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칼럼] 윤석열의 ‘황당 언행’과 ‘검찰 DNA’

● 칼럼 2021. 12. 31. 03:2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윤석열 국의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대구시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단체인 전국 친박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며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 논설위원

 

세무서장이 육류업자한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다. 그런데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이 6차례나 기각한다. 그리고 세무서장은 해외로 도피한다. 8개월 만에 인터폴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되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또 기각해 무사히 귀가한다. 검찰은 2년이나 시간을 끌다가 슬그머니 무혐의 처분한다. 세무서장의 동생은 검찰에서 잘 나가는 특수통 검사다.

 

영화에 나와도 비현실적 설정이라고 비웃음을 살 법한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2012년 시작된 이 비현실적 현실은 2021년 12월29일까지 이어졌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은 사건 발생 10년 만에야 겨우 기소됐다. 검찰 내부의 비호세력 없이 이런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0%다. 윤 전 서장의 동생인 윤대진 검사장은 당시 대검찰청 중수2과장이었고,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었다. 윤석열은 ‘대윤’, 윤대진은 ‘소윤’으로 불릴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그림은 너무도 뻔한데, 대윤·소윤이 윤우진 전 서장을 비호한 의혹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10년을 흘려보냈으니 오죽하겠는가.

 

‘윤우진 사건’은, 동영상 속 얼굴을 뻔히 보면서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던 ‘별장 성접대 사건’과 더불어 ‘제 식구 봐주기’ 수사의 끝판왕이다. 다양한 법기술과 고도의 뻔뻔함을 발휘해 국민의 공분 속에서도 사건을 덮어버렸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고서는 감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표적으로 삼은 인물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난도질하면서 제 식구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이중잣대가 검찰의 디엔에이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검찰총장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윤석열 후보도 이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윤 후보는 29일 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놀라운 말을 했다. “수사 과정에서의 자살은 수사하는 사람들이 좀 세게 추궁하고 증거 수집도 열심히 하고 그러니까, ‘이게 지금 진행되는 것 말고도 또 내가 무슨 걸릴 것이 있냐’ 하는 불안감에 초조하고 그러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도 하는 것이다.” 별건 수사로 압박하고 모멸감을 주며 몰아붙여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는 잔인한 ‘수사 기법’을 자인한 셈이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나 자성도 묻어나지 않는다. 그가 검사로서 어떤 태도로 수사에 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반면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과 재직증명서 위조 의혹과 관련해서는 과거에 그가 수사하거나 수사를 지휘한 신정아씨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씨 사건에서 보여줬던 냉혹함을 찾아볼 수 없다. 장모가 두가지 범죄 혐의로 각각 실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서도 남의 일이라는 듯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의와 공정, 법치라는 그의 구호가 허망할 뿐이다.

 

검찰과 윤석열 후보는 사과에 인색하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국민이 위임한 검찰권을 잘못 행사했으면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게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윤우진 사건이든 김학의 사건이든 사과하는 검사가 한 명도 없다. 과거의 수많은 조작 사건, 강압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대신해 권한을 행사하는 공복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소유한 지배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행태다. 그런 인식이 배어있는 탓인지 윤 후보도 사과해야 할 때 사과하지 않아 물의를 빚는 일이 잦다. ‘개 사과’ 논란에 이어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도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후폭풍에 휩싸였다.

 

그런 윤 후보가 매우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사과를 한 대상이 있다. 박근혜씨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 출신인 윤 후보는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대구를 방문해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하더니 최근 특별사면에 즈음해서도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피의자를 수사해 처벌했는데 미안하다니, 검사로서 자기 부정을 하는 셈이다. 출세를 위해선 알량한 검사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불의와 손잡던 과거 정치검사들의 굴신이 떠오른다.

 

독재정권이든 부패정권이든 공생관계를 맺어 부역하면서 검찰의 특권을 보장받고 이를 통해 권력과 부를 누린 게 검찰의 폐단이었다. 윤 후보의 요즘 행보를 보면 그런 속성이 뿌리깊게 잠재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반복적으로 독재정권을 미화하고, “토론을 하게 되면 싸움밖에 안 나온다”는 망발로 유권자 국민과 민주적 선출 절차를 비웃는다.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를 모독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내놓는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선 후보인가 싶을 정도다. 이런 인물이 검찰총장을 지내고 조직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으니 검찰 조직의 민주적 소양 수준을 알 만하다.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선 후보가 되는 것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허무는 일이지만 검찰 내부의 비판과 자성은 없었다.

 

검찰의 폐단을 바로잡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인데 윤 후보를 통해 그것이 정치에까지 고스란히 이식된다면, 암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