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 과학

“대왕고래 아닌 대왕구라였다”… 국정 브리핑 1호의 몰락

시사한매니져 2025. 2. 7. 13:00

윤 대통령이 ‘계엄 사유’로 꼽기도…8개월 만에 ‘실패’ 인정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한 ‘영일만 석유·가스전’(‘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지난 8개월간 지속된 논란 과정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통령의 ‘1호 안건’으로 시작해 12·3 비상계엄의 이유로까지 꼽혔던 이 프로젝트는 결국 “대국민사기극(더불어민주당)”이라는 비판을 듣게 됐다.

 

처음 이 사안을 띄운 건 윤 대통령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을 찾아 ‘국정 브리핑 1호 안건’으로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전격 발표했다. 대통령이 특정 사업을 직접 발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인 만큼 정치권은 물론 시장에서도 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다.

 

당시 윤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며 “최근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에 동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 배럴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당일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약 453조원이므로,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의 가치가 2260조원이 넘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발표 직후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 흥구석유, 동양철관 등 석유 및 강관 관련 5개 종목이 무더기로 가격제한폭까지 단숨에 오르는 등 시장은 요동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경제 현안과 관련해 국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하지만 동해 심해 석유·가스 매장 분석을 담당한 미국 지질탐사 컨설팅 회사 액트지오(Act-Geo)에 대해 곧바로 여러 의문점이 제기됐다. 글로벌 개발 회사가 아닌 소규모 분석업체인 점 등이 예측의 신뢰성에 물음표를 찍게 한 것이다. 이에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가 대통령 발표 이틀 뒤인 지난해 6월5일 한국에 입국해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뒤 한인 사회와 한국인들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논의하고, 한국인들에게 더 명확한 대답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왔다”며 “(석유 매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분석 결과와 예측치 등에 대해선 “기밀 유지 계약”을 들어 답하지 않았다.

또 동해에서 15년 동안 탐사 작업을 벌였던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석유 및 가스 회사 우드사이드가 2023년 1월 철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이 지난해 6월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에 질문을 받고 있다. 백소아 기자
 

시추 가능성과 신뢰성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12월 ‘2025년 예산 심사’ 국면에서 폭발했다. 당시 정부는 1차 탐사시추를 위해 사업 예산 505억5700만원을 신청했으나 야당은 이 가운데 497억2000만원(98%)을 삭감했다. 결국 첫 탐사시추는 석유공사 사업비로 충당됐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예산 삭감을 12·3 비상계엄 선포의 원인으로 들었다. 그는 계엄 선포 9일 뒤 지난해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야당에 의해 국정이 마비됐다고 강조하며 그 예시로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동해 가스전 시추 예산, 이른바 대왕고래 사업 예산도 사실상 전액 삭감했다”며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되고 사회 질서가 교란돼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30일 경북 포항시 앞바다에 위치한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웨스트카펠라호가 탐사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
 

이후 정부는 지난해 12월20일 포항 앞바다에서 40㎞ 떨어진 곳에 시추선 웨스트카펠라호를 투입해 탐사시추 작업을 벌여왔으며, 이는 지난 4일 마무리됐다. 그 결과 6일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사실상의 실패 인정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 탐사 결과 일부 가스 징후가 있는 걸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성명에서 “대왕고래는 전두환의 국민 사기극인 평화의댐을 연상시킨다”며 “정권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왜곡과 거짓말이 동원됐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누리꾼들도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 누리꾼은 “대왕고래가 아니라 대왕구라였다”고 비꼬았고, 또 다른 누리꾼은 “(지난해) 처음 뉴스 나올 때부터 대국민사기극이라는 것 눈치 못 챈 사람 있나”라고 했다.   < 한겨레 송경화 기자 > 

 

윤석열 ‘대왕고래’ 8달 만에 실패…산업부 “경제성 없다”

“추가 탐사 필요성 낮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정부가 띄웠던 ‘영일만 석유·가스전’(‘대왕고래’ 프로젝트)이 1차 시추 탐사 결과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결론을 받아,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정부는 나머지 유망구조에 대해 추가 시추 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업 전체가 크게 동력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4일 마무리된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 탐사 결과 일부 가스 징후가 있는 걸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가 보낸 시추선 웨스트카펠라호가 지난해 12월20일부터 47일간 동해 영일만 인근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바닷속 1761m 등 전체 심도 3021m 깊이로 탐사한 결과, 탄화수소(가스) 징후가 일부 있었지만 규모가 유의미하지 않아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30일 경북 포항시 앞바다에 위치한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웨스트카펠라호가 탐사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
 

또 이 관계자는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추가 탐사를 진행할 필요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이례적인 대국민 브리핑을 통해 발표해 ‘정권 홍보용’이란 비판을, 기후·환경단체 등으로부터 “시대착오적인 화석연료 개발”이란 비판을 받았던 대왕고래 프로젝트 자체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애초 정부는 5~6월 중간 결과를, 8월에 최종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는데 “국민 관심과 주식시장 영향”을 고려했다며 이날 이렇게 ‘잠정’ 결론을 밝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동해 석유·가스 개발 계획을 발표할 때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1차 발표 때 “생각지도 못했던 정무적인 개입”이 있었다며, 당시 장관이 든 비유에 대해 “의도하진 않았지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대왕고래는 시추 계획을 세웠던 7개 유망구조 가운데 하나”라며, 이번에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머지 6개 유망구조에 대해선 추가 시추 탐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왕고래에선 아니었지만 “석유·가스의 부존 자체, 전반적인 석유 시스템 구조는 양호한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회에서 석유·가스전 개발 관련 정부 예산을 전액 삭감한 바 있어, 후속 사업에 동력이 확보될지는 미지수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2차 시추를 위해 3월부터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국회에서 정부 예산을 검증받겠다”고 밝혔다.                  < 한겨레 옥기원 기자 >

 

대왕고래 실패에…야당 “대국민 사기극”, 국힘 “경위 파악부터”

 

경북 포항 어민들이 한국석유공사의 석유탐사 시추에 반발해 지난해 12월20일 포항 앞바다 동쪽 20㎞ 지점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시추선 주변을 둘러싼 채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윤석열 정부가 띄운 ‘영일만 석유·가스전’(‘대왕고래’ 프로젝트)이 1차 시추탐사가 사실상 실패로 끝나자 야당에서는 “대국민 사기극” “달 그림자를 쫓았던 건 윤석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6일 브리핑을 내어 “허술한 검증, 과대 포장된 전망, 그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된 석유 개발 사업의 참담한 현실은 온전히 윤석열의 오만과 독선이 부른 결말”이라며 이렇게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실패가 예견됐지만 정부는 예견된 실패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국민의 혈세를 퍼부었다”며 “성장은커녕, 주식시장부터 폭락했다”고 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 소식이 전해지자 시간 외 거래에서 한국가스공사 등 관련 주가 하한가를 보인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추가 시추를 강행하겠다는 정부를 향해 “헛된 꿈으로 또다시 국민을 농락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4·10 총선에서 심판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호들갑을 떨 때부터 알아봤다”며 “석유·가스 경제성 확인도 전에, 시추 이전 단계부터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기 위해 ‘희망고문’한 책임은 어떻게 질 거냐”고 비판했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산자위 야당 간사인 김원이 의원은 페이스북에 “세금도 못 낸 1인 부실회사 엑트지오 말만 믿고 그 설레발을 치더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매장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자는 민주당의 의견을 그렇게 무시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며 “윤석열·김건희 부부한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김성환 의원도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며 국민 혈세를 허투루 쓰려다 막히자 '민주당이 산유국의 꿈을 제발로 걷어찼다'며 욕하던 국민의힘은 이제라도 정신차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당혹감 속에 말을 아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부의 입장은 존중하지만, 어떤 경위를 거쳐 그렇게 발표했는지 보고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겨레  고한솔  신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