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총리)회담의 취재기자단으로 방북했던 1990년 10월의 기억이다. 개성을 출발하는 열차 안에서 내게 접근해온 북의 안내원은 우직해 보이는 중년이었다. 그는 북에서 지낸 3박4일 회담 기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내 곁을 맴돌았다. 평양시내 회담장 밖의 시민을 만나보려고 잠깐 거리로 나가면 대화를 듣다가 곧 중단시키며 그만 들어가자고 했다. 그래도 친숙해져서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 들어가면 냉장고에 준비된 백두산 들쭉술을 기울이며 밤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역시 같은 얼굴, 같은 말을 나누는 동족이니…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여 속사정을 엿볼 수 있으려나 싶어 가족이 몇이냐, 생활은 어떠냐, 직장은? 등등 질문이 이어졌는데, 거리의 몇몇 시민에게서 같은 답을 반복해 들었던 것처럼, 그 역시 작은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남쪽 사정은 좀 아느냐’ 는 물음에 그가 했던 대답은 생생하다. “우리도 남쪽이 잘 사는 것 안다. 하지만 부러워하지 않는다. 수령님 영도하에 다들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개성역에서 그와 웃으며 헤어진 후 머리에 맴 돈 잔상은 안쓰러움이었다. 당시 떠올랐던 평양 3박4일의 느낌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오세아니아 같았다는 것, 거대한 드라마 세트 같은 곳에서 우리 동포들이 ‘사육’ 혹은 관리 감시하에 숨막히는 삶을 살고있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았던 기억이다.
12.3 계엄사태에 대해 윤석열은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야당의 입법독재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계몽령’을 발동한 것이라며 ‘고도의 통치권 차원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2시간짜리 내란'이 가능하냐고 우긴다.
긴박하고 아찔했던 12.3 밤 계엄군의 국회와 중앙선관위 침탈 상황은 검찰 공소장에 나온대로 군을 동원한 폭동이었다는 것을 온 국민과 전세계 동포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전시 사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전혀 아닌 평온한 밤에, 난데없이 국군을 동원해 국가 비상상황을 만들어 온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국가신인도를 추락시켰다.
12.3 계엄이 노렸던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주장과 포고령대로 라면, 눈엣가시 국회와 야당을 없애고 비상 입법기구를 만들어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고, 비판세력과 언론을 일거에 쓸어내 귀에 거슬린 집회 시위와 보도를 제거하며, 말 안듣는 전공의들은 ‘처단’하겠다는 것까지, 한마디로 ‘공산 전체주의’ 독재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독재적 권력을 꿈꾼 친위쿠데타요, 헌정파괴 내란이며 반란사태였음은 수많은 눈과 귀, 현장의 영상들, 투입된 병력이 증거하고 증언했다. ‘잠시의 계몽’ 운운 말장난으로 오리발을 내미는 건 그야말로 후안무치다.
그런데 요즘 지지자들 외침과 ‘여론조사’라는 것들을 보면 국민의 3할 안팎은 그들 언동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까지 ‘12.3 내란’을 엄호하는 반헌법적 작태로 윤석열 석방과 헌재 기각을 윽박지르고 있다. 기어이 전체주의 독재권력을 만들어 누리겠다는 제2, 제3 내란의 망상적 염원에 목을 매는 꼴이다.
소위 법 전문가라는 사람들, 최고의 공복인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집권 공당의 책임자들이 국민과 국가야 어찌되건, 헌법도 사법시스템도 깡그리 무시하고 온갖 법기술로 법치를 농락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삼권분립과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집회와 결사와 양심과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짓밟으려 한 저들이 바라는 세상이란 어떤 모습인가? ‘파블로프의 개’처럼 속박 당하면서도 이구동성 ‘우리는 행복하다’고 합창하는 나라, 혹은 소설 ‘1984’의 오세아니아 같은 세상을 꿈꾸는가, 아니면 북한과 같이 반대세력 없는 무소불위 수령독재를 원하는 것인가, 푸틴의 러시아나 시진핑의 중국이 부러운가? 아니면 히틀러의 나치정권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 아니 일본군국주의 시대를 원하는 것은 아닌가?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라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전혀 본적이 없어도 예수의 동정녀 잉태를 믿고,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영생을 믿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윤석열 내란세력의 주장을 가감없이 믿고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보수기독인들이 많다는 것은 이 히브리서(11:1) 성구 때문인가, 말세적 적그리스도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탓일까?.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하나님 위에 있는 목사’ 전광훈이 믿거나 말거나 떠드는 소리에 미혹된 맹신자들, 그리고 극우 선동가와 돈에 눈먼 조작 유튜버들, 극렬 지지그룹 등은 윤석열이 영웅적 거사를 했는데 억울하게 구속됐고, 미국이 구해줄 거라는 헛된 믿음에 빠져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까지 흔들어대 지구촌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들은 야당이 입법독재를 했다, 야당대표는 빨갱이 범법자다 라고 무조건 믿는다. 헌재에 여당과 대통령이 추천한 우파 재판관은 보이지 않고 야당이 추천한 좌파 재판관만 득실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동기인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부정선거는 있을 수 없다”고 외쳐도 중국 해커가 개입했다며 거짓으로 치부한다.
‘내란수괴’의 복귀를 외치는 그들이 믿고 열렬히 추구하는 꿈의 나라는 과연 어디인가? 성경(요 10:11~15)에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양을 버리고 달아나 이리가 양을 해친다’는 말씀도 있다. 부하들은 모두 단죄 당하는데 자신은 책임없다는 ‘삯꾼 수괴’를 살려서 무슨 덕을 보려는 것일까?.
제자 도마는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만져보고 부활한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한다. 부디 차고 넘치는 증거와 증언들을 새기며 공의로운 심판과 한국 민주주의와 민권승리를 예감, 확신했으면 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