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으로 가 복수하리라’…벼르는 트럼프 국방 ·법무 ·복지장관 지명자
‘장관으로 가 복수하리라’…벼르는 트럼프 국방·법무·복지장관 지명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백신 반대론자인 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HHS) 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등의 주장을 하며 팬데믹 당시 백신 거부 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앞서 지명된 국방장관, 법무장관,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논란을 빚는 이들 지명자는 자신들이 이끌 부처로부터 ‘박해’받았다는 인식, 즉 트럼프가 선거운동 기간 내세운 ‘복수’에 걸맞은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는 14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성명을 내어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속임수, 잘못된 정보, 허위 정보에 연루된 식품업계와 제약회사들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며 “보건복지부는 해로운 화학물질, 오염물질, 식품첨가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케네디는 미국을 위대하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존 에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인 케네디 주니어는 이번 대선에서 제3지대 후보로 출마했다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 하차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환경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대표적인 백신 거부론자가 되면서 보건복지부와 치열하게 싸워왔다. 그는 부패를 막기 위해 일부 백신에 포함된 수은 성분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동의 건강 보호’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비과학적 선동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로나19 백신 거부 운동에 열정적으로 나섰다. 미국 정부의 백신 의무화 정책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와 같은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1년엔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응을 이끌던 앤서니 파우치 당시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을 ‘제약회사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그의 주장이 허위이며, 공중보건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앞서 지명한 3명도 자신들이 이끌 ‘부처’와 구원이 있다.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는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선 국회의사당 폭동 직후 “이들은 단순히 거짓말로 움직이는 음모론자들이 아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라며 방송에서 옹호했다. 2주 뒤 국가방위군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당일 극단주의 세력과 연관돼 있을 우려가 있다며 12명을 경비·보호 업무에서 제외했다. 헤그세스는 자신이 그중 한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곧 제대했고, 이후 군을 비판하는 책을 집필했다.
국가정보국 국장에 지명된 털시 개버드도 정보기관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그는 올여름 자신이 국내 테러 방지를 위한 감시 목록에 올랐고, 이후 공항에서 빈번한 추가 검사를 받았다며 이 모든 게 자신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맷 게이츠 법무장관 지명자는 미성년자 성매수 혐의로 오랫동안 법무부 조사를 받았다. 수년간의 조사 끝에 2023년 법무부가 불기소 결정을 내렸지만, 이때의 경험은 게이츠가 법무부를 아주 싫어하게 만들었다. 이들 4명이 상원 인준을 받아 임명된다면 ‘복수할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애틀랜틱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단지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다. ‘박해받았다’는 인식이다. 이것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할 주요 자격”이라며 “트럼프 본인도 2024년 대선 캠페인 동안 적들에게 복수하고 연방 정부를 뒤엎겠다고 약속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했다. < 한겨레 김원철 기자 >
‘충성심’이 제1잣대…‘트럼프 2.0’ 공직인사 파격
우익 ‘폭스뉴스’ 프로 진행자를 국방장관에
반중국 반환경 친이스라엘도 핵심 기준
고위직 4천 등 5만 공직 인사로 미국사회 재편?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이 백악관과 정보기관 접수
법무, 이민과 국경관리직도 트럼프 열혈 지지자
‘부자들의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정권’
내년 1월에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차 정권(트럼프 2.0)을 끌어갈 정부 주요 고위직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14일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국무장관에 대중국 강경파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국방장관엔 우익 <폭스뉴스>에서 8년간 프로 사회자로 일해 온 피트 해그세스,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의 대중국 강경파 마이클 월츠가 내정됐다.
파격적인 트럼프 2.0의 고위 공직 인사
즉각 “파격적”이라는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루비오와 월츠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강제노동을 문제삼고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해 온 사람들이다. 루비오는 러시아와의 외교 교섭을 통한 문제 해결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월츠는 중국 소수민족 신장위구르족 인권침해를 이유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자고 주장한 인물이다.
극우 ‘폭스뉴스’ 프로 사회자를 국방장관에
특히 국방장관 내정자 헤그세스 기용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 애덤 스미스가 “20분 전까지도 헤그세스가 누군지 몰랐다”며 해당 분야 고위직 경험이 없는 그의 지명에 놀라움과 함께 우려를 표명했다. 폭스뉴스에서 군사정보 관련 프로 공동사회자를 맡아 온 헤그세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훈장을 받기도 했으나 군과 안보 분야의 고위직을 맡은 경험이 없다. 그런 그를 트럼프는 프린스턴과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터프하고 똑똑한, 미국 제일주의의 진정한 신봉자”라며 그의 기용에 대해 “적들은 경계할 것이고 우리 군은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이 백악관과 정보기관 접수
중앙정보국(CIA) 국장엔 트럼프 1차 정부(트럼프 1.0) 때 국가정보국장을 지낸 존 래트클리프가 기용됐다. 그는 트럼프 1.0 시절 그의 탄핵 소추 때 강력하게 트럼프를 옹호했다. 새 국가정보국장엔 2020년 대선 예비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탈락하자 2년 뒤 탈당하고 올해 공화당에 입당한 예비역 육군중령 털시 개버드가 내정됐다.
백악관 비서실장엔 2016년 대선 때부터 트럼프를 지지한 선거전략 전문 정치 컨설턴트인 수전 와일스 대선 선대본부장을 기용했다. 첫 여성 비서실장이다, 부비서실장엔 강경한 바이든 정부 이민정책 반대론자로 트럼프 1.0 때 그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스티븐 밀러가 내정됐다. 그는 이슬람 신도가 많은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의 미국 입국을 일시 금지하는 정책을 입안하기도 했다.
법무장관엔 하원 극우 ‘프리덤 코커스’ 핵심인물
법무장관엔 공화당 극우 강경파 의원모임인 ‘프리덤 코커스’의 핵심인물 맷 개이츠 하원의원을 지목했다. 지난해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을 주도했던 트럼프 측근 개이츠는 4건의 기소사건을 비롯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 해소에도 주역을 맡지 않을까.
상무장관엔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린다 맥마흔이 지목됐다. 린다 맥마흔은 세계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이자 대형 종합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WWE 창업자의 아내다. 트럼프도 WWE 흥행에 직접 가담한 적이 있다.
이민과 국경관리 수장들도 트럼프 열혈 지지자
국토안보부 장관에는 열혈 트럼프 지지자로 한때 부통령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사우스다코타 주 지사 크리스티 노엄, 불법이민 문제 등을 관장하는 국경단속 및 관리 책임자에는 이민세관수사국(ICE) 국장대리를 지낸 토머스 호먼을 지명했다. 노엄은 주지사로서 국경관리를 위해 멕시코 접경지역에 주 방위군을 파견해 트럼프의 눈에 들었다. 호먼은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세운 불법이민자 강제송환을 맡게 될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퓨 리서치 센터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는 1100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트럼프는 2024년 현재 1500만~2000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부통령에 취임할 J. D. 밴스 상원의원은 연간 100만 명을 강제송환할 것이라고 했다.
골수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장악할 외교 환경 분야
환경보호청장에는 환경정책 관련 실적은 별로 없고 오히려 화석연료 증산, 환경규제 완화 등 트럼프 노선을 추종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의 정치적 동지 리 젤딘, 유엔대사에는 트럼프가 “매우 강하고 터프하며 똑똑한 미국 제일의 전사”라고 칭찬한 골수 이스라엘 지지자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 중동지역 담당 대통령특사에는 유대인 부동산 부호로 트럼프의 골프 친구인 스티븐 위트코프가 각각 내정됐다. 부통령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스테파닉은 미국 대학들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력공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됐을 때 하원 청문회에서 대학당국과 경찰에 강경 진압을 요구했고, 유엔에서 이스라엘 비판이 고조됐을 때는 미국의 유엔 출연금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역 짜르’ 라이트하이저 재등판?
무역대표부 대표에는 트럼프 1.0 때 무역대표부 대표로 미중 교역협상을 주도한 “무역 짜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재무장관엔 투자 펀드 경영자 스콧 베센트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금과 재정, 통화정책 등을 관장하는 재무부는 러시아 등에 대한 금융제재도 지휘한다.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이 인사 제1 기준
이들 인사를 관통하는 공통점, ‘키워드(열쇳말)’로 먼저 트럼프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꼽을 수 있다. 말하자면 능력보다 철저히 ‘내편’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선이다. 대선 때 트럼프에 대한 대항마로 나서거나 물망에 올라 그를 비판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줄곧 트럼프 2.0 각료직 하마평에 오르다가 결국 지명 대상에서 배제된 것도 이 충성심에서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중국 반환경 친이스라엘도 핵심 기준
그리고 또 한 가지 키워드는 그들이 대부분 중국에 대한 강한 대결자세를 지닌 강경파라는 점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선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한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대체로 친민주당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친생태환경(탈화석연료)에 대한 경시나 무시 또는 반발도 키워드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트럼프는 그런 친민주당적 가치의 신봉자들에게 ‘워크’(woke, ‘잘난 놈’)라는 멸칭을 붙여 주면서 안보 군사 관련 인사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키워드들은 트럼프가 부르짖어 온 ‘미국 제일주의’(아메리카 퍼스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그의 집권전략이자 구호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트럼프는 그 전략과 구호를 실행에 옮길 적임자로 그런 성향의 그들을 발탁했다.
신설될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이끌게 될 사람으로 대선 때 1억 1800만달러를 트럼프 진영에 기부하는 등 전면에 나서서 트럼프를 적극 도운 테슬라와 스페이스X 등의 대기업 경영자 일론 머스크와 제약분야 벤처기업가 출신의 비벡 라마스와미가 지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위직 4천 등 5만 공무원 인사로 미국사회 재편?
장관 등 고위 정무직 공무원 약 4000명을 포함해 총 5만 명에 이르는 공무원의 인사권을 쥔 대통령이 ‘충성심’을 필두로 한 ‘트럼프적 임용기준’으로 미국 공직사회를 완전히 재편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1.0 때 워싱턴의 아웃사이더로서 대권에 도전했다가 예상을 깨고 당선된 트럼프는 미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직 인선을 공화당 주류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주요 각료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켜 국방장관 등이 도중에 물러나거나 해임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트럼프 2.0에서는 그런 경험을 토대로 철저히 자기 기준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일 심산일 것이다.
순풍에 돛달아 준 ‘트리플 레드’
공화당 후보가 대선 투표자 과반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됐고, 상하 양원 또한 모두 빨간 당색의 공화당이 다수당이 된 ‘트리플 레드’ 상황에서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런 트럼프적 ‘쇄신’ 내지 미국사회 재편에 대해, 바이든 정권이 자신들의 정책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곧잘 동원했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라는 대립구도 속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체제, 곧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사회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미국사회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부자들의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정권
트럼프와 공화당이 신자유주의의 주요 피해자로 알려진 백인 중산층을 비롯한 러스트 벨트 등의 소외계층과 민주당이 대표해 온 주류사회에서 낙오했거나 그렇게 믿는 ‘루저’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자신이 그렇고 그를 적극 지지한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 등도 그렇듯이 트럼프 2.0이 부자들의,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정권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자 감세와 공무원 대량 감원으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 높은 관세장벽과 내향적 보호무역주의(미국 제일주의), 피할 수 없어 보이는 인플레, 기후위기 등 생태환경 문제 경시가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다수 소외계층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쪽 재료 내지 장치로 작동 수 있을까. < 민들레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