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신년논설] “내란 트라우마 극복, 참광복 열어 갈 역사적인 해”

시사한매니져 2025. 1. 12. 07:00

[신년논설]  한마당- 편집인의 글 

 

반민족, 반민주, 반평화의 악령 역사 전면에서 지워가야 할 역사적인 2025년.

 

나는 그 해 3년 차 기자였다. ‘언론 물정’을 익혀가던 5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시가지에 장갑차와 군 트럭들이 나타나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트럭에 타고 도열한 무장 군인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시민들을 노려보는 것 같아 거리가 싸늘했다. 같은 날 흉흉한 신문사 정문에 군용지프가 몇 대 멈춰 서더니, 정사복 군인 여러 명이 들이닥쳐 사장실로 올라갔다. 얼마 뒤 편집국장이 불려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돌아왔다. 국원들을 불러 모은 그는 “이제부터는 군인 세상이야, ‘군바리’들에게 데스크를 받아야 한다구!”라고 신경질을 내더니 “제길헐!”하고 내뱉었다. 신문사 뿐이 아니다. 주요 관공서는 군 장갑차가 지켰고, 기관장들은 군인들과 상의해 행정을 집행해야 했다.

 

그러니까 45년 전인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으로 쿠데타를 본격화 했을 당시의 기억이다. 그렇게 시작된 계엄하에서 신문의 모든 지면은 기자들이 제작본을 들고 삼엄한 계엄분소에 가서 군인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정훈 대위들이 일일이 체크하며 “이 기사 빼” “이거 키워”…사실상 편집국장 노릇을 했다. ‘광주에서 폭도들이…’ 운운 계엄사 발표 외에는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고, 정확한 진상을 알 길도 없었다. 그렇게 철저한 언론통제 속에 권력을 장악한 정치군인들은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정권을 찬탈했다.

 

도처에 군인들이 설치기 시작하면서 어둠과 공포가 번졌다. 신문사는 물론 행정관서와 기업체들도 평소 ‘눈엣가시’였던 직원들 명단을 보안사에 제출하라는 밀명으로 살벌해졌다. 비밀 리스트에 올라 어느 날 사라져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불량배’가 6만여 명에, 사상자가 무려 2천7백 여명이라 했다. 사기업인 언론사들을 입맛대로 죽이고 살린 언론통폐합도 단행됐다. 그들은 국회를 폐쇄해 헌정을 중단시킨 뒤 ‘국보위’라는 쿠데타 입법기관을 급조해 멋대로 180여건에 달하는 법을 만들고, 헌법을 개정해 전두환 5공 정권을 출범시켰다. ‘민주회복’을 외치며 권력에 저항한 학생과 정치인, 재야 민주인사 등 2천699명이 영장없이 불법 구금과 고문의 고통을 겪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박정희 독재에 이어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

 

 

그런 악몽의 쿠데타가, 2024년 12월3일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 놀라서 걸려 온 전화를 듣고는 ‘장난 아닌가, AI 가짜뉴스 아니야?’ 라고 반문하다 “정말이야? 미쳤군!”으로 바뀌는 순간, 전두환의 계엄이 머리를 스치며 혈압이 치솟았다.

 

12.3 영상을 보면 아찔하다. 국회 안팎의 계엄군 활극과 용감하게 저지하는 시민들, 국회직원들의 투혼이 감동적이다. 국내외 수많은 동포들이 직접 보고 들은 증인이 됐다.

 

한 달여가 지나며 수사로 드러난 윤석열 친위쿠데타의 전말은 더욱 섬찟하고 엽기적이다. ‘드론과 포사격 등 전쟁유도 대북도발’, ‘군 공항과 사드기지 공격으로 미군 북폭유도’, ‘체포조가 정치인 납치, 사살 후 수거·수장과 북한소행 위장극’, 그리고 ‘선관위 서버 탈취와 임직원 납치 고문계획’ 등… 국회의 계엄 해제안 의결 전후에는 “총을 쏴서라도, 도끼로 부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 끌어내라”고 대통령이란 자가 발포명령까지 하며 사령관들과 경찰청장, 국정원을 전화 닦달했다고 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치밀한 모의와 상상을 초월하는 정황이 쏟아져 나오니, 대한민국에 하마터면 쿠데타 잔혹사가 재현될 뻔했다. 전두환은 정권탈취가 목적이었지만, 윤석열은 이미 거대 권력을 쥔 대통령이 전시도 아닌 평시에 독재적 망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전두환급을 훨씬 뛰어넘는 사악한 군사반란 책동이었다. 자신의 당선은 옳았는데 총선결과만 부정이라는 확증편향이 계엄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그는 야당과 국회를 ‘반국가적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소굴’이라고 계속 적대-무시하며 법안과 특검을 거부하고 장관청문회 결과도 묵살해왔다. 재임 2년반 동안 정치무시와 의회주의 부정으로 일관한 그가 ‘입법독재’를 쿠데타 빌미로 든다는 것도 궤설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한 신부님이 ‘지랄발광’이라고 원색 비난했겠나.

 

대선 전부터 수없이 지적했었지만, 윤석열은 절대 국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될 됨됨이였다. 비열하고 간악한 사람은 반드시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재임 2년반 동안 위태위태 하더니 역시나,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 발로 기어들어간 꼴이 12.3 비상계엄이다.

 

 

그런데, 당장 큰 걱정은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오직 저만 살겠다는 쿠데타 세력이 죽기 살기로 나라와 국민을 ‘인질’로 잡고 반격에 목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수괴 윤석열의 헌재 회부와 공범들의 속속 구속으로 급한 불은 끈 것 같지만, 잔당들의 몰상식한 준동을 보는 국내외 동포들은 불안과 불면의 날이다. 법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며 ‘배째라’고 난동이다. 만천하가 보고 들은 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삿대질이다. 내란을 ‘내전’으로 키우겠다는 막가파 법꾸라지들의 '개수작'이다.

 

친위 쿠데타의 경우 주모자와 공범들의 권력이 살아있고, 합법처럼 착각할 수 있어 진압이 어렵고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바로 윤석열 내란이 말해준다. 현행범인 내란 우두머리가 대통령 신분으로 경호를 받으며 사실상 내전을 선동하는 어이없는 현실이다. 그가 기용한 자들이 여전히 행정부와 군의 요직에 포진해 있다.

 

거기에 수괴를 배출한 여당은 다른 유전자인가? 역시 사대주의 뿌리와 쿠데타의 후예들다운 혈맥 그대로, 오로지 권력 향배와 사리사욕에 매몰돼 상식과 이성을 팽개친 공범들임을 드러냈다. 사이비 종교적 가스라이팅으로 우매한 지지자들의 맹종을 악용하는 교활한 무리들이야 아예 제쳐놓는다 치자. 국정을 담당하는 집권당마저 개과천선(改過遷善)은 커녕 되레 극우화 되어 반동적으로 설쳐대는 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7할 이상이 내란죄 처벌과 파면을 원하는데, 국민이 뽑은 선량들이 국민의 분노는 안중에 없이 반헌법적 반국가적인 언동으로 전세 뒤집기에 안간힘을 쓰며 폐족의 길을 가다니!.

 

올해가 을사늑약 120년 되는 해다. 나라를 팔아넘기고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한 이완용 매국노 일당의 행태를 오늘날 내란수괴 편이 되어 감싸 옹호하고 선동하는 자들에게서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윤석열 쿠데타 이후 한국은 후진국 취급을 받고 있다. 주가 급락, 환율 급등으로 경제가 휘청인다. 국민들은 내란 트라우마와 울분을 삭이고 있다. 대선에서 한 표 잘못 찍었다가, 그야말로 혹독한 댓가를 치르는 중이다.

 

하지만 절망하고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민족이 어디 한 두 번 겪은 시련이던가.

민족사의 기로마다 확인했듯이, 이번에는 국내외 동포들이 광장을 달군 ‘빛의 혁명’을 일궜다. 비상아닌 비상에 뿔이 나 달려가고, 불의한 총구에 겁없이 맞섰다. 따끈한 커피와 응원물품을 서로서로 나누고, 현장에 못가면 선결제로, 그리고 돈도 참가도 힘들면 벽에 대고 소리치며 주먹이라도 휘두른 위대한 국민이다. 국회수호와 탄핵가결, 체포영장 등 고비마다 광장의 촛불과 응원봉의 저력 앞에 나가 떨어진 내란 발광의 끝이 보이는 이유다.

 

어둠의 세력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빛을 이기지 못함은 진리이고 섭리다. 온갖 간악한 술수와 사술로 치받아도 천하 대의를 거스를 수 없고, 도도한 민의의 물줄기를 역류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내란사태가 한민족에게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호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00수십 년, 해방 이후 80년이 되도록 민족혼을 더럽혀 온 불의한 저들을 우리 모두 똑똑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반민족 반민주 반평화의 악령을 역사의 전면에서 지워가는 내일을 준비하여, 참 광복을 열어가야 할 역사적인 2025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