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t 뉴스

윤석열 정부, 유엔에 ‘계엄’ 늑장 통보…자유권규약 위반

시사한매니져 2025. 6. 23. 12:52

유엔 자유권규약 의무…법무부는 “관계부처와 상의하느라 늦어져”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군인들이 진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정부가 비상계엄 선포일로부터 무려 5개월이나 지난 뒤 유엔 사무총장에게 계엄 선포와 해제 사실에 관해 통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 1990년부터 가입한 국제조약인 ‘자유권규약’에 따라 국민의 자유권을 제약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시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무부처는 법무부다.

 

22일 한겨레가 유엔국제조약 누리집을 통해 확인한 대한민국 정부의 통지문을 보면,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는 지난달 19일 유엔 사무총장에게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께(한국시각), 대한민국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12월4일 오전 1시2분께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자, 대통령은 오전 4시20분께 계엄령 해제를 공식 발표했고 이후 국회는 같은 날 오전 4시29분께 계엄령 해제 안건을 승인했다”는 서한을 보냈다.

 

정부는 이 서한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계엄령에 따라 제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제9조, 제19조, 제21조 및 제22조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 이 규약이 현재 완전히 이행되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제9조는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 제19조는 의사표현의 자유, 제21조는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 제22조는 결사의 자유를 담고 있다. 통지문의 영어 문장은 “계엄으로 인해 권리가 제한됐다”고 단정하지 않고, “제한될 가능성이 있었다”(possibly subject to restriction)고 밝혔다.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가 지난달 19일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통지문. 계엄 선포 및 해제 사실과 각종 권리가 제한됐을 가능성을 밝혔다. 유엔 국제조약 누리집 갈무리

 

유엔 자유권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의 자유권규약이란 우리나라가 가입한 8대 국제인권규약 중 하나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으로 불린다. 자유권규약 제4조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공비상 사태와 그러한 비상사태의 존재가 공식으로 선포된 때에는 (중략) 당사국은 자국이 이탈한 규정 및 그 이유를, 국제연합 사무총장을 통하여 이 규약의 다른 당사국들에게 즉시 통지한다. 당사국은 그러한 이탈을 종료한 날에 동일한 경로를 통하여 그 내용을 추가로 통지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타이(태국)·아르헨티나 등 약 40여 개국도 자유권규약 제4조에 따른 비상조치와 관련한 통지를 유엔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이후 이를 즉시 유엔에 통지하지 않고 5개월이 지나서야 유엔 사무총장에게 알렸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계엄이 곧바로 해제되었지만 계엄 사실이 없던 일이 아니다. 유엔에 통지해야 할 의무를 불이행한 셈이고, 5개월동안이나 직무유기를 했다”며 “이렇게 통지가 늦어진 점은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정기적 모니터링과 국가보고서 심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법무부 관계자는 “관계부처와 상의하느라 늦어졌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계엄 다음날인 12월4일부터 통지를 준비했으나 국방부·외교부·국무조정실 등의 의견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12월12일에) 박성재 법무부장관이 탄핵소추되는 일도 생기면서 5월에야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3시간여만에 끝난 계엄에서 어디까지 (시민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거냐를 놓고 각 관계 부처와의 논의가 필요했다. 그래도 (계엄으로 인한) 권리 침해 상황을 상세하게 적시했다”고 덧붙였다.

 

‘자유권규약에 따른 통지 의무를 불이행했다”는 지적은 이미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안’에 반대하는 인권위원들로부터 나온 바 있다. 남규선·원민경·소라미 위원은 2월16일 낸 소수의견서에서 “(정부가) 자유권규약 제4조3항의 통지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올해 대한민국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2025∼2027년) 지위에 있다. 정부는 이사국 출마 당시 ‘대한민국이 당사자인 국제인권조약의 완전한 준수보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고경태 기자 >

 

원민경 인권위원 “유엔서 한국 인권위에 큰 우려…쥐구멍 숨고 싶었다”

[인터뷰] 원민경 인권위 비상임위원
제네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에 대표로 참석
“안창호, 인권위를 모래바람에 묻으려는 듯”

 
 
               원민경 위원. 고경태 기자

 

“정부 보고서만큼이나 한국 인권위에 대한 시선이 따가웠어요.”

 

국제사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원민경 비상임위원(53·법무법인 원 변호사)은 지난달 29~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인종차별철폐위) 공식 회의에 인권위를 대표해 참석했다. 한겨레는 지난 14일 원 위원을 만나 “한국 인권위가 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느냐”는 질타가 이어졌다는 제네바 회의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회의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가 대한민국을 비롯해 가봉·과테말라·키르기스스탄·모리셔스·우크라이나 6개국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 협약’(인종차별철폐협약) 보고서를 심의하고 국가별 인권기구 의견을 청취한 뒤 최종의견을 내는 자리였다. 인종차별철폐협약은 국내법 울타리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및 아동, 난민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조약이다. 1978년 이 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13번째 정부보고서를 냈다. 인권위가 인종차별철폐위 회의에 참석한 것은 17·18·19차 보고서를 심의한 2018년에 이어 7년 만이다.

29일 오후 제네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윌슨홀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대한민국 제20·21·22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참석한 원민경 위원(왼쪽). 본인 제공

 

앞서 인권위는 지난 3월 인종차별철폐위에 제출할 보고서를 심의하며 위원 간 의견 차이로 진통을 겪었다. 일부 인권위원은 세 차례에 걸친 전원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인종차별 문제가 없다”, “왜 우리가 유엔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하느냐”, “불법체류자인데 왜 불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가”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애초 인권위 사무처가 제시한 난민신청자 및 인도적 체류자 보호 조치 등의 핵심 권고 내용은 대거 삭제되거나 축소됐다.

 

인종차별철폐위 18명 위원과 비공식 회의를 가진 원 위원은 이들이 한국 정부의 보고서보다도 한국 인권위 상황에 더 관심을 갖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왜 한국의 인권위가 제 기능과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지 많은 질문을 받았어요. 이미 상황을 자세히 아는 눈치였고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원 위원은 인종차별철폐위 한국 담당관 2명과 한국의 시민사회 참가단이 회의할 때 동석했는데, 이때도 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나온 일부 인권위원의 부적절한 발언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변호사로서 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 난민 신청자의 소송을 돕고 있는 원 위원은 이번 회의에서 1%대에 머무는 한국의 난민 인정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오죽하면 국적국과 가족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려 하겠어요. 박해받을 우려에 대한 공포 등 난민신청을 할 만한 사정들이 있는데도, 법무부 발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만8336명이 난민 신청을 했지만 이 중 2%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29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윌슨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보고서 심의에 참석해 인종혐오 범죄를 규제할 법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불피해가 증가하는 현실 등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국 인권위가 국제 사회의 지적을 받은 이번 회의는 한편으론 한국 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의 뛰어난 역량과 위상을 실감할 계기이기도 했다. 공익법단체 어필 소속 김주광 변호사와 여러 인권활동가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인종차별철폐위의 상세하고 강력한 최종견해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2018년 개최된 인종차별철폐위에도 참가했는데 당시 경험을 살려 활동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이번에 나온 최종견해는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혐오표현과 증오범죄에 대한 명시적 범죄를 포함하는 포괄적 입법을 할 것 △미등록 이주민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과 배경을 조사하고 정규 이주민이 되는 경로를 확대할 것 △미등록 이주민이 노동권 침해 위기상황을 신고하는 경우에 출입국 당국에 통보되지 않도록 할 것 △공식문서에서 불법 체류자 또는 이와 유사한 용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법률 및 규정 내 관련 표현을 삭제할 것 등이다.

 

특히 인종차별철폐위는 대구 모스크(무슬림 사원) 건립이 잇따른 무슬림 커뮤니티에 대한 혐오 발언 속에서 지연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1년 이내에 정부의 중재 절차와 관련한 정보를 회신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더불어 한국의 인권위원 후보자 추천을 위한 독립적인 단일위원회 설치를 법률로 의무화하라는 견해도 표명했다.

 

지난달 6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회의 시작 직전 원민경 위원(맨 왼쪽)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김용원·남규선 상임위원. 김경호 선임기자
 

원 위원은 제네바 회의에서는 여러 지적을 받았지만, 그래도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탈 때는 마음이 가벼웠다고 한다. “비공식 회의 발언 때, 한국 국민들이 힘을 모아 헌정 질서를 파괴한 비상계엄을 잘 극복해 낸 것과 같이, 인권위 역시 국민들과 인권활동가, 인권위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현 상황을 잘 타개해 곧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절망했다. 지난 12일 오후 참석한 인권위 제10차 전원위에서 워터마크가 새겨진 비공개 회의록을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비공개 안건 및 논의내용이 자꾸 밖으로 유출된다며 안창호 위원장이 내린 조처였다. 그는 워터마크에 한 번 놀랐고, 워터마크가 불가피하다는 안창호 위원장과 한석훈 위원 등의 발언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했다.

 

“사적인 대화를 나누러 인권위 회의에 오나요? 왜 자신의 발언을 숨기려고 하나요. 이건 인권위원 활동을 공적인 책무로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인권위원회법 14조에 의해 회의 공개가 원칙인데도, 공개·비공개 여부를 다수결로 정하자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이 다수결로 통과됐다고 정당한가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해서 국제사회와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위원회 직원들이 대신 사죄하게 했던 위원장과 다수 인권위원은 지금까지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어요. 사과는커녕 위원의 공개회의 발언을 두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왜 인권위원을 보호해주지 않느냐’고 항의까지 하는 것에 할 말을 잃었어요.”

 

원 위원은 “폭언을 일삼고 직원들을 괴롭히며 인권위를 파행으로 몰고 온 김용원 상임위원이 인권위에 모래바람을 일으켰다면, 안 위원장은 아예 인권위를 모래더미에 묻어버리려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안 위원장이 인권위를 비공개 밀실 운영하는 가운데 비판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소수자 인권부정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리(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특별심사를 앞두고 그는 작심한 듯 마지막 말을 이렇게 남겼다.

 

“간리가 인권위에 요청한 자료 목록만 봐도 인권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와 인권위의 위상 추락이 읽히는데 안 위원장은 간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며 특별심사 개시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인권위가 가면 간리에서 등급이 깎이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인권위 무용론이 나올 거예요. 누가 인권위를 믿고 진정을 하려 하겠어요.”   < 고경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