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RLD
미-러 우크라 협상, 종전보다 '경협'에 더 눈독
시사한매니져
2025. 2. 22. 04:17
루비오 "아주 놀라운 경제적 기회 공동탐사 하기로"
라브로프 "에너지, 우주 탐사 포함 경협 분야 협의"
미국 국부펀드 창설…러 측과 투자, 경협 주도할 듯
관계 정상화는 첫걸음, 지정학적 공동 관심사 협의
정작 우크라 종전 해법은 "이제 풀 문제" 즉답 피해
트럼프가 꿈꾸는 러시아와의 특별하고(extraordinary), 놀라우며(incredible), 독특한(unique) '경제적 기회'는 과연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측과 만난 미국 협상단은 우크라이나 종전 해법 자체보다 종전 뒤 맞이할 미·러 경제적 기회에 부푼 기대를 드러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는 이날 회담 뒤 AP통신·CNN 공동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함께 탐사할 '특별하고 놀라운 경제적 기회'를 5번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우크라이나 문제는 징검다리일 뿐이며, 가급적 빨리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회담에 러시아 측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 보좌관이 참여했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최고경영자도 같은 날 리야드에서 미국 측과 만났다.
루비오 장관은 인터뷰 모두에 러시아 측과 합의한 4가지를 설명했다. △ 워싱턴과 모스크바 대사관 정상적 기능 복원 △ 우크라 종전을 논의할 고위급 협상팀 임명 △ 종전 뒤 미·러 간 기대되는 지정학적, 경제적 협력 방안 논의 △ 협상 참여자들의 지속적인 관여 등이다. 4가지 합의 사항은 태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이 회담 뒤 내놓은 발표자료에도 담겼다. 인터뷰에서 AP와 CNN의 관심은 우크라 종전 방안에 집중됐다.
루비오는 러시아 측과의 회담이 '솔루션(해법)'에 기반한 생산적인 회의였다고 밝혔다. 이는 최소한 양국 간 영토 문제와 우크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핵심 현안에 대해 논의가 오갔음을 짐작게 한다.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종전 해법에 관한 질문이 계속되자 루비오는 "앞으로 우크라와 유럽 파트너들, 러시아와 협의할 문제"라며 예봉을 피하며 "모든 전쟁 당사자가 수용할 만한 합의안을 도출해야 영구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영토 문제에서 러시아의 양보 의지를 확인했느냐'는 질문에도 "어렵고 힘든 외교를 통해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다.

'경제적 기회'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사뭇 뉘앙스가 달랐다. 루비오는 미러 고위급 협상팀의 임무를 설명하면서 "특별한 기회를 탐사하는 작업에 일단 착수하는 것"이라면서 "지정학적으로 공동의 관심 이슈에 대해 또 솔직히, 희망컨대, 경제적으로 세계에 좋고, 두 중요한 국가(미러) 관계를 장기적으로 개선할 놀라운 기회가 존재한다"라고 역설했다. "놀라운 경제적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크라 갈등의 종식"이라고 말했다.
왈츠 보좌관은 "중요한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몇 달만에 세계의 관심을 우크라 종전 여부에서 어떻게 종전할 것인가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라고 공로를 트럼프에게 돌렸다. 미·러 간 지정학적 공동 관심사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중국 견제와 시리아와 이란 문제를 포함해 중동 현안에서 협력 등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따로 떼어내 살펴볼 대목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A4 1쪽짜리 간결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양국 모두 조속한 대사 임명 및 외교활동의 제한을 제거할 차관급 협상 △에너지와 우주 탐사 및 다른 상호 관심사를 포함한 경제 협력 대화 착수 △ 우크라 전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의 종전 관련 의견 교환 △가까운 장래에 특사 임명 △ 핵보유국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평화와 안보 문제에서 러시아와 미국의 특별한 책임을 염두에 두며 다른 국제 이슈를 논의할 채널 재개 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에너지 분야 협력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원유는 러·독·미 간 삼각관계와 러·중·미 간 삼각관계와 연계돼 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에서도 러시아와 독일 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의 개통에 반대한 바 있다. 전쟁은 러·중 간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두 나라는 시베리아2 파이프라인 건설을 해 왔다. 전혀 다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미국 측이 거듭 강조한 '놀랍고도 특별한 기회'가 되기 어렵다. 우선 트럼프가 집요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그린란드 매수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 장악에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1.7. 마러라고)으로 덴마크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24일 북극 안보를 의제로 '덴마크-미국-그린란드' 삼자 간 대화채널 구성에 전격 합의했다. 취임 나흘 만이다. 트럼프가 북극 안보의 위협으로 지목한 건 러시아가 아니었다. 그린란드 주변의 중국 선박과 군함이었다. 중국을 견제할 안보적 수요와 북극권 경제 부흥의 기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데 러시아와 협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이 추진하는 북극 실크로드(Polar Silk Road) 역시 트럼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우주 개발 분야도 거울의 새로운 협력으로 신기원을 열 수 있는 분야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뉴 프론티어'를 강조하며 "화성에 성조기를 꽂겠다"라고 다짐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사업과도 무관치 않다. 우주공간은 미·중이 경쟁하는 또 다른 전략공간. 러시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중심으로 비교우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러 간 경제적 기회를 탐사하는 작업은 당분간 러시아 측에서 드미트리예프 RDIF 최고경영자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RDIF는 러시아 국부펀드. 미·러 회담이 열린 리야드에 그가 등장한 것만으로 존재감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그는 각국 언론에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 협상이 2~3개월 내로 진전을 보일 걸로 믿는다"고 말해 양국 간 대형 프로젝트가 논의될 것임을 내비쳤다. 우크라전 이후 러시아에서 철수한 미국 기업들의 손실이 3000억 달러(432조 6000억 원)에 달한다고 널리 알리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인 드미트리예프는 트럼프 1기 때도 미·러 접촉에 관여한 인물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부과한 대러시아 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상호 직접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드미트리예프의 미국 측 상대는 조만간 정해진다. 트럼프는 지난 3일 미국 국부펀드 창설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연방정부 국부펀드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증진하고, 미국 가정과 중소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이며, 미국의 세계 경제적, 전략적 리더십을 증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부펀드 설립안은 재무, 상무장관이 대통령 경제정책 보좌관과 협의해 향후 90일 내 제출토록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일 자 사설에서 정치인들이 연방정부 자산을 동원해 민간기업을 포함해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 펀드를 만드는 데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시계는 따로 돌아간다. 세계가 우크라 전쟁의 향방에 관심을 쏟는 사이 트럼프는 푸틴의 러시아와 함께 또 다른 '깜짝 뉴스'를 준비하고 있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