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급습 사건. 장갑차와 헬기, 쇠사슬까지 동원된 스펙터클은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아니라, 트럼프의 ‘정치 쇼’였다. 그런데 이 황당한 각본의 시나리오 작가는 다름 아닌 조지아주의 극우 정치인 토리 브래넘,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마가(MAGA) 집단이다. 이들은 한국인이 250명 이상 연행되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극우 정치인 마녀사냥에 쏟아지는 성원과 정치자금
토리 브래넘(Tori Branum)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1만 3000명의 해병대 대원들을 훈련시킨 사격 교관 출신이며, 참전 경험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출마하려는 조지아 선거구에는 2개의 보훈병원과 1개의 육군 기지가 있다. 현역과 예비역, 군인 가족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원 의원에 도전하는 그녀에게는 세간의 주목과 정치 자금이 절실했다. 이번에 현대차 배터리 공장 사건이 터지자 그녀는 즉시 페이스북에 자신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대한 제보자라고 자랑했다.
“내가 현대차를 신고했다. 한국 기업이 조지아인의 일자리를 훔쳤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선동일지 몰라도, 문제는 거기에 인신매매, 시신 암매장 같은 괴담을 덧칠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페이스북은 딸이 관리한다. 엄마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목격한 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음모론을 제시했다. 딸은 9월 7일 페이스북에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현대 메가 사이트에서 잠재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이 사망했고, 당국에 신고하고 싶지 않아 현장에 매장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는 이 주장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현장에 법의학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어제 저녁 현장에 FBI 윈드브레이커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단속이 아니라 마녀사냥이다. 울타리 넘어 달아난 사람? 시체가 묻혀 있다? 이런 식으로 근거 없는 얘기를 퍼뜨리며 한국을 희생양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분노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현재 토리의 페이스북에는 수천 개의 지지 댓글이 올라와 있다. 페이스북 팔로워도 늘어나고 있고 정치자금 기부도 쏟아진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연합뉴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법과 정의 외면한 ‘인종주의 정치 쇼 케이스’
트럼프 지지층의 구호는 늘 같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러나 그 위대함의 조건은 무엇인가? 바로 외국인을 몰아내고, 이민자를 괴물로 만들고, 한국 기업 같은 외국 자본을 악마화하는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자본과 불법 이민이 결합하여 미국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ICE의 급습은 그래서 법 집행이 아니라 정치 집행이다. 수개월 전부터 이어진 정치인·유튜버·극우 방송의 제보와 압박이 만들어낸 정치적 연극이었다. 법과 정의는 뒷전이고, 오로지 ‘트럼프를 위한 분노 동원’이 목적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한국인만 250명. 그 중에는 단기 비자로 합법 파견된 직원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미국에서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한국 통장으로 월급을 받는다. 미국에 간 목적은 새로운 장비 사용법을 모르는 미국 노동자들을 가르쳐주러 간 것이다. 미국 정부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류션의 현지 투자를 유치하면서 짧은 공기와 조속한 공장 가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가 숙련 인력을 보내 도와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토리 브래넘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440억 원의 보조금을 받아먹고 불법으로 한국인을 고용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장 인근의 상인이나 시민단체가 “한국 노동자들은 정직한 사람이고 고마운 존재”라고 항의해도 이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살피지 않고 ICE는 헬기와 장갑차를 동원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민 단속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계와 히스패닉 노동자를 모조리 ‘타자화’하며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간 모습은 미국식 인권의 민낯을 보여줬다. 이건 단속이 아니라 인종주의적 쇼 케이스였다.
트럼프의 진짜 목표 “한국도 일본처럼 문서에 사인하라”
미 ICE의 사상 최대 불법 이민 단속 작전의 표적이 한국이라는 점은 우연일까? 일본은 이미 트럼프가 요구한 5500억 달러짜리 투자 문서에 서명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소식이 없다. 바로 이 시점에 한국 기업 공장을 표적으로 삼아 ‘철퇴’를 내린 것이다. 트럼프의 계산법은 단순하다. 한국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MAGA 결집하고, 스펙터클한 단속으로 공포 조성하여 관세 협정과 투자 문서 서명을 압박하는 것이다.
일본은 반도체, 의약품, 중요 광물, 조선, 에너지, 인공지능 등 미국 전략 분야에 최대 5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최종 협정에 서명했다. 내용을 뜯어보면 기가 막히다. 투자처는 미국 상무장관 주도 투자위원회가 추천하고, 대통령(트럼프)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지정 후 45일 내에 투자금 지급이 이뤄져야 하며 기한 미준수시 일본에 자동적으로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
투자 수익 배분에서 투자금 회수 전까지는 양국이 절반씩, 회수 후에는 미국이 90%, 일본이 10%를 가져가는 구조로 미국에 매우 유리한 방식이다. 이를 조건으로 일본산 자동차, 트럭 등 일부 산업의 미국 수출에 대해 관세가 기존 25~27.5%에서 15%로 인하된다. 이는 일본 투자 이행이 전제 조건이 되며, 투자 불이행 시 즉각 관세가 단계적으로 복원된다.
미국 극우 정치의 들러리냐, 국익이냐의 갈림길
일본과 같은 굴복을 한국에 요구하는 트럼프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대통령실이 미국의 노골적인 협박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이재명 정부가 만약 이 협박에 쉽게 무릎을 꿇는다면? 단순한 외교적 굴욕이 아니다.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법 집행’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희생양 만들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시대 이후 미국 내 배타주의와 인종주의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한국을 겨누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언제든 한국을 내칠 수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이다. 굴욕적인 협박 문서에 도장 찍고 미국 극우 정치의 들러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자존과 국익을 지켜내는 길을 갈 것인지를 말이다. 미국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순순히 도장을 찍는 순간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