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부시 공화당 정부에서 고위직

이라크전쟁 지휘…나중에 “오점” 후회

대북 외교적 해법 강조한 협상파

퇴임 뒤 오바마·바이든 등 민주당지지

 

2001년 12월16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국무장관 후보자로 콜린 파월(왼쪽) 장군을 소개하면서 함께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으로, 이라크 침공에 깊이 관여했던 콜린 파월이 84살로 삶을 마감했다.

 

파월 전 장관의 가족은 18일(현지시각)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무장관이자 합참의장인 콜린 파월 장군이 코로나19로 인한 합병증으로 오늘 아침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파월 가족은 “우리는 놀랍고 사랑스런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은 파월 전 장관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자메이카 이민 2세인 파월 전 장관은 1937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뒤 뉴욕시립대를 다닐 때 학생군사교육단(ROTC)에 참여했다. 대학 졸업 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가 헬기 추락 등으로 두 차례 부상을 당했다. 그 밖에 1989년 파나마 작전 등 여러 군사 작전에서 활동했다.

 

파월 전 장관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고,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는 1989년 흑인 최초로 미 합참의장에 올랐다. 그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응해 시작된 걸프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축출에 성공하면서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미국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1992년, 1996년, 2000년 대선 때마다 대선 후보로 거명됐지만 출마를 고사했다. 이어 조지 W. 부시 행정부인 2001년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에 올랐다.

 

파월 전 장관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시작한 이라크 전쟁을 최고 외교사령탑으로서 지휘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을 두고 그는 2003년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가 대량파괴무기를 숨기고 있다’며 전쟁을 정당화했으나, 이후 미 정부는 이라크에 대량파괴무기는 찾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파월 전 장관은 국무장관에서 2005년 퇴임한 뒤 2003년의 유엔 연설을 자신의 삶에서 지울 수 없는 “오명”이라고 말했다.

 

파월 전 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는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협상파였다. 그는 2001년 국무장관에 기용되자마자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밝혀 부시 행정부 내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네오콘이 득세하던 때였다.

 

파월 전 장관은 공화당 정부에서 요직을 지냈으나, 이후에는 대선 때마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등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