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용현 · 여인형 '일탈', 통수권자 향한 퍼포먼스였나
"군복 입어도 할 말 못하면 병신?" "답할 필요 못느껴?"
민의의 전당서 내보인 적개심과 독기가 불안한 까닭
국군은 '통수권자의 군대'가 아닌 '국민의 군대'이다
김진호 에디터
"아무리 군복을 입어도 할 이야기는 해야죠. (황희 의원이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발언 예의를 지적하자) 군복 입었다고 할 이야기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게 더 병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현, 8일 국방부 국정감사 발언)
의정사에 길이 남길 어록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 장애인 비하 용어가 튀어나왔다. 수감기관장인 김용현 국방장관의 입에서다. 많은 언론은 'XX' '병X' 등으로 표기했다. 정확한 사실 전달을 방해한다는 판단에 말 그대로 전한다. 대한민국 의정사에 길이 남겨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어록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국회 위증 내용을 전하면서 여인형 사령관과 장관의 '흐리멍텅한 대처'를 탓하자, 장관은 '흐리멍텅한 사람'으로 바꿔 빈정댔다. 위증 내용을 확인하는 김 의원의 발언 도중 "흐리멍텅한 사람에게는 흐리멍텅한 사람만 보이는 것이죠"라고 하더니, 잠시 뒤 장관 본인의 답변 내용에 대해 확인을 요청받자 "흐리멍텅한 사람에게는 흐리멍텅한 사람만 보이는 것이죠, 예~."라고 반복했다. 귀찮다는 듯 머리를 상하로 몇 차례 흔들면서 내뱉은 말이다. 국회에 대한 존중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국회 위증죄가 최고 10년 형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에 "10년이 아니라 100년이라도 살 테니까 말씀하세요"라며 거듭 비아냥거렸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고위 관료들의 국회 답변 태도가 문제가 된 건 처음이 아니다. 어느새 일상적인 국회 풍경이 됐다. 그러나 이날 전‧현직 군복은 공격적으로 '선'을 넘었다. 2017년 육군 중장으로 군복을 벗기 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김용현이 어떻게 저렇게 변했나"라면서 혀를 찬다. 여 사령관도 도긴개긴이다. 현역 군인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할 뿐이다. 지난 8월 초 김용현 경호처장 한남동 공관에서 있었던 방첩사·특전사·수방사 사령관 회동에 대한 질의응답에서 신원식 당시 국방장관이 보고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김 의원의 질의에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이 과정에서 "군을 분열시키지 마라"고 외쳤다.
"군을 분열시켰다"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발언과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사과라고 보기엔 애매했다. 장관은 "군복 입은 사람이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표현이 과했다는 점에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사령관은 말이 길었다. "개인적으로 무려 한 달 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공개 석상에서, 유튜브를 통해서 참기 힘든 인격적 모독도 받았다. 의원 말씀에 격하게 발언한 것도 있었다"고 역시 유감을 표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특정 고교 출신이 군통수권자-국방장관-방첩사령관 자리에 앉았다. 역사적으로 '계엄의 발'이었던 3개 사령부 수장의 회동 이후 계엄령을 우려하는 여론이 일었다.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는커녕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장면은 기괴했다.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군을 분열시켰다"는 말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없었다.
유튜브 중계 화면에 비친 장관과 사령관의 눈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대놓고 국회를 무시하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2024년 10월 현재,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의 수준, 아니 의회 민주주의를 대하는 장관과 사령관의 수준이었다.
장관은 군복을 입고 있던 시절 합참 작전본부장 자격으로 국회 증언석에 앉았었다. 당시 '육군중장 김용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 때만 해도 의원들의 질의에 예의를 다해 응했었다"고 말한다. 2017년 송영무 국방장관 군사보좌관실 과장 시절 여인형 대령을 기억하는 이는 "당시만 해도 문재인 정부 국방정책을 적극 찬성하던 이였다"라고 전한다. 대한민국 흑역사에 '하나회'를 비롯해 군내 사조직은 있었지만, 군통수권자가 포함된 고교동창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불온하다. 전대미문의 일이기에 국민을 불안케 한다. 그런데도 장관과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일까?
장관은 군 경력이 화려하다. 육사 38기로 육군 17사단장,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지낸 뒤 2017년 11월 군복을 벗었다. 본인은 대장 진급을 위해 노력했겠지만, 뜻을 접었다. 5년이 지났다. 잊을 만한 무렵 '인생 로또'가 터졌다. 충암고 1년 후배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나서는가 하더니 대통령에 덜컥 당선된 것. 그냥 후배가 아니다. 충암고 학도호국단 연대장 자리를 물려준 이였다. 대통령경호처장으로 2년 4개월 동안 용산 대통령실 이전 작업을 지휘했다. 유독 그의 경호처장 시절 과잉 경호와 '입틀막'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월 전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는 처장이 직접 나서 완력을 행사했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가는 과정에 그가 손으로 내려치는 장면이 포착된 것.
"사람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
1인에 대한 넘치는 충성은, 만인에 대한 오만으로 뒤틀린다. 7년 전 일개 대령에서 사령관으로 거듭난 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 국방부 국감장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소동에 그치지 않는다. 섬뜩한 기운마저 풍겼다. 선량을 저렇게 대하면 일반 국민은 어떻게 여기겠는가.
전·현직 군복의 일탈이 가능했던 건 주군의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일 거다. 20여 차례 법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통수권자이다. 국회에서 내보인 말과 행동이 죄다 단 한 명의 오디언스를 상대로 한 퍼포먼스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군복'도 입신양명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국군은 통수권자의 군대가 아니다. 군인복무기본법 제5조 제1항은 국군이 '국민의 군대'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안팎으로 안보 정세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럴 때 군과 국방 수뇌부가 1인만 바라본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국회는 일개 장관, 일개 사령관이 어르고 뭉갤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