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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의 나라' 미국 뒤흔드는 '반이민 트럼프' 광풍
시사한매니져
2025. 9. 6. 11:10
여론과 엇나가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
이민·범죄단속 명분 군 포함, 공권력 총동원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고 체포-수감-추방 일변도
백인인종주의 이데올로기가 닫은 미국의 미래

주먹이 법보다 가까운 미국
지금 미국은 비상이다. 한 쪽에선 불법 이민 단속에 나선 이민국 요원과 시민과의 충돌이, 다른 쪽에선 치안을 내세워 군대를 동원한 정부에 대한 항의시위가 이어진다. 이민국 요원들은 거리든, 식당이든, 일터든, 공공장소든, 심지어 이민 법정 바로 앞까지, 거침없이 들어가 불심검문에 납치하듯 사람들을 잡아들인다. 적법절차를 가볍게 무시하는 단속에 법보다 주먹이 훨씬 가깝다. 시민과 공권력의 충돌이 일상화되고 있다(사진 1 참조).

법무부는 심지어 이민자 추방 금지 판결을 내린 메릴랜드주 연방판사 전원을 행정부 권한침해라며 고소했다. 백악관이 추방 목표 수치를 정해놓고 일선 이민국 요원들을 닦달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범죄단속을 내세워 주 방위군은 물론 현역 해병대까지 불러들였던 대통령은 LA, DC에 이어 시카고, 볼티모어 등에 군을 동원하겠다며 협박(?)하고 있다. 경찰국가, 헌병국가라는 말까지 나오는 중이다. “취임 첫날부터 독재자가 될 것”이라던 그의 말이 실제로 집행되는 형국이다.
계엄을 방불케 하는 이 같은 조처에 대해 이민과 범죄는 명분일 뿐, 트럼프 정부가 공권력과 시민, 연방정부와 주-자치 정부 사이의 충돌을 유도,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그를 빌미로 독재체제를 강화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실 이민과 범죄를 엮어 인종적, 군사적, 위법적 방식으로 몰아붙이는 트럼프 정부의 행태는 심각한 사회(예: 공권력 대 시민의 대립과 불신)-정치(예: 군의 정치적 중립 문제)-사법(예: 이민·범죄 단속과정에서 벌어지는 헌법과 법률 위반) 차원의 문제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선 추후 자세히 짚도록 하고, 여기서는 일단 이민과 이민정책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과장된 이민 문제, 여론도 이민에 긍정적
사실 이민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주장이나 일반의 통념과 달리 심각하진 않으며 여론도 대체로 이민에 긍정적이다. 이민, 특히 불법이민에 대해 미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임금을 낮춘다는 것, 복지예산에 해를 끼친다거나 문화적 불협화음을 조장한다는 것, 범죄는 물론 테러 위험도를 높인다는 것, 허술한 국경이 국가 주권을 훼손하고 이민법 질서를 흔든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각종 통계나 보고서, 연구자료 등은 이 같은 주장이 왜곡·과장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사진 2 참조).

한편 올 7월, 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민에 관한 미국민들의 태도는 긍정이 과반을 훨씬 상회한다(사진 2 참조). 2000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당과 무당파 중 60% 이상(심지어 올해는 91%), 공화당 지지자들도 50-60% 정도로 긍정적이다. 바이든 정부 시절, ‘불법 월경(illegal crossings)’ 문제를 방치하면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여론이 부정 쪽으로 크게 선회하기도 했지만, 그건 일시적 현상이었다. 오히려 그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이 오히려 공화당 지지자들의 여론도 바꿔놓았다. 긍정비율이 무려 25%가량 오르면서 64%를 기록한 것.
달리 말하면, 이민 문제가 정치적 필요와 의도에 따라 특정 집단에 의해 실제 이상으로 과장·왜곡되는 것이다. 또 시민들은 불법 이민 단속보다 국경 보안이 더 중요하며, 폭력적 공권력 투입을 해결책으로 생각지도 않고 있다. 사실 공화·민주 양당은 공동으로 이민제도 개혁법안을 만들고자 노력했었다.
트럼프와 공화당 강경파 반대로 무산된 이민 개혁법안
지난 2023년, 공화-민주 양당은 상원을 중심으로 이민법 개혁안을 함께 만들었다. 의회 통과를 위해 노력하던 즈음, 트럼프 대선팀과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법안이 불법이민을 오히려 늘린다고 왜곡하면서 가로막은 것. 끝내 제출조차 못 한 채 법안은 묻혀버렸다. 그보다 10년 전, 오바마 정부 시절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양당은 공동의 개혁안을 만들고 상원은 68-32라는 압도적 차이로 법안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바마라면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는 공화당 강경파 하원의원들이 논의를 거부하면서 개혁안은 결국 문턱에서 무산됐다. 2018년 트럼프 정부 1기 때도, 양당은 불법이민 부모의 미국 출생자녀를 위한 신분처리 법안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백악관의 반대로 끝내 좌절됐다.
이때 나온 이민 개혁안은, 국경 보안 강화 및 관련 인력과 예산 확대, 엄격한 이민 심사(망명 신청자 포함), 기존 불법 체류자에 대한 영주권-시민권 부여 절차 확립 등을 근간으로 한다. 이민 문제를 포용적 방향에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민정책을 금지·감시·처벌의 차원으로 접근한다. 지난해 공화당의 선거공약집은 정부의 정책 1, 2순위가 각각 ‘국경봉쇄와 이주민 침략(migrant invasion) 저지’. ‘사상 최대의 (이민) 추방작전 집행’이라고 대놓고 적시했다(사진 3 참조). 그리고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관련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이민 저지, 불법이민 근절, 불법 체류자 체포, 수감, 추방에 힘을 쏟는 형벌 중심의 반이민 노선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젠 군대까지 포함한 공권력을 총동원, 단속에 나서고 있다.
반이민 정책의 토대는 인종주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트럼프 정부와 일부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이 취하는 반이민 정책의 근저에 자리한 인종주의 문제다. 트럼프가 인종주의자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비백인에게 마약상이니 강간범이니 하는 혐오와 멸시로 가득 한 언어폭력을 일삼는다.

인종주의라는 점에서는 공화당 전반이 그렇다. 링컨과 함께 출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노예해방의 정당’, ‘링컨의 정당’이라고도 불렸지만, 공화당은 1960년대 후반 이래 남부-백인 중심 정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사진 4 참조). 본래는 민주당이 그런 정당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뉴딜과 60년대 민권운동을 이끌면서 민주당은 환골탈태, 미국의 진보(리버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가는 엄혹했다. 남부와 백인의 지지기반을 잃은 것이다.
그 빈자리를 공화당이 파고들었다. 핵심에는 ‘남부전략(southern strategy)’이라는 선거전술과 사상투쟁이 놓여있다. 흑인 등 소수자를 위한 복지·민권 제도가 사회적 근면의 윤리를 해치고 백인을 역차별하는 정책이라는 것, 여성-환경-반전 운동은 미국의 전통과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급진적 도발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백인과 복음파 기독교도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전략은 성공했다. 1980년 레이건의 당선은 그 정치적 승리의 정점이다. 이렇게 해서 공화당은 남부-백인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당은 인종, 가부장(남성), 반공·애국 이데올로기를 묵시적으로 또 명시적으로 여전히 붙들고 있는 극우 정당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오늘날 트럼프와 공화당의 반이민 정책은 이같은 이념적 토대에 기초한다.
반이민은 미래의 무덤 파는 자기파괴적 행태
미국에서 이민정책은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다. 이민이 ➀노동시장에 끼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며, ➁유권자의 인구사회학적 구성을 바꾸면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고, ➂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면서 새로운 사회적 생활환경을 조성하며, ➃미국을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거대한 인구사회학적 변동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 5의 그래프가 보여주듯, 앞으로 불과 10년 후인 2034년, 미국은 65세 이상의 노령층이 18세 이하의 청소년·유아보다 많은 노령사회로 진입한다. 그 10년 후인 2044년에는 백인보다 비백인의 인구가 더 많아진다. 문자 그대로 다인종 사회로 들어선다. 사실 18세 이하 세대의 경우, 백인은 2020년부터 이미 소수집단이다. 한편 점점 줄어드는 미국의 출산율은 2023년에 1.6으로 사상 가장 낮은 비율로 떨어졌다.
노령사회, 다인종 사회, 게다가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 미국에 닥친 전례 없는 도전이다. 앞으로 미국의 인구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이민 때문이지 미국민들의 출산 때문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가 이민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정부의 폭력적, 인종주의적 반이민 정책은 스스로 미래의 무덤을 파는 자기 파괴적 테러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