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 “러시아군 자포리자 원전 주변 장악 통보”

지역 주민들 ‘바리케이드’ 치며 원전 지키기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2일 러시아군을 상대로 원전을 지키기 위해 도로를 막고 있다. 트위터 갈무리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을 놓고 러시아와 지역 주민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원전 주변까지 진입했고,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를 지키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며 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일(현지시간) 자료를 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주변 지역을 장악했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15기 중 6기를 보유한 가장 큰 원전이다. 우크라이나는 원전이 전체 발전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원전을 러시아군이 장악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 등을 보면, 2일 자포리자 원전을 지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대거 몰려와 도로를 막았으며 차량, 타이어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자포리자 지역 주민들의 저항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영상과 사진으로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자포리자 원전 자체의 통제권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핵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위치한 핵폐기물 저장소에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한 바 있다. 주요 건물이 파손되거나 방사성 물질 유출은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폭발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체르노빌 원전 시설 통제권은 러시아가 장악한 상태다. 김소연 기자

 

러-우크라 2차 협상 시작…우크라 주요 도시 헤르손 점령당해

 

푸틴, 우크라 비무장·중립화 조건 제시

“무슨 수를 써서든 목표 이뤄낼 것”

수도 키이우 쪽으로는 러시아 진격 느려

 

미 국방부 “전열정비 뒤 총공세 가능성”

유엔, 러 규탄 결의안 만장일치로 채택

미, 러 정유사들에 대한 기술 수출 차단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어린이들이 3일 폴란드 국경지대의 프셰미실에 마련된 대피소에 모여 있다. 프셰미실/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침공 8일째인 3일(현지시각) 남부 항구도시 헤르손을 장악했다.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저지하고 있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황이 이어지고 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조기 종결하는 데 실패한 러시아가 ‘포위전 뒤 총공세’로 전술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는 무슨 수를 쓰든 우크라이나 비무장화와 중립화 목표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지연시키려 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요구사항을 더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두 나라는 이날 오후 벨라루스 서남부 브레스트에서 2차 협상을 시작했다.

 

인구 30만의 요충지인 헤르손의 이호르 콜리하예우 시장은 이날 <뉴욕 타임스>에 무장한 군인 약 10명이 시청 건물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군이 도시 내에 없으며, 거주민들은 “시 정부로 들어온 무장한 이들(러시아 병력)”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시엔엔>(CNN)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를 처음 점령했다며, 이를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2대 도시인 동부의 하르키우에선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도심의 시 의회, 전화국, 텔레비전 탑 등을 겨냥해 포격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주민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소련 사이에 처참한 격전이 이어졌던 전투를 빗대 “하르키우가 21세기의 스탈린그라드”가 되고 있다고 평했다.

 

수도 키이우에선 외곽에 구축된 길이 64㎞에 달하는 러시아군 전력이 여전히 도심으로 진입하지 않고 대기 중이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일 러시아군이 “지난 24~36시간 동안 주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며 그 이유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 △예상치 못한 군수지원 차질 △전열 재정비·재평가를 꼽았다. 미군은 수도를 기습 타격해 전쟁을 손쉽게 끝내려던 러시아군이 이제 주요 도시들을 포위하고 물자 공급과 탈출로를 차단해 항전 의지를 분쇄한 뒤 기갑부대를 동원해 일거에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국방부는 2일 개전 후 처음으로 러시아 병사 498명, 우크라이나 병사 2870명이 사망했다며 피해 규모를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앞서 러시아 병사를 최소 5840명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유엔은 2일 긴급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라는 압도적 지지로 채택했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주요 산업인 정유산업을 타격하기 위해 석유·천연가스 추출 장비 기술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는 추가 조처를 내놨다. 이 조처가 이어지면, 에너지산업에서 러시아의 지위는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에 대한 금수 조처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떤 것도 테이블 밖에 있지 않다”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전쟁의 포화를 피하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탈출 행렬은 이어졌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는 개전 후 2일까지 100만명의 난민이 폴란드 등 이웃 나라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 인구(약 4400만명)의 2%가 넘는 규모다. 황준범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러시아 루블화 가치 사상 최저…신용 ‘투기등급’으로

  3일 오전 한때 달러당 118.69루블

“정크” 수준 신용에 더 떨어질 가능성

 

2일(현지시각)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시민들이 전광판에 표시된 환율을 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세계 각국이 가한 경제제재 때문에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3일 또다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러시아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추면서 루블화 가치가 3일(현지시각)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이날 오전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루블화 환율이 달러당 118.69루블까지 치솟았다가 소폭 하락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달러당 110루블을 넘어간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루블화 환율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달러당 80루블 아래였으나 지난달 24일 80루블을 돌파한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28일 루블화 추가 하락을 막으려고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대폭 올렸지만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잇따라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이른바 “정크” 수준으로 불리는 투기등급으로 낮추면서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디스와 피치는 이날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6계단씩 낮췄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피치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종전 ‘BBB’에서 ‘B’로 낮추고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렸다. 피치는 한 국가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6계단 떨어뜨린 건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 이후 처음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제재로 거시금융의 위험이 부각되고 은행들에 대한 제재가 추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Baa3’에서 ‘B3’로 등급을 낮췄다. 세계 3대 평가사 중 나머지 한곳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앞서 지난주 러시아의 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내린 바 있다.    신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