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냐?”고 묻자 “당신은 행복하냐?”고 되물어

 판매가 25만 달러…CES 기간 중 총 4건 주문돼

 

6일 ‘시이에스(CES) 2022’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엑스포 ‘유레카 파크’에 전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Ameca).

 

6일 세계 최대 아이티(IT)·가전 전시회 ‘시이에스(CES) 2022’ 스타트업 전시장의 주인공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Ameca)였다.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엑스포에 마련된 ‘유레카 파크’에서 본 아메카는 관람객들과 대화를 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처럼 눈썹과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고, 눈을 깜박였다. 눈동자의 움직임 방향이나 속도도 무척 자연스러웠다.

 

한 관람객이 아메카를 향해 ‘행복하냐’고 묻자, 로봇은 “행복하냐고요? 저는 로봇이어서 아무것도 못 느끼지만 만약 제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100% 행복하다고 말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어 아메카는 “당신은 행복한가요?”라고 되물어 관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아메카는 영국의 로봇 제조업체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가 지난달 공개한 로봇으로, 이번 시이에스 전시에서 처음 실물을 선보였다. 아메카의 가격은 25만달러(약 3억원)에 달한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모두 4건의 주문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라스베이거스/글·사진 선담은 기자

 

CES 2022 개막…3대 화두는? “‘메타버시안’ 되시렵니까“

‘메타버스, 로보틱스, 친환경’ 주요 화두 부상

움직이는 가전제품, 자동차 위상 높아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전시장서 간담회

‘손가락 깨무는 동물로봇’ 등 이색 제품 눈길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내 컨벤션센터 1층에 마련한 시이에스(CES) 안내 데스크가 한산한 모습이다.

 

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중심부의 유명 리조트 만달레이 베이 내 컨벤션센터(전시장).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박람회 ‘2022 시이에스(CES)’ 개막을 하루 앞두고 오전부터 주요 전시회 참가업체들의 기자간담회가 잇따라 열렸다.

 

전시장 출입증을 발급하는 1층 데스크엔 안내 직원만 20여명이 배치돼 있다. 반면 출입 배지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은 3명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예전엔 이곳에서 수백명이 줄 서 북새통을 이뤘다”며 “올해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시이에스는 과거와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 막바지 개막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확산 우려 때문이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열린 세계 최대 통신칩 제조사 퀄컴의 간담회장은 준비된 300여석 중 절반 정도만 찼다.

 

하지만 행사에 참석한 기업인과 언론의 관심은 컸다. 2∼3년 뒤 일상으로 스며들 최신 기술을 발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자리여서다. 퀄컴 발표 내용에도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진출을 예고한 신사업 분야는 두가지다. 먼저 증강현실(AR) 안경에 들어가는 칩이다. 메타버스(가상세계) 시대 본격화에 대비한 것으로 미국의 대형 기술기업(빅테크)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또 전기차의 통신·제어용 반도체 신제품으로 자동차 시장 공략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전기차는 스마트폰보다 시장 규모가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에요. 기술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면서 이제 시이에스는 사실상 차가 주인공인 전시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임원 얘기다.

 

스마트폰·노트북·티브이(TV) 등 성장이 정체된 전통 가전제품 대신 굴러다니는 가전제품인 전기차가 기업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만 직접 전시장을 찾아 기자회견을 한 것도 상징적이다. 행사 주최 쪽이 올해 새로 설치한 대규모 전시장(웨스트홀)엔 자동차 업체들이 그득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 2022’ 비전 발표회에서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 회장은 이날 메타버스와 로봇공학(로보틱스)을 결합한 ‘메타모빌리티’라는, 그룹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 시이에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인 가상세계와 로봇을 자동차에 동시에 접목하겠다는 거다.

 

메타버스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현실세계의 공장을 똑같이 베낀 가상세계 속 공장에 로봇 기술을 더하면 사무실이나 방 안에 앉아서 생산시설을 돌려볼 수 있다. 현대차는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손잡고 이런 똑똑한 공장을 실제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 센서가 인식한 현실세계 이미지가 정확한지 가상세계와 대조해 자율주행 컴퓨터의 인지기술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 회장은 “앞으로는 집에서 증강현실(AR) 기기를 쓰고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기계를 다루는 게 현실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올해 시이에스에서도) 융합 기술이 많이 선보일 것 같고, 친환경 흐름과 메타버스 등을 관심있게 보려고 한다”고 했다.

 

엘지전자도 이날 온라인을 통해 자율주행 맛보기 차(콘셉트카) ‘옴니팟’에서 가상 공간에 접속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자동차 스스로 운전하는 시대가 오면 차는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서 가상 세계와 만나는 플랫폼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스티브 코닉 부사장은 전 날 ‘올해 주목해야 할 기술 동향’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메타버스는 생각보다 가깝고, 우리의 물리적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라며 “올해 시이에스에서 메타버스의 첫걸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새로 제시한 ‘메타버시안(가상세계 참가자)’이라는 개념도 눈길을 끌었다.

 

글로벌 농기계 제조업체 존 디어가 4일 ‘CES 2022’ 사전 행사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트랙터. 존 디어 누리집 갈무리

 

현대자동차가 4일 ‘CES 2022’ 비전 발표회에서 선보인 다목적 바퀴 로봇 뼈대(플랫폼) ‘모베드’. 현대자동차 제공

 

세계적인 농기계 제조회사 존 디어는 인공지능(AI)이 카메라 6대를 이용해 스스로 밭을 가는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였다. 로봇이 사람 일을 대신하는 자동화 시대가 성큼 다가온 모습이다. 현대차도 물건에 붙여서 쓸 수 있는 일종의 바퀴 로봇인 ‘피엔디(PnD) 모듈’과 문턱·계단·경사로 등을 오갈 수 있는 다목적 바퀴 로봇 뼈대 ‘모베드’를 공개했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친환경 기술은 최근 시이에스 행사에서 갈수록 그 중요도가 커지는 분야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시이에스 기조연설의 주제를 ‘미래를 위한 동행’으로 정했다. 삼성전자 쪽은 지속 가능한 일상을 위해 제품 개발부터 유통·사용·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또 올해부터 티브이 박스뿐 아니라 박스 안 스티로폼과 홀더 등도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포장 박스를 생활 소품으로 쓰는 에코 패키지를 확대 적용하겠다고 했다.

 

한 부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가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의 가치를 일깨웠다”면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선 업종을 초월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CES 2022’ 사전 행사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기업들의 톡톡 튀는 기술을 담은 아이디어 제품을 만나는 것도 시이에스에서만 즐길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예를 들어, 일본 로봇업체 유카이 엔지니어링은 전날 ‘아마가미 함함’이라는 이색 동물 로봇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이 로봇은 사람이 로봇 입에 손가락을 넣으면 그 끝을 아기나 반려동물처럼 깨무는 게 특징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위안을 주려는 취지”라고 했다.

 

일본 로봇회사 유카이 엔지니어링이 지난 3일 ‘CES 2022’ 개막을 앞두고 내놓은 이색 동물 로봇 ‘아마가미 함함’(Amagami Ham Ham). 유카이 엔지니어링 누리집 갈무리.

 

마스크 아래 쪽에 환기 시스템을 단 쿨링 마스크, 특수 필터를 장착해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을 원천 차단하는 완전 밀폐형 마스크 등도 등장했다.

 

물론 새로 등장한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의문시하는 시각도 있다. ‘반짝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거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올해 시이에스 동향을 다루는 기사에서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기까진 기술기업들이 내세우는 게 무엇인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 많고,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라스베이거스/ 박종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