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럽의 불, 한국을 태울 수도

● 칼럼 2011. 12. 4. 15:50 Posted by SisaHan

유럽 국가의 신용등급 강등이 계속된다. 누가 먼저 떨어지나 내기를 하는 듯하다.
최근엔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었다. 헝가리의 추가 강등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다. 시장의 소문은 점점 흉포해진다. 그 정점에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소문이 있다. 지난주에 열린 독일의 국채 입찰도 사실상 실패했다. 주변국의 위기가 핵심국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유럽 은행의 부실이다. 지난 10월 벨기에 최대 은행인 덱시아가 파산 위험에 몰렸다 간신히 구제되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유럽 거대은행의 부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럽의 은행은 체계적 붕괴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은 25 대 1로 알려져 있다. 100의 자산 중 자기 돈은 4에 불과하단 얘기다. 미국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이 13 대 1 정도이니 얼마나 심한 차입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유럽 은행의 총부채 규모는 유럽연합 국내총생산(GDP)의 148%에 달한다.
유럽 은행은 주변국 채권에 투자하면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자기자본비율은 엉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그나마 국가라도 재정이 건전하다면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도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인터내셔널 파이낸싱 리뷰> 최신호를 보면, 유럽 은행들이 5조유로에 달하는 자산을 팔려고 시도했으나 매수자가 없어 실패했다고 한다. 기존 자산을 판다는 것은 신규 자본조달에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유럽 은행은 서둘러 실물경제에 투입된 채권을 회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채권은 국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채권, 부동산채권에 대한 전방위적 회수가 시도될 것이다. 물론 주식·상품과 같은 자산시장에서도 발을 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은행이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리 없다. 그들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글로벌 시장의 유동성은 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단순한 구조조정 수준이 아니다. 공황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의 금융은 전통적으로 유럽 자금에 많이 의존해왔다. 대부분의 한국 금융기관들은 유럽 은행과의 거래를 통해 자금 프로세스를 맞춰왔다.

그런데 유럽 은행의 위기로 이 프로세스가 일시에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환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 전체가 요동칠 것이 뻔하다.
설상가상, 유럽 은행의 자금회수가 본격화하면 한국의 은행들도 대출 회수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이미 한국의 가계와 중소기업 대부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채무를 짊어지고 있다. 이들이 은행의 폭력적 자금회수를 견딘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한국의 부채 수준은 최악이다. 가계·기업·공공기관·정부 부채를 전부 합하면 국내총생산의 300%를 넘는다.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성장을 했다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부채를 늘려 성장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부채를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가에 있다. 지속성에 있다. 하나, 부채로 이룬 대부분의 성장은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기 마련이다. 부채로 쌓은 성은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다. 신기루다. 유럽의 오늘이 그것을 증언한다.
유럽이 과도한 부채로 무너지듯 한국도 마찬가지다. 가계빚 이자만 연 56조원에 달하는 나라가 마냥 성장할 수는 없다. 유럽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일 수 있다.

<윤석천 - 경제평론가>

[1500자 칼럼] 목회자의 삶

● 칼럼 2011. 12. 4. 15:48 Posted by SisaHan

오래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대학 시절에는 팝송만 좋아하였고 클래식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모욕과 같은 표현이겠지만 클래식을 들으면 잠이 온다는 식었다.
그러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를 만나 클래식에 길들여졌다. 아내가 의도적이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제일 먼저 접하게 된 것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 5 번 ‘황제’였다. 혹자는 나폴레옹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이후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그렇게 클래식을 접하게 된 나는 종종 클래식을 들었는데 작곡자의 어떤 의도도 모른 채 곡을 들으면서 내 나름대로 곡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곡이 있다. 그것은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로 원제는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Op. 48 이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 내게는 한 그림이 떠오른다. 때는 추운 겨울이며 늦은 저녁이 될 것 같다. 장소는 방천 둑이나 방파제 같은 곳에 무서운 칼 바람이 무지 세차게 부는데 코트 깃을 세운 어떤 아저씨가 맞바람을 맞으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추워 코트 깃을 세웠지만 나아가는 그 모습에 많은 아픔이 있을 것 같다. 자녀들의 학비 때문에 걱정하면서 나아가는 것 같고 병든 아내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 같고 부도난 사업 때문에 지친 모습의 아저씨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걸어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레나데를 들으면서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리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춥다 피곤하다 지쳤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금년에 우리 교회는 창립 30 주년기념 예배를 드렸다. 너무나 감격적인 주일이었다. 창립일은 2 월 첫 주일이었으나 우리는 5 월에 따로 기념 예배를 드렸다. 한 목사를 모시고 함께 살아온 성도들이 너무 고마웠고 한 교회와 평생을 함께 했다는 그 사실도 큰 자부심과 함께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 나 역시 다른 목회자들처럼 칼 바람을 맞으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왔던 그런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게 분투하며 사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년 연말 금년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창립 30 주년이다 생각할 때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고 생각하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싶어 금년 표어를 그렇게 잡았었다. 그 보답의 일환으로 기념 음악회를 7 월에 계획했는데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는 지휘자께서 내게 이 메일을 보내주시면서 이번 음악회의 주제를 ‘감사와 결단’으로 하시겠다고 하셨다. 어찌 목사의 마음을 그렇게 잘 읽으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만 30년을 은혜 가운데 지났을까? 그리고 내게만 그런 은혜를 주실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칼바람을 맞으면서 나아가는 모든 목회자들이 있겠고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실패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들에게도 나에게 허락하셨던 그런 위안과 축복을 넘치게 하실 줄 확신한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칼럼] 민심 풍랑위에 선 한국정치

● 칼럼 2011. 12. 4. 15:05 Posted by SisaHan
우리 정치구도를 언제까지 이대로 두고 봐야 하나. 엊그제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하는 것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지금 같은 정치구도가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계속 후퇴하고, 경제·안보 주권은 미국에 떠넘긴 채 1%만을 위한 사회·경제 정책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런 정치구도의 맨 꼭대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특유의 불도저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협정문에 있는 수많은 독소 조항의 개정을 요구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며 일점일획도 고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는 들어주면서 국내의 간절한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 대통령의 이런 행태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무려 22조원을 쏟아부어 4대강 사업을 2년여 만에 뚝딱 해치워버렸다.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의 합리적인 비판에도 아예 귀를 닫았다. 오히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을 아전인수 식으로 끌어들여 4대강 사업을 자화자찬했다. 이제는 4대강 사업 경험을 해외에까지 수출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다른 분야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우려되는 게 남북관계다. 이미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면 이를 복원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해지는 와중에 대미 편향 외교를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아직도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다. 아마 임기 마지막 날까지 변함없이 ‘소신껏’ 일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더 이상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견제가 필요한 까닭이다. 내곡동 사저 문제로 이미 범법자 낙인이 찍혔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탄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야당의 견제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국민의 힘밖에 없다.
한나라당도 이번에 그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은 않겠다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는 정당이 아니라 권력자와 소수 기득권 집단의 대변자임을 자인한 셈이다. 이제 그들이 아무리 쇄신을 얘기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
그동안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국정운영이 가능하도록 충실히 뒷받침했다.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한다는 홍준표 대표는 이 대통령이 하라는 일을 착실히 수행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예산 의총을 한다며 의원들을 모두 모이도록 한 뒤 전격적으로 본회의장으로 몰아넣고 날치기를 강행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전술적으로는 완벽한 작전이었는지 모르지만 집권여당 대표로서의 정도는 아니다.

협상파와 쇄신파의 행동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협상파 의원들은 날치기에 동참했다. 쇄신이나 대화를 외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당명에 따라 거수기로 돌아가는 모습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공자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녹봉을 받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쇄신파들이 조금이라도 그런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차라리 한나라당을 떠나는 게 낫다.
날치기 과정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의 한계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리를 챙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명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FTA무효화 투쟁에 나선다고 하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존속할 가치를 이미 잃었다. 야권통합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야당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번 FTA 비준안 날치기는 기존 정치구도의 정당성은 물론 생산성과 생명력마저 상실됐음을 보여준 전환기적인 사건이다. 정치권이 이를 계기로 자성하고 새판을 짜지 못한다면 결국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강제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민심이란 풍랑은 이미 저 깊은 곳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한겨레신문 정석구 논설실장>

정부가 원자력진흥위원회 회의를 열어 2016년까지 모두 6기의 원전을 예정대로 짓기로 했다. 정부는 원자력을 수출의 중심축으로 키워 세계 3대 수출국이 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원전에 대한 깊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원자력 확대가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해왔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주요 선진국들은 원전에서 탈피해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정책 전환을 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깨끗하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자원에 투자하는 게 가야 할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전 수출을 위해 프리미엄급 원전을 개발하고 중소형 원자로 및 연구로 시장을 겨냥한 원자로도 개발하겠다고 한다. 노후 원전 정비와 폐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그 분야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회로 삼겠다는 이런 발상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면 몰라도 인류의 미래와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국가가 세울 계획은 아니다. 독일 정부가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에서 원전 정책을 포기할 것을 권고하자 이를 수용한 것과 너무 대비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국민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고 한다. 어제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탈핵의 모색’에서 일본 학자는 “핵의 안전 신화와 저비용 신화는 허위로 가득 차 있다”며 “후쿠시마처럼 참혹한 피해가 나고 50년이 요구되는 폐원자로 처분이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비용 등 빚의 유산을 후세에 남기는 비윤리적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은 안전하지도 값싸지도 않다는 게 입증됐다. 우리 세대가 무책임한 결정을 내리면 다음 세대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중단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