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 유령건물 1년8개월 ‘감사 패싱’…“대통령실 감사방해죄 가능성”
‘부실·봐주기 감사’ 논란 빚고 있는 감사원, ‘외통수’에 걸려
대통령 관저 이전에 대한 ‘부실·봐주기 감사’ 논란을 빚고 있는 감사원이 ‘외통수’에 걸렸다. 경호처가 ‘스크린 골프 시설’을 검토하며 지었다는 70㎡ 신축 건물이 1년8개월간 진행된 감사에서 통째로 빠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일부러 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감사원이 도면 등을 확보하고도 감사에서 제외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감사원이 대통령실을 감사방해죄로 고발하고, 관저 이전 과정 전반을 재감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부실 감사와 관련된 이들에 대해선 조사·처벌·징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감사보고서 누락은 ‘분명한 의도’
올해 9월 감사원이 공개한 대통령실·관저 이전 의혹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신축 건물만 감사에서 빠져나간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감사원은 2022년 3월20일∼9월7일까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사 및 관저 보수 공사 △집무실 및 관저 방탄창호 설치 공사 △경호청사 등 이전 공사 등을 감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이전 시설 공사와 직접 관련된 예비비와 행안부·비서실·경호처 자체 예산 사업을 감사 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경호처는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부동산 등기에도 오르지 않은 70㎡짜리 유령 건물 존재가 폭로되자, 최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2022년 7월 현대건설과 관저 건물 공사 계약을 했다. 경호처 자체 예산 1억3천만원이 들었다’고 해명했다. 공사 명칭은 ‘경비시설 및 초소조성 공사’였지만, 처음에는 대통령이 이용할 스크린 골프 시설 설치를 검토했었다고 한다. 경호처는 윤 의원실에 ‘골프 시설은 검토만 하고 설치하지 않았다. 준공 뒤 경호시설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감사 대상으로 밝힌 ‘경호청사’ 범주는 “대통령 경호처 소속 직원의 사무 공간 및 출동대기시설”이다. 이에 따라 경호처는 예비비 또는 자체 예산으로 체결한 1억원 이상 공사 계약 22건(87억여원) 등의 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감사원은 이 가운데 6건의 계약(예비비 4건, 자체 예산 2건)에서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난 경호처 자체 예산 계약은 △사무공간 조성 공사 △긴급출동대기시설(김용현 경호처장 공관) 등 개선 공사 2건이다.
경호처 해명이 맞는다면 ‘자체 예산 1억3천만원으로 현대건설과 계약·준공한 경호시설’ 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대통령 비서실이 2년 넘게 해당 건물을 부동산 등기에 올리지 않은 이유, 경호처 예산 불법 전용 가능성, 실제 계약이 존재했는지 여부 등을 두고 감사가 진행됐을 사안이다.
한겨레는 지난 21일 감사원에 ‘대통령 비서실이나 경호처에서 이 건물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감사원 자체 판단으로 감사에서 제외한 것인지’ 물었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답을 듣지 못했다.
대통령 총무비서관실의 감사방해
관저와 부속 건물 관리 주체는 대통령 총무비서관이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윤재순 총무비서관은 검찰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다. 앞서 지난 8월 국회에서 윤 비서관은 “국가 안보와 국민 생활에 심각한 영향” “적·불순세력에 누설됐을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 등의 이유로 관저 공사 내역을 밝힐 수 없다고 버틴 바 있다.
총무비서관실이 이 건물 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명백한 감사방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감사 업무 경험이 많은 인사는 22일 “대통령 비서실이 해당 건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감사방해죄로 고발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감사원법은 감사 대상자가 감사를 거부하거나 자료제출 요구에 따르지 않았을 때 3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그간 감사원은 전 정권 감사에는 감사방해죄를 무리할 정도로 적용해 왔다. 월성1호기 감사 때는 감사원이 요구한 자료를 일부만 제출하고 삭제했다며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을 감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수사 자료를 보냈다. 감사원은 “제출을 요구한 자료 중 일부만 제출한다든지, 감사자료를 삭제한 행위를 감사방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감사 업무에 제한을 받게 된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올해 5월 오히려 감사원 감사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윤석열 정부 감사원 돌격대’라는 비판을 받는 유병호 감사위원이 사무총장으로 있던 2022년 10월, 감사원은 전현희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 감사 논란 속에 국민권익위 기관을 감사방해죄로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감사자료 제출 거부 및 감사 방해 혐의였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 행태를 볼 때 대통령실을 감사방해로 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고발 주체는 시민단체 등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건물 증축을 못 볼 수 있나…재감사 해야”
감사원의 부실·봐주기 감사 논란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감사관 등에 대한 조사와 문책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대통령 비서실이나 경호처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단 1건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료 협조가 충실히 잘 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감사원은 전 정권 관련 감사에서는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관련 자료와 문서를 탈탈 털어가는 방식의 감사를 진행해 왔다.
감사원은 관저 도면을 확보해 관저 이전 관련 공무원과 공사업체 관계자 등을 조사할 때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대통령실이 해당 건물의 도면을 감사원에 제출했는데도 감사 과정에서 이를 조사하지 않았거나, 감사보고서에서 일부러 제외했다면 감사 지휘부의 직권남용 등 혐의까지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다.
관저 이전 공사현장을 감독했던 김오진 전 대통령 관리비서관과 행정안전부 파견 공무원, 해당 공사를 맡았다는 현대건설, 김건희 여사 관련 업체인 21그램 등에 대한 감사·재감사도 필요하다. 공사 현장에서 70㎡에 달하는 건물 신축이 이뤄졌는데도, 감사 과정에서 이에 대해 어떤 진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사 업무 경험이 많은 인사는 “공사 현장에서 저 큰 건물을 짓고 있는데 아무도 이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부실 감사가 분명한 만큼 재감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앞서 관저 이전 공사에 참여했던 업체 관계자는 한겨레에 “관저 이전 공사와 동시에 해당 건물 공사가 이뤄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한 바 있다. < 한겨레 김남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