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돌아온 트럼프, 바뀌어야 한국이 산다

시사한매니져 2024. 11. 9. 02:10

더 세진 트럼프의 귀환, ‘한국 패싱’ 우려도


북미 핵군축 협상, 한미동맹 재조정 가능성도 높아
가치 외교에서 국익 외교로 대외정책 대전환 불가피
한국을 위험에 빠뜨린 외교안보라인 전면 쇄신해야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미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승으로 끝났다. 친민주당 성향의 미국 언론이 보도한 것과 달리 누가 이기든 박빙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승리해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다. 이로써 그동안 트럼프가 내뱉었던 말들을 실천할 수 있는 실탄을 갖게 되었다. 더 세고 꼼꼼해진 트럼프가 돌아온 것이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이 한반도 정세에 몰고 올 경제·안보적 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 경제리스크로 인해 벌써 한국증시는 크게 폭락했다. 경제리스크 못지 않게 우려되는 것이 바로 안보리스크이다. 트럼프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이미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책구상들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북미 직접대화 및 핵군축 협상 가능성

트럼프 후보는 지난 7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을 다시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만약 북‧미 직접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윤석열 정부는 북·미 대화에 먼 산 불구경하듯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평양에서 워싱턴을 가려면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들, 거래적 동맹관을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 행정부가 지지율 바닥의 윤석열 정부의 말에 귀 기울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정강정책에서 ‘한반도(북한) 비핵화’ 문구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은 2020년 정강정책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목표”라고 밝혔으나 2024년도 정강에는 빠져버렸다. 미 공화당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가역적 해체(CVID)” (2020)라는 대북정책의 목표에서 ‘비핵화’를 아예 빼버렸다.

 

6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선물가게에 블라디미르 푸틴,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을 그린 마뜨료스카 인형이 진열돼 있다. 이날 치러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함으로써 제47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24. 11. 6.  EPA 연합뉴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났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한반도/북한 비핵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2023년 SCM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대화와 외교를 추구하는 노력을 위한 공조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년 10월 SCM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키는 것으로 ‘비핵화’가 빠졌다.

향후 북·미 핵군축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그 합의 내용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타결이 예상되던 합의안 초안이 바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북·미는 △한국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기 위한 평화선언, △한국전쟁 중 사망한 미군 유해의 추가 송환, △준대사관 성격의 연락사무소 설치, △영변 핵시설의 생산 중단 및 일부 대북 유엔제재 해제, 한국과의 공동경제계획 추진 등을 담은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었다.

새로운 합의문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약속됐던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미국의 대규모 한미군사연습 중단과 같은 ‘쌍중단’과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조치가 명문화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핵탄도미사일잠수함의 정기 방한을 약속한 「워싱턴선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 재배치를 위해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북·미 직접대화가 됐든, 핵군축 협상이 됐든 관건은 북한의 태도이다. 미 대선을 닷새 앞둔 10월 31일 ‘최신형 전략무기체계’라고 자평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9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 강화 로선을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전향적인 태도와 별개로 북한의 국제정세 판단과 입장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주한미군, 연합훈련 등 재조정 여지

북미 핵군축 협상에 못지 않게 한국 안보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과 그와 관련된 한미동맹의 재조정 가능성이다. 트럼프 후보는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 부자)이라고 부르며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과 한국이 합의한 것을 뒤집었다고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매년 100억 달러(한화 14조 원)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정부간에 체결된 행정협정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기존보다 5~6배 인상한 50억 달러를 요구했다가 한미 실무협상에서 5년간 매년 13%인상안 합의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 간에 2020~25년 국방비증가율을 반영한 인상안에 합의하였다. 한·미는 트럼프 리스크를 감안해 2026년부터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 5,192억 원으로 정하고, 2027~2030년 소비자 물가지수 증가율을 반영해 분담금 인상에 조기 합의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합의를 뒤집을 경우 한미관계는 큰 파란이 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이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해 실시하는 정례 연합 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습을 시작한 19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이동하고 있다. 2024.8.19. 연합뉴스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 파기와 대폭 인상을 압박하기 위해 북·미 대화와 연계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쓸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미 국가방위전략(NDS)」의 해외미군재편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의 일부 조정 가능성은 열려있다. 「국방수권법」은 22,000명 이하로 주한미군 병력을 줄일 때는 미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해 트럼프가 북핵 협상, 방위비 인상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안을 쓰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상하 양원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국방수권법」을 개정해 6,500명 이상으로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 대규모 한미군사연습인 프리덤 쉴드(FS), 을지 프리덤 쉴드(UFS)가 재개되었다. 그 뒤 윤석열 정부는 「워싱턴선언」(2023.4)에 따른 핵전략자산 방문 정례화, 한·미·일 안보협력네트워크의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엣지’, 유엔사 회원국의 FS, UFS 연합연습 참가 등으로 한미 군사훈련의 다국화를 추진해 왔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핵실험장 복구에 이어 ICBM 등을 시험발사하는 등 ‘쌍중단’ 합의를 파기하였다. 하지만 트럼프-김정은 직접대화로 새로운 북미 합의가 이뤄질 경우 대규모 연합군사연습의 ‘일부 중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몇 안 되는 성과 중의 하나로 내세웠던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도 제한을 받게 되고 만다. 더 나아가 「워싱턴선언」의 내용 일부가 수정될 경우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등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트럼프발 안보리스크가 증폭되는 것이다.

망가진 한국 외교안보 전면 고쳐야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승리 선언에서 “망가진 미국을 고쳐 놓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망가진 한국’을 고쳐 놓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북·미 대화가 재개되어 본격적인 핵군축 협상이 진행될 경우 ‘한국 패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자 대북 강경론을 펼쳤던 한국정부가 정작 협상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비용 총46억 달러 가운데 30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을 적대시하는 ‘8.15통일독트린’의 공식 폐기와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추진 등 대북정책의 근본 전환을 통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북·미 핵군축 협상에 대비해 북한 핵문제의 단계적‧점증적 해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야 한다. 또한 자체 핵무장론은 실효성도 없이 국제적 불신만 조장할 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반대 입장을 명확히 천명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주한미군 대규모 감축, 한미 군사훈련의 축소 등 트럼프 안보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응해 방위산업의 강화 및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자주국방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취하고 있는 동맹국의 안보 자율성 확대 정책에 대응해 제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평가를 조기에 실시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정세의 불안정, 불확실성을 고려해 당분간 한‧미‧일, 한‧일 안보협력의 기본틀은 유지하더라도 더 이상 확대 및 강화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 유엔사의 인‧태지역 통합사령부화와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가입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러‧우 전쟁의 조기종식에 대비해 북‧러 접근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며 한‧러 관계를 악화시킬 조치에 신중해야 한다. 특히 북한군의 러-우 전쟁 파병설에 따른 살상무기 제공 등 과잉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또한 한‧중 관계 복원을 통해 북핵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한반도 정세악화를 예방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가치·이념이 아닌 국익 중심의 외교를 내걸고 있다. 그런 만큼 윤석열 정부도 자신이 집권 초기부터 내걸어 왔던 ‘가치, 이념’ 중심외교에서 벗어나 ‘국익’ 중심외교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전면 쇄신을 위해 그동안 이념외교, 진영외교을 기획하고 추진해 왔던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등의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할 것이다.  <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