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 지원하던 대사관 직원도 모두 철수

 

공군 수송기 탑승 기다리는 아프간 협력자들=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4일(현지시간)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과거 한국을 도운 적이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데려오려는 협력자와 가족 전원이 탈레반 점령지를 벗어났다.

 

외교부는 한국으로 입국 예정인 아프간 인사 및 가족 365명이 한국시간 25일 오후 6시 10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밝혔다.

 

전날 먼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26명까지 한국행을 희망한 협력자 총 391명 전원이 안전지대로 빠져나온 것이다.

 

이들은 중간 경유지인 이곳에서 이르면 이날 저녁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아프간인들의 한국 이송 지원을 위해 카불에 입국해있던 주아프간 대사관 선발대 직원들도 함께 수송기를 타고 전원 철수했다.

 

'카불의 미라클' 난리통에도 희망자 전원 데려와

탈레반 검문소·혼란에 공항 진입 어려워…아프간인 탈출 금지 발표도

미국 '버스 모델'로 돌파… 협력자도 연락망 유지하며 일사불란 이동

 

우리군 수송기로 이동하는 아프간 협력자들=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로 이동하고 있다.

 

탈레반이 이미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과 협력한 현지인과 가족을 국내로 데려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러 국가가 아프간 협력자는 물론 자국민 구조에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부는 군 수송기까지 투입한 치밀한 계획과 미국의 협력 덕분에 한국행을 희망한 협력자를 한 명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25일 외교부에 따르면 그간 아프간에서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과 그들의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총 391명이 26일 중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당초 정부가 계획했던 이송 인원 427명보다 36명이 적다.

 

이에 따라 일부가 탈레반의 방해와 카불공항 주변 혼란 등으로 탈출길이 막힌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들은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화상 브리핑에서 "원하는 사람은 100% 나왔다"며 "36명 중에는 국내 잔류나 제3국행을 결정한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위당국자는 "지금처럼 비행기를 보내는 작전은 이번으로 마감하지만 36명 중 나중에 '도저히 안 되겠다, 한국 가야겠다'는 경우 개별적으로 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공군 수송기 탑승 기다리는 아프간 협력자들=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신원확인을 마친 뒤 한국 공군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100% 이송'은 현재 카불공항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이송 작전명 '미라클'이 떠오를만큼 매우 의미 있다.

 

협력자들은 군 수송기 도착에 맞춰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탈레반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피란민이 몰리면서 공항 진입 자체가 힘들다.

 

이 때문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도 자국민과 협력자 이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몇 국가가 미국에 호송차량(convoy)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불가하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 17일 수천 명을 공수할 계획으로 항공기를 보냈지만, 혼란 상태에서 겨우 7명만 탑승한 채 출발하기도 했다. 벨기에는 군용기에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고 한다.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는 20여 개국 외교차관 회의에서 이런 상황을 공유받은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저희가 낙담을 넘어 황당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공군 수송기에 오르는 아프간 협력자들=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4일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해결책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22일 열린 이 회의에서 제시했다고 한다.

 

미국이 거래하는 아프간 버스회사에 협력자들을 태운 뒤 버스가 미군과 탈레반이 함께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하게 하는 것으로 한국행 협력자들은 버스 6대에 나눠 탔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이 이날 오전 11시 협력자 이송에 대해 언론발표를 할 당시에도 버스 몇 대가 공항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고 고위당국자는 설명했다.

 

협력자들이 대사관, 병원, 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 자신이 속했던 기관별로 탄탄한 연락망을 유지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점도 이송에 도움이 됐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늦게 움직였다면 이송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은 주요 7개국(G7) 등의 만류에도 8월 31일까지 아프간에서 외국 군대를 철수하고 민간인 대피를 끝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정부가 협력자들을 태우기로 한 24일 밤 돌연 협력자의 공항 진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31일 자국민과 아프간 협력자 대피를 종료하고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했다.

 

공항의 안전을 보장하는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 정부 단독으로 이송 작전을 추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카불로 돌아간 대사관 직원들, 한국식 ‘비상연락망’ 풀가동

탈출영화 같았던 ‘작전명 미라클’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밖에서 한국 외교관과 우방국 병사들이 ‘KOREA’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한국으로 갈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길게는 7~8년씩 한국 정부를 도와 일을 했던 현지인과 그 가족 391명이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까지는 전쟁 영화 속 탈출 작전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애초 한국행을 희망했던 아프간인은 427명이다. 24일 이들 가운데 26명만 카불을 빠져나왔다는 소식에 작전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지만 25일 이달에 태어난 아기 3명 등 영유아 100여명까지 무사히 카불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국방부가 붙인 이번 이송 작전 이름은 ‘미라클’(miracle·기적)이었다.

 

외교부의 설명에 따르면 365명이 버스 6대에 나눠 타고 24일 카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 모두가 개별적으로 카불 공항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전날 공항에 도착한 26명은 탈레반의 검문검색과 공항 주변 인파를 뚫고 걸어 들어온 이들이었다.

 

다행히 22일 미국 정부가 우방국들에 제안한 ‘버스 모델’이 가시화했고, 정부는 이튿날 미국 정부와 탈레반 간 합의로 공항으로 진입이 가능한 버스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 뒤 카타르로 철수했다가 아프간인들의 국내 이송을 지원하기 위해 22일 카불로 돌아온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발 빠른 조처였다.

 

한국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 가능했던 ‘한국식 피라미드 연락망’도 이들의 탈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대사관과 코이카, 바그람 한국병원 등 근무지별로 대표를 뽑아 신속히 연락했다. 이들은 집결 장소와 시간을 공유해 정확히 모였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연락망이 굉장히 끈끈하고 탄탄”해 “원하는 사람은 100% 가깝게 집결했고 오늘 새벽 무사히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버스에 나눠 타고도 공항 진입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생아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봐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다행히 공항 주변은 총소리가 난무했던 대사관 직원들 철수 때보다 안정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시각 오후 6시께 무사히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애초 한국행을 희망했던 427명 가운데 36명은 개인 사정으로 아프간에 남거나 제3국 이송을 택했다. 이에 따라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이들은 대사관(21가구 81명), 병원(35가구 199명), 직업훈련원(14가구 74명), 차리카르기지 지방재건팀(5가구 33명), 코이카(1가구 4명) 근무자 등 391명이다.

 

이들은 대형 군수송기 KC-330(공중급유기)과 C-130을 타고 26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도착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이들의 경우 3개월 단기비자로 입국한 뒤 장기체류비자로 일괄 변경 조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원을 둘러싼 일각의 우려에 대해 외교부는 “여러차례 검토 및 확인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근무했던 공덕수 전 바그람 직업훈련원 원장은 “탈레반 통치하에 한국병원, 직업훈련원 조력자들을 그냥 두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된다는 건 거의 확실시된다”며 “(이들을) 구출하는 것은 인도주의 측면뿐 아니라 결코 친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신의와 의지를 국제사회에 다시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라고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한편 외교부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아프간인 3명과의 대화 내용을 이날 기자단에 제공했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최근 안보 환경 변화로 인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우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난시켜주었다”며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8월로 들어서며 “(아프간 내)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카불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를 피난시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3년부터 2년4개월 한국 대사관에서 일했다는 여성도 “(아프간을 떠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가족과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결심했다. 대사관으로 가 나와 가족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했다”며 “(탈출 계획은) 한달 전부터 시작됐고, 1주일 전에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는 매일 이메일로 상황을 업데이트했다”고 말했다. 30대로 보이는 또 다른 남성도 “2년 동안 한국인들과 일했는데 매우 친절하고 좋은 이들이었다. 그들 모두와 한국 정부에 매우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지은 길윤형 기자

  

문대통령 "한국 도운 아프간인에 도의적 책임 다해야"

"국민들 이해·협조 감사"…"불편함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 만전"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과거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국내로 이송하기로 것과 관련해 "우리를 도운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인의 국내 이송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이같이 말한 뒤 "우리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가니스탄 직원과 가족들을 치밀한 준비 끝에 무사히 국내로 이송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나아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면밀히 챙기라"며 "국내 도착 후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정부와 군에 지시했다.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 391명은 오는 26일 한국군 수송기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하며,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머물 예정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정부는 이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 등을 감안해 국내 이송을 결정했다.

 

아프간인 국내이송 브리핑하는 박경미 대변인=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국 조력 아프간인 국내 이송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한국 고맙다…가족 목숨 구하려 카불 떠날 수밖에"

한국대사관서 근무 여성 · 남성 감사 뜻 표시

"탈레반이 외국기관서 일한 사람 찾고 있어"

 

공군 수송기 타고 파키스탄으로 이송된 아프간인=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이 한국 공군 수송기에 탑승해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탈레반으로부터)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카불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한국 정부 지원으로 카불에서 탈출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A씨는 경유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뒤 이뤄져 25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는 외교부 기자단 요청으로 전날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성사됐다.

 

그는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2013년 9월부터 2년 4개월간 근무한 인연으로, 원하면 한국행을 택할 수 있는 427명의 '아프간 협력자'에 포함됐다.

 

A씨는 한국 군 수송기를 타고 가장 먼저 카불을 탈출한 26명 중 한 명으로, 남편 및 두 아들과 함께 26일 한국에 도착한다.

 

그는 한국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유를 묻는 말에 "쉬운 결정이었다. 내 가족을 구하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다"고 말했다.

 

카불에서 비교적 먼 지역에서 살았다면서 공항까지 가는 과정도 소개했다.

 

A씨는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 공항으로 향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탈레반 검문소는 접하지 못했다"면서 "공항으로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으로 널리 알려진 길이나 고속도로는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주 전에 한국행이 결정됐다는 그는 "1주일 간 매일 (대사관측과) 이메일로 소통하며 상황을 체크했다"며 "대사관 측에서 언제, 어디까지 와야 한다고 알려줬다. 여행증명서를 받은 3∼4일 후 여기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저 '고맙다'라는 말 이외에 더할 말은 없다"고 했다.

 

아프간에서 한국인들과 3년간 일을 했다는 남성 B씨도 고향을 떠나기로 한 이유는 A씨와 비슷하다.

 

역시 한국대사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B씨는 "탈레반은 외국 기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으려 하고 있다"며 "탈레반은 나와 내 가족에게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카불공항은 여권 소지 여부와 관계없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인파로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면서 "한국 팀은 우리를 공항 내부로 들여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고 한국 정부에 감사를 전했다.

 

“도와줘” 아프간 동료 아우성에 잠 못 이룬 밤…“이제 한숨 놨다”

아프간 바그람 기지서 한국병원장 근무

손문준 인제대 일산백병원 신경과 교수

 

     손문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교수(신경외과). 인제대백병원 누리집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의 한국병원장으로 일했던 손문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교수(신경외과)는 최근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며칠을 보냈다. 현지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아프간 동료들로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중 몇 명이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했어”, “도와줘”라는 조각난 메시지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25일  “잠을 못 이루고 초조해하기도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연락을 나누던 동료들이 외교부 등의 도움으로 전부 탈출에 성공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아프간 카불공항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391명. 이 가운데 35가구 199명은 손 교수가 지난 2010년부터 1년 반 동안 병원장으로 일했던 한국병원 동료와 가족들이다. 이 병원 건립과 운영은 한국이 아프간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부터 현지에서 민관 합동으로 운영한 지방재건팀(PRT)이 총책임을 맡았다. 지방재건팀은 직업 훈련원 등 여러 사업을 꾸렸고, 인제대 산학협력단이 병원을 위탁받아 관리했다. 전체면적 3천㎡ 규모의 2층 콘트리트 건물 안에 2개의 수술실과 30개의 병상 등을 갖췄는데, 2015년 6월30일까지 운영됐다.

 

손 교수는 “한국 의료진 인원이 25명, 현지 직원이 한국 인원의 2.5배 규모로 채용돼 같이 일했다”며 “수술과 입원실 운영이 가능한 2차 병원급을 운영하기엔 적은 인력이었고 당장 환자식도 구하기 어려운 악조건이었다. 하지만 외교부, 한국군, 한국 경찰단,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미군 병원단과 제62의무여단, 이집트 군병원단 등이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병원을 꾸려갔다”고 말했다.

 

   손문준 교수가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일하던 당시 모습. 손문준 교수 제공

 

손 교수는 아프간에서 귀국한 이후 현지 동료들과 연락을 위해 페이스북을 꾸준히 쓰게 됐다고 했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바그람에서 현지 동료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문화교류 행사를 한 기억도 많이 난다.

 

손 교수는 현지 상황과 관련해 “탈레반 집권 전에도 아프간 사람들은 해가 지면 언제든 탈레반을 마주쳐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며 “그런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비행기에 매달리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정말 저곳에 남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구나, 탈출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동료는 아프간을 탈출하지 못하면 부인은 탈레반과 결혼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현지 체류 경험을 돌이키며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거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소수민족 중에 하자라족이라고 있는데, 이들은 몽골이 정복 전쟁에 나섰을 때 아프간에 남은 몽골인 후손으로 우리 시골 할아버지들과 똑같이 생겼다”면서 “아프간엔 정말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관심을 가져보면 우리랑 멀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우리가 터키나 이집트에 스스럼없이 여행도 가고, 터키 사람들과는 언어가 비슷해 더 친근하게 느끼는데 그 나라들도 이슬람권”이라며 “이번에 한국으로 오는 아프간인들은 정말 수년간 우리와 재건사업을 함께 한 ‘특별공로자’이니,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사회가 맞아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하얀 기자

 

국내 아프간인 434명 특별체류 허가

법무부 “상황 안정까지 인도적 조처”

 

재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 한 어머니가 23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들의 구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아이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내에 머무는 아프가니스탄인 434명에게 특별체류를 허가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위기 상황을 고려한 인도적 조처다.

 

법무부는 25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탈레반에 의한 아프간 정국 혼란으로 아프간인들의 탈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체류 중인 아프간인을 대상으로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 조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체류 대상자들은 장·단기 국내 체류 아프간인 434명이다. 대체로 외교, 공무, 유학, 기업투자 등의 목적으로 한국에 머문 이들로, 체류 기간을 넘긴 불법체류자 72명도 이번 특별체류 대상자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체류 기간 연장이 어려워 기한 만료를 앞두고 출국해야 하는 아프간인들 가운데서도 국내 체류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국내 거주지와 연락처 등 신원을 파악해 특별 체류자격을 부여할 방침이다. 이 경우 별도의 심사를 거쳐 취업도 가능하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이재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기간 연장이 가능한 이들에게는 기존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조건이 맞지 않는 이들에 대해선 기타 자격으로 체류를 허가할 방침”이라며 “체류 기간을 넘겼지만 신원보증인이 있는 체류자의 경우, 강제 출국을 지양하고 아프간 정세가 안정된 뒤 자진 출국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원보증인 등 국내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형사 범죄자 등은 외국인보호소 등에 구금하는 보호조처를 할 예정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아프간인 특별체류 허가가 인도적인 배려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국민의 염려를 반영해 이들의 특별체류 허가 때 실태조사를 강화하는 등 국민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을 지원한 현지인 직원과 가족 약 400명이 국내로 이송된 뒤 장기 체류할 수 있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다. 옥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