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열린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시민들이 한 표씩 행사해 내란을 끝냈다. 1997년 대선 이후 28년 만의 최고 투표율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역대 최다 득표수를 안겼다. 이 표심에는 내란을 일으키고, 이후 6개월 동안 경제 파탄으로 온 나라를 수렁에 빠뜨려놓고도 법을 비틀어가며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내란 정부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재명 정부는 이 표심에 어떻게 호응해야 할까. 내란 책임자 처벌과 법을 비트는 데 동원된 권력기관 개혁은 기본이다. 다만 이 조처가 “선악 구도의 적대감”(이진순)을 바탕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이는 건 경계해야 한다. 정권 초기 적폐 청산에 몰두했다가 되레 검찰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던 문재인 정부의 과오는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분열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내란을 반성하지 않은 김 후보는 41.15%를 득표했다. 그런데 이 표심을 단순히 ‘내란 지지’로만 해석할 순 없다. 여기에는 내란과 상관없이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을 반대하는 정치에만 몰두한 표심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이렇게 “상대를 반대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는” 정치를 ‘반대의 정치’(김민하)라고 한다. 실제 이번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김 후보 지지자 가운데 40.6%는 “싫은 후보 낙선을 위해” 김 후보를 찍었다고 답했다.
양극으로 나뉘어 서로 반대만 하게 만드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승자가 독식하고 반대편을 억압하는 권력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반대가 아니라 지지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정당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고, 정책을 추진하거나 집권하기 위해 연합 정치도 할 수 있다. 개헌이나 정치 개혁 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것만큼이나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참여연대가 전문가 101명에게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를 물어본 결과, 사회통합과 경제적 불평등 완화가 가장 많이 꼽혔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 완화는 19명이 핵심 문제로 꼽았는데, 증세와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재분배 강화(9명)까지 합치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분야 19개 과제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22.76%)을 나타냈다. “불평등과 그에 대한 불만은 경쟁 격화, 각자도생, 혐오 세력화, 포퓰리즘 정치를 부른다”(김희원)거나 “증세와 소득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개선해야 하고, 이중 노동시장 구조도 개혁이 꼭 필요하다”(이강국)는 지적이 나왔다.(이번호 특집)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과 같은 감세 정책을 앞세웠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한강벨트 표심을 되찾아오는 결과를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통령이 한강벨트에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대통령이 될 순 없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이 공정에만 머무르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5년으로 진화해야 한다. 5년 중에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다. < 이재훈 기자 >
정치 지형과 민심이 변했다…숫자로 보는 21대 대선
6월 3일 서울 서대문구 명지전문대 체육관에서 제21대 대통령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제21대 대선은 사상 최대 득표, 역대급 투표율, 지역 구도의 미묘한 변화, 20대 남성의 두드러진 표심 분화 등이 주요 특징으로 나타난 선거였다. 선거 결과 드러난 몇 가지 핵심 수치는 한국 정치 지형과 민심의 새로운 흐름을 드러냈다.
■49.42%, ‘압도적 승리’?
이재명 대통령은 최종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총 1728만7513표로 역대 대선 최다 득표 기록이다. 2위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1439만5639표)와의 격차는 8.27%포인트로 289만1874표 차이가 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과반 득표에 성공한 대통령은 제18대 박근혜 전 대통령(51.55%)이 유일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득표율은 50%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대 당선자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36.64%, 김영삼 대통령은 41.96%, 김대중 대통령 40.27%, 문재인 대통령은 41.08%로 당선됐다.
2위 김문수 후보와의 8.27%포인트 격차 또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큰 편이다. 지난 20대 대선의 0.73%포인트,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2.33%포인트,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의 3.53%포인트 격차보다 훨씬 크다. 다만 이번 대선이 12·3 불법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권 심판’의 성격이 강했음을 고려할 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2위인 김문수 후보와 상당히 격차가 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과반 이상의 득표로 반대 진영의 ‘심리적 승복’까지 유리하게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이에 못 미쳤던 점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약 8%포인트 격차로 김문수 후보를 이긴 것은 분명 ‘압도적 승리’다. 다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표명을 분명히 하지 않은 김문수 후보가 40% 넘는 지지를 받은 점이 이후 정치적으로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79.4% 높은 투표율
21대 대선의 최종 투표율은 79.4%로 집계됐다. 이는 1997년 15대 대선(80.7%)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통상 판세가 뚜렷이 기운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시종일관 이재명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 상황이었음에도 예상을 벗어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인해 보수층의 투표 열기가 낮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보수층의 막판 결집이 이루어지며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계엄과 탄핵에 대한 심판 차원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율이 높아질 요인이 분명히 존재했다. 반면 보수층의 결집 요인을 찾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처럼 보수층의 결집이 상대적으로 낮게 예측됐기에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간의 격차가 두 자릿수로 벌어질 수 있다고도 전망됐다”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좁혀진 격차나 높은 투표율은 보수층의 막판 결집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김문수 후보 배우자 설난영씨를 겨냥한 비하성 발언 논란이 보수층 결집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유승찬 대표는 “이번 대선은 12·3 계엄으로 불거진 ‘내란 심판’의 성격이 강했던 선거였기 때문에 ‘탄핵의 강’을 건너지 않은 김문수 후보의 서사는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 전 이사장의 발언은 김문수 후보에게 새로운 서사를 제공했다”라며 “막판 며칠 동안 김문수 후보가 유세를 굉장히 잘했다. 유 전 이사장의 발언을 여성 차별, 직업 차별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인생사를 풀어낸 것이 보수층 결집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라고 말했다.
■PK 최초 40% 돌파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부산에서는 40%를 소폭 넘는 득표율(약 42.7%)을 기록하며 민주당계 후보로는 처음으로 ‘마의 40% 벽’을 넘었다. 울산에서는 42.54%를 얻어 민주당 후보 역대 최고 득표율을 경신했으며, 경남에서도 39.40%를 득표해 40%에 근접하며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의 지지를 받았다. PK 출신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대 대선에서 얻은 37.8%를 상회하는 기록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PK에서 민주당 후보가 40%를 넘거나 근접한 득표율을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TK(대구·경북)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30%를 넘지 않겠냐는 전망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실제 개표 결과 대구에서 23.22%, 경북에서 25.52%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다만 역대 민주당 계열 대선후보 중에선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미묘한 민심의 변화는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희웅 대표는 “이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준석이라는 보수 지지층의 또 다른 선택지가 존재했다는 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라며 “TK에서 김문수 후보는 과거 보수정당 후보들이 8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60%대에 머물렀다. TK의 정서를 대변하던 국민의힘에 월등한 지지 경향은 여전히 강고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정한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대 남성의 이준석 지지
이번 대선에서 두드러진 점 중 하나는 20대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이었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3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문수 후보는 36.9% 이재명 후보는 24.0%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이는 다른 모든 세대 및 같은 세대인 20대 여성의 지지 양상과도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윤희웅 대표는 “동일 세대 내에서 남녀별 정치성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현상이 최근 3~4년간 상당히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라며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활용하고 자극해왔다. 이 같은 균열이 또 다른 사회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정교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을 ‘20대 극우화’로 단순화해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한울 원장은 “극우에 대한 경계와 대응은 필요하지만, 이를 정의하는 공통된 기준이나 합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극우에 대한 우려가 커진 배경에는 계엄과 탄핵이 있다. 이준석 후보와 개혁신당은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그 지지자들을 극우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분명히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그것이 극우적 성향 때문인지 무책임한 정치적 언행 때문인지를 구분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 경향 박송이 기자 >
이재명 PK 선전에 지역언론 “보수텃밭 아냐” “국힘 비상”
부울경 최고득표에 지역언론 표심 분석… ‘PK대약진’ 평가
▲ 지난 4일 UBC '뉴스프라임'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처음으로 40%대 득표에 성공했다. 지역 언론에선 이를 ‘이변’으로 평가하며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치르며 민심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대 대선에서 40%대 득표에 성공하자 지역언론은 이를 적극 보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 40.14%, 울산 42.54%, 경남 39.4%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역 언론에선 탄핵심판 여론이 강했던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 4일 부산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최고기록”이라며 “역대 민주당 계열 후보 중 처음으로 40%를 넘었다. 계엄과 탄핵으로 촉발된 이번 대선에서 심판심리가 작용해 과거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넘지 못한 마의 40%를 넘은 것”이라고 했다. 부산MBC는 “보수세가 여전히 강하지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민심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 지난 4일 KNN '뉴스아이' 갈무리.
▲ 지난 4일 울산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같은 날 부산경남지역 민영방송 KNN 역시 ‘뉴스아이’를 통해 “PK출신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넘지 못한 마의 기록이 깨진 셈”이라며 “계엄, 탄핵에 대한 심판 여론이 그만큼 강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텃밭에서 접전을 허용한 국민의힘은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부산지역 일간지들도 ‘마의 40% 돌파’에 주목했다. 부산일보는 지난 5일 <진보 대통령으로 부산 최다득표... ‘마의 40%’ 벽 넘었다> 기사에서 “2018년 지방선거 이후로 보수우위지형으로 회귀한 부산의 정치구도를 다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같은 날 국제신문은 <李, 부산 ‘마의 40%’ 돌파... 경남선 김해 거제 金에 우위> 기사에서 ‘이재명 득표율 PK대약진’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 지난 5일 부산일보 기사 갈무리.
▲ 지난 5일 경상일보 기사 갈무리.
경남신문도 지난 5일 <국민 절반 내란종식에 한표> 기사에서 ‘경남 39.4% 역대 진보 최다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울산은 부울경 지역 중에서도 두 후보간 격차가 가장 적었고 지역구 5곳 중 2곳에서 이재명 후보가 앞섰다. 이와 관련 UBC는 지난 4일 ‘프라임뉴스’에서 “보수우세 지역인 울산에선 이례적인 수치”라고 했다. 같은 날 울산MBC는 ‘뉴스데스크’에서 “울산이 더 이상 보수텃밭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라고 했다.
울산지역 신문인 경상일보는 지난 5일 <울산도 내란심판 표심 거셌다> 기사를 통해 “전통적인 보수우파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울산에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심판하려는 유권자의 표심이 높게 나타났다”며 “울산에서는 계엄선포와 탄핵을 초래한 정당에 책임을 묻는정서가 강하게 발현된 것”이라고 했다. <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