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김호중의 추락과 윤석열
[편집인 칼러- 한마당] 김호중의 추락과 윤석열
대중음악에는 문외한인데다 흘러간 옛 가요나 흥얼거리는 사람으로 이른바 ‘팬덤(fandom)’은 조용필·나훈아 같은 유명 가수에게나 있는 것으로 여겼다. 한걸음 나아가 업그레이드 됐다고 해봤자 BTS 혹은 BLACKPINK 같은 세계적 K-Pop 인기그룹이 구름 떼 같은 젊은 팬들을 끌고다니는 것 쯤으로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세계에 얼마나 까막눈이었는지는, 김호중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가수가 천정부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다. 그건 흔히 귀결되는 ‘세대차’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확장하고 뛰어넘은 신 팬덤문화의 생소함 때문이라고 할까. 그가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벼락출세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훈아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들 보다도 훨씬 더 나이많고 주름지고 머리도 허연 할머니들, 70넘어 80줄에 접어든 노년 여성들까지 그에게 환호하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인생살이의 공허가 짙어가는 시절에, 가슴 한구석 허허로운 빈자리를 청아유려한 그의 노래와 아이돌 매력의 외양이 소녀적 연애 감정처럼 채워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음주 뺑소니 소동에 휘말려 쇠고랑을 차고 경찰 포토라인에 서자 극성 할머니 팬들 중에는 패닉에 빠져 입맛이 없어졌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고, “그럴 리 없다”고 적극 감싸는 반응이 부지기수였다. 삭막한 일상에 모처럼의 낙(樂)이요 위로 메시지를 주었던 황혼길의 우상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으니, 연로한 팬들의 상심이 오죽했을까.
불과 수년 만에 부와 인기를 거머쥐면서 스타덤에 오른 김호중은 왜 어느 날 급전 직하해 저 순진무구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는 할머니 팬들을 울렸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점을 꼽는다면 그가 급변한 삶의 방식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옛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습성과 본색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김호중은 어린 시절 불운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사춘기를 전후해 방황하며 말썽이 잦았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음악적 소양을 발견한 스승에 의해 성악을 공부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 대중음악에 눈을 돌려, 때마침 유행처럼 번진 트롯 경연에 도전했다가 인생역전의 꿈같은 시기를 맞는다. 그는 고진감래를 되씹으며 입지전의 성공신화를 계속 써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환골탈태’가 어디 쉬운 일인가. 흔히 벼락부자들이 ‘졸부’에 머물고 마는 것처럼, 속사람은 쉽게 변치않는 법. 오랜 술버릇과 위기모면을 위한 임기응변의 거짓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반전을 부르고 말았다. ‘제 버릇 남 주나’하는 비아냥이 말해주듯 그는 현실 부조화와 인지(認知) 부조화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다.
김호중의 추락에서 윤석열과 그 일가의 행태가 오버랩되는 것은 상당부분 흐름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벼락출세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요동시키더니, 못버리는 ‘제 버릇’ 남발로 본색을 드러내면서 자승자박, 추락일로를 걷는 모습이 여러모로 닮지 않았는가.
8번이나 낙방했다가 9번째 겨우 고시에 붙었다는 윤석열은 명석한 검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검사생활에 부침도 많았다. 그저 물고 늘어지는 외고집 끈기와 ‘퉁치기’ 수법으로 특수부 정치검찰 패거리문화에 젖어들게 되고, 우연히 김건희를 만나 무속과 세속이 뒤섞인 공적·사적 카오스 행보를 걷게된다.
지난 2년여 동안 드러난 그와 일가의 수준과 본색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말해준다. 여전히 ‘검찰에서 놀던’ 습벽의 굴레를 벗지못해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도 일개 검사같은 국정을 폈다. ‘법사’의 주장대로 취임하자마자 청와대를 기피하고 용산을 고집해 수천억을 허비하더니, 그 법사의 주장대로 동해 석유탐사를 들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취임하자마자 처가를 위한 고속도로 노선변경을 꾀하더니, 주가조작에 명품백 스캔들 혐의자인 김건희를 수사하겠다는 검사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 역시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한 심각한 현실부조화와 인지부조화 탓에, 하루가 멀다하고 충돌을 일으키며 침몰의 길을 걷고 있다. 그와 그 일가가 손대고 휘저은 국정과 민심은 불과 2년만에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나라 안팎 어느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
밖에서 보기에도 불안하고 수치스럽기 짝이없는 외교안보가 모든 걸 말해준다. 미국에 예속돼 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한 실책의 댓가는 경제 하나만으로도 혹독하다. 무슨 연유인지 일본에 굴종하면서 과거사를 뭉개고 핵폐수를 변호하더니, 이젠 네이버의 라인을 넘겨라, 욱일기를 인정하라고 윽박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도가 불안하고 자위대가 한국 땅에 상륙할 태세다.
검사들이 장악한 정부기관들의 불협화에 상호조율이 되지 않는 정책 난맥상까지 국정은 비전없이 표류한다. 총선 참패에도 습벽은 여전해 국회가 만든 법안마다 거부하고 특검마다 피할 속셈이다. 오직 일가 비리 덮기에만 국력을 총력 소진하니, 민생이 눈에 보일 리가 없다.
그와 그 일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고, 나라가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나.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할 길을 갔다가 잠시의 영화가 영원한 지옥길이 되곤 하는 게 인간지사다. 못된 저질 습벽을 속여 그 자리에 간 것부터 잘못이지만, 그 버릇 못버리겠다면 어서 속히 그만두는 게 그나마 상책이다. 22대 국회가 시작되자 마자 거대야권의 화력이 심상찮다. 억지와 궤변으로 버티려 하나 돌아선 민심이 언제까지 참아줄까.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할 날을 기다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