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급 상원의원' 하나에 쩔쩔매는 바이든

● 토픽 2021. 11. 3. 02:3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민주당 맨친, 반토막 ‘재건 프로젝트’도 훼방

기후 대응책에 끈질긴 반대…‘1인 권력’ 누려

웨스트버지니아 석탄산업 대변…후원금 가장 많아

석탄거래업으로 큰 돈 벌기도… 당 안팎 비난 여론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1일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민주당엔 상원의원이 50명 있다. 그 하나하나가 대통령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CNN> 타운홀 행사에 나가 이렇게 말했다. 대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어려운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재임 1933~45) 이래 가장 원대한 프로젝트라는 ‘더 나은 재건’을 추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여당 상원의원 한명에 휘둘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말한 대통령만큼이나 센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조 맨친이다. 애초 복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3조5천억달러(약 4116조원)를 투입한다던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은 1조8500억달러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공화당의 반대 속에서 자기편이라고 여겼던 민주당 상원의원 2명이 다리를 건 게 결정적이었다. 하나는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지역구인 맨친 의원, 다른 하나는 애리조나주에서 20년 만에 선출된 민주당 상원의원 키어스틴 시너마다. 특히 맨친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 정책에 앞장서 반대하며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맨친 의원은 애초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반토막 프로그램’에도 난색을 표했다. 그는 1일 “난 우리 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최종 법률안에 열려 있는 입장이지만 나라에 해로운 법률안에는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축소 프로그램의 입안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으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민주당 하원의원들에게 축소 프로그램에는 상원의원 모두가 찬성한다고 밝힌 바이든 대통령이 또 한 방 맞은 셈이다.

 

집권당 상원의원 하나가 대통령의 대형 의제를 좌초 위기로 모는 상황은 민주당 50, 공화당 50인 의석 분포에 일차 원인이 있다. 이 구조에서는 공화당 전원이 반대해도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 과반 지지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한명이라도 이탈자가 나오면 안 된다. 민주당에서는 맨친 의원의 몽니에 “맨친 하나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코리 부시 하원의원)는 반발도 나온다.

 

대통령과 같은 당 상원의원 49명 모두와 맞서는 맨친의 옹고집은 그의 지역구와 관련이 있다. 미국 내 대표적인 빈곤 지역인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애팔래치아산맥 복판에 자리잡은 석탄산업 중심지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려는 기후변화 정책은 클린에너지 사업을 지원하고, 화석연료 사용 발전산업에 불이익을 주는 내용을 담았다. 주지사를 거쳐 상원에 입성한 웨스트버지니아의 정치 거물인 맨친 의원은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5550억달러 규모의 기후변화 대응 재원이 들어간 정책에 반대해왔다. 그는 “신뢰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감당 가능하며, 탄력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위해 모든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맨친 의원은 석유·가스산업,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석탄산업 분야에서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는 상원의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88년 석탄 중개 업체를 창업했다는 점이다. 아들이 경영하는 에너지시스템스라는 업체는 지난 10년간 맨친 의원에게 500만달러를 배당했다.

 

개인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맨친 의원의 행보에 시민단체들은 시위와 단식농성을 통해 “맨친의 더러운 석탄 제국”에 항의하고 있다. 언론도 “맨친이 민주당원이라니, 놀랍다”(<뉴욕 타임스>), “누가 당신한테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맡겼나”(<가디언>) 등의 제목을 단 내외부 칼럼으로 비판했다.

 

앞으로도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당 상원의원 1~2명에게 발목 잡힐 가능성이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 의석을 늘리는 게 확실한 해법이지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