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라이시 대통령, 까다로운 협상안 내놔

미국의 이란 제재와 이란의 핵개발 맞바꿈이 관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8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시가바트에서 열린 제15회 경제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대미 강경파인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 복귀를 위해 미국 등에 매우 까다로운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아시가바트/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3년 전 일방적으로 탈퇴했던 ‘이란 핵협정’(JCPOA)을 복원하기 위한 협상이 5개월 만에 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재개됐다. 이번 협상 결과는 향후 미-이란 관계는 물론 중동 정세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전망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2015년 이란 핵협정을 되살리기 위한 협상이 이날 빈에서 시작됐지만, 이란의 강경한 입장으로 서구 국가들이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이란의 새 협상팀이 요구사항을 내놨지만 (협상에 참여 중인) 서구 당국자들이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핵 시설

 

지난 8월 대미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처음 열리는 이번 협상에서 이란은 2018년 5월 미국이 협정에서 ‘일방 탈퇴’한 책임을 물으며 그에 대한 배상과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강경한 안을 내놨다. 이란과 협정 당사국들은 지난 4월부터 6차례 만나 핵협정 재개를 위해 어느 정도 의견을 좁혔지만 요구 수준을 한껏 높인 것이다. 당시 미국은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이란은 핵협정 준수를 위한 절차를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를 열기로 의견 접근을 이뤘었다.

 

하지만 라이시 대통령 취임 후 상황이 변했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은 지난달 초 미국이 이란과 협상을 하려면 동결 중인 이란 자산 가운데 최소 100억달러(약 11조9300억원)를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이 협정 탈퇴 이후 이란에 부가한 제재에 대한 금전적 보상과 다시 협정을 탈퇴하지 않을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제재 해제만 해도 복잡한 문제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가한 1500여개에 이르는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지만, 미국은 인권 침해나 테러 지원으로 인한 제재도 있다고 맞서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한 뒤 이란이 2년 넘게 우라늄 농축 등 핵개발을 진행해왔다는 점이다. 이란 핵협정에 따르면 이란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3.67%까지만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지만, 현재 60%까지 농축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의 수와 수준 역시 기존 규정을 훌쩍 넘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란이 90% 농도의 무기급 농축우라늄을 추출하는 데 3~6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란이 고농축우라늄(HEU)을 실제 무기화하려면 2년, 실전 핵무기를 확보하는 데는 5년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이란은 핵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관들의 완전한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협상 대표인 로버트 맬리 이란 특별대사는 26일 미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와의 회견에서 “이란으로부터 나오는 징후들이 고무적이지 않다”며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선호하나 불가능하다면 “미국이 할 수 있는 선택들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군사적 선택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셈이다.

 

하지만 핵협정 복원이 미국과 이란 모두에 절실한 과제라는 점에서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제재가 시작된 뒤 이란 경제는 매년 30% 이상 되는 물가 상승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 대표단은 진지한 의지가 있으며 회담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이란은 핵협정을 맺은 당사국 중 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유럽연합(EU)과 직접 협상을 벌이고, 미국과는 간접 협상을 지속한다. 정의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