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정말 놀랍고 영광…작가들의 노력과 힘이 영감 줬다"
"지지 감사…한국 문학 독자와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 됐으면"
자기 작품 중에는 '작별하지 않는다'·'흰'·'채식주의자' 권해
"채식주의자 집필한 3년간 힘든 시간 보내" 회고
"아들과 저녁 막 먹고나서 전화 받아…오늘밤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3)은 10일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수상자 발표 후 노벨상 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광스럽고 여러분들의 지지에 정말 감사드린다. 그저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영어로 약 7분간 진행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학상을 받게 된 데에는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고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강은 어느 작가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내가 어릴 때 옛 작가들은 집단적인 존재였다"면서 "그들은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단호하다. 그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내 영감이 됐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영감을 준 몇몇 작가를 꼽기가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 작가인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는 질문에 한강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 책을 좋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의문을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연관지을 수 있었다"면서도 "그(린드그렌)가 내 어린시절에 영감을 준 유일한 작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작가 한강'을 막 알게된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자신의 작품으로는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롯해 '흰', '채식주의자'를 권했다.
한강은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흰'은 상당히 자전적인 내용이어서 아주 개인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도 있다"면서 "'작별하지 않는다'로 시작해봐도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인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3년에 걸쳐 썼는데 그 3년은 여러 이유로 아주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미지, 나무의 이미지를 찾아내기가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한강은 서울의 집에서 아들과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과 저녁식사를 막 마쳤을 때였다. 한국은 저녁 8시쯤이었고 아주 평화로운 저녁시간이었다"며 "누군가 전화를 해서 (수상소식을) 알려줬고 당연히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한강은 또 "오늘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좀 읽고 산책을 했다. 아주 편안한 하루였다"며 "아들도 놀랐지만 (수상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을 어떻게 축하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오늘밤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날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했다. < 연합 권수현 임지우 기자 >
한국 작가 최초 노벨문학상 받은 한강은 누구?
처음엔 시로 등단해 소설로 방향 틀어…부친은 소설가 한승원
서울예대서 학생들 가르치기도…노래 실력도 수준급으로 알려져
광주민주화운동서 큰 영향…"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 하게 돼"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거머쥔 작가 한강(54)은 197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이다. 이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대학 졸업 뒤 이후 잡지 '샘터'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습작을 하기 시작해 그해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한강은 이후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소설집과 장편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소설 외에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 '눈물상자' 등을 펴내는 등 시와 소설 아동문학을 넘나들며 전방위로 작품활동을 했다.
그동안의 국내외 수상 내역도 화려하다.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으며,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과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등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문학에서의 탁월한 성취와 예술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삼성호암상 예술상도 수상했다.
한강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처음 널리 알린 작품은 '채식주의자'다.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집 '채식주의자'(영어판 제목 The Vegetarian)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연재된 연작소설로, 국내에서는 2007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그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구 문예창작과)에서 예비 작가들을 상대로 소설 창작론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울예대 학생들은 당시 한강에 대해 "섬세함과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교수"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한강은 문인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는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펴낸 작가 한승원이다. 85세인 한승원은 올해 초 자전적인 내용의 장편소설 '사람의 길'(문학동네)을 펴내는 등 여전히 왕성하게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한승원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 한강은 전통사상에 바탕을 깔고 요즘 감각을 발산해 내는 작가"라며 "어떤 때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서 질투심이 동하기도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승원과 한강은 국내 최고 소설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을 부녀 2대가 수상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한강의 오빠 한동림 역시 소설가로 작품활동을 했다.
한강은 어려서부터 익힌 피아노와 노래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펴냈는데, 흘러가 버린 노래 스물두 곡 속에 작가의 아련한 추억을 담아낸 이 책에 작가 자신이 작사ㆍ작곡하고 보컬까지 맡아 부른 노래 10곡을 담은 음반(CD)을 함께 수록했다.
음반엔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랫말과 선율들을 악보를 쓸 줄 몰라 가사를 적고 계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작가가 직접 한 곡 두 곡 만들어온 노래를 담았다.
산문집에서는 어린 시절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십 원짜리 종이 건반을 가지고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한강의 가장 최근 작품은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다. 이 소설로 지난해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의 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하고, 올해 3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도 받았다.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강은 "소설을 써오면서 제일 기뻤던 순간이 2021년 4월 말 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한 순간"이라면서 "워낙 오래 걸리고 힘들게 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소설가로서 한강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일 것이다.
광주 태생인 한강은 서울로 올라온 뒤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이 보여준 사진첩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2016년 2월 한 문학 행사에서 밝힌 적이 있다. 아버지가 보여준 것은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이었다.
그는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제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며 "이때부터 간직해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로 형상화됐다.
이 작품부터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 까지, 한국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를 소설로 형상화해온 작가는 앞으로 '밝은 얘기'를 써보고 싶다고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은) 이렇게 두 권을 작업했는데, 이제는 더는 안 하고 싶어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이 계속 내리고 너무 춥고, 이제 저는 봄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 연합 김용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