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감금·고문 얼룩진 미국의 ‘치부’

부시 · 오바마, 폐쇄 약속 이행 못해

바이든도 공화당 반대 등으로 난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2007년 10월 교도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관타나모/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완료함으로써, 20년 전 9·11 테러 직후 시작된 아프간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이 역사상 최장기 전쟁 수렁에서 군화발을 뺀 것만으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이 만들어낸 미국의 치부인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는 일이 남아있다. 쿠바 관타나모만의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이 수용소에는 9·11 테러 용의자 5명을 포함한 39명이 수감중이다. 불법 감금과 가혹 행위 등 인권 유린의 흑역사로 얼룩진 이 시설을 바이든 대통령은 약속대로 임기 내에 폐쇄할 수 있을까?

 

가혹행위 무법천지…“지구상 가장 비싼 교도소”

 

관타나모 수용소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각종 테러 용의자들을 수감하고자 이듬해 1월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미 해군기지 안에 급조한 시설이다. 아프간, 파키스탄 등 주로 중동에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들이 이곳에 구금됐다. 경비 병력 1800명이 배치됐다. 현재까지 누적 수감자 수는 770명이며, 부시 정부 시절인 2003년에는 한때 677명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법치는 실종되고 인권 유린이 난무했다. 용의자들 상당수는 체포 동의 등 적법한 절차 없이 수감됐다. 부시 정부는 이들을 ‘적 전투원’으로 분류해 국제협약에 따른 포로 대우에서 제외시켰고, 민간 법정이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도록 했다. 부시 정부 시절 이곳에서 구타, 물고문, 수면박탈 등 가혹행위가 ‘향상된 심문기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최소 9명의 수감자가 숨졌고 이 가운데 6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약 15년간 구금돼 있다가 2016년 무혐의로 풀려난 모하메드 울드 슬라히(50)는 지난 12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2003년 여름 이 수용소에서 고문 당한 기억을 털어놨다. 그는 교도관들이 맹견으로 자신을 위협하며 구타해 갈빗뼈가 부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조사관이 테러에 공모했다고 인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인정하지 않으면 네 어머니를 납치해서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 수용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교도소’로 불리기도 한다. <뉴욕 타임스>는 이 시설에 40명이 수감돼 있던 2018년 기준으로 교도소와 관련 시설, 경비 인력, 부속 군사법원 등을 유지하는 데 5억4000만달러가 들었다고 2019년 보도했다. 1인당 약 1300만달러(약 152억원)가 들어간 셈이다.

 

현재 이곳에는 알카에다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등 9·11 테러 설계에 가담한 용의자 5명을 포함해 39명이 수감돼 있다.

 

오바마, 폐쇄 실패…바이든은 할 수 있을까

 

불법 감금과 고문이라는 오명 때문에 인권 단체 등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 수용소를 처음 만든 부시 행정부에서도 약 540명의 수감자를 파키스탄, 아프간,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송환하며 규모를 줄였다. 그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관타나모 수용소를 1년 이내에 폐쇄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수감자들을 뉴욕연방법원으로 이송해서 재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안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테러리스트를 미 본토로 들여서는 안 된다며 반대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예산안은 부결됐다. 오바마는 재임 8년 동안 수용소 폐쇄는 하지 못한 채, 수감자 197명을 석방하거나 제3국으로 옮겨 40명으로 줄이는 데 그쳤다.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의 방침을 뒤집었다. 그는 2018년 1월 국정연설에서,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할 것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명령했다고 밝혔다. 미국 보호에 필요하다면 이곳에 수감자를 추가로 보내겠다고도 했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관타나모 숙제를 넘겨받았다. 그는 ‘임기 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공약했다. 그 첫 걸음으로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관타나모에 수감중이던 압둘 라티프 나시르를 본국인 모로코로 돌려보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미 상원의원 24명이 바이든 정부에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국내적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또한 오바마가 넘지 못한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공화당의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넬과 상원 군사위 간사인 제임스 인호프 의원 등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는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관타나모에 있는 수감자들을 미국 본토로 옮기는 것 또한 오바마 시절 의회가 법으로 금지해 어렵다.

 

<워싱턴 포스트>는 11일 바이든 정부가 출범 8개월이 됐지만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과정에 오바마가 마주했던 법적, 정치적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폐쇄로 가는 길이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오바마 정부 때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특사였던 클리프 슬론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전담해서 부처 사이에 조율을 할 수 있는 비슷한 직제를 설치해야 한다고 이 매체에 말했다. 또한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으로 양분하고 있는 상원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쪽으로 기울기 전에 바이든 정부가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9일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 “이것은 말 그대로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우리의 국제적 입지에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시설”이라며 백악관이 이 수용소의 운용상황 검토를 지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