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일본 정부, 미쓰비시중공업에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법원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쪽의 국내 거래대금을 압류·추심하라고 명령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현금화가 어려운 특허권·상표권 등의 압류 때와 달리, 이번 추심명령은 전범기업의 거래대금을 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즉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걸림돌이 적지 않아 실제 배상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지난 12일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 기업 엘에스(LS)그룹의 계열사 엘에스엠트론으로부터 받아야 할 8억5천여만원 상당의 물품대금에 대한 채권압류와 추심명령을 내렸다. 압류된 돈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에게 지급돼야 할 손해배상금과 지연손해금 등을 합친 금액이다.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각각 8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확정판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은 지금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피해자와 가족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엘에스엠트론과 거래해온 사실을 확인해 물품대금 채권을 압류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현금자산인 물품대금에 채권압류·추심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019년 1월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포스코의 합작회사인 피엔아르(PNR)의 주식을, 대전지법은 같은 해 3월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등록한 특허·상표권을 각각 압류했다.

 

그러나 주식과 특허·상품권은 곧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데다, 법원의 압류명령에 불복한 미쓰비시중공업이 항소와 상고를 하며 ‘시간 끌기’에 들어가면서 실제 배상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법원의 첫 현금자산 압류명령으로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배상을 받을 길이 열린 셈이지만,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외교적 상황이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법원의 결정을 두고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엘에스엠트론의 거래대상도 논란거리다. 엘에스엠트론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니라 그 자회사인 미쓰비시중공업 엔진시스템과 거래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압류·추심 명령이 내려진 돈이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니라, 법인이 다른 미쓰비시중공업 엔진시스템으로 가야 할 돈이라는 주장이다.

 

트랙터 엔진 등을 생산·판매하는 미쓰비시중공업 엔진시스템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이들 두 회사를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압류·추심 집행 취소 분쟁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는 “엘에스엠트론은 압류결정문 송달 이전까지 미쓰비시중공업과의 거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했지만, 압류결정문 송달 이후 거래 대상 기업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엘에스엠트론의 채권자가 미쓰비시중공업인지, 엔진시스템인지 확인되는 대로 후속 절차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