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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박근혜가 섰던 천안문 10년 만에 선 김정은

시사한매니져 2025. 9. 4. 14:14
 

박근혜 방중 3개월 뒤 한일 ‘위안부 12.28합의’
미국 ‘피봇 투 아시아’ 위험에 빠뜨린 박근혜 방중
경악한 미 국무부 한일 12.28합의 압박
2016년의 사드 한국 배치, 2012년에 이미 결정

12.28합의 뒤 북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미국, 북 위협 증대를 이유로 사드 배치
10년간의 동아시아 외교 반전을 완성시킨 트럼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북한 지도자 김정은(오른쪽),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왼쪽)이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및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이어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리셉션장에 도착했다.2025.9.3. UPI 연합
 

202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식. 사열대 위에 선 시진핑 중국주석을 중심으로 왼쪽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섰고, 오른쪽에 김정은 조선노동장 총비서이자 국무위원장이 섰다.

 

10년 전인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 승전 70주년 기념식 때도 푸틴 대통령은 천안문 광장 사열대 시진핑 중국주석 옆 자리에 섰으나 그 옆의 또 한 사람은 박근혜 당시 한국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2015년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 10년이 지난 2025년 9월3일 중국은 베이징에서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식과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열병식)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025.9.3 EPA 연합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 승전 기념식이 열린 베이징 천안문 사열대에 시진핑 중국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선 박근혜 당시 한국 대통령. 그 오른쪽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당시 카자흐스탄 대통령. 한 사람 건너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   연합

 

박근혜 방중 3개월 뒤 한일 ‘위안부 12.28합의’

 

10년 전 그해 12월 28일 아베 신조의 일본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선언하는 합의(12.28합의)를 맺었다. 그 전까지 아베 정권과 박근혜 정권 사이는 냉랭했다. 2013년 2월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그 전 해 말 이명박 전임 대통령의 독도 전격 방문에 반발한 아베 정권이 부추긴 혐한 소동 등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대일관계 자체에 별 관심이 없거나 정책이 없는 듯했다.

 

박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중국의 대일전쟁 승전 기념식에 전격적으로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데에는 그런 아베 정권의 오만에 대한 반발 또는 외교적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 ‘피봇 투 아시아’ 위험에 빠뜨린 박근혜 방중

 

한국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기념일에 시진핑, 푸틴과 함께 천안문 광장 사열대 위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함께 지켜본 초유의 ‘사건’에 아베의 일본도 놀랐겠지만 아마도 미국은 대경실색하지 않았을까.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권 때인 2011년 10월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앞으로 미국은 외교, 군사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고 밝힌 이후 유럽과 중동에 집중돼 있던 미국 전략적 초점과 자산을 동아시아로 이동시키는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로의 중심이동) 정책을 본격화했다. 1978년 개혁개방과 미국 주도로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뒤 급속도로 힘을 키운 중국의 대두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잠재적 패권 경쟁자 중국 견제를 위해 수립한 것이 ‘피봇 투 아시아’였고, 그 핵심 동맹국이자 교두보가 일본이었다.

 

그 피봇 투 아시아 교두보 일본의 전략적, 지정학적 가치의 전제조건 중의 하나가 ‘한일협력’이었다. 한일간의 반목은 미일동맹의 약한 고리였고, 미일동맹은 한일의 공조 내지 준동맹 또는 동맹관계를 전제로 한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을 의미했다. 한국은 일본에 종속돼 한몸처럼 움직여야 했다.그것이 미국의 의도였다. 일본 패전 직후 한반도를 분단해 절반을 장악하고 전범국 일본을 통째로 점령한 뒤 최대의 동맹국으로 변신시킨 미국이 1953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동맹 체결 직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중재(강압)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것은 불변의 전략이었다.

 

2016년의 사드 한국 배치, 2012년에 이미 결정

 

2012년 6월에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은 피봇 투 아시아에 입각해 2020년까지 미국 해군전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재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8월에는 국방부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요격)체제)의 한국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미국은 그때 이미 한반도 사드 배치를 계획했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권과 아베 신조 정권의 알력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 전체의 약한 고리였고 근심거리였다. 2015년 9월 박근혜의 방중과 천안문 광장 대일전쟁 승전 기념식 참석은 그런 미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한중 접근 내지 ‘친중’은 우익들이 주장하듯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웬디 미 국무부 부장관 한일 12.28합의 압박

 

그해 2월에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핵심 담당자였던 당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오바마 행정부 임기 내내 동북아 지역은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다. 미국의 안전과 번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불가분의 관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도 했다. “물론 민족주의 감정에 기댈 수는 있다. 그리고 과거 적국을 헐뜯어 값싼 박수를 받아내기는 쉽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보보다는 마비를 불러올 뿐이다.”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반목하던 한국과 중국을 겨냥한 이 발언에서 웬디 차관보는 일본에 진정성 있는 과거사 청산을 요구한 한국과 중국을 과거 적국을 “(이유 없이) 헐뜯어 값싼 박수”를 받아내 자국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도발하는 나라로 매도하면서 (‘착한’) 일본을 두둔했다.

 

9월 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리셉션 장에서 함께 서 있는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본경제신문 9월 3일

 

12.28합의 뒤 북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 웬디 셔먼이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해 성사시킨 것이 ‘일본군 위안부 합의’(12.28합의)다. 미국은 어떻게서든 한일관계를 바꿔야 했고, 관계복원의 부담(과거사 덮기)을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게 지웠다. 그렇게 해서 한일관계가 재설정되고 한미일 삼각(준)동맹이 강화되자, 북한은 다음해인 2016년 1월 6일 함북 길주군 풍계리에서 4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은 이를 수소폭탄 살험이라고 발표했다. 2월 7일에는 광명성 4호를 발사했다.

 

미국, 북 위협 증대를 이유로 사드 배치

 

북이 인공위성이라 주장하는 물체를 쏘아 올린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위험성을 부각시킨 미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를 본격 추진해 경북 성주군 성산 포대에 사드 1개 포대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으로 수십조 원을 투자한 롯데는 중국에서 철수해야 했고, ‘한류’로 북적이던 한중관계는 얼어붙었으며, 한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까지 감수해야 했다. 미국은 그런 한국사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2012년에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피봇 투 아시아 정책의 일환, 즉 중국 견제를 주목적으로 한 결정이었다. 그런 판에 박근혜의 천안문 광장 항일전쟁 승전 기념식 참석은 미국과 일본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박근혜가 중국을 다녀온 지 약 3개월 뒤에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12.28합의)는 결국 한중관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남북관계를 사상최악 상태로 몰고갔다. 한국은 거기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박근혜 균형자 외교, 북방정책의 종말

 

그리하여 한중 접근과 함께 균형자 외교 역할을 주창했던 노무현 외교정책와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을 활용하는 듯 보였던 박근혜 정권 외교는 하루 아침에 다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체제로 복귀했다. 미국 또는 미일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

 

윤석열이 취임하기 전부터 굴욕적이고 파격적인 대일 접근을 기획했던 것에는 박근혜 좌절의 학습효과 탓도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2025년 9월 3일 시진핑, 푸틴과 함께 베이징 천안문 광장 사열대에 오른 김정은의 중국방문은 2015년 9월 3일 박근혜의 천안문 광장 승전 기념식 참석 직후 시작된 동북아시아 국제외교 구조의 반전이 10년 만에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일 수 있다.

 

10년간의 동아시아 외교의 반전을 완성시킨 트럼프

 

그 완성을 막판에 확실하게 견인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였다.

북중러 세 나라는 모두 미국의 제재 또는 트럼프 ‘관세폭탄’의 주요 대상국들로 ‘반미’를 기치로 결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각자 트럼프와 협상(딜)을 해야 할 상대국들이기도 해서 서로 결속하는 것이 대미 협상에도 당연히 유리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한미일과 북중러 대립체제의 정립은 한반도 휴전선(38선)을 경계로 갈라진 동아시아 및 세계의 진영 간 대립·대결체제, 냉전 붕괴 이후 4반세기만에 부활한 ‘신냉전’ 체제의 완성이기도 하다. 한반도 분단선을 경계로 한민족을 영구적 또는 반영구적으로 다시 갈라놓은 신냉전 구도는 냉전체제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 세력들에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딜을 통해 한반도 분단체제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내지 전망은, 적어도 예전 소련 붕괴와 같은 대변환, 예컨대 중국의 붕괴나 미국 일본의 붕괴와 같은 대격변이 일어나거나 남북이 주체적이고 상생적인 통합을 선언하고 실천하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