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참 광복을 가로막는 원흉들
[편집인 칼럼-한마당] 참 광복을 가로막는 원흉들
다시 광복절을 맞는다. 빛을 되찾은 날-, 그러나 눈부시게 빛나야 할 민족의 광영(光榮)은 언제일지, 지구가 태양을 79번이나 돌았는데도 여전히 짙은 그늘을 드리운 채 우리들 가슴을 짓누른다. 삼천리 온 산하를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런 흑암의 구름이 마치 놀부의 심술처럼 덮고 있다. 과연 우리가 간절히 열망하는 진짜 눈부신 광명천지는 얼마나 더 참고 부대끼고 씨름하고 쏟아내야 그 소원의 문이 활짝 열린단 말인가.
돌아보면 어둠의 본체인 일제의 패망이 남의 손으로 이뤄진 탓이기도 하다. 그 어둠의 세력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여한을 남기며 미완의 광복시대를 시작한 민족의 비운이다. 기를 쓰고 ‘참 광복’의 길을 가로막아 선 질긴 악연들, 그 방벽들을 혁파하여 떨쳐내지 않는다면 우린 언제까지고 먹구름 낀 세상을 탄식하며 가야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다시 캄캄한 암흑의 세력 손아귀로 되돌아 갈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광복을 생각할 때, 나는 이 땅의 참 광복을 훼방하는 최악의 암적존재, 곧 원흉은 당연히 우리들 내부의 친일족(親日族)이라고 단정한다. 일제치하 악행을 참회하지도 않고 광복 후에도 독립투사들을 괴롭힌 악질형사들과 같은 부류들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국과 자파의 이기(利己)로 분단국의 핸디캡과 지정학적 유불리 악용에만 관심이 있는 안팎의 권력집단과 호전세력 및 강국들이 두 번째요, 거기에 빌붙어 이념과 색깔로 갈라치기와 덧씌우기를 즐기는 공존거부, 상생 거부의 무리들이 세 번째이며, 절대로 반성없이 제국의 망령에 매달려 사는 일본 극우세력이 그 뒤를 이어 포진해 있다고 여긴다.
참 광복의 길은 무엇보다 국민이 주인인 진실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완성과 민족 자존으로 하나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믿기에 그렇다.
광복회는 며칠 전 격앙된 성명을 냈다. 항일운동과 대한독립의 상징인 독립기념관 이사진을, 일제 찬양 ‘뉴라이트’인사들이 장악하고 관장까지 차지할 위기라는 격노의 항의였다. 하지만 정부는 들은체 만체 임명을 강행했다. ‘군대위안부’의 강제성에 대해 “논쟁적 사안”이라고 얼버무린 부적격 인물도 다른 장관들처럼 서둘러 기용했다. 이례적으로 국회의장이 호통을 쳐서 알려진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의 이면에는 ‘강제노동’ 지우기를 묵인하고 동조한 굴욕적 외교가 있었다.
일본을 대변하다 못해 일본인의 짓인지, 일본정부가 아닌지 의심케 하는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수많은 언동들이 친일족의 발호 때문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요즘 잇달아 민족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소식들에서 친일족이 얼마나 반 민족, 반 광복적 존재들인지를 실감케 한다.
분단을 만들어 내고 고착시켜 대립과 갈등을 즐기는 주변 열강의 이기적인 행태와 그에 굴종·영합하는 정통성 없는 권력과 반통일 세력들 역시 설명이 필요없는 엄연한 실체다. 또한 이념과 색깔팔이 족들의 음흉한 속셈도 늘 보아온 구태요 적폐인 반 광복 무리의 하나다.
일본에 처음 등장한 사회당 출신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하얀 눈썹이 인상적인 촌티나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광복 50년의 해인 1995년, 일본으로는 ‘8.15 종전 기념일’에 그는 “침략과 사죄”를 처음 언급해 평가받은 역사적인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특파원으로 그의 담화를 직접 들었던 필자는 총리실을 나오면서 무라야마를 맹비난하는 우익들의 확성기 시위를 보고 담화의 수명이 얼마나 길까 의구심이 났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의 자민당 정권은 ‘담화 탈색’을 계속했고, 아베 신조에 이르러서는 거의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과거사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뻔뻔한 당당함이다. 군대위안부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욱일기를 고집하여 부산에 입항하는가 하면 독도를 내놓으라고 큰 소리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과 수교에 열을 올리고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노리는 오늘의 일본. 그리고 그들의 비위를 상할까 전전긍긍하는 현 한국정부의 비굴에서, 참 광복을 훼방하는 극우의 ‘파묘’ 악령을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참 광복은 자주적 정체성을 가진 국민이 주인인 나라, 진실되고 공의로운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동서 남북이 하나되어 통일과 번영을 이룰 때 비로소 구가할 수 있는 8천만 한민족의 비전이다. 그 절실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김종천 핀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