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많이 가진 것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자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어떻게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인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가난해지기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난은 상대적인 가난이 아니라 파산과 같은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집도 있고 직장도 있지만 대저택에 사는 자들을 보며 평수도 작고 수입이 부족하여 누리지 못하는 가난이 아니라 하루하루 벌어먹기 힘들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가난입니다.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고, 입을 옷이 없어서 벗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경제적 발전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첨단화로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로 인해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 부모님들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여 자녀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없어지고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달려갔지만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알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령이 부족함 없이 풍성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심령이 가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그 가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난함을 깨닫지 못하고 풍요롭다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살아있는 것 같지만 그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잎이 달려 있다고 하지만 곧 시들어버릴 나뭇잎입니다.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나무가 스스로 세워질 수 없고 시내가 흐르는 물가로 걸어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들어 시냇가에 심겨주심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 뽑힌 나무가 복된 것은 주인이 시냇가에 심겨주기 위함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시간들이 너무나 힘들도 어려운 여정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시간들이 하나님을 만남의 시간이 되고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의 시간입니다. 축복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난함을 고백할 때 우리에게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