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기소 당하면 인생이 절단난다”

● 칼럼 2021. 12. 1. 02:4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내로남불 무감각의 검찰주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5일 ‘국민의힘 서울캠퍼스 개강 총회’ 행사에서 대학생들과 대화하며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기소하지 않고,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평생 검사로 살아왔고 검찰총장까지 지낸 이의 통찰이 담긴 말이다. 검찰권이 지니는 공적 무게감과 벼려진 양날의 칼 같은 위험성을 투박하지만 와닿는 언어로 표현했다. 그는 “범죄를 은폐하는 것은 그 범죄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도 했다. 윤 후보의 말은 최근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선명하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짚어내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먼저 ‘고발 사주 의혹’. 요체는 검찰이 특정 인물들을 찍어 검찰에 고발하도록 국민의힘에 고발장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에 착수해 기소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전제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기소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특정 인물들에게 “재앙”을 선사하기 위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윤 후보가 말한 “함부로 기소”하는 위험성을 오싹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 특정 인물들 중에는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피디도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은 언론의 의혹 제기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됐는데,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기에는 지지부진하다가 그가 퇴직한 뒤 수사가 급진전돼 권오수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대거 구속·기소됐다. 이제 김건희씨에 대한 수사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결국 고발 사주는 검찰총장의 가족과 관련한 정당한 의혹 제기를 한 언론인들의 “인생이 절단”날 뻔한 사건인 셈이다.

 

만약에 고발 사주가 실제로 실행돼 기자·피디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면 주가 조작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아마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이 점에서 고발 사주는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는 측면도 지닌다.

 

‘장모 문건’은 또 어떤가. 윤 후보가 검찰총장일 때 장모 최아무개씨가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최씨를 두둔하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고 대검찰청 대변인이 이를 언론에 적극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최씨는 이후 은행 잔고증명서 위조와 요양급여 부정 수급 혐의로 기소됐고 후자는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장모 문건 역시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얼마 전 대법원은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기소 자체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가 간첩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은 뒤 관련 검사들이 징계를 받자 검찰이 예전에 기소유예로 끝냈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을 끄집어내 유씨를 재기소했는데, 대법원이 ‘보복성 기소’라고 인정한 것이다. 간첩죄를 뒤집어 씌웠다가 무죄를 받자 다른 혐의로 다시 기소한 검찰의 행태는 “굉장히 무서운 것” 그 이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책임지는 검사는 없다.

 

이밖에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 룸살롱 향응 검사 99만원 불기소 사건 등 검찰이 “법률적 숙련”을 이용해 기소를 불기소로 바꾸고 불기소를 기소로 바꾼 사건들은 부지기수다.

 

이렇게 검찰은 한없이 무거운 검찰권을 노리개 삼고, 검찰권의 사유화라는 위험천만한 유희를 벌여왔다. 윤 후보는 그 조직의 일원이었고 수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자신이 검찰총장으로서 ‘판사 사찰’ 문건 작성·배포, ‘채널에이(A) 사건’ 감찰·수사 방해 등 일그러진 검찰권 행사로 징계를 당했다. 법원은 이 징계 사유가 중대해 면직 처분도 가능할 정도라고 판결했다.

 

서두에 인용한 윤 후보의 말은 ‘검찰의 중립성 보장 방안’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는 ‘검찰 인사의 공정성’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검찰권이 아무리 불공정하게 행사돼도 조직 전체가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데 그 안에서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히든 달라질 게 있을 리 없다. 고발 사주, 장모 문건, 보복 기소 등 비뚤어진 검찰권 행사를 엄히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검찰을 향한 출발점이다. “무서운” 권한을 주면 책임도 무섭게 묻는 게 민주국가의 원리다. 독일·스페인·노르웨이·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 판검사의 직권남용·직무유기를 일반 공무원보다 더 중하게 처벌하는 ‘법 왜곡죄’를 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검찰 인사를 통해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윤 후보의 답변을 보며 오히려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윤 후보는 그를 검찰총장에 앉힌 인사가 검찰 중립성을 위해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할까. 그는 검찰 중립성과 배치되는 행위로 징계를 받지 않았나. 무엇보다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퇴직해 대선에 뛰어든 것 자체가 검찰 중립성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 아닌가. 이 질문은 대선 후보 윤석열에게, 그리고 만약 그가 당선되더라도, 묻고 또 물어야 할 태생적 질문이다. 다음에 윤 후보를 만나는 청년들도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 박용현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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