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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당선되면 나라 망한다고? 대선 이후 전환과제
시사한매니져
2025. 6. 2. 01:55
선거 통해 퇴행적 정치집단의 세력화 막아야
'권리의 정치'를 공화의 마음 지닌 '책임의 정치'로
국가 공공성 역할 없는 규제완화·감세는 자해행위
다가오는 기후위기 티핑 포인트, 경로의존 버려야
새 술은 새 부대에, 대선 뒤 헌법 개정 논의 기대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사회 정치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숨 가쁘게 달려 온 지난 6개월의 여정은 ‘6.3 조기 대선’을 통해 한 매듭 지어져야 한다. 낡은 것의 수명 연장을 막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선거를 통해 퇴행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를 막아내야 미래 지향적 논의에 사회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중요하지 않은 대통령 선거가 없었지만 이번 선거를 맞이하는 유권자들 마음은 남다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시민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핵심 수단으로, 민주주의의 ‘꽃’ 또는 ‘축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들 마음은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은 커녕 짜증과 분노로 비장하기까지하다.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후보자와 길거리 선거 운동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날카로워진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격앙된 감정과 피로감도 커진다. 입장이 다른 상대 후보와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시민들이 늘어난다. 상대편에 대한 ‘꼴도 보기 싫다’는 마음이 후보의 비전과 공약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는 듯하다. 같은 하늘 아래, 대한민국의 한 울타리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선거 과정을 통해 쩍쩍 갈라지고 있다. 다른 이유로 다른 공간에서 만나면 아무 일 없는듯이 서로 정담을 나눌 이웃들을 선거가 원수지간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이번 조기 대선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느닷없은 비상계엄 사태가 초래한 혼란과 갈등 속에서 ‘내란 세력 심판’과 ‘민주주의의 복원’에 대한 열망이 이번 선거 국면에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비상계엄 선포 행위 자체의 황당함과 그 주도자와 추종 세력의 뻔뻔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 속 실종된 정책토론
반면에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내란 주도자들이 내세웠던 ‘반국가 세력’ 프레임으로 이재명 후보와 지지 집단을 괴물 독재, 공산당 세력으로 몰아 상황 역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상대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삼아 자신들의 집단적 과오를 덮고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엎어치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선거가 네거티브 방식의 난타전 형태로 흘러가면서 이번 사태를 초래한 문제의 본질은 희미해지고 적대적 진영 정치의 낡은 관성이 또다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정책 토론을 실종시킨 이번 대선후보 TV 토론은 한국 선거 정치의 불행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소용돌이 선거 정치, 무엇을 남겨 놓을까?
지금과 같은 선거 정치 행태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겨 놓을지 깊이 살필 필요가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열망과 이슈를 통째로 빨아들이는 선거의 소용돌이 정치(vortex politics) 속에서 정책은 실종되고 퇴행적 갈등이 반복되어 왔는데, 결과적으로 정치적 기득권은 공고해지고 공화국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살려내기 위한 내란 세력 심판론과 3권을 장악한 강력한 ‘독재의 탄생’을 막아내기 위해 ‘내란 유발 세력’을 심판하자는 주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심리적 내전’ 상태는 선거가 끝나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재명 후보 당선되면 나라 망한다?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유포시킨 채 유권자들의 선택을 강요하는 낡은 선거 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바꿔내야 한다. 선거가 이번 대선으로 끝나지 않고, 26년 지방선거, 28년 총선까지 연이어 진행되는 만큼, 지금과 같은 선거 정치 구조와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소위 선거 민주주의가 공화국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란 말처럼 안팎의 거대한 도전적 과제들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깊어진 내부 갈등으로 전환의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허송세월하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질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민주주의의 회복과 정상화를 넘어서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대가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룩했는데,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대형 사고를 친 것이 이번 비상계엄 사태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행태는 비상계엄 이전부터 있어 왔다. 불과 3년 전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현실을 ‘민주주의 위기’로 진단하고, 근본 원인을 ‘반지성주의’에 두면서, 해법으로 ‘자유’를 강조했다. 하지만 집권 기간 내내 강압적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의 질을 측정하는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2020년대 이후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자리 잡는 듯했는데,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후 2024년 조사에서는 아래 단계인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국가로 강등되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윤석열의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민주주의’는 핵심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는 내란 극복과 함께 민주주의의 위상 회복, 민주주의의 부활을 강조하면서 검찰, 사법, 감사원 등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개혁,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통한 국민주권 시대 등을 강조했다. 심지어 김문수 후보도 상대를 독재로 몰아세우면서 ‘새로운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할 정도다.
과거로의 퇴행을 막고 비정상성을 회복하여 새로운 미래로 가려면 민주주의가 제자리를 잡는 것이 선결 과제다. 하지만 현실의 조건은 결코 녹록치 않다.
내란 세력 심판을 위한 압도적 지지를 호소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선거 정치 구조에서 어느 한쪽의 압도적 승리는 쉽지가 않다. 내란 주범을 배출하고 옹호한 세력이 내세운 후보의 지지율이 유권자의 1/3을 넘는 현실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승자독식의 선거 구조에서 사표 방지 심리는 제3의 정치세력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넘어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선거법과 정당법 등의 개정으로 정치 생태계를 더욱 다양화시켜 권력 야합이 아닌 건강한 정치 연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전환과 전환적 민주주의
그 동안의 선거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대선은 정책 선거가 실종되었다는 진단들이 많다. 한국 정치의 현실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특성이 결합된 결과다.
대의제 선거는 유권자들의 다양한 가치와 열망을 1인 1표에 담아서 총합 된 득표수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대선의 경우 최다 득표한 권력자의 탄생으로 선거 과정에서 표출되었던 다양한 이슈들이 환원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탄핵 국면에서 광장에서 표출되었던 다양한 의제들은 선거 공약에 채 담기지 못한 채 구호 수준으로 머물다 휘발시켜 버리는 ’배제‘의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 당장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태적 가치나 미래세대 문제는 대표적인 배제의 대상이다.
’과잉 정당화‘의 문제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선거 국면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정책들이 패키지 형태로 묶여서 선거 결과에 따라 통째로 정당성을 얻는 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조기 대선의 경우 인수위 과정에서 정책 검증과 숙성, 의견 수렴의 과정이 생략되는 만큼, 급조된 선거 공약들의 과잉 정당화로 인한 문제는 클 수밖에 없다. 대선 ’이후‘ 정책들을 정치인과 관료,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사회적 참여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와 핵심 내용, 실행 방안들에 대한 세심한 검토와 피드백이 필요하다.
국가 공공성 역할 없는 규제완화와 감세는 자해행위
참고로 이번 대선 후보들의 10대 공약을 보면, 타협의 여지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지지율 1, 2위 후보들 간에 공통된 내용이 발견된다. 이재명, 김문수 후보 모두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포함한 경제 성장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1호 공약으로 이재명 후보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김문수 후보는 ‘자유 주도 성장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강조한다. ‘AI 3대 강국’도 이재명, 김문수 후보가 각각 1호와 2호 공약에 넣어 놨다. 성장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조 아래 기존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AI 기반 성장전략으로 대체한 모습이다. 문제는 성장을 뒷받침하는 방안으로 감세와 규제 완화 및 철폐를 이야기 하면서 ‘공공성’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성의 담지자로서 국가가 가진 규제와 재분배 역할을 내려놓고 규제 완화와 감세를 강조한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를 방기하는 자해적 행위에 가깝다. 대통령을 주인인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칭하는 것 또한 주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한 겸손한 표현일 순 있어도 국가 지도자로서 감당할 역할과 책임에 비춰볼 때 아쉽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비전과 실력을 갖춘 리더를 필요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평가와 책임을 묻는 민주적 견제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정치 지도자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자 나선 사람을 선거 과정에 만신창이로 만들어서 선거 후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적대적 선거 정치 구조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바꿔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상화 넘어 새로운 전환으로
이번 대선의 일차적 과제인 민주주의 회복과 정상화는 비유하자면 발효되지 못하고 부패해 버린 낡은 술을 덜어내고, 듬성듬성 구멍 난 헌 부대를 기우고 수선하는 일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회복과 정상화 수준에 멈춰서는 안될 일이다. 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이 새로워져야 한다. 전환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격으로 새로운 내용을 새로운 형식에 담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전환, 전환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와 민주주의의 창조적 진화
권력자와 그 집단의 권력 전횡, 이것에 대한 감시와 견제 장치의 미비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회복하고 정상화하는 것은 이번 대선이 가진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보다 심층적이고 전면적이며 지속적인 형태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기후 위기 문제가 대표적이다.
선거 정치의 혼동 속에서 기후 위기의 티핑 포인트 시간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막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탄소중립 2050’ 목표를 정하고 세계 각국의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2050년까지 남은 25년의 시간도 매우 부족한데, 목표 달성의 성패는 향후 5년 즉 2030년까지의 노력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의지해온 삶의 방식에 내재된 ‘중독’과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려면 사회적 지지를 바탕으로 집중된 노력이 필요한데, 공교롭게도 차기 정부 임기 기간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 과정에서 기후 의제가 다뤄지는 방식과 내용을 보면 이런 시대적 요청에서 한참 모자란다. 지지율 1위인 이재명 후보는 공약 10번째에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을 제시하고 있는데, 내용은 산업구조의 탈탄소 전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지지율 2위 김문수 후보는 기후에 대한 별도 공약 없이 재난 대응 차원에서 기후 문제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