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편집인 칼럼]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시사한매니져 2024. 9. 8. 10:55

[편집인 칼럼 - 한마당]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중국 역사 5천년에 명멸한 제왕이 509명 인데, 그중에 손꼽히는 10대 폭군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기억에 남는 수나라의 양제(569~618)는 중국사의 대표적인 포악 군주였다. 후대에 ‘방탕 악랄하며 여색에 빠졌고 천륜을 거역하며 백성을 착취했다’는 뜻의 ‘煬(양)’을 써서 ‘양제’라 칭했다는 그는 부왕과 형을 죽이고 제왕이 되어 온갖 패악질을 일삼다 반란군에 목졸려 최후를 맞았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절대 권력의 군왕인지라, 아무리 어진 군주라 해도 폭압적 요소야 있었겠지만, 당대와 후세의 역사는 유별난 독선과 학정, 포악한 살상과 공포정치로 이름을 떨친 자들을 특기해 모멸과 오욕을 안겼다.

서양사에도 무수한 폭군들이 등장했다. 로마의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등부터 영국의 리차드 3세와 헨리 8세, 프랑스의 루이14세, 나폴레옹 1세…그리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에 이르기 까지 악명을 떨친자들이 허다하다.

한국사에서 ‘폭군’하면 조선의 연산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폭군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불운의 군주 연산 외에 사가들은 고구려의 모본왕, 백제의 개로왕, 고려의 의종과 공민왕, 그리고 조선의 광해군을 포함해 ‘6대 폭군’으로 선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공통점은 “편집과 아집, 이기심에 가득 차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고 쓸데없는 겉치레에 신경을 썼다. 자만과 독선이 백성들을 굶주림과 고통에 몰아넣었고, 신하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의 결말은 외부 침략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신하들의 반정을 통해 왕위에서 쫓겨났다.”고 했다.(폭군의 몰락: 이한, 2013)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예일대 정치과학 박사인 월러 뉴웰 (Waller R. Newell) 교수는 ‘폭군 이야기’(Tyrants: 2017)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장밋빛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폭정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면서 안심하게 됐고, 진보의 과정 속에서 ‘필요악’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일부라고 여기게 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과거와 같은 폭압과 학살은 어렵지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고 교묘한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제반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폭정이다”라고 ‘합법을 가장한 폭정’의 위험을 지적했다.

한국의 근현대에도 폭군의 역사는 명맥을 잇는다. 이승만은 친일 고등경찰을 고용해 독립투사들을 고문했고, 암살을 사주했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20만명 안팎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4.19 학생혁명으로 물러나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18년 집권한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절명했다. 정권찬탈과 광주학살의 주역 전두환은 김대중의 시혜로 요행히 천수를 누렸으나, 두고두고 ‘학살자’ 오명은 벗지 못하게 됐다.

전두환이 ‘위장 항복’한 6.10 항쟁 이후 이른바 87체제로 민주화가 이행된지 37년, 그리고 박근혜가 국내외 2천만 촛불로 쫓겨난지 7년여가 지난 요즘, 기억하기도 싫은 ‘폭군과 독재’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웰 교수의 풀이대로 최근 한국의 권력자가 바로 그 과거퇴행과 막무가내 역주행을 감행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설마’가 실제가 되어 수십년 전의 고통을 되살리는 윤석열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가 심상치 않다.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고, 오직 가족과 검찰, 학연과 극우 카르텔에 의존해 독선적이고 특권적인 권력행사에 몰두하는 것을 본다. 국리민복이 아닌 일가와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고, 애국보다 왜국을 중시하는 듯한 징표들… 이제는 ‘계엄’까지 우려할 정도로 뚜렷한 반헌법과 반민주 반민족적인 폭정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앞서의 뉴웰 교수 진단은 마치 지금의 한국상황을 보고 분석한 것처럼 들린다. 그는 이렇게 깨우쳤다.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자를 끌어 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이 폭정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화면 그렇게 또 ‘기억상실’이라는 병 때문에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쉽게 걸리는 기억상실의 병, 불의를 기억하지 못하면 훗날 그 것이 정의로 바뀐다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런 경험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무늬만 민주주의인 사회에 살면서도 그 것이 폭정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거기에서 폭정행위를 떼어내 인지할 수 있고, 적어도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폭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더 엉망인 정권이 들어서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성을 무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웰의 경고에 동의한 예일대의 스티븐 스미스 교수도 우리에게 경각심과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여전히 민주주의 가면을 쓴 채 불의한 억압과 폭력을 자행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많다.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