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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와 싸우는 트럼프, 현대판 ‘분서갱유’
시사한매니져
2025. 6. 9. 12:13
미국을 최강국으로 만든 ‘소프트 파워 기반 해체’
계급·문화전쟁- 배경에 MAGA의 반엘리트 주의
또 한 가지는 정권이 적대시하는 ‘좌파 워크’
‘탈미국’ 움직임 속에 커지는 두뇌 유출 위험
연구자 75%가 미국 떠날 생각. ‘미국 오겠다’ 25% 줄어
정권 비판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주목적

"사관에게 진의 책이 아닌 것은 모두 태우고, 박사관의 것을 제외하고 천하에 감히 보관하고 있는 시(詩), 서(書), 제자백가의 글들은 지방관에게 보내 모두 태우게 하십시오. 또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감히 시, 서를 이야기하면 저잣거리에서 처형해 조리를 돌리고, 옛날을 가지고 지금을 비판하는 자는 멸족시키십시오." <사기> 진시황 본기 중에서(나무위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주민 학살에 반대하는 유학생들의 시위’를 빌미 삼아 하버드대학 등 미국 명문대들을 겨냥해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대대적인 학문 및 사상 탄압은 기원전 213~212년에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했다는 진 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아이비 리그’의 명문대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쫓겨나거나 미국을 떠나 해외로 일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트럼프 정권은 법원의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금을 끊고 유학 비자를 취소하거나 신규 발급을 중단하고 있다. 정권에 비판적인 자유주의적 진보 세력과 그 사상을 말살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대학 공격이 미국을 최강국으로 키운 ‘소프트 파워’의 토대를 스스로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을 정권에 적대적인 기관으로 규정하고 공격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J.D. 밴스 부통령 등 ‘트럼프주의자’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지원기관 “당신의 연구사업은 종료됐다” 통고
하버드대학 공중보건대학원(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환경질병학을 가르치던 마크 와이스코프 교수(59)는 지난 5일 대학 당국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연방기관의 통지에 따라 당신의 연구사업은 종료됐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지원 중단을 통고받은 대학 당국이,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보낸 그 메일 통지문에는 “종료한다”는 사업들이 열거된 액셀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10여 명이 함께 일하던 그의 연구실은 연방정부 지원금이 끊어지면서 생존위기에 몰렸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3월 말에 하버드대학에 “다년간에 걸친 87억 달러의 지원금” 재검토 방침을 알려 왔을 때에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진행 중인 연구는 ‘유해금속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장기간 연구 프로젝트여서, 트럼프 정권이 문제시하는 인종이나 젠더 등과 관련한 DEI(다양성·공정성·포용성) 이니셔티브나, 정권이 부정적으로 보는 바이러스 백신 연구와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산이었다.(<아사히신문> 6월 6일)
미국 엘리트 고등교육과 그것을 지배하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사상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혐오와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트럼프 정권은 지금 국가권력을 동원해, 얼마전 타계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고수가 얘기한 미국의 최대강점, 즉 ‘소프트 파워’의 기반인 미국 명문대의 존립토대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떠나 런던 정경대로 이직
독일인 마티아스 되프케는 199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 들어갔다. “미국에 오면 전적으로 환영받고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30여년 전에는 그랬다. 2012년에 그는 일리노이 주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경제학 교수가 됐고 2014년에는 미국에 귀화했다.
하지만 올해 4월 되프케 박사는 노스웨스턴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그 이유였다. “선거가 치러진 뒤 우리가 미국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과학계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중단하고, 연구자 비자를 취소했으며, 미국 최대연구기금 지원기관의 예산 대폭 삭감계획을 발표하며 학계와의 ‘과학전쟁’을 예고했다.
연구자 75%가 미국 떠날 생각. ‘미국 오겠다’ 25% 줄어
올해 첫 3개월 동안 미국에 기반을 둔 연구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지원한 사람이 2024년 같은 기간에 비해 32% 늘었다. 지난 3월 <네이처>는 미국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 12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미국을 떠날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신 미국 연구직을 지원한 비미국인 지원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5% 줄었다.(<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내년 예산 연구비 삭감으로 8만 명 이상 실직할 수도
미국이 매력을 잃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재정, 또는 재정 부족의 그림자다. 트럼프 정권은 취임한 1월 이후 수천 건의 연구 보조금을 취소했다. 웹사이트 ‘그랜트 워치’에 따르면, 지금까지 적어도 25억 달러 규모의 연구 보조금이 취소돼 연구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연구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예산이 취소될 수 있다. 백악관의 2026년 예산안은 과학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생물의학 연구기금인 NIH는 거의 40%에 달하는 예산 삭감에 직면해 있다. 또 다른 주요 연방기금인 NSF는 무려 52%의 예산을 삭감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예산 삭감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상하원을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에서 이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8만 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학술과학연구 지원금은 중국이나 유럽연합(EU)보다 상당히 부족한 상태가 될 것이다.(<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지금 미국서 벌어지는 일, 나치 독일과 유사성”
런던정경대학으로 옮겨간 되프케 교수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 교수를 해고하고, 아카데미아(학문 예술계)를 장악한 사실을 떠올리며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방향성이나 특징 중 몇 가지는 (나치 독일) 당시의 사건과 유사성이 있다”고 했다.
예일대학 교수였던 매시 쇼어와 남편인 티머시 스나이더(모두 역사학)는 올해 봄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으로 옮겨갔다. “남편은 결코 도망가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지만, 나와 아이들 때문에 토론토로 가는데 동의해 주었다”고 매시 교수는 말했다.(<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제이슨 스탠리 예일대 교수(철학)도 토론토대로 이적했다. 조지아대의 팀 퀴글리 교수(경영학)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로 옮겼다.

연구자금 동결로 커지는 두뇌유출 위험
연구 자금이 동결되면서 미국에서 두뇌 유출 위험이 커지고 있다. 올해 첫 3개월 동안 미국 과학자들의 해외 취업지원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분의 1이 늘었지만, 해외 연구자들의 미국 취업 지원은 4분의 1이 줄었다.(<이코노미스트> 5월 24일)
글로벌 인재 유치는 미국 학계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다. 지난 20년 동안 유학생 비율은 거의 두 배로 증가해 2023년에는 거의 6%에 달했다. 대부분의 유학생은 과학, 공학, 수학 등의 분야 학위를 취득하고 있다. 그중 약 3분의 1은 인도, 4분의 1은 중국 출신자들이다.
한국인 유학생도 2023-2024 학년도 기준 약 4만 4천 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기관 158곳의 유학생 비율은 14%로,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아이비 리그’와 스탠포드, MIT(매사추세츠 공대)와 같은 명문대를 포함한 12개 ‘아이비 플러스’(아이비 리그 8개대 플러스) 대학의 유학생 비율은 28%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는 각각 40%와 28%로 유학생 비율이 높다.
그런데 전 세계 학위 프로그램 온라인 디렉토리인 ‘스터디 포털스’에 따르면 미국 강좌 클릭 수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이다. 1월 5일부터 4월 말까지 주간 페이지 뷰는 그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1분기 미국 학부 및 석사학위 과정 트래픽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고, 박사과정 트래픽은 3분의 1로 줄었다. 가장 큰 감소폭을 보인 곳은 인도로, 관심도가 40% 감소했다. 예비 유학생들이 미국 외의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유학생이 줄면 미국 대학들의 재정적 위험 부담이 커진다. 비영리 단체인 미국 국제교육자협회에 따르면, 2023-24 학년도에 외국인 유학생들은 미국 경제에 438억 달러를 기여했다. 이 수치는 주로 민주당 성향이 높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유학생들은 대학뿐만 아니라 외식 서비스, 의료 등 다른 분야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미국이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인재 확보다. 유학생 박사과정생의 약 4분의 3은 졸업 후에도 미국에 남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차세대 유학생 유치를 막는 것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이코노미스트> 5월 28일)
유럽연합과 일본, 미국 이탈 연구자 응모, 지원
트럼프 2.0이 시작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발급된 학생 비자는 2만 9천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줄었다.
유럽연합은 지난 달 미국을 떠나는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5억 유로의 예산으로 연구자의 이전과 연구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AFP 통신>은 프랑스 엑스 마르세이유대학이 20명의 (미국 이탈) 연구자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대학에는 컬럼비아대와 예일대 등에 재직 중인 연구자들 약 300명이 응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도쿄대도 하버드대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유학생들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유학생 1800명 이상 비자 취소 조치
연구 지원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많은 과학자들, 특히 외국 시민권을 가진 과학자들이 위축과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2025년 첫 4개월 동안 적어도 1800명의 유학생들(최근 졸업생 포함)이 아무 설명도 없이 비자 취소 조치를 당했다가 그것이 위법이라는 법원의 취소 명령으로 4월에 회복됐다. 이미 다수의 미국 명문대 재학 외국 유학생들이 체포당하거나 국외추방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먼저 온 과학자(연구자)들은 신입 연구자들의 비자 취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해외에서 온 후배들에게 미국 입국 때 억류당할 수 있으므로 모국방문을 위해 출국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정권 비판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주목적
지난 5일 앨리슨 버로스 매사추세츠 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하버드대 유학생의 입국을 금지(비자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새 행정명령이 발동되면 하버드대가 “즉각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게 된다며 효력중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전날인 4일 트럼프가 외국인 유학생들의 위헙행위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하버드대가 거부하고 있다며,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하버드 유학생들과 연구자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비자를 취소한 조치를 무효화했다. 하지만 5월에도 트럼프 정권은 같은 조치를 취하고 법원은 이를 취소했으며, 트럼프 정권은 불복하고 조치를 다시 발동했다. 앞으로도 그런 과정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정권의 이런 조치가 외국인 유학생만을 겨냥한 건 물론 아니다. 그것을 빌미로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하버드대학, 나아가 진보적, 자유주의적 엘리트 대학과 지식인들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보복”이 조치의 주목적라고 비판자들은 지적한다.
4월 중순에 트럼프 정권은 하버드대학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력공격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인 유학생들의 ‘반유대주의’ 활동에 관한 자료 제출과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방침 폐지를 요구했다. 하버드대 당국이 이를 거부하자 국가예산을 무기 삼아 지원금을 중단하는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다. 와이스코프 교수는 국립보건원(NIH)뿐만 아니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도 지원 중단을 통고하는 메일을 받았다.

흔들리는 연구비 신청 및 승인 절차
트럼프 재선(트럼프 2.0) 뒤 과학자나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금 약 80억 달러가 취소되거나 철회됐다. 이는 연방정부의 고등교육 지원금 예산의 약 16%에 해당한다. 거기에다 추가로 122억 달러 지원계획이 취소됐으나 법원의 명령으로 복원됐다.
학계가 운영하는 추적 웹사이트인 ‘그랜트 워치’(Grant Watch)에 따르면, NIH와 NSF(국립과학재단)는 올해에 이미 승인된 3000건 이상의 연구비를 취소했다. 에너지부와 국방부 등에서 최소한 연구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NIH나 NSF, 국방부, 에너지부 등의 연구지원 기관에 연방기금 지원을 신청해 왔다. 신청(제안)서는 동료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거쳐 기관의 승인을 받으면 합의된 지원금을 일정기간 지급한다.
트럼프 정권 들어 이런 구조가 대격변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원 취소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이 좋아하지 않는 연구들을 대상으로 취해졌다. 여기에는 DEI 관련 연구, 기후변화, 허위 정보, 코로나 바이러스 19, 백신 연구 등이 포함돼 있다. 하버드와 컬럼비아, 예일, 스탠포드 등 명문대학에서 수행된 연구들도 추가된다.

그 배경에 MAGA의 반엘리트 주의
그 배경에 트럼프 정권의 극우 국수주의적 구호이자 운동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있고, 그 핵심에 반엘리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가 적대시하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8명의 미국 대통령이 다녔고, 정재계와 과학계의 요직에 인재를 공급해 온 하버드대학은, MAGA주의자들에겐 쳐부수어야 할 기득권층의 아성이다.
또 한 가지는 정권이 적대시하는 ‘좌파 워크’
또 한 가지는 트럼프 정권이 이들 엘리트 대학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따르지 않는 좌파 ‘워크(Woke)’사상의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워크’는 원래 ‘깨어 있다’는 뜻을 지닌 말로, 인종적 편견이나 성차별, 불평등을 비판하고 ‘정치적 올바름’, 기후위기 등에 적극 대응하려는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상 또는 세력을 가리키는데, 주로 트럼프 등 우파 세력이 ‘잘난 체하는 놈들’이란 경멸적 의미로 '좌파' 진보적 지식인을 야유하는 용어로 쓴다. 워크적 가치는 트럼프가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민주당 엘리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신문과 ABC, NBC, CBS 등의 방송들로 짜인 리버럴(자유주의적, 진보적) 주류언론이 추구하는 가치에 가깝다.
밴스 부통령 문화전쟁 선포 “대학을 공격하라”
이 말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트럼프 진영의 대표주자가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J.D. 밴스) 부통령이다.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예일대를 나온 밴스는 2021년 11월에 한 연설에서 “대학이라는 적대적 기관이 지식을 지배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상을 밀어주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솔직하게 적극적으로 이 나라의 대학들에 공격을 가해야 한다”며 적대감을 표출했다.
따라서 트럼프 정권의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 엘리트대학들에 대한 지원 중단, 공격은 감정적 차원에서만 기획된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적대세력을 말살하겠다, 씨를 말리겠다는 일종의 계급투쟁, 문화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규모 키우려는 트럼프
<이코노미스트>(5월 21일)에 따르면, 트럼프 정권으로부터 지원 취소 위협을 받고 있는 대상과 금액은 훨씬 더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NIH 예산을 38%, 즉 거의 180억 달러 삭감하고, NSF 예산은 50% 이상인 47억 달러를 줄이고, NASA(미국 항공우주국) 과학임무국(SMD)의 예산 거의 절반을 폐지하려 하고 있다. 연방 연구기관에 대한 예산 삭감안은 모두 합쳐 거의 4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미 많은 기관들이 폐지됐다. 3월에는 NIH를 포함한 보건복지부(HHS)는 전체 인력의 25%에 해당하는 2만 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 및 기후 연구를 수행하는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도 전체의 10%, 약 13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NSF에서도 인력 감축이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법원의 명령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더 많은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NIH, NSF, 에너지부, 국방부는 이른바 간접 연구비에 제한적인 상한선을 설정했다.
윤석열 정권의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과 같은 논리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5월 19일, 트럼프의 과학 고문인 마이클 크래시오스는 미국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앞에서 정부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정부가 과학을 더 훌륭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미국의 연구 예산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2024년 예산에서 1만개 넘는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비(R&D)를 대폭 삭감할 때 내세운 이유와도 비슷하다. 그 바람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구자들과 체결한 R&D 협약을 부랴부랴 변경해 연구비를 30% 가까이 감액했고, 과기부 소관 R&D 연구 97개는 아예 도중에 중단됐다. 그 결과 많은 연구들이 중단되고 연구자들도 떠났다.
윤석열 정권의 정책 브레인들은 제1기 집권 때부터 진행된 트럼프 정권의 ‘워크’사상에 대한 적대적 정책과 '좌파'(진보세력) 말살, 그리고 아베 신조 자민당 극우정권과 트럼프 정권의 밀착을 자신들의 정책입안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과학기술 R&D 예산 대폭 삭감과 전례없는 파격적 친일행보와 뉴라이트 인사 대거 채용 등이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계엄령 선포 도박도 국회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것을 밀어붙이려는 조바심의 소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독재자들이 권력집중 시도할 때 써먹는 수법”
트럼프 정권의 진보적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은 그들에 대한 미국인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또 그들의 그런 태도를 이용하는 면이 있다. 갤럽의 202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 고등교육을 “매우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의 또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50%였다. 이는 트럼프가 정치에 입문한 2015년 무렵의 응답비율과는 크게 달라진 것으로, 당시에는 “매우 신뢰한다”가 50%, “거의 또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11%에 지나지 않았다. 극우 국수주의자 트럼프는 이런 여론변화를 무기로 삼아 정적인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고 있다.
앤드류 마누엘 크레스포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트럼프의 이런 공격을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출된 인간이 독재자처럼 권력을 집중하려 할 때 써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말했다. “역사를 돌아보거나 세계를 둘러보더라도 그런 지도자들이 자유로운 언론기관이나 법원, 그리고 대학을 공격한다. 그런 것들이 (독재자의 출현을 막는) 활기찬 입헌민주주의에 불가결한 기관들이기 때문이다.”(<아사히신문> 6월 6일)

하버드대학을 사실상 ‘트럼프 대학’으로 바꾸려는 것
크레스포 교수는 하버드대가 거부한 트럼프 정권의 요구 중에는 교육내용에 대한 ‘감사’도 포함돼 있었다며, “트럼프 정권이 노리는 것은 하버드대학을 사실상 ‘트럼프 대학’으로 바꿔 (친트럼프, 친공화당적인) 사상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