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달라 선별 포획…2천년 전 유적지 연어뼈 유전자 ‘수컷’ 입증

덩치 큰 수컷 중심 고기잡이, 어획량 늘리면서 번식 타격 없어

 

번식지에 온 수컷 연어는 혼인색과 변형된 몸매로 쉽게 암컷과 구분된다. 원주민은 크고 눈에 띄는 수컷만 잡음으로써 번식력을 해치지 않고 다량의 연어를 잡을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북미 원주민 사이에선 해마다 늦가을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가운데 크고 눈에 띄는 것만 잡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전해 내려온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 전통지혜 덕분에 원주민들은 겨우내 주식으로 먹을 만큼 연어를 잡아 저장하면서도 2000년 동안 연어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유지했다.

 

제시 모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생물학자 등 캐나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수컷만 골라잡는 오랜 어법이 연어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널리 행해진 것 같다”며 “수컷 선별 포획에 관한 민속학적 기록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미 북서해안 원주민들은 연어, 조개, 청어 등 이 지역에 풍부한 수산자원에 기대어 살아왔다. 특히 최근에는 이들이 단순한 채취가 아니라 바다나 해안을 적극적으로 변형하면서 동·식물 자원의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지속해서 수확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번식지로 회귀한 수컷 연어를 사냥하는 불곰. 우리나라 동해안에 찾아오는 연어와 같은 종으로 연어 가운데 분포 영역이 가장 넓다.

 

캐나다 밴쿠버시 북쪽의 좁고 긴 버라드 내만 주변엔 2300년 전부터 다수의 원주민이 수산물에 의존해 살았다. 대규모 패총이 여러개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은 1500년 전부터 훈제하거나 말린 연어를 주식으로 겨울을 났는데 이때부터 연어 자원 보전을 위해 노력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자들은 “이 지역 원주민이 수컷 선별 어획을 해 왔음은 민속학적 증언에서 드러난다”고 밝혔다. 해마다 11월부터 연어(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연어와 같은 종)가 번식을 위해 찾아오면 원주민들은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로 만든 어살을 설치해 포획했다.

 

어살에 걸린 연어 가운데 암컷은 놓아주고 수컷은 그물, 양동이, 창, 몽둥이로 잡았고 밤에는 횃불을 밝혀 창으로 찔렀다. 이때 개울 바닥의 돌을 제거해 밝은 모래가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수컷 연어를 쉽게 구분하기도 했다.

 

연어는 유라시아의 아무르 강에서 한국, 일본, 베링 해, 캐나다, 미국 등 세계에서 서식지가 가장 넓은 연어 종이다. 태평양에서 1∼3년 자라 번식을 위해 태어난 하천으로 회귀하는데 은빛이던 몸 빛깔은 짙은 올리브색으로 바뀌고 산란 직전에는 자줏빛 얼룩무늬와 함께 주둥이가 길게 구부러지고 이가 커지는 등 번식경쟁에 대비한다.

 

번식지에서 수컷(위)과 암컷은 색깔과 형태가 많이 다르다. 도리안 노엘 그림, 제시 모린 외 ‘사이언티픽 리포츠’ (2021) 제공

 

이때 암컷과 수컷은 맨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외모와 색깔이 달라진다. 수컷은 더 크고 무거울 뿐 아니라 주둥이와 이가 더 크고 등도 활처럼 굽어 얕은 물에서는 물 밖으로 등이 드러난다.

 

연구자들은 연어가 원주민의 겨울 양식으로 중요한 자원이었던 이유로 겨울 직전 대량으로 하천을 거슬러 오르고 지방이 적어 훈제와 건조가 쉬운 점을 들었다. 연구자들은 “덩치가 큰 수컷 중심으로 잡기 때문에 어획량은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번식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자연 상태에서 연어는 암컷과 수컷의 비율이 같지만 실제로 수컷 한 마리가 다수의 암컷 알을 수정시킨다. 연구자들은 “자연적으로 수컷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수컷 선별 어획은 최대 지속가능 어획량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산란장의 연어 수컷. 구부러진 턱과 이가 두드러진다. 미 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 제공

 

그렇다면 원주민이 실제로 수컷만 포획했는지 어떻게 알까. 연구자들은 원주민 유적지에서 발굴한 연어 뼈에서 고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해 암·수를 가린 결과 2300∼1000년 전과 1710∼1070년 전 유적지 두 곳의 연어가 대부분 수컷인 사실을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토머스 로일 사이먼 프레이저 대 박사후연구원은 “2000년 동안 수컷 선별 어획은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현재 이 지역 연어 자원이 붕괴하고 있음을 들어 “수천 년 동안 검증을 거친 수컷 선별 어획 같은 토착 자원관리 전략이 현재 연어 어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