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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100명도 과하지 않다
시사한매니져
2025. 6. 2. 01:49
문제의 핵심은 대법원의 업무과중과 부실재판
대법관을 지금의 13인에서 30인으로, 아예 100인으로 늘리자는 대법관 증원법안이 한동안 화제를 모았다.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대법관을 30명, 100명으로 늘리자는 민주당의원들이 제정신이냐고 역정을 냈다. 그런가하면 이재명 후보에 대한 속전속결 유죄취지 판결로 대선에 개입한 대법관들을 민주당의원들이 혼내주기로 작정하고 발의한 대법원 개편법안 아니겠냐며 정치적 배경과 의도를 부각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대법원이 처리해야하는 사건 수에 비해 대법관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대법관 증원이 필요한데 대법원이 요리저리 피하다 한방 맞은 셈이라며 민주당의원들을 옹호해주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대법관 증원법안의 불씨는 그대로 살아 있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대법관 대폭증원 법안을 이재명 방탄을 겨냥한 민주당의 사법장악기도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대법관을 30인으로 증원하면 대선개입목적의 이재명 유죄취지판결에 가담한 대법관 10인보다 훨씬 많은 대법관들을 새로 임명해서 대법원을 장악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총선에서 입법부를 장악한 데 이어서 이번대선에서 행정부를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당이 이참에 대법원까지 장악하겠다는데 보고만 있겠냐며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자극했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과 장경태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대법관 30명, 100명 증원법안은 선거민심의 역풍을 겁낸 민주당 지도부의 개입으로 며칠 만에 철회됐다.

대법관 증원구상이 찻잔 속의 태풍처럼 끝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법관 대폭증원을 둘러싼 논란이 짧지만 굵게 진행된 덕분에 이제는 대법관 대폭증원 문제가 아무 때나 공론장의 중요한 의제로 재부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됐다. 그동안 대법관 대폭증원 안은 대법원의 강력한 반대로 활발한 공론화 자체가 가로막혔다고 할 수 있다. 거대양당과 정치인들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뇌물죄와 명예훼손죄 등 정치인 관련 사건에서 생사여탈권을 쥔 대법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대법원의 권위에 잘못 맞섰다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두렵기 때문에 거대양당과 정치인들은 대법원에 찍히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것이 여야 모두 그동안 대법원개혁법안을 감히 내지 못했던 실질적 이유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정치권의 견제에서 벗어난 특권조직이 됐다.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개입 사법쿠데타에 화들짝 놀란 민주당의원들이 제출한 대법관 대폭증원 법안들은 그간의 정치금기를 과감하게 깨고 대법원을 직접 겨냥해서 발의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용민 법안과 장경태 법안은 철회됐지만 시민의 입장에서는 여야의 진흙탕 싸움이 정리되고 기억은 생생하게 남은 지금이야말로 대법관 대폭증원이 과연 필요하고 바람직한지 차분히 따져볼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글에서 대법원 재판의 실태와 문제점이 어떠하며 그것을 정상화하기 위해 과연 대법관 대폭증원이 필요한지, 아니면, 상고법원 설치나 상고허가제 도입 등 다른 대안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대법관 대폭증원에 의한 대법원재판 정상화방안을 옹호할 예정이다.
대법원이 연간 다뤄야 할 사건 수는 시민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2023년에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본안사건은 민사 12,152건, 형사 21,102건, 총33,254건이었다. 그밖에도 법원의 결정이나 명령에 대한 불복절차인 재항고사건이 2,600건을 넘었다. 2023년 한 해 동안 대법원은 대략 3만 6000천 건을 받았다. 이 모든 사건은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재판부(소부) 3개로 넘겨져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이나 기각이 결정된다. 만약 대법관 1인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로 넘겨지는데 연간 30건을 넘지 않는다.
지금의 사건분장시스템에 따라 4인 소부 3개가 처리해야 할 사건 수는 대략 연간 1만2000건, 매월 1천 건이다. 모든 사건에는 주심대법관이 지정되고 그의 책임아래 재판연구관의 검토보고서가 작성된다. 소부의 대법관 4인은 1인당 매월 250건에 대해 주심으로서 책임을 진다. 소부의 4인 대법관은 격주마다 하루씩 대면 합의과정을 온종일 진행한다. 2주마다 돌아오는 합의기일마다 대법관 각자는 주심을 맡은 125건을 처리한다. 소부 전체는 500건을 떨어내야만 사건적체가 늘어나지 않는다. 소부는 합의기일의 8시간 동안 시간당 62.5건, 1분당 1건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게 대법원재판의 실제모습이다. 물론 사실오인주장이나 양형부당주장처럼 번지수를 잘못 찾은 형사사건들은 30초도 안 걸릴 것이다. 대법관쯤 되면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법리가 명백해서 재판연구관의 검토보고서만으로도 더 따져볼 여지가 없는 심리불속행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다퉈볼 만한 사안도 사실상 3분 주심단독재판
문제는 법리적으로 다퉈볼 만한 10%쯤 되는 사안들도 3,4분을 넘기지 않고 판결해야한다는 데 있다. 이런 사건들만 해도 연4천 건에 육박하는데 30건 정도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는 사건들 외에는 거의 모두가 3~5분 재판대상이다. 지금과 같은 사건과다 구조에서는 주심의 지휘를 받아 재판연구관이 작성한 검토보고서가 사실상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주심이 아닌 대법관 3인은 본인이 맡은 주심사건들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빠듯해서 다른 대법관의 주심사건에 대해서는 합의기일에 주심대법관의 입을 통해 처음 접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4인 소부재판은 겉모양일 뿐이고 실질은 주심대법관의 단독재판, 그것도 3분 재판인 셈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주심대법관의 3분 단독재판 현실은 법원조직법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대법원은 재적 2/3이상 출석으로 전원합의체에 의한 재판을 하는 게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3인 이상 대법관으로 소부를 구성해서 전원일치로 판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대법원사건의 99.95%를 4인 소부가 재판하고 그나마 주심대법관의 단독재판과 다르지 않으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이보다 클 수 없다. 이대로 놔둘 수 없는 것이다.
대법원의 소임은 법적으로 난해한 사안에서 최종심답게 대법관들의 집단지성을 가동시켜 신중하게 사건을 처리하며 법리의 통일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법원은 쏟아지는 상고사건에 치여서 현실적으로는 주심대법관의 3분 단독재판을 넘어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결과로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현상이 대법관출신 전관예우관행이자 사법불신풍토다. 대법원 개혁이 주심대법관에 의한 3분 단독재판의 실질을 극복하는 일에 최우선적으로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다.
세 가지 대안: 상고법원, 상고허가제, 대법관 대폭증원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째는 대법원 아래에 상고전담법원을 별도로 설치해서 소송당사자에게 삼세번 재판받을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대법원은 사실상 제4심으로서 정책법원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는 엄격한 상고허가제를 도입해서 ‘묻지 마’ 상고시대를 끝내고 대법원은 고르고 고른 연간 200건쯤의 중대사건만 심층적으로 재판하는, 이른바 영미식 정책법원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이다. 마지막이자 셋째 방안은 독일의 예를 따라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고 전문재판부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가운데 다툴 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집단지성에 의한 질 높은 최종심 재판을 보장하는 방안이다.
대법원은 세 번째 대법관 증원방안에는 한사코 반대한다. 고작 4명을 늘려서 소부 하나를 더 만드는 정도라면 몰라도 더 이상은 결사 반대할 게 틀림없다. 대법관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언뜻 보면 상고사건 수가 지나치게 많은데다 해마다 증가추세가 뚜렷해서 대법관의 대폭증원 없이도 삼세번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대법관의 상고심 재판관행을 정상화할 수 있는 묘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법개혁문제, 특히 대법원개혁문제는 법조계나 대법원의 관점보다는 잠재적 이용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법이 보인다. 충실한 재판을 삼세번 받을 시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대법원개혁안을 찾아내야한다는 뜻이다.
상고법원 신설구상은 추진동력을 잃었다
상고법원 설치방안은 양승태 대법원장시절에 추진했던 해법이었다. 대법관을 증원하거나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는 대신 대법원 아래에 상고사건만 전문으로 처리하는 상고법원을 신설하는 방안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민감하게 여기는 몇몇 중대사건의 판결지침을 청와대와 사전에 협의한 사법농단사태는 상고법원 설치구상을 청와대에 로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태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만큼 절박했다. 그의 구상은 3만 건도 넘는 일반적인 상고사건은 고법부장 3인의 대등재판부 여러 개로 구성될 상고법원에 몽땅 떼어주고 대법원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과 판례변경을 요구하는 소수사안만 전원합의체에서 다루는 이른바 영미식 정책법원으로 개편하자는 것이었다.
상고법원 신설안은 대법원 아래에 상고법원을 둬서 상고사건의 99% 이상을 최종심으로 처리하게 하되 국가적, 법리적 중대사안은 지금처럼 14인 체제로 유지되는 대법원이 다루게 함으로써 대법관의 권위와 희소성을 최대로 유지하자는 공식적인 4심제 방안이었다. 나름대로 삼세번 재판기회를 충실히 보장하는데다 대법관 다음서열 자리들이 상당수 만들어지고 대법관의 권위와 위상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사법부 내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사법농단사태와 결부되었기 때문에 양승태 대법원의 몰락과 함께 추진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평가된다.
상고허가제는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다
정책법원을 표방하는 영미법계 국가들의 소인수 대법원은 예외 없이 엄격한 상고허가제를 실시한다. 수많은 사건 중에서 국가적, 공적으로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큰 사안, 하급심 해석이 들쭉날쭉해서 법리의 통일성을 기해야할 필요가 있는 사안, 기존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부각되는 사안을 대략 50~200건만 골라낸다.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아무리 커도 참을 수 없는 부당함이나 부정의를 결과하지 않는 이상 상고허가이유가 되지 못한다. 상고허가제를 운영할 경우 상고사건의 99% 이상은 상고허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항소심 판결로 끝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상고허가제는 삼세번 재판받을 권리를 사실상 한 번의 불복기회를 포함해서 두 번만 재판받을 권리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2심제를 하자는 대안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대안을 지지할지 의문이다.
대법원의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가 2021년 5월에 발표한, 상고제도에 관한 국민인식조사결과는 위의 의문에 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법률전문가인 일반시민 총1,135명(소송유경험자 926명, 소송무경험자 209명)과 법률전문가 총1,518명(법관 886명, 검사 83명, 변호사 408명, 법학교수 141명)이 응답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더 중점을 두어야 할 기능으로 일반시민의 과반수(50.5%)는 ‘개별・구체적 사건에서의 권리구제기능’을 꼽았다. 정책법원 기능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2.5%에 머물렀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결과에 비춰볼 때 상고허가제를 실시해서 구체적 사건에서 권리구제기능을 희생하고 대법원을 정책법원으로 전환하자는 상고허가제 방안은 국민의 지지를 받거나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여론조사결과는 대법관 1인이 주심으로 처리해야 하는 연간 사건수가 4천 건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일반시민들의 70.5%가 ‘모른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사실을 일반시민들이 알고 나면 어떻게 조사결과가 바뀔지 생각해보자. 특히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법관 수가 44개 유럽 국가의 중위 값에 비해 1/3 수준에 지나지 않을 만큼 적다는 사실을 일반시민이 충분히 알고 나면 어떻게 바뀔까? 우리법관들이 아무리 훌륭해도 유럽국가의 판사 3명 몫을 한다는 게 재판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대법관들이 아무리 훌륭해도 대법관 1인당 매년 3천 건 넘게, 매월 250건 넘게, 매일 12건 넘게 판결한다는 게 재판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 것이다.
요컨대 한국법관의 업무과중 사실을 아는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지금의 1심, 2심, 3심 재판 모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강해질 것이다. 자연스레 하급심법관 수와 대법관 수를 대폭 늘려서 모든 심급에서 충실한 심리와 재판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봇물 터질 게 틀림없다.
재판연구관 의존도가 높은 것도 문제다
우리 대법원은 소인수 대법관으로 운영되면서도 상고허가제를 실시하지 않고 상고사건만 연간 3만 건을 넘게 처리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대법원이다. 우리국민들은 일단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을 삼세번은 해봐야 한다며 대법원판결까지 받아보자는 생각이 강하다. 대법원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엄격한 상고허가제를 운영해서 소송사건의 99%를 사실상 2심제로 끝내고 대법원을 정책법원으로 재편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앞으로도 상고허가제 대안은 하급심재판의 충실화에 대한 확실한 보장책이 없는 이상 시민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게 틀림없다.
상고허가제를 하지 않는 대신 우리나라는 대법원에 재판연구관을 130명이나 배치해서 대법관들의 재판업무를 보좌한다. 재판에 투입되는 대법관 12인에게는 1인당 부장판사를 포함한 2인의 전속 재판연구관이 지원되고 나머지는 공동재판연구관으로 활용한다. 전속연구관이건 공동연구관이건 검토보고서를 쓰는 재판연구관은 판결문초안까지 작성하는 게 업무의 일부다. 대법원이 상고허가제도 없이 무려 3만 건도 넘는 상고사건을 받아서 모든 사건을 3개의 4인 소부에 회부하고 모든 사건이 4인 소부의 재판을 받는 것 같은 외관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출중한 경력판사 100명과 유능한 헌법연구자 30명으로 구성된 130명의 헌신적인 재판연구관 덕분이다. 대법관의 재판연구관 의존도를 낮추고 대법관의 직접책무성을 높이는 것이 대법원 개혁목표의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