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감사하는 마음

● 교회소식 2011. 10. 18. 14:08 Posted by SisaHan
감사절을 지나면서 살아온 날들을 감사함으로 돌아보고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자리를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지난 주일은 24절기 가운데 한로였습니다. 이제 겨울 채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민 와서 살면서 저는 습관처럼 24절기를 의식하며 삽니다. 
절기라는 말은 ‘마디 절 節’과 ‘기운 혹은 숨 氣’가 결합된 말입니다.
옛 어른들은 유장하게 흐르는 자연의 순환과 숨결을 나름대로 구획지어 놓고 철에 따라 사셨습니다. 그 숨결을 거스르지 않으니 삶이 여유로웠고 푼푼했던 것 같습니다. 이 맘 때가 되면 나뭇잎도 떨어지고 고니는 끼룩거리며 높이 납니다. 월동준비는 바삐 서두르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보낼 수 밖에 없었지요. 여성들은 무와 배추로 김장을 담그고, 남자들은 독이나 바탱이 항아리를 짚으로 감싸 땅에 깊이 묻었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참 많았습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뚫어놓은 창호문도 새로 해야 했고, 쥐구멍도 막아야 했습니다. 소나 돼지가 사는 외양간에는 떼적을 쳐주고, 땔 나무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린 지금,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낙엽이 이렇게 서럽게 지는데도 도무지 그리운 게 하나 없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움이 없다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세상만사에 다 심드렁해지면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그리운 것도 없고, 쓸쓸하기만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제시하자면 아주 처절하게 고독해 보십시오.”라고 쓴 어느 분의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혼자 길을 떠나 며칠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순례’입니다.
순례란 물론 종교인들이 자기들의 정체성의 뿌리가 될 만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을 뜻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찾아가는 먼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라 하여 패키지로 몰려다니는 순례 말고, 정말 철저히 고독한 순례를 해보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숨결이 머물고 있는 갈릴리나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걸으셨던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걷고 싶어 합니다. 순례란 자기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종교라는 말은 어원인 ‘religare’는 우리를 근원과 다시 연결시킨다는 뜻입니다. 팔레스타인 인근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차례, 유월절(Pascha), 칠칠절(Shavuot), 초막절(Sukkot)에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절기들은 원래는 농사력과 관련되어 있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들 역사적 경험과 결부시켰습니다.
 
니산월(우리의 경우 3-4월)에 있는 유월절은 보리와 아마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였는데 나중에는 출애굽 사건과 연결되었습니다. 이른 무화과와 포도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인 칠칠절은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의미가 덧입혀졌습니다. 대추야자와 여름 무화과를 수확한 후에 즐기는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경험과 결부되었습니다. 각각의 절기마다 자연의 리듬을 배경음으로 깔고, 역사적 경험을 주선율로 연주했던 것입니다.
저는 순례의 축제를 가진 나라를 부러워합니다. 시편 기자는 “축제의 함성을 외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 그들은 주님의 빛나는 얼굴에서 나오는 은총으로 살아갈 것”(시89:15) 이라고 노래합니다. 좋은 나무에서 딴 열매를 가져오고, 종려나무 가지와 갯버들 나무를 꺾어들고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을 통해 그들은 더 깊이 하나로 엮여집니다. 김현승 선생님의 시 <감사하는 마음>의 마지막 연은 언제 보아도 감동적입니다. 감사하는 마음-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主人이 누구인지를 아는 마음이다. 그렇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이는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가을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사의 마음을 되찾는 행복을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박피득 목사 - 임마누엘 감리교회 담임목사>



세계선교협의회·선교사협의회 창립… 세계선교 소명 일깨워


‘10만 선교사 시대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지난 29일 막을 올린 제3차 캐나다 한인 세계선교대회가 2일 저녁 폐회예배를 끝으로 나흘간의 대회를 마쳤다.  앞서 열린 서부지역 밴쿠버-캘거리-에드몬튼 대회에 연이어 개최된 토론토대회는 세계각지 선교사 45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폐회 예배를 포함해 모두 7개 교회에서 열려, 대회 전체의 참가인원은 기대를 밑돌았지만, 참가교회와 성도들에게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소명을 일깨우면서 470명에 달하는 선교헌신 결심자가 나오는 성과를 냈다. 또 기간 중 캐나다 한인교회 세계선교협의회(회장 석동기 한인감리교회 담임목사: 교협 부회장)와 한인 해외선교사협의회(공동회장 김인철 염광교회 원로목사·전동열 큰빛교회장로)가 각각 창립돼, 캐나다 교회와 성도들의 해외선교 조직화·체계화의 초석을 놓았다. 선교대회는 5일 몬트리올에서 6개 지역교회 연합선교대회를 열고 이어 주말에 핼리팩스에서 연합선교대회를 여는 등 캐나다 서부에서 동부를 횡단하는 선교대장정 집회열기가 이어진다. 다음 제4차 대회는 세게선교협의회 주최로 2015년 열릴 예정이다.
 
온타리오 한인교회협의회(회장 주권태 수정교회 담임목사)와 한인 세계선교협의회(사무총장 박형서 선교사) 공동 주최로 범교단 초교파적 행사로 열린 이번 토론토 대회는 2일 저녁 서부장로교회(담임 박헌승 목사)에서 열기 가득한 폐회예배를 드렸다.  교협 부회장인 석동기 목사가 사회를 맡아 각지 선교사들의 입장과 인사로 시작된 예배는 박헌승 목사의 기도에 이어 이순덕 선교사(중국)의 간증과 이대희 목사(순교자 김영학선교사 기념사업 사무총장)의 김영학 선교사 후손 김지영 교수에게 감사패 전달, 이기제 선교사(볼리비아)의 설교, 이요환 목사(염광교회 담임)의 헌금기도, 배성은 목사(제일 장로교회 담임)의 광고 등이 이어진 뒤 김인철 선교사(알바니아: 염광교회 원로목사)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모두 기립해 ‘선교의 불꽃 밝히소서’ 찬양을 합창한 후 목사회장인 전승덕 목사(헤브론교회 담임) 축도로 막을 내렸다. 이날 서부장로교회 당회원들과 연합찬양단, 장로성가단이 특별 찬양했다.
 
예배 말씀에서 이기제 선교사는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이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은 존재”라고 지적.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주님의 품성을 전하라는 목적으로 구원하셨음을 분명히 밝히셨으니, 우리가 선교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본래의 존재의미를 되찾아 인생 모두를 이방인을 위해 던지는 삶, 다같이 기도하며 복음의 횃불을 드는 주역들이 되자”고 선교사명을 강조했다. 이날 에배에서 모두 125명의 선교결심자가 나와 선교사와 목회자들이 이들을 위해 축복기도했다. 
김인철 선교사는 이날 대회 참가 선교사들을 대표해 낭독한 선언문을 통해 ▲순교자의 정신으로 선교사역에 힘쓰며, ▲성경말씀에 충실한 그리스도 제자양육에 매진하고, ▲선교 연합운동에 더욱 힘쓰고, ▲10만 선교사 시대 부응을 위해 선교대회를 계속 섬긴다는 등 4개항을 선언했다.
대회 사무총장인 박형서 선교사(러시아)는 폐회인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면서 대회를 섬기고 참여해준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 4년 후 2015년 제4차 선교대회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했다.
 
주권태 교협회장은 “짧은 준비기간으로 다소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선교사들을 위로·격려하고 도전받으며 감격하고 헌신하는 시간이 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연합행사에 열심히 동참해 주신 교회와 성도들께도 고마움을 표한다”고 전하고 “앞으로 4년 마다 열릴 대회를 통해 큰 은혜를 누리며 10만 선교사 시대를 열어가는 세계선교의 주역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한편 지난 29일 저녁 큰빛교회(담임 임현수 목사)에서 열린 개회예배는 주권태 목사 사회로 정광균 토론토총영사의 인사와 손명수 목사(한인장로교회 담임)의 기도, 백성아 선교사(남아공)와 허정기 목사(몬트리올 호산나교회 담임) 및 안문숙 탈렌트의 간증, 조영상 선교사(일본)의 설교, 박준호 목사(하나님의 지팡이교회 담임)의 헌금기도, 박치명 목사(양문교회 담임: 교협 총무)의 광고 등이 있었으며, 예사랑 몸찬양단과 큰빛교회 여성중창단 등이 특별 찬양했다.
30일과 10월1일 주일은 선교사들이 수정교회, 서부장로교회, 염광교회, 한인장로교회, 소망교회(담임 서인구 목사), 임마누엘 감리교회(담임 박피득 목사) 등 6개 교회로 분산돼 선교세미나와 집회를 인도했으며, 주일 낮 예배에는 모두 15개 교회에서 선교사들이 말씀을 전했다.

< 문의: 416-250-1680 >


●제 3차 캐나다 세계 한인 선교대회 선언문

1.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선교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여 주님의 나라를 온누리에 확장시켜서 온 열방이 주님을 예배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순교자의 정신으로 선교사역에 힘쓸 것을 다짐한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선포하여 영혼 구원에 힘쓰며 신앙의 유일한 지침서인 성경 말씀에 충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는 일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1. 우리는 선교를 통해서 교파와 교회가 일치를 이루어 갈 수 있음을 확인하고 선교 연합운동에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한다.
1. 우리는 캐나다 세계 한인선교대회를 통해서 많은 한인선교사들이 발굴되었음을 확인하고 10만 한인선교사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이 선교대회를 섬길 것을 다짐한다.

2011년 10월 2일
제 3차 캐나다 세계 한인선교대회에 참가한 선교사 일동


‘개교회주의’ 자성하며 연합하라는 주님 명령 순종을…
<구연원 목사>

저는 금번 교회협의회가 주최한 캐나다 한인 선교대회에 참석했던 은퇴목사의 한 사람으로, 선교대회 개회식을 보면서 신앙 양심에 많은 충격과 가책을 받아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뜻을 알리고자 합니다. 먼저 그동안 협의회 회장 되시는 주권태 목사님과 준비위원장 되시는 최영철 목사님, 그리고 모든 임원들의 숨은 노고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하시며 뛰셨던 것을 저는 보고 느낀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회 첫날 큰빛교회 본당에서 열린 개회예배를 보면서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기에 몇자 적어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금번 선교대회를 위해서 머나먼 오지에서 오로지 주님 때문에 자기의 삶과 가족을  희생시키면서 헌신하시는 50여명의 선교사님들이 세계 각곳에서 이곳 캐나다 토론토 교회를  향해 손님으로 오셨는데 우리의 반응은 너무나도 싸늘했다고 느껴졌습니다. 본당 예배실에 1/3도 차지않아 손님으로 오신 선교사님들에게 목사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럽고 송구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 났을까요? 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죄성을 가진 인간의 마음에는 자기 이름을 나타내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져 하는 욕구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니나, 너무 지나칠 때 우리 공동체에 해가 되고  좀더 나아가서는 사회 필요악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받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능력을 믿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변화의 역사는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번 첫날 집회에서 가장 은혜받은 대목은 캐나다 몬트리얼 연합교회 허정기 목사님의 선교사역 간증이었읍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몬트리얼 교민이 약 5000명에 불과하고 교우들은 모두 합쳐야 1000여명 미만인 미약한 교회들로 구성되여 있는데 그 몇몇 안되는 교회들이 단합하여 100여명의 선교사를 초청하여 그 방대한 선교 대회를 풍성하게 치르고,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세계 불어권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며 그곳에 선교센터까지 신축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역사에 말할 수없는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불어권 지역에 이민가서, 처음에는 소외되고 허탈하기도 하였겠지만, 옛날 퓨리탄들처럼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무엇이겠느냐고, 믿음의 안목을 싹틔우게  되였으며, 놀라운 소명의식을 통해서 불어권 선교의 사명을 깨닫고, 몇몇 목사님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큰 영감과 능력을 받고 이 귀한 하나님의 사업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세히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지역의 목사님들에게 큰 능력과 은혜를 주심으로 가능했다고 봅니다. 우리도 토론토에 이런 기도의 사람, 마음이 열리고 포용성있는 주님의 사람이  나오기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우리 지역사회의 교회와 목회자들이 주님께서 바라는 아름다운 연합을 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70년도에 이민와서 장로로 8년, 목회자로 20년을 지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장로시절의 신앙의 모습과 목회자 생활 동안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 자화상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예로,장로시절에는 제가 저의 가사를 바쳐 가며 교회와 이웃돕기에 전념했던 반면, 목회자가 된 후에는 많은 교우들로 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받고 살아왔기에 받는데 익숙해졌고 남에게 베푸는 데는 점점 인색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는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이런 생활습관이 우리 목회자들에게 나도  모르게 개교회주의, 극단의 이기주의로 나타나게 된 것은 아닌지!, 한번 깊이 생각하고 자성의  마음으로 기도해 보아야겠습니다.  
저는 우리 목사들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종종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좀더 낮은 자세로 봉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처럼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은 다른 목회자들을 향한 독선의 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책하는 광야의 소리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거족적인 회개의 운동과 고요히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협의회를 이끌어가시는 지도자님들께서는 연합 사업을 하시게 될 때에 연합사업의 계획과 프로그램, 그리고 알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한 줄  압니다. 저도 짧은 목회경험을 되돌아 볼 때, 목회자들은 모두가 복음사역과 목양관리에 나름대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관계가 적은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쓸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사업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기도하고, 각 목회자들과 지역 기관장들을 찾아 간곡하게 설득하고, 꼭 동참해 주셔야 할 동기부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목회자들은 무슨 일을 당할 때마다 그 일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깊이 생각하면 답은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되고 연합하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 순종해야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제언은 다음 연합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심사숙고 끝에 올리는 말씀이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모든 교회와 목회자 가정과 그리고 모든 성도의 가정위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빕니다.

 
인생은 리콜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잘살아 보려고 힘든 노력들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신앙이 있는 한 자매가 이야기 했습니다. “다 알고 있지만 저는 예수님에게 느끼는 감동과 감사가 없습니다”. 이 말이 요즘 청년들의 신앙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청년들보다는 권력과 명예와 업적, 즉 성공을 쌓아가는 기성세대의 신앙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명세는 제대로 이용하지만 그 분의 사랑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관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닌 돈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릴 제사가 흠집투성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본인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에게 감동이라는 것은 더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인생은 리콜은 되지 않지만 리턴은 됩니다. 예수님의 인생 역시 리콜은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 리턴 되어지는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님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한 시기에 이 땅에 와서 살다가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사명을 감당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희생적인 삶 때문에 저 본인도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 즉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희생 후에 하나님께 가시는 분명한 사실이 있으셨습니다. 본인도 목회 인생 후에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갈 확신이 있습니다. 이런 같은 상황에서도 각오는 하지만, 예수님처럼 희생하며, 버리며 살 자신은 적습니다.

 이 땅에는 예수님처럼 살다 가신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예수님과 같은 낮아지심의 희생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벌레와 같은 우리의 존재를 사랑하셨습니다. 고난과 죽음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인간처럼 낮아지실 수 있으셨음에 더 큰 감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찬양 가사가 늘 저에게 감동을 줍니다.
“Amazing love, how can it be?“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과 명예 때문에 목숨을 내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명예는 인생을 사시는 동안에 짓밟히셨습니다. 사단이 주는 권력을 마다하고, 가지신 능력으로 인생의 성공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조롱 당하고, 인간의 손으로 뺨을 맞으셨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에 대한 감동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세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감동 할 수 있습니다.

<임함남 목사 - 베다니 침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