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에 부랴부랴 백악관 복귀해 연설…다시 별장행에 뒷말도

 

 

금요일이었던 지난 13일 오후 1시30분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전용 헬기 마린원이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로 향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던 심상찮은 시점에 바이든 대통령은 야구모자를 쓰고 여름 휴가를 떠난 것이다.

 

약 72시간이 지나 바이든 대통령은 마린원을 타고 백악관으로 돌아와야 했다. 며칠 새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 수중에 떨어지고 미국의 대응 실패에 대한 비판여론이 치솟자 부랴부랴 대국민 연설에 나선 것이다.

 

취임 이래 최악의 외교위기가 벌어지는 내내 별장에 머문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탈레반의 공세 속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 측근은 17일 워싱턴포스트(WP)에 "아프간이 얼마나 빨리 붕괴할지 알았더라면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로 떠나도록 절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휴가라고 별장에서 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의 회의장에서 국가안보팀과 화상으로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하는 사진을 잇달아 공개했다.

 

그러나 급속히 악화하는 아프간 상황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 고위당국자는 WP에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혼자 앉은 사진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15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화상회의하는 바이든 [A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오판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청문회 발언으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WP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지난 6월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로 인한 즉각적 상황 악화를 예상하지 않는다면서 "(상황 악화가 있더라도) 금요일부터 월요일 사이에 일어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탈레반이 행여 카불을 장악한다고 해도 며칠 만에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못 박은 셈이다. 공교롭게도 주말 새 카불이 탈레반 수중에 넘어갔고 WP는 거의 정확하게 블링컨 장관이 말한대로 됐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전날 대국민 연설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더 빨리 벌어졌다"며 오판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비판은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이안 브레머 대표는 WP에 관련분야에서 활동하며 수십 년간 본 어떤 것보다 규모가 큰 외교정책 사안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첩보와 조율, 계획, 소통 등 4가지 분야에서 실패했다면서 "아프간군의 능력을 과대평가했고 동맹과 출구전략 조율에 실패했으며 아프간 정부의 급속 붕괴에 대비한 비상사태 계획이 없었던 것 같고 미국 국민과 효과적으로 소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매우 잘못된 대응에 깊이 놀라고 실망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때는 예상해볼 수 있지만 바이든 때는 예상할 수 없었던 일방주의"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 연설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캠프 데이비드로 복귀한 걸 두고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보수논객 카민 사비아는 "세계가 난리가 났는데 바이든은 휴가로 복귀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국가정보국장 대행을 지낸 리처드 그리넬은 "독백을 캠프 데이비드에서 하지 그랬느냐"며 비꼬았다.

 

백악관 연설 후 별장으로 돌아가는 바이든 대통령 [EPA=연합뉴스]

 

다급한 미국, 아프간 대피 총력전…'어제의 적' 탈레반과도 대화

 

8월 말 완료 목표로 하루 최대 9천명 국외 대피…탈레반은 공항 안전이동 약속

미, 탈레반 불신 여전…아프간 정부 자금 동결했고 탈레반 합법정부 인정 미지수

 

카불 공항 경비 중인 미군 [AP=연합뉴스]

 

미국이 17일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인을 대피시키는 작전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은 그간 총부리를 겨눈 사이인 탈레반과 소통도 마다치 않지만 탈레반을 합법정부로 인정할지는 말을 아끼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의 진격으로 수도 카불까지 위험해지자 지난 12일 미국 시민권자의 출국을 촉구하는 동시에 대사관 인력 감축과 미군의 일시 증원배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15일 아프간 정부가 항복을 선언하고 탈레반이 카불의 대통령궁까지 점령해버리는, 미국으로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 아프간 정부의 붕괴가 예상보다는 빨랐다고 인정할 정도다.

 

대피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도가 적의 손에 함락되는 비상 상황이 생기자 미국은 카불에서 대사관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헬기로 인력을 실어나르는가 하면, 국외로 출국하려는 현지인이 공항에 끝없이 밀려들어 사상자가 생기고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운영이 마비될 정도로 큰 혼란을 겪었다.

 

혼비백산한 미국인의 대피가 1975년 베트남전 때 치욕적인 탈출 작전과 닮았다는 조롱 속에 '바이든표 사이공'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카불에서 검문소 운영하는 탈레반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16일 밤 11시께 공항 운영이 재개되며 대피 작전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대상은 미국 외교관과 시민권자, 미군에 협력한 아프간 현지인, 동맹 등 제3국인 등이다. 미 국방부는 현재 공항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밝힌 이가 1만1천명이지만 전부 시민권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8월 31일까지 민간인 대피 완료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탈레반과도 일정표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핵심 외교인력 철수가 완료됐다고 전했다.

 

미 합참 행크 테일러 소장은 "현재 공항을 드나드는 항공기는 시간당 한 대를 검토 중"이라며 "이는 하루 5천∼9천명을 출발시키는 정도"라고 말했다.

 

공항을 중심으로 배치키로 한 미군 인력이 애초 4천 명에서 6천 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이날까지 4천 명 이상이 주둔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진 프랭크 매킨지 중부사령관은 사전에 알리지 않은 채 카불을 찾았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탈레반과 소통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국방부는 하루에 여러 번 탈레반과 대화한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탈레반은 공항까지 민간인의 안전한 통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알려 왔다"며 공항 이동 과정에서 검문소 문제나, 괴롭힘과 구타 등 폭력 사례에 대응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급해진 미국이 대피 작전을 위해 탈레반에 손을 내민 모양새다. 불미스러운 상황 발생 시 미국의 군사적 대응 경고를 접한 탈레반으로서도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할 기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탈레반에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지난 15일 미국 은행에 있는 아프간 정부의 수십억 달러 자금을 동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자금줄 옥죄기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탈레반을 합법적 정부로 인정할지도 미지수다.

 

설리번 보좌관은 탈레반에 달린 일이라면서 현 시점에서 합법정부 인정 질문에 답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탈레반이 첫 기자회견에서 변화를 천명한 데 대해 "탈레반이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말한 것을 지키기를 기대할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이 무력으로 정권 장악 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종전의 강경론보다 완화했지만 미국의 불신과 반감은 여전히 매우 크다. 미국인 대피 완료 때까지 일시적 오월동주일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민간인의 안전한 공항 이동을 약속했다는 탈레반에 대해 "우리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며 강한 경계심을 표시했다.

 

탈레반 실질적 지도자 아프간 입성…"복수하지 않겠다"

바라다르, 카타르서 입국…"정권 이양 첫단계" 해석

대변인 기자회견서 사면령 발표… "긍정적으로 달라질 것"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2020년 모습 [AF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으로 입성했다고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하면서 20년 만에 미군이 떠난 아프간을 다시 점령한 지 이틀 만이다.

 

보도에 따르면 바라다르는 자신이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과 함께 이날 오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공항으로 들어왔다고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트위터에서 밝혔다.

 

탈레반 공동 설립자이자 실질적 지도자인 바라다르는 작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에서 탈레반을 대표해왔다.

 

AP 통신은 바라다르 귀국이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탈레반은 바라다르를 중심으로 새 정부 구성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라다르는 1968년생으로 알려졌으며, 아프간에 돌아온 것은 10여년 만이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 소재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바라다르가 입국하면서 탈레반의 새 통치 체제 발표가 임박했을 수 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탈레반은 아직 통치 방식 등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으며, 바라다르는 앞서 탈레반 지도부를 이끌고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과 평화 협상을 벌여왔다.

 

탈레반은 이들에게서 정권을 넘겨받는 공식적 행사를 치른 뒤 통치 체제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바라다르 입국은 이런 절차의 첫 단계일 수 있다고 WP는 풀이했다.

 

바라다르가 입국한 칸다하르는 아프간 2대 도시이자 옛 수도로,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탈레반은 아프간 접수 이후 강경 이슬람 근본주의를 고수했던 이전과는 다른 유화적 모습을 보이며 공식 정권으로서 정당성 확보에 우선 무게를 두고 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이날 수도 카불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종전을 선언하고 "우리는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면령을 발표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그러면서 새 정권이 이전 탈레반 집권기인 1996∼2001년과 비교해 "긍정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며 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탈레반은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면서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탈레반 대변인은 의복 규율과 사회 활동 등 어느 정도 수준에서 여성 권리가 존중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부르카의 부활'…공포에 떠는 아프간 여성들

방송사 여직원들 정직에 외출·복장 제한 가시화

탈레반 귀환에 아프간 부르카 가격 10배까지 폭등

 

부르카 판매하는 옷가게 지나가는 아프간 여성 (카불 EPA=연합뉴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함에 따라 20년 전 집권 시절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았던 여성 억압이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국영 TV의 유명 앵커인 카디자 아민을 비롯해 여성 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다.

 

아민은 "나는 기자인데 일할 수 없게 됐다"면서 "다음 세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20년간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탈레반은 탈레반으로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런 고백은 탈레반 미디어팀 소속 간부 몰로이 압둘하크 헤마드가 TV 뉴스채널에서 여성 앵커 베헤슈타 아르간드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선전하는 가운데 나왔다.

 

NTY는 "이들 두 앵커의 사례는 탈레반이 나라를 장악함에 따라 아프간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깊은 불안감을 반영한다"며 "아프간 여성들은 억압적인 과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에 대한 편견은 용납되지 않겠지만 이슬람적 가치는 우리의 틀"이라면서 이슬람법을 적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문제는 탈레반의 이슬람법 해석이 2001년 미국의 침공 이전 집권 당시처럼 엄격할 것인지 여부다.

 

아프간 곳곳에서는 탈레반이 낡은 질서를 다시 확립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이미 포착되고 있다.

 

각 지역의 아프간 여성들이 탈레반의 강력한 규제를 우려해 거리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아프간 일부 지방의 여성들은 남성 친척이 동행하지 않는 한 집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카불 대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남자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는 한 기숙사 방을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서는 탈레반 무장 괴한들이 대학 정문을 지키며 여학생들과 강사들의 캠퍼스 출입을 막았다.

 

칸다하르에서는 여성 건강 관리 클리닉이 문을 닫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탈레반이 여학교를 장악한 이후 폐쇄했다.

 

부르카 착용한 아프간 여성 (카불 EPA=연합뉴스)

 

일부 아프간 여성은 집을 나설 때 몸을 가리고 남자 친척과 동행해야 한다는 탈레반의 엄격한 규칙을 지키려다 보니 부르카를 살 시간이 없다고 호소했다.

 

CNN은 "아프간 여성들에게 부르카는 지난 20년 누렸던 권리의 갑작스러운 박탈을 의미하며 이들은 이를 되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프간 여성들이 갑자기 부르카를 착용하며 공포에 떠는 이유는 탈레반이 1996∼2001년 집권 당시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간 여성은 취업 및 각종 사회 활동이 제약됐고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외출할 때는 부르카까지 착용해야 했다.

 

한편, 인도 매체인 인디아투데이는 여성 억압의 상징인 탈레반의 귀환으로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 착용에 나서면서 카불의 부르카 가격이 10배나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카불에 사는 한 아프간 여성은 "나와 여동생, 어머니가 나눠 쓸 부르카가 1~2개밖에 안된다"면서 "부르카가 없으면 더 큰 스카프를 만들기 위해 침대 시트라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 탈레반 얕보다 굴욕적 철수…상황 오판 바이든 체면 구겨

[아프간 정부 조기 붕괴 후폭풍]

안보정책 초점 중동→중·러로…`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 낭패

트럼프의 철군 합의 이어받아 최장기 전쟁 마침표 찍었지만

 

공화당 “이것은 바이든의 사이공”

블링컨 “사이공과 달라” 강력 반박

미국 내 여론은 철군 찬성 압도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14일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완료하기도 전에 아프간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그는 이달 말을 목표로 아프간 주둔 미군의 질서 있는 철수를 진행해왔으나, 예상치 못한 탈레반의 기세에 놀라 황급히 대사관을 버리고 탈출하는 모양새가 됐다. 20년 지속된 미 역사상 최장기 전쟁의 종식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실행 과정에서 생겨난 오판과 혼란으로 미국과 바이든 대통령에게 수모를 안기고 있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오래된 소신과 미국의 전략적 정책 전환이 맞물린 야심 찬 결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1년 아프간 전쟁 개시에 찬성했으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던 2009년 아프간 병력 증원에 반대하며 국방부와 충돌했으나, 오바마 정부에서 아프간 병력은 오히려 11만명까지 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뒤 지난 4월 아프간 철군 방침을 발표하고 실행에 나섰다. 그는 지난달 연설에서 “얼마나 많은 미국의 딸·아들을 얼마나 오래 거기에 두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낸 성명에서도 아프간에 20년간 1조달러를 투입하고 30만명의 아프간 군인·경찰을 훈련한 점을 언급하면서 “아프간 군대가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미군이 1년, 5년 더 있어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철군은 미국이 중동에서 벗어나 외교정책의 초점을 중국, 러시아,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위협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내걸고, 해외에 쏟을 에너지를 국내 재건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아프간 철군에 따른 현지 여성 인권 악화 등에 대한 우려에는 “외국의 내분에 미군을 끝없이 배치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 깃발 아래 해외 주둔 미군 철수를 강조하고 ‘중국 때리기’에 집중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결과적으로 겹친다. 지난해 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1일까지 미군을 포함한 동맹군이 철군하기로 탈레반과 협정을 맺었다.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이 제거됐고 알카에다가 약화했다는 점 또한 아프간 철군의 이유로 든다. 미국 내 여론 또한 우호적이다. 4월 말 <더 힐>과 해리스엑스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철군에 찬성했다.

 

그러나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막바지에 탈레반이 아프간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림으로써 미국은 체면을 구겼다. 미 정부는 탈레반의 장악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아프간 정부 군대를 과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들에게 “탈레반보다 전쟁 수행에서 더 잘 훈련되고 무장되고 능력있는 아프간 군대의 능력을 믿는다”며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미 정부 안에서 아프간 정권이 이달 안에 붕괴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없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고위 관리를 인용해 전했다. 지난 6월까지 미 관리들은 아프간 붕괴 시점을 미군 철수 뒤 6개월~1년 사이로 예상했고, 국방부는 지난주에는 90일로 예측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15일 방송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권 붕괴가 예상보다 빨랐다고 인정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사이공처럼 헬기를 통한 대사관 대피를 못 볼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여기에 있다”며 “이것은 바이든의 사이공 순간”이라고 말했다. 1975년 베트남전 패망 때 미국이 헬기를 동원해 탈출했던 치욕적 장면에 이번 일을 빗댄 것이다.

 

이 당의 리즈 체니 하원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성명을 내어 “트럼프-바이든 참사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며 그들을 평화의 파트너라고 주장한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했고, 바이든이 아프간을 포기하면서 미국의 굴복으로 끝을 맺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에이비시>(ABC) 인터뷰에서 테러 세력이 미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아프간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이것은 명백히 사이공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탈레반이 맺은 미군 철군 합의를 물려받았으며, 철군하지 않으면 미국과 탈레반은 다시 전쟁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미국 믿어도 될까?’…아프간 혼란 속 짙어지는 의구심

영·독·UAE 등 동맹국들, 미국에 의구심

중국 “미국 믿어봤자 불운에 직면한다”

 

탈레반 전사들이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의 아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경계를 하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빠르게 점령하면서,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랍의 미국 동맹국들도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5일 아프간 사태가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안보 정책과 미국에 안보 문제를 의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동맹국인 자신들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아프간 정책을 결정한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전 총리 시절 국제개발부 장관을 지낸 로리 스튜어트는 “미국의 군사 능력만큼이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미국의 역할이 다시 위태로워졌다”며 “세계에 영감을 주고, 등불이었던 서구 민주주의가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외교위원회 국장인 캐서린 클리버 애쉬브룩도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투명하고, 공개적인 교류를 약속하며 취임했다”며 “미국은 대서양 동맹국과의 관계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고, 여전히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우선순위를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이번 사태로 2015년 시리아 내전 때처럼 수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밀려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랍의 미국 동맹국도 비슷한 의문에 직면해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안보 컨설턴트 이네그마의 책임자인 리아드 카와지는 <워싱턴 포스트>에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도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과 미국이 아프간에서 손을 떼면서 큰 혼란을 초래한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좀 더 직설적으로 미국을 비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이날 홍콩을 겨냥한 논평에서 홍콩을 위해 ‘대기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믿지 말라는 신호로 아프가니스탄을 인용했다. 이 매체는 “미국 정치인들이 누구와 함께 서겠다고 주장하든, 결국 불운과 사회 불안, 심각한 결과를 겪게 된다는 사실이 거듭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교국방정책협의회 의장인 표도르 루키야노프는 “러시아는 카불에서 미국이 설치한 정부가 무너지는 속도에 충격을 받았다”며 “소련이 남긴 정부는 붉은 군대의 철수 이후 3년은 버텼다”고 비꼬았다. 소련은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무장 독립세력인 무자헤딘의 저항을 버티지 못하고 1989년 철수했다. 무자헤딘은 1992년 친소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최현준 기자

 

‘탈레반 불똥 튈라’ 중국·러시아 손잡고 아프간 안정화 모색 

중 “내정간섭 안해…평화.재건 지원” 아프간 혼란, 신장위구르 영향 우려

일대일로 사업에 아프간 안정 필수…상하이협력기구, 재건 주도 주장도

러, 중앙아로 극단주의 진출 경계, `이해일치' 양국 군사훈련 등 공조

 

2018년 6월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베이징/AP 연합뉴스

 

탈레반의 카불 입성으로 중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관련 공조체제를 강화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가 향후 아프간 정세와 관련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6일치 사설에서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시종일관 중국 외교정책의 원칙”이라며 “중국은 미국이 아프간을 떠난 뒤 남긴 ‘진공’을 메울 뜻이 없으며, 서방이 쳐놓은 함정에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신문은 “중국은 아프간의 조속한 평화 정착과 재건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가장 큰 우려는 아프간의 혼란상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부 신장위구르(웨이우얼)자치구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안정된 아프간’은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간 중국이 △테러리즘 △극단주의 △분리주의를 이른바 ‘3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들 세력과 절연할 것을 탈레반에 촉구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톈진에서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를 근거지로 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에 대한 우려를 거듭 밝혔다. 그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은 중국의 국가안보와 영토보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탈레반이 이 단체와 분명한 선을 긋고, 지역 안전과 평화 발전을 위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역시 ‘아프간 안정화’가 중요한 전략적 목표다. 카불 함락 이전부터 러시아 쪽은 탈레반이든 아프간 정부군이든 정세를 안정화시켜 혼란한 상황이 국경 너머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최대 관심사였다. 아프간을 기반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는 상황을 러시아로선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탈레반의 귀환에 적극 대비해왔다. 바라다르가 이끈 탈레반 대표단이 지난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달 8일에도 탈레반 쪽 협상단이 모스크바를 다시 찾았다.

 

아프간 정세 안정화란 공통의 목표 아래 중-러 양국은 이미 공조체제 강화에 나섰다. 지난 9일부터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1만여 병력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훈련을 벌인 바 있다. 두 나라는 새달 중순 러시아 오렌부르크에서 병력 4천여명이 참여하는 합동 대테러 훈련도 벌일 예정이다.

 

두 나라가 주도하고 아프간 주변 각국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 차원의 공조도 모색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는 아프간 내전이 이어지던 1996년 4월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5개국이 참여해 설립했다.

 

이어 우즈베키스탄(2001년)과 인도·파키스탄(2015년)까지 동참해 회원국이 8개국으로 늘었다. 회원국 모두 아프간 문제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아프간도 2012년부터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가 떠난 아프간의 안정화 및 재건·복구 논의를 상하이협력기구가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카불 입성’ 탈레반 “전쟁 끝났다”…아프간 붕괴, 대통령 국외 도피

미 대사관, 국민 대피 지시…외교관들은 17일까지 철수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도 철수에 나서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대통령궁에 진입한 탈레반 대원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한 뒤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탈레반의 사령관들이 이날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무장 대원 수십명과 함께 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탈레반 대원들은 아프간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탈레반기를 게양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알자지라>에 “아프간에서 전쟁은 끝났다”며 통치 방식과 정권 형태가 곧 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우리는 주민과 외교 사절의 안전을 지원하겠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장한다. 모든 아프간 인사와 대화할 준비가 됐으며, 필요한 보호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방송 <1티브이(TV)>는 밤으로 접어들면서 카불 시내에서 몇차례 폭발이 발생했고 공항 주변에서 총격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카불 시내는 대체로 고요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유혈 사태와 탈레반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나라를 떠났다고 말했지만, 그가 어느 나라로 떠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내무부 고위 관계자는 가니 대통령이 타지키스탄으로 떠났다고 밝혔으나, <알자지라>는 그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15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는 대사관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한 가운데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자 각국 정부가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은 현지 미국인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미 대사관은 이날 경계경보를 통해 “(카불) 공항에 총격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며 “우리는 미국 시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지시한다”고 밝혔다.

 

미 대사관의 외교관들도 전원 철수를 시작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미국이 카불 대사관의 모든 요원을 17일까지 대피시킬 계획이라고 전했다. 애초 대사를 비롯한 최고위급 인사와 경호요원 등 최소한의 인력은 현지에 남겨두기로 했지만, 상황이 악화하자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카불 주재 미 대사관은 전세계 대사관 중 최대 수준인 4200명의 직원이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아프간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거나 잠정 이전하면서 인력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고 <데페아>(dpa) 통신 등이 전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카불 주재 대사관 폐쇄 사실을 확인하고 모든 대사관 인력이 카불 공항 군사 구역으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독일군이 16일부터 독일 시민 등을 대피시키기 시작할 것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영국도 군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 주재 대사와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대사관을 닫는다고 <더타임스>가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공군이 외교관 등을 대피시킬 예정이다. 탈레반과는 신뢰가 없다”고 말했다. 영국은 대사관 직원을 포함한 영국 정부 직원 500명, 현지 통역사, 구호단체 종사자 등 모두 5500명을 철수시킬 준비를 시작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가능할 때까지 카불 주재 자국 대사관이 기능하도록 하되 대사관을 카불 공항 인근으로 옮겼다고 이날 밝혔다. 네덜란드 국방부는 남은 인력 대피를 위해 군용기 한 대를 카불로 보냈다. 이탈리아, 스웨덴 등도 자국 외교관 혹은 일부 현지인 직원 대피 계획을 밝혔다. 한국 정부도 현지 대사관을 잠정 폐쇄했다. 신기섭 기자

 

전광석화로 대통령궁 접수한 탈레반…블랙호크에도 깃발

 

아침에 카불 진입해 저녁에 대통령궁 집무실까지 하루도 안걸려…"거의 저항 없어"

 미군 기지 헬기에 탈레반 깃발 꽂고 미 군용차 험비 몰고 나타나기도

"미국의 9·11 테러 20주년, 탈레반 재점령으로 마침표…워싱턴에 굴욕"

 

탈레반이 아프간 대통령궁을 차지한 모습[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15일(현지시간) 마치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진입해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아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미국은 이날 카불 주재 대사관에서 성조기를 내렸고, 거의 동시에 탈레반은 미군 주력 헬기인 블랙호크에도 깃발을 꽂고 승리를 과시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외신 긴급보도를 통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현지시간으로 일요일인 이날 오전, 정오를 앞둔 시점이었다.

 

카불과 인접한 동쪽 잘랄라바드(낭가르하르주 주도)와 서쪽 마이단 와르다크(마이단 와르다크 주도)까지 주요 도시와 국경 초소를 모두 장악하면서 카불을 포위한 탈레반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국외로 도피하면서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카불 시내를 점령해 이날 저녁에는 대통령궁까지 접수했다.

 

CNN방송은 탈레반이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평화롭게" 카불 시내로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미국이 아프간 완전 철군 계획을 지난 5월 시작한 이후 전광석화 같은 공세를 퍼부어 아프간 대도시를 며칠 사이에 차례로 함락한 데 이어 이날 수도까지 손에 넣게 됐다.

 

미군 철수 시작 후 약 두달만에 아프간 내 400개 지역 가운데 외곽 지역들을 중심으로 거의 반 이상을 점령하더니 이달 6일을 전후해서는 아프간 주요 거점 도시들을 본격 공략, 불과 10일만에 수도 카불까지 점령한 것이다.

 

외신은 아프간 도시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카불을 접수한 탈레반은 즉각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내외에 얼굴을 공표했으며, 아프간 정부 깃발도 끌어내렸다고 알자지라 방송은 전했다.

 

알자지라방송이 공개한 화면에 따르면 탈레반 무장 대원들은 이날 대통령궁 내 집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몰려가 책상에 앉아 있거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사이 카불에서는 탈레반 진입과 맞물려 주민 수천명이 대피 행렬에 나섰다.

 

이날 저녁이 되자 앞서 모습을 감췄던 가니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나타나 도피를 시인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탈레반은 6시 30분께 군경이 사라진 곳에서 치안에 나서겠다며 경찰서를 접수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밤이 되면서 오토바이, 경찰차 등을 나눠탄 탈레반 반군이 거리로 밀려들기 시작했고, 미군이 지원했던 정부 군용차 험비마저 탈레반이 몰고 등장했다.

 

밤 9시가 되자 탈레반은 통금령을 내렸고, 도시는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다.

 

노점상을 운영하는 20살 남성은 이미 상황이 암울해졌으며, "만약 더 악화한다면 집에서 숨어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20년 간 이어진 대(對) 아프간 전쟁을 뒤로 하고 5월 초부터 철군에 나서자 탈레반은 무서운 기세로 점령지를 넓히다 이날 사실상 수도까지 함락했다.

 

미국은 카불이 탈레반에 넘어간 이날 현지 대사관에서 성조기를 내렸다.

 

탈레반이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탈레반 깃발을 곳곳에 꽂은 것과 동시에 카불 주재 미 대사관의 성조기가 내려지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상징적인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한 소식통은 대사관 인력의 아프간 철수 절차가 이날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카불 공항에 머물 소수의 외교관을 제외하고는 이날 저녁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사이 탈레반은 미군 주력 헬기인 블랙호크 등에 깃발을 꽂은 사진을 이날 트위터에 뿌리며 승리를 과시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이 장면은 미군 주둔지 중 하나인 칸다하르 공군 기지에서 며칠 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헬기는 대당 수백만 달러짜리로, 탈레반이 이를 조종할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탈레반이 헬기를 확보했다는 것은 미군 장비를 무력하게 내줬다는 점에서 워싱턴에 굴욕적인 일"이라고 짚었다.

 

AP통신도 미국이 다음달 9·11 테러 20주년을 앞두고 아프간에서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미군 감축' 계획을 추진하면서 테러 20주년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결국 탈레반의 아프간 재점령이라는 엄혹한 현실과 함께 20주년을 기념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파키스탄 싱크탱크 'PSF' 트위터 발췌]

 

탈레반 승리 선언…"전쟁 끝났다, 개방적 정부 구성할 것"

아프간 대통령궁에 탈레반 깃발 올려…"새 정부 구성·형태 논의"

국영방송 장악 뒤 대국민 담화…"국민 안전 보장하고 기대 부응하겠다"

美 대사관 성조기 내리고 긴급 대피…대피 지원병력 1천명 더 보내기로

 

   15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조직원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정권 붕괴 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간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미국이 지난 5월 아프간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시작한지 3개월만이자, 탈레반이 이후 급속도로 아프간 내 세력을 넓힌 뒤 이달 6일을 전후해 주요 거점 도시들을 장악한 지 불과 10일만이다.

 

미국은 아프간 주재 자국공관 직원들의 탈출과 아프간인들의 국외 도피를 돕기 위해 병력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했다.

 

알자지라방송은 탈레반의 사령관들이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무장 대원 수십명과 함께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탈레반 대원들은 아프간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탈레반기도 게양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대통령궁을 차지한 모습[AP=연합뉴스]

 

앞서 미군 철수 시작 이후 탈레반이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다가 이날 카불까지 함락하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국외로 급히 도피했다.

 

가니 대통령이 도피한 곳은 접경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라고 알자지라방송 등이 보도했다.

 

아프간 대통령궁까지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아프간 정부를 상대로 한 내전에서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했다.

 

아프간 정부군이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백기 투항한 탓에 수도 카불에 무혈입성한 탈레반은 대통령 도피로 '버려진' 대통령궁에도 손쉽게 진입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알자지라방송에 "아프간에서 전쟁은 끝났다"고 말하고, 통치 방식과 정권 형태가 곧 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우리는 주민과 외교 사절의 안전을 지원하겠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장한다. 모든 아프간 인사와 대화할 준비가 됐으며, 필요한 보호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면서 15일 밤에는 곳곳에서 폭발음과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현지 방송이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아프간 1TV는 밤이 되자 수도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하고, 외교관들과 아프간 관리들이 탈출을 위해 몰려간 공항 근처에서도 총격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한 구호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에는 이날 카불에서 80명의 부상자가 이송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외교관들과 직원들을 대피시키는 등 철수에 나선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날 대사관에 걸려있던 성조기도 내렸다고 CNN 방송 등 미국 언론은 전했다.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 상공을 비행하는 미군의 헬리콥터 [AFP=연합뉴스]

 

미국 대사관 국기 하강은 대사관 철수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카불 미 대사관에는 미국의 전 세계 공관 중 최대 수준인 4천200명이 근무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1천명의 병력을 카불에 추가로 증파해 총 6천명의 병력을 가동해 공관 직원과 아프간인들의 탈출을 도울 계획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1천명의 추가 파병안을 긴급 승인했다고 미 국방부 관리가 밝혔다. 이에 따라 수일 내로 카불에는 총 6천명의 미군이 활동하며 미 대사관 직원들과 아프간 시민의 탈출을 돕고 위기 상황에 대처할 계획이라고 이 관리는 전했다.

 

한편, 탈레반은 대국민 담화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방적인 정부를 구성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메시지도 잇달아 내놨다.

 

AP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의 수하일 샤힌 대변인은 탈레반이 수도 카불로 진입한 뒤 AP통신에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대화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샤힌 대변인은 아프간 대통령궁에서 새 정부를 발표할 것이라고도 말했으나, AP통신은 이 계획은 일단 보류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영국 BBC 방송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는 향후 수일간 아프간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원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탈레반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정치국장인 바라다르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탈레반의 승리는 비교될 수 없는 위업이지만 아프간 통치의 진정한 시험은 권력을 손에 넣은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 [AP=연합뉴스]

 

바라다르 국장은 탈레반의 승리는 신속했고 세계 그 어떤 상대도 대적할 수 없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시험은 지금부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앞서 탈레반 대변인은 히잡을 쓴다면 여성은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혼자서 집밖에 나서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입장 발표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 여성 인권이 제약되고 비인도적인 처우를 받을 것이라는 아프간 안팎의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현지 여성들은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 과거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의 '인권 암흑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 국영방송도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 아라비야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날 카불에서 아프간 국영 TV를 장악한 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아프간인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탈레반, 작년 초부터 아프간 군경에 '돈 줄테니 투항하라'"

워싱턴포스트, 아프간 군경 인용 보도…경찰간부 "150달러 제안받은 적 있다"

아프간 정부군 속절없이 무너진 배경엔 탈레반의 물밑 '밀거래 공작’

 

지난 3일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지방에서 탈레반과 교전하는 정부군 병사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한 탈레반이 작년 초부터 정부 관리들과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투항을 유도하는 일종의 '밀거래' 작전을 확대해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아프간 군대의 몰락: 은밀한 거래들과 집단 탈주'라는 기사에서 아프간 정부군 병사들이 제대로 교전도 하지 않고 속속 탈레반에게 투항하거나 달아난 것에는 탈레반의 치밀한 물밑 거래가 있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아프간 군대가 탈레반의 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몰락한 것은 탈레반이 작년 초부터 농촌 마을 아프간 정부의 하급 관리들과 시작한 일련의 거래로부터 시작됐다.

 

아프간과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탈레반은 작년 초 한 지방 농촌 마을에서 정부군에게 '무기를 넘겨받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이를 휴전이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상 투항과 맞바꾼 거래였다고 한다.

 

최전선에서 탈레반과 교전하는 아프간 경찰관들은 6~9개월간 급여를 받지 못하는 등 악조건에서 싸우다가 탈레반의 거듭된 제안에 투항하는 일이 속출했다.

 

최근까지 1년 반 동안 이런 거래를 위한 협상은 소규모 마을에서 시작돼 점점 커져 주도(州都) 차원의 논의로까지 확대됐고, 결국 정부군의 항복으로 귀결됐다고 10여명의 아프간 장교와 경찰관들이 WP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탈레반은 작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탈레반의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수에 합의한 뒤 생긴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파고든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아프간 헤라트지방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탈레반 조직원 [EPA=연합뉴스]

 

철군 합의 이후 아프간 군경 사이에서는 더 이상 미국의 압도적인 공군력과 군수지원에 의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퍼졌고, 아프간 정부에 만연한 부패와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 전망 부재 등이 겹쳐지면서 탈레반이 제안한 거래를 수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군 시작 이후 탈레반에 점령된 최초의 주요 도시인 쿤두즈는 부족 장로들이 중재한 협상 끝에 정부군의 마지막 기지를 탈레반에게 넘기는 항복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얼마 뒤 서부 헤라트 지방에서 열린 협상에선 거래가 하룻밤 사이에 성사돼 주지사, 내무부 고위 인사, 정보당국자, 수백 명의 군인이 탈레반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직을 사퇴했다고 WP는 전했다.

 

아프간 특수부대의 한 장교는 "일부는 단지 돈을 원했다"면서도 "다른 이들은 미국의 철군 약속을 탈레반의 집권 보증으로 보고, 승리자(탈레반) 쪽에서 자리를 보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장교는 또 정부 편에 섰던 사람들은 도하 합의를 '종말'로 받아들였다면서 "합의가 있던 날 모든 사람이 각자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이 우리를 실패하게 방치한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바챠'라는 이름의 34세 경찰 간부는 이런 상황들을 전하며 "지난번 탈레반은 투항과 탈레반 합류를 조건으로 150달러(17만원)를 제안했다. 지금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아나?"라고 반문했다고 WP는 전했다.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조직원들 [AP=연합뉴스]

 

은둔의 리더부터 외교·군사 달인까지…탈레반 이끄는 지도부는

최고 지도자는 아쿤드자다…2016년부터 은둔 속 카리스마 발휘

대외 소통 책임자는 바라다르…하카니는 재정·군수물자 담당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AF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재집권을 눈앞에 두면서 탈레반을 이끄는 지도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슬람 수니파 강경 보수집단인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됐다. 이슬람 학교(마드라사) 출신 학생이 주축을 이뤘다. 탈레반의 의미도 '학생'이다.

 

탈레반을 창설한 이는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다. '얼굴을 없는 지도자'로 불린 그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탈레반의 세를 불렸다. 1996년 아프간 정권까지 장악했다.

 

추종자들은 그를 '물라'(스승)라는 수식어를 붙여 불렀다. 오마르는 201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탈레반 최고 지도자는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라는 인물이다. 1961년생으로 추정되는 그는 2016년부터 탈레반을 이끌고 있다. 최고 지도자는 정치, 종교, 군사 관련 중요 결정을 내린다.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인 그는 좀처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행방도 늘 묘연해 은둔하며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별칭은 '신도들의 리더'(Leader of the Faithful)다.

 

아쿤드자다의 제자인 물라 이브라힘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그의 카리스마와 얽힌 일화를 전했다.

 

이브라힘은 "그의 강연 도중 한 명이 아쿤드자다를 향해 총을 겨눴는데 총은 먹통이 됐고 탈레반이 그를 제압하려고 달려들었다"며 "이런 소란 중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쿤드자다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탈레반은 부인했다.

 

                            탈레반 지도자 중 한 명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AFP=연합뉴스]

 

반면 탈레반 창설자 중 한 명으로 조직 내 2인자로 평가받는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아쿤드자다와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지난해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 평화협상단을 이끌며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란, 러시아 등 각국을 누비며 탈레반의 외교를 사실상 책임지며 대외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협상 기술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중국 톈진(天津)에서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난 이도 바라다르다.

 

바라다르는 아프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국 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중국 측에 "어떤 세력도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며 단호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 "중국이 아프간 재건에 더 많이 참여해 경제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며 '투자 유치' 의욕까지 보였다.

 

무하마드 오마르의 아들인 물라 무하마드 야쿠브도 중요한 인물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탈레반 군사 작전을 총괄하고 있다.

 

30대 초반으로 알려진 그는 그간 여러 차례 최고 지도자 후보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연계 조직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끄는 시라주딘 하카니는 탈레반의 재정과 군수물자 조달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하카니 네트워크를 조직해 반(反)소련 게릴라전을 이끈 잘랄루딘 하카니의 아들이다. 나이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과 손을 잡았다. 이후 여러 테러를 배후 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불 트럭 폭탄 테러 등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한국 등 65개국, 탈레반에 "아프간 주민 출국 허용해야"

공동성명 발표… "안전하고 질서있는 출국 보장하라"

유엔 사무총장 "생명 보호·인도적 지원 보장" 촉구…16일 안보리 긴급회의

 

국제사회는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을 상대로 현지 주민의 출국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로 "아프간을 떠나려는 주민과 외국인에게 출국이 허용돼야 한다는 국제사회 목소리에 미국도 동참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65개국 이상이 이름을 올리고 "치안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아프간을 떠나려는 주민과 외국인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출국을 지원할 것"을 당사자들에게 촉구했다.

 

명단에는 한국도 포함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탈레반을 포함한 당사자들에게 아프간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호물자 전달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 자제"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유엔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유엔은 평화적 해결, 아프간 여성과 소녀를 포함한 모든 주민의 인권 증진,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구호물자 지원에 힘쓸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유엔은 16일 안보리 긴급 회의를 열어 아프간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55만명 이상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피난민도 55만명 이상으로 5월 이후 두배로 불어났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이 이날 아프간 정권 붕괴 직후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면서 현지 주민들은 공항으로 몰려가 출국 행렬에 나섰다.

 

탈레반, 북부 최대도시까지 장악…아프간 수도 카불 공격 눈앞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남서쪽 150㎞ 지점의 거점 도시인 가즈니주의 주도(州都) 가즈니서 경계 서는 탈레반 대원들 [가즈니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북부 최대 도시가 반정부 무장조직 탈레반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은 지 하루 만에 함락됐다고 AP통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아프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마자르-이-샤리프의 함락으로 아프간 북부 지역 전체가 반정부군 손에 넘어가게 됐다.

 

해당 도시가 위치한 발흐주의 한 의원은 정부군이 먼저 항복해 친정부 민병대 등의 사기가 떨어져 탈레반의 공격에 굴복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정부군 통제 지역은 중부와 동부 지역 일부에만 불과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공격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탈레반은 2·3대 도시 칸다하르와 헤라트를 장악하는 등 급속도로 점령지를 넓혀가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 34개 주도 가운데 24개를 점령한 상태로, 카불에서 불과 11㎞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탈레반 빠른 장악에 주아프간 영국 대사, 일정 당겨 탈출

이달 말 대피하려다 금명간으로 계획 변경

미, 전날 해병대 선발대 도착…민감한 외교 문서 폐기

 

    아프가니스탄 주둔 영국군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반정부 무장 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 밑까지 점령지를 확장하면서 영국과 미국이 자국민의 대피 작전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주아프간 영국 로리 브리스토 대사는 16일 저녁 전까지 아프간에서 탈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외무부는 브리스토 대사를 비롯한 일부 관계자들을 공항에 남겨 이달 말까지 대피 작전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아프간 내 상황이 악화하면서 기존 계획을 변경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 인근지역을 연이어 장악하면서 조만간 카불까지 점령해 공항을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영국 대사관 측은 이날 기준 주아프간 영국 외교관과 정부 관계자 규모를 기존 500명에서 수십명 안팎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지난주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약 3천명의 자국민과 2천명의 아프간 통역사 등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600명의 병력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직접 항공편을 이용해 두바이나 파키스탄으로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 자국민 대피 작전을 위해 공항에 배치하기로 한 3천명의 병력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날 미 해병대 일부가 카불에 도착했고, 선발대는 전날 먼저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측은 작전 기밀을 이유로 구체적인 병력 숫자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 파견은 주아프간 미 대사관 직원과 민간인 대피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이달 말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외교관들은 민감한 문서나 자료 등을 폐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AFP=연합뉴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아프간 내 대피 지원용 미군 배치를 5천명까지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미 요원 대피 위해 아프간에 미군 증원…철군입장은 유지

기존 4천명 외에 1천명 추가 배치…대사관 직원·현지인 대피 지원 목적

탈레반엔 "위협시 즉각 군사대응" 경고…"취임때 선택지 부족했다" 트럼프 책임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4일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 요원의 안전한 감축 등을 위해 기존 계획보다 1천 명 늘린 5천 명의 미군을 배치한다고 밝혔다.

 

또 아프간 반군인 탈레반이 이 임무를 방해할 경우 군사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미국의 최장기 해외 전쟁인 아프간전을 종식하기 위해 이달 말까지 미군 철수를 완료하겠다는 입장은 유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아프간에 5천 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지 미 대사관 직원과 동맹국 요원의 안전한 감축, 그리고 아프간전 때 미국을 도운 현지인의 대피를 돕는 임무를 수행한다.

 

미국은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이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아프간전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이후 이달 31일 완료를 목표로 현지 주둔 미군의 철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이 장악 지역을 넓히며 수도 카불까지 위험해지자, 미 정부는 지난 12일 대사관 직원을 대폭 축소하고 이를 돕기 위해 3천 명의 미군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 임무를 위해 남겨둔 1천 명 외에 3천 명을 더한다는 발표였는데,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에다 1천 명을 추가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아프간에서 추가 유혈사태를 막고 정치적 합의를 추진하기 위해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을 지원하라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요원과 임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떤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군사적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탈레반 측에 전달했다고 강한 경고의 목소리도 냈다.

 

아프간 칸다하르 전투현장에서 치솟는 연기=1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반군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제2대 도시 칸하다르 주변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날 칸다하르는 탈레반 수중에 떨어졌다. 칸다하르는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된 곳으로 탈레반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도시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미국의 끝없는 주둔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철군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없다면 미군이 1년 또는 5년을 더 주둔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5월 1일을 철군 시한으로 탈레반과 합의하고 이미 미군을 2천500명까지 줄인 상황에서 정권을 물려받았다고도 설명했다.

 

따라서 자신은 군대를 안전하게 철수시켜야 할지, 다시 싸우기 위해 늘려야 할지 선택지에 직면했다며 자신은 2명의 공화당과 1명의 민주당에 이어 아프간 주둔 문제를 다루는 4번째 대통령이었다고 밝힌 뒤 "나는 이 전쟁을 5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선택지를 좁혀놨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론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AP통신은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배치 미군의 임무가 대사관 직원 등의 공수 지원에 한정돼 있다고 말하지만, 그 전에 카불이 위협받는다면 더 오래 주둔해야 할 수도 있다고 봤다.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주말을 보내던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 발표에 앞서 부통령, 국무·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국가안보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다.

 

 아프간 카불의 미 대사관 [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미 CBS 방송은 복수의 외교·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36시간 내에 소수의 핵심 인력만 제외하고 주아프간 대사관 직원의 대피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대사관에 남는 인원은 국무부 외교경호실(DSS)의 특수요원, 대사 등 최고위 정책 결정자들이다.

 

대사관의 나머지 직원, 고용된 현지인과 가족은 셔틀을 타고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이 공항에는 비자 심사, 출국 등의 업무를 위해 격납고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대사관이 설치될 것이라고 CBS는 전했다.

 

대사관은 기밀자료와 다른 민감한 자료를 소각로와 분쇄기 등을 이용해 폐기하라는 지시도 내린 상황이다.

 

또 탈레반의 선전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있는 대사관이나 기관의 로고, 미국 국기인 성조기 등도 폐기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한 국방부 당국자는 탈레반이 카불을 통제하는 데는 며칠이 안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아프간 카불 코앞까지 진격…50㎞ 떨어진 도시 함락

전날 150㎞ 떨어진 가즈니 점령 후 풀리 알람도 장악

1주일 만에 전체 34개 주도 가운데 17곳 차지

 

    아프간 남부 대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한 후 차 위에 올라간 탈레반 조직원.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빠르게 점령지를 확대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의 코앞까지 진격하는 데 성공했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날 카불에서 남쪽으로 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로가르주(州)의 주도(州都) 풀리 알람을 장악했다.

 

사이드 카리불라 사다트 현지 의원은 AFP통신에 "이제 탈레반이 (풀리 알람을) 100% 통제하고 있다"며 "지금은 전투도 없으며 공무원 대부분은 카불로 달아났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전날 카불 남서쪽 150㎞ 지점의 거점 도시 가즈니(가즈니주 주도)를 차지한 데 이어 이날 카불에 더욱 접근했다.

 

로가르주 경계만 넘어가면 곧바로 카불이라 탈레반이 지금 같은 추세로 진격한다면 카불 함락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탈레반은 북부, 서부, 남부의 주요 도시 대부분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다.

 

AP통신은 탈레반이 이날 라슈카르가(헬만드주 주도), 타린코트(우루즈간주 주도), 칼라트(자불주 주도) 등 남부 지역 주요 세 도시에 이어 중서부 차그차란(고르주 주도)까지 줄줄이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과 AP통신의 집계를 합하면 탈레반은 이날까지 전체 34개 주도 가운데 17곳을 점령하게 됐다.

 

    아프간 남부 대도시 칸다하르에서 차를 타고 순찰 중인 탈레반 조직원. [AFP=연합뉴스]

 

탈레반으로선 지난 6일 남서부 님로즈주 주도 자란지를 시작으로 일주일 만에 전체 주도의 절반을 휩쓴 셈이다.

 

탈레반은 지난 5월 미군 철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대규모 공세를 벌이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영국, 독일 등 국제동맹군의 철군이 거의 마무리되면서 탈레반의 세력은 더욱 강해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한 당국자는 최근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군이 지금은 90일 이내에 수도가 함락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하는 등 탈레반의 카불 함락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미국, 영국 국방부는 전날 자국민과 각국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안전하게 철수시키기 위해 각각 3천명, 600명가량 규모의 군대를 추가로 현지에 일시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프간 내전 격화에 나토 긴급회의…서방국 엑소더스

캐나다, 대사관 철수 위해 특수부대 파병키로…미 · 영 뒤따라

블링컨 미 국무, 캐나다 · 영국 · 나토와 자국민 철수계획 논의

유엔난민기구  "역대 최대 민간인 사상자 나올 수 있어" 경고

 

1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헤라트를 점령한 무장반군 탈레반 대원이 로켓포를 들고 서 있다. [AFP=연합뉴스]

 

반군 탈레반이 빠르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력을 확대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자국민 안전 확보를 위해 파병을 포함한 비상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대피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AFP통신은 13일(현지시간)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이날 오후 3시부터 30개 동맹국 사절단과 함께 긴급 회의를 주재할 것이라며 회의는 아프간으로부터 대피 계획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번 회의에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와 이를 위해 무엇을 지원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에선 이달 31일로 예정된 미군 임무 종료를 앞두고 무장반군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차례로 장악해 세를 넓히며 내전이 격화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은 전날 마르크 가르노 캐나다 외교장관,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등과 각각 통화를 하고 카불에서 미국 민간인을 철수시키는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통화에선 아프간 치안상황을 두고 의견교환도 이뤄졌으며 블링컨 장관은 미국이 분쟁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계속 지지할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국무부는 덧붙였다.

 

개별국들은 이미 파병 결정을 내리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약 4천200명인 아프간 주재 대사관 직원 수를 줄이기로 하고 귀국하는 직원의 안전을 위해 카불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에 병력 3천명을 임시로 주둔시키기로 했다.

 

철군이 진행되는 와중에 일시적으로나마 병력을 다시 투입하는 것이다.

 

미국은 쿠웨이트에 만일에 대비한 지원군 3천500~4천명도 배치할 계획이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미국대사관에 한 해병이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200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미국대사관에 한 해병이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에 앞서 AP통신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캐나다가 아프간 주재 대사관 폐쇄 전 직원을 철수시키기 위해 특수부대를 파병한다고 전했다.

 

정확한 파병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캐나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일원으로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약 4만명의 병력을 아프간에 파병했다.

 

아프간에서 숨진 캐나다 군인은 150명가량이다.

 

영국도 아프간에 있는 국민의 귀국을 지원하고자 병력 600명가량을 파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아프간에 있는 영국민은 약 4천명으로 추산된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카불 주재 대사관을 폐쇄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현지 직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시흐리트 카흐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네덜란드는 대사관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개방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카불이 탈레반 공성전에 휘말리거나 이슬람 반군에 의해 포로로 잡힐 경우 방어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 5월 카불 대사관을 폐쇄하고 병력 철수를 마친 호주는 호주군과 호주 외교관을 도운 아프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다른 국가 대사관과 구호단체도 직원들을 아프간에서 빼내려고 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아프간에서 내전이 격화하면서 역대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EFE 통신은 전했다.

 

샤비아 만투 UNHCR 대변인은 제네바에서 취재진에 "급증하는 적대 행위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나고 있다"며 "아프간은 유엔이 기록을 시작한 이래 연간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특히 이번 갈등으로 여성과 소녀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지난 5월 말 이후 강제 도피한 아프간인 약 25만 명 중 80% 정도가 여성과 어린이"라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올해 초부터 약 40만 명이 자신의 집에서 강제 퇴거당했고, 거의 12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지방 도시에서 카불 지역으로 대피했다고 덧붙였다.

  

'공군력 전무·병력열세' 탈레반…아프간 정부군은 왜 추풍낙엽?

객관적 전력 뒤진 탈레반, 6일 이후 13개 주도 점령 '파죽지세'

정부군 '허수아비' 수준 취 약… 탈레반 전략은 더 정교해져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에서 순찰하는 탈레반 전투요원. [EPA=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탈레반은 지난 6일 이후 불과 일주일 정도 만에 34개 주도(州都) 가운데 13곳을 손에 넣었다. 중부와 수도 카불이 있는 동부를 뺀 전국 대부분이 탈레반에 의해 장악된 셈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탈레반의 무장 수준과 병력 규모다.

 

공군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돌격소총이나 로켓추진수류탄(RPG)을 등에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정부군을 쫓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탈레반 전투 요원은 슬리퍼를 신고 전투에 임할 정도다.

 

병력만 비교해도 군인, 경찰 등 아프간 정부 측은 30만명으로 탈레반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가테러센터와 백악관 등이 추산한 탈레반 조직원의 수는 6만명∼7만5천명 수준이다.

 

그런데 어떻게 정부군은 탈레반에 변변한 저항조차 못한 채 도미노처럼 무너져가고 탈레반은 갈수록 기세등등해질까.

 

    아프간 헤라트주에서 전투 태세에 임한 정부군. [AP=연합뉴스].

 

◇ 장부에만 존재하는 정부군…전장에선 사기도 바닥

 

13일 영국 BBC뉴스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실제 정부군의 상황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선 정부군 병력의 상당수는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유령 군인'인 것으로 지적됐다.

 

부패한 군경 간부들이 급료를 가로채기 위해 허수로 군인 수를 기재했다는 것이다. 이에 군 당국은 자신들의 실제 가용 병력 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기관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은 최근 정부군 내의 부패와 미심쩍은 병력 통계에 대해 "매우 우려된다"고 밝혔다.

 

사기 저하도 심각하다.

 

주요 시설을 방어해야 할 병력이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않고 무더기로 탈레반에 투항하거나 국경을 넘어 달아나고 있다는 보도가 속속 나올 정도다.

 

영국의 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잭 와틀링 연구원은 "정부군은 종족이나 가족 연고가 없는 곳에 종종 투입된다"며 그들이 쉽게 거점을 포기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몫한다고 분석했다.

 

미군이 오랫동안 육성에 공을 들인 특공대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고도로 훈련된 특공대원이 초소 경비나 루트 확보 등 비전투 작업에 투입되는 실정이다. 일반 병사가 특공대원의 지원이 없으면 전투에 나서지 않으려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지 특공대원 수는 1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고 BBC뉴스는 전했다.

 

SIGAR는 "특수부대 인력이 잘못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와중에 공군력의 핵심인 조종사들이 탈레반에 의해 표적 살해되고 있다는 점도 정부군 전력 약화에 기여하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몇 달 동안 8명 이상의 공군 조종사가 부대 밖에서 탈레반에 의해 살해됐다.

 

미군 철수로 미군 소속 엔지니어들이 떠나면서 항공기 등 주요 장비 운용과 부품 보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실제 임무에 투입되는 공군 전력은 갈수록 축소되는 상황이다.

 

UH-60 블랙호크 헬기부대의 경우 6월 현재 전체 전력 가운데 39%만 활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치는 지난 4, 5월의 절반 수준이라고 SIGAR는 설명했다.

 

향후 미군의 공습 지원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아프간 정부군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에서 순찰하는 탈레반 전투요원. [AP=연합뉴스]

 

◇ 진화한 탈레반…예상 깬 기습·돈줄 확보·든든한 배후

 

반면 탈레반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전략으로 정부군을 몰아붙이고 있다.

 

유리한 지역을 기반으로 차츰 세력을 넓히는 게 아니라 상대 '텃밭'을 기습적으로 빠르게 공격하면서 수도 카불을 에워싸는 것이다.

 

1994년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결성된 탈레반은 전통적으로 남부에서 세력이 가장 강했다. 농촌 지역을 주로 장악했고,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42%, 약 1천500만명)이 기반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미군 철수 시작 후 벌인 대공세에서는 서부와 북부의 대도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북부 지역은 과거부터 반(反)탈레반 정서가 강했으며 서부도 지역 군벌의 영향력이 큰 곳이었다.

 

정부군의 예상을 깬 탈레반의 전격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날까지 장악한 주도 13개 가운데 7개가 북부에 몰려있다.

 

탈레반은 또 국경 지대 거점 공략에도 힘을 기울였다.

 

마약 판매가 주 수입원이었던 탈레반이 국경에서 본격적으로 세금을 걷으며 전쟁 재원을 풍부하게 확보한 것이다.

 

반면 아프간 정부로서는 주요 수입원이 축소되면서 반격의 동력이 더욱 줄어들게 됐다.

 

탈레반의 승리가 이어지면서 미군이 정부군에 제공한 엄청난 양의 현대식 무기와 실탄 등도 탈레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물자들에는 군용 차량, 야간투시경, 기관총, 박격포 등이 포함됐다.

 

탈레반 조직원이 정식 군복을 입지 않고 전투에 임한다는 점도 정부군의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민간인과 뒤섞여 있다가 갑자기 총을 들고 정부군을 향해 공격한 뒤 민가나 고산지대 동굴 등 은신처로 홀연히 사라지곤 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실제 전투 요원 수도 알려진 것보다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BBC뉴스는 "다른 무장 세력과 후원 인력까지 더하면 조직원 수는 2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여기에 파키스탄에도 살고 있는 파슈툰족 4천300만명은 탈레반 동력의 간접 원천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은 탈레반 탄생기부터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서 양성한 '학생'을 탈레반 전사로 꾸준히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파슈토어로 '종교적인 학생', '이슬람의 신학생' 등을 뜻한다.

 

이와는 별도로 아프간 정부와 갈등 관계인 파키스탄도 과거부터 탈레반을 물밑에서 후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탈레반으로서는 해외에 든든한 배후를 갖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