. 나는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지 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지키고,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내가 마스크를 쓰고 경기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카네이로는 “내가 마스크를 씀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는 바람도 전했다.

 

카네이로의 이런 원칙은 아픈 경험에서 비롯됐다. 카네이로는 “삼촌이 코로나에 감염돼 한 달 이상 입원을 했다. 그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지금은 그럭저럭 회복됐다. 하지만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코로나로 고통받는 것, 심지어는 (그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카네이로는 과거 다른 대회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임했다. 그는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를 뛰었다.

 

브라질은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가 1980만명으로 미국(3480만명), 인도(3150만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사망자는 55.3만명으로, 미국(61.2만명)에 이어 두 번째다. 도쿄/이준희 기자

 

“짐 줄이려” 유니폼 버리고 침대보는 챙겨…멕시코 대표팀 징계 위기

소프트볼 대표팀 논란…선수 15명 중 14명 미국생

 

2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멕시코 소프트볼 대표팀이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요코하마/로이터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멕시코 소프트볼 대표팀이 국가대표 선수단복을 선수촌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귀국했다가 징계 위기에 놓였다.

 

29일 <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 등 미주 매체의 보도를 보면, 멕시코 소프트볼 대표팀은 지난 27일 소프트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캐나다에 2대3으로 패했다. 멕시코 대표팀은 곧 짐을 싸서 귀국했다.

 

문제는 29일 발생했다. 멕시코 복싱 대표선수 브리안다 타마라 등 2명이 선수촌 쓰레기 봉투에 담긴 소프트볼 대표팀 유니폼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쓰레기봉투에는 거의 새것으로 보이는 여러 벌의 유니폼과 운동화, 글러브 등이 함께 발견됐다.

 

타마라는 트위터에 “이 유니폼은 여러 해에 걸친 노력과 희생, 눈물을 상징한다. 모든 멕시코 선수들이 이 유니폼을 입길 열망한다”며 “슬프게도 오늘 소프트볼 팀이 선수촌 쓰레기봉투에 모두 버렸다”고 썼다. 유니폼에는 멕시코 국기가 새겨져 있었고, 다른 선수들과 국민들의 비판이 일었다.

 

             멕시코 소프트볼 대표팀이 선수촌에 두고 간 멕시코 유니폼. 트위터 갈무리

 

멕시코 소프트볼 연맹이 방어에 나섰다. 홀란도 게레로 소프트볼 연맹회장은 <티브이(TV) 아즈테카>와 인터뷰에서 “소프트볼 팀은 방망이 33개와 포수장비, 보호구 등 장비가 많다”며 “짐칸에 공간을 만들어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화물이 너무 많아 유니폼 일부를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선수들이 도쿄올림픽 선수촌의 침대보를 챙겨 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카를로스 파디야 멕시코올림픽위원회 회장은 <이에스피엔>(ESPN)에 “선수촌 침대보를 챙기고 유니폼을 버리고 온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소프트볼 대표팀은 팀 구성 때부터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고 주목받았다. 선수 15명 중 1명만 멕시코에서 태어났고, 14명이 미국에서 태어나 대부분 미국 대학리그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다는 것이다.

 

파디야 회장은 “대표팀 유니폼은 멕시코의 상징색으로 돼 있을 뿐 아니라 국기도 달려 있다”며 곧 소프트볼연맹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며, 본보기 차원에서 징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매트리스 때문에 썼다는데…조롱거리 된 선수촌 ‘골판지 침대’

일본 유명 침구회사 3년 걸쳐 개발…“찢어지고, 부서지고” 선수들 영상 올려

 

도쿄올림픽 선수촌 내부에 설치된 골판지 침대. 100% 재활용 가능하다고. 도쿄/EPA 연합뉴스

 

“기분이 나빴을 분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침대가 얼마나 튼튼하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올림픽 선수촌에 있는 골판지 침대를 일부러 부숴버린 이스라엘 야구팀 벤 와그너가 29일 사과 영상을 올렸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이스라엘 야구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가 몇 명까지 버티는지 실험을 하겠다며 1명씩 올라가 점프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8명까지 버티던 침대가 9명이 올라가 펄쩍펄쩍 뛰자, 무너졌다. 이에 대해 온라인에선 “일부러 선수촌 기물을 파손했다. 변상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와그너 선수가 사과에 나선 것이다.

 

골판지 침대를 만든 에어위브(Airweave) 홍보 담당자는 <요미우리신문>에 “테스트 단계에서 메달리스트가 침대 위에서 기쁘게 뛰었다는 것도 상정했다”면서 “다만 9명이 동시에 뛰는 것까지는 예상외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침대를 만든 기업으로 엉망진창이 된 영상이 확산된 것은 유감이지만 선수들이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올림픽에 참여한 선수들이 머물고 있는 선수촌과 관련해 ‘골판지 침대’는 유독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무와 철제로 된 침대에 익숙한 선수들에겐 골판지 침대가 낯설 수밖에 없다. 또 선수들 입장에선 컨디션을 좌우할 편안한 수면과 안전이 중요한데, 골판지 침대가 내구성이 약해 위험하다는 우려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야구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가 몇 명까지 버티는지 실험을 하겠다며 1명씩 올라가 점프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9명이 올라가 펄쩍펄쩍 뛰자, 침대가 무너졌다. 영상 갈무리

이스라엘 야구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가 몇 명까지 버티는지 실험을 하겠다며 1명씩 올라가 점프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9명이 올라가 펄쩍펄쩍 뛰자, 침대가 무너졌다. 영상 갈무리

 

일본 정부는 왜 하필 골판지 침대를 선수촌에 설치했을까? 침대를 만든 ‘에어위브’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아사다 마오 등 일본 운동선수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온 유명 침구업체다. 이 회사는 골판지 침대가 계속 논란이 되자, 최근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골판지 프레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침대 매트리스는 일반적으로 하나로 돼 있는데, 이 회사 제품은 어깨‧허리‧다리 등 3개로 분할돼 있다. 각각의 매트리스는 딱딱함 등 쿠션 정도가 달라, 선수의 근육‧체형‧체중 등에 맞게 매트리스를 움직여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선수들이 자신의 몸에 맞게 매트리스를 움직일 수 있도록 두께를 최소화했다. 매트리스가 얇아 완충 작용이 약화돼 프레임에 부하가 걸리는 만큼, 내구성이 상당히 중요해진 것이다. 이 회사는 “목재나 철제 등 다양한 소재로 검증한 결과 골판지가 가장 튼튼했다”며 “200kg까지 대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재활용이나 비용도 감안이 됐다. 매트리스 등 골판지 침대는 약 3년의 걸쳐 개발됐다고 강조했다.

 

골판지 침대를 만든 일본 유명 침구회사는 골판지 프레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어위브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골판지 침대의 약한 내구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2일 뉴질랜드 조정 선수는 침대에 앉자 골판지 프레임이 찌그러졌다며 영상을 올렸다. 한국 역도 109kg급 진윤성 선수도 지난 27일 골판지 침대가 찢어진 영상과 함께 “일주일만 더 버텨봐…시합까지만”이라는 글을 올렸다.

 

안전성 문제뿐만 아니라 폭 90cm, 길이 210cm로 싱글 사이즈 침대보다 작은 크기나, 일본에서 재해 때 피난처에서 자주 사용되는 등 골판지가 임시적 재료라는 이미지도 부정적 인식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골판지 침대 불신이 커지자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형이 골판지 관련 회사에 근무했다며 유착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에 더해 최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1박에 250만엔(약 2500만원)짜리 호화 숙소에서 머물고 있다는 일본 언론보도까지 나오자, 골판지 침대가 선수촌의 열악한 환경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 선수촌에서 주로 생활하는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뿐만 아니라 객실에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없고, 세탁소도 부족하다며 생활의 불편을 제기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